이탈리아 여행기 2015/바티칸

산 피에트로 광장(Piazza San Pietro)

佳人 2016. 7. 11. 09:00

 

산 피에트로 대성당 구경을 마치고 밖으로 나옵니다.

아침 일찍 이곳으로 들어올 때는 잔뜩 흐린 날이었지만, 모두 구경을 마치고 나오니

날씨가 제법 맑은데 오늘 이야기는 맑은 날처럼 맑았으면 좋겠습니다.

 

 

성당 앞으로는 엄청난 크기의 광장이 있습니다.

이 광장은 30만 명의 인원을 수용할 수 있는 공간이라 합니다.

이 광장을 산 피에트로 광장(Piazza San Pietro)이라고 부른답니다.

 

광장 양쪽으로 열주 회랑이 있어 원을 그리듯 둘러싸고 있는 모습입니다.

마치 열병식을 보는 그런 느낌이 드네요.

광장의 크기는 폭이 240m이고 길이가 340m로 약간 달걀 모양의 타원형입니다.

 

 

위성지도를 통해 하늘에서 본 모습입니다.

원형이 아니라 타원형이라는 말이 맞네요.

좌우 대칭의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누구는 이 모습이 베드로가 예수에게 받은 열쇠를 본뜬 것이라 합니다.

그러면 저 안에 서기만 하면 천국으로 들어갈 열쇠 안에 들어선 것과 같을까요?

한 번이라도 저 자리에 섰던 사람에게 예약표라도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이곳에 수용할 수 있는 인원이 30만 명에 달한다 하니 무척 큰 광장입니다.

열주 회랑을 따라 위로는 성인의 모습이 3m 높이로 만들어 올려져 있는데

모두 142인이라 하며 142인의 성인이 이곳을 찾는 모든 사람에게 축복을

내려주니까 통과만 해도 모든 죄를 씻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런 열주 회랑은 마치 예수가 인류를 위해 손을 벌려 감싸 안으려는 형상이라 합니다.

위의 사진은 성당 큐폴라 위에 올라가 광장을 내려다보고 찍은 사진입니다.

정말 양팔을 크게 벌려 감싸 안으려는 모습처럼 보이나요?

그러니 대성당은 머리 부분에 해당하고 열주 회랑은 넓게 벌린 팔이라는 의미지 싶습니다.

이 열주 회랑을 모방에 상트페테르부르크에 가면 카잔 성당을 만들었지요.

 

 

이 광장의 설계는 베르니니입니다.

그는 교황 알렉산더 7세의 의뢰를 받아 1656년부터 11년간에 걸쳐 만들었다네요.

베르니니는 예의 바르게 발주자를 위해 그의 이름을 이곳에 남겼습니다.

이 광장은 교황청이 주최하는 크고 작은 많은 행사가 열리는 곳일 겁니다.

또 일반인은 이곳에서 교황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장소이기도 하고요.

 

 

이 광장을 만들 때 원래 포로 로마노와 같은 로마 시대에 만든 포럼을 기본으로 만들었다 합니다.

대체로 로마 시대에 만든 포럼은 사각형이었지만, 이곳은 둥글게 타원형으로 만든 게 다를

뿐이라는데 좌우지간 베르니니는 교황으로부터 엄청난 비호 아래 있었나 봅니다.

 

 

베르니니가 만든 또 하나의 걸작 발다키노는 그 작품성으로도 충분히 위대하다고 할 수 있지만,

만드는 과정에 당시 교황 우루바누스 8세의 비호 아래 다른 유적인 판테온의 주랑 지붕에 있는

청동을 뜯어와 만듦으로 많은 이야기가 있지요.

당시 로마인은 교황의 이런 행위에 대해 분노하며 교황의 가문인 바르베리니를 빗대어

"바르바리(야만인)도 하지 않은 일을 바르베르니니가 했다."라고 빈정거렸답니다.

뭐... 욕이 배 째고 들어오는 것도 아니고...

 

 

베르니니는 그런 교황을 위해 오직 교황만이 미사를 집전할 수 있는 발다키노에

교황 바르베리니 가문의 문장인 꿀벌을 조각으로 남겼습니다.

위의 사진에 꿀벌이 보이시죠?

이 발다키노는 교황 우루바누스 8세 오직 한 사람만 사용하는 겁니까?

가문의 자랑일지는 모르겠지만, 베르니니가 너무 아부하지 않았나 생각되네요.

 

 

광장 한가운데는 높이 솟은 오벨리스크가 있습니다.
오벨리스크는 당연히 교황청에서 만든 게 아니지요.

이 오벨리스크는 로마제국 시기인 37년에 이집트에서 가져와 카리쿨라 황제의

경기장을 장식한 것인데 이 경기장이 후에 네로 경기장으로 바뀌어 버렸고

다시 이곳 산 피에트로 광장으로 옮겨왔다 합니다.

 

 

그렇게 좋아 보였습니까?

하나님에게 바칠 물건은 국적 물문하고 다른 신을 섬기는 신전 앞에 모시기 위해 만들었고

또 그곳을 기념하기 위해 세웠을 텐데 왜 이런 것에 탐을 내는지 알 수 없습니다.

오벨리스크는 태양신을 섬기기 위한 징표인데 왜 기독교의 상징인 교황청에서....

 

 

이집트에서는 이런 오벨리스크를 어찌 만들었으며 얼마나 만들었을까요?

그러나 더 위대한 것은 어떻게 만들었냐가 아니고 먼 이곳까지 그 당시

어떻게 온전하게 옮겨왔나입니다.

운반설비도 없었을 것이고 또 무거운 돌덩어리를 깨지지 않게 배에 싣고 왔을 텐데 말입니다.

 

 

광장에는 오벨리스크 양쪽으로 두 개의 분수가 물을 뿜고 있습니다.

성당을 바라보고 오른쪽의 분수는 1613년 마데르노가 만들었다고 하고

왼쪽은 1675년 베르니니가 만들었다고 합니다.

 

 

양쪽에 있는 열주 회랑은 오벨리스크와 분수 사이에서 보면 기둥이 서로 겹치지 않고

하나의 기둥으로 보인다고 하는데 워낙 바쁜 여행이라 또 다음 장소인

바티칸 박물관 구경을 해야 하기에 그것까지 확인하지는 못했습니다.

이제 바티칸 박물관으로 갑니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나이 마흔이 넘도록 장가도 들지 않았던 베르니니는 자기 조수의 부인인 코스탄자라는

여인을 탐했고 상당히 깊은 관계까지 진척되다가 그 여인이 자기 동생과 모종의 일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하인을 보내 유부녀의 얼굴을 난도질하고 동생은 죽여버린다고

온 로마 시내를 쇠몽둥이를 들고 돌아다녔답니다.

이런 망나니 같은 일을 베르니니는 서슴지 않고 저질렀지만, 교황은 제자 부인은

간통죄로, 하인은 살인미수죄로 처벌하고 동생은 그 일로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졌답니다.

베르니니에게는 가장 큰 벌로 로마에서 제일 예쁜 22살 먹은 여자를 주어

결혼시키는 엄청나게 큰 벌을 내렸다고 합니다.

헐!!! 교황의 가문까지 빛내준 베르니니가 아닌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