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여행기 2015/바티칸

고대 로마의 묘지 터 위에 세운 산 피에트로 대성당.

佳人 2016. 7. 7. 09:00

산 피에트로 대성당은 로마에서는 최고의 명소입니다.

무료로 볼 수 있는 곳 중에 말입니다.

돈을 내고 들어가 전망을 즐길 수 있는 최고의 장소는 바로 성당 위에 있는 큐폴라입니다.

 

오늘도 무료로 즐길 수 있는 산 피에트로 대성당 안에 있는 여러 가지를 구경합니다.

종교를 떠나 대가들의 작품을 무료로 구경할 수 있기 때문이죠.

발다키노 아래는 이 성당의 시작이 된 베드로의 무덤이 있고 그 위로는 큐폴라가 보입니다.

큐폴라는 미켈란젤로에 의해 설계되었지만, 그가 사망하자 그의 제자였던

쟈코모 델라 포르타에 의해 완공되었다네요.

 

발다키노 위로 큐폴라로 올라가는 기둥 부분 네 군데에 복음서를 쓴 네 명의 복음 사가가

보이고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황소가 보이니 누가일 테고, 그다음은 사자가 있으니 마가이지

싶고 그 아래는 천사의 모습은 마태일 것이고 왼쪽 아래는 독수리가 보이니 요한이 분명합니다.

 

위의 사진에 보이는 그림은 세례의 장면으로 보입니다.

요르단 강에서 요한으로부터 예수께서 세례를 받았다고 했나요?

그곳이 지금의 이스라엘과 요르단 국경을 이루고 있는 강이라고 하지요?

 

위의 그림은 도메니코 잠피에리의 1614년도 작품으로 아흔이나 된 성 예로메의 모습

(왼쪽에 부축받는 노인)으로 바티칸에서 교황을 모시다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히브리어로 된 구약 전체를 라틴어로 번역한 일을 했답니다.

그의 모습을 그린 그림에는 늘 사자가 나오는데 위의 사진에는 왼쪽 아래에 보이는데

이는 나귀를 잡아먹었다는 억울한 누명을 쓴 사자를 예로메가 끝까지 믿어준 데 대해

사자가 늘 함께했다는 황금 전설에 따른 내용 때문이라 합니다.

이곳 로마에서는 닭 잡아먹는 게 아니고 나귀 잡아먹고 입니까?

 

1963년 사망한 교황 요한 23세의 유해를 모신 곳입니다.

대성당 지하에는 많은 교황의 석관을 볼 수 있습니다.

죽어서 가장 영광스러운 일이 이런 곳에서 잠드는 일이지 싶습니다.

 

산 피에트로 성당은 성 베드로 성당이라는 말입니다.

베드로는 예수의 제자로 초대 교황을 역임했다네요.

이곳 산 피에트로 대성당 안에는 여러 개의 소예배당이 있습니다.

 

예수가 먼저 죽자 베드로는 세상을 주유하며 예수의 말을 전하는 일을 했다네요.

이렇게 전도생활을 하던 베드로는 64년 이곳 언덕에서 네로에 의해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처형되었다 하며 이후 로마가 그리스도교를 공인한 콘스틴티누스 대제(로마 황제 중 처음

그리스도교로 개종)가 베드로가 죽어 묻힌 이곳에 성당을 지으며 

지금의 산 피에트로 대성당이 되었다네요.

 

그러니 지금의 산 피에트로 대성당이 있는 자리는 고대 로마 시대에 공동묘지 터였다는

말이고 그 묘지 터 위에 성당을 세웠다는 의미입니다.

당시 먼저 죽어 이곳에 묻힌 사람은 영광이겠어요.

아래 사진에 보이는 소예배당이 바로 베드로가 거꾸로 매달려 순교한 장소로 추정한다 합니다.

 

세월이 흘러 1452년 교황 니콜라스 5세가 새로운 거대한 성당의 필요성을 느껴 다시 짓기로 했고

1506년 율리우스 2세의 명령으로 브라만테가 공사를 시작했다네요.

이로써 현재 6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세계 최대의 성당이 되었다네요.

 

성당 안에는 기둥이 778개, 제단이 44개, 모자이크가 135점 그리고 조각상이

395점이나 있는 거대한 성당입니다.

그러니 당대에 예술에 관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유명한 사람은 죄다 참여해 성당 안팎을 채웠다는

말이며 성당이라기보다는 하나의 박물관이라고 해도 되겠네요.

당시 예술께나 한다는 사람은 성당의 요청을 거부할 수 없는 입장이었을 겁니다.

중세는 대부분의 일거리가 성당으로부터 나왔을 테니 밉게 보이면

평생 거지꼴로 살아야 하지 않겠어요?

 

그런데 이 공사로 말미암아 많은 공사비가 들어 그 말썽 많은 면죄부를 발행하며 종교개혁이

일어났고 공사 자재를 쉽게 구하려고 판테온과 콜로세오의 석재를 무자비하게 떼어와

지음으로 또 다른 유적을 파괴하게 되었답니다.

면죄부가 무슨 탄소배출권입니까?

 

그러니 성당 광장에 있는 오벨리스크부터(물론 오벨리스크는 교황청에서 가져온 것이 아님)

성당 건물이나 발다키노 같은 것은 모두 유적에서 약탈해 만들었다고 하니 과연 이게

온당한 방법인가 생각하게 합니다.

중세의 유럽은 기독교의 세상이었으니 무소불위의 힘으로 밀어붙였을 듯합니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로마에서 볼만한 유적 대부분은 모두 걸어 다닐 정도의 거리밖에는 안 되는 곳에 있습니다.

그 의미는 옛날 번창했을 때 도시 규모가 걸어 다닐 정도의 규모라는 말이겠지요.

우리가 정한 숙소는 테르미니 역 부근에 있기에 옛날로 따진다면

사실은 조금 외곽에 있다는 의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