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여행기 2015/바티칸

산 피에트로 대성당 큐폴라에 올라서

佳人 2016. 6. 30. 09:00

위의 사진은 바티칸 시국의 행정처 건물이라 합니다.

행정처는 그 아래 여러 부서를 두고 중앙 정부의 기능을 총괄하고 있는 곳입니다.

그러니 정부청사라는 말이지 싶네요.

바티칸 시국의 영토는 세계에서 가장 작은 주권국으로 0.44㎢에 불과하지만, 갖출 것은 다 갖춘 엄연한 주권국이죠.

 

오늘은 바티칸의 전경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큐폴라로 올라갑니다.

큐폴라로 올라가는 입구는 위의 사진에 보이는 산 피에트로 대성당을 오른쪽 끝으로 들어가면 있습니다.

 

대성당인 산 피에트로 성당으로 들어갈 때는 조금 규정이 까다롭습니다.

모자는 벗어야 하고 카메라는 허용하되 삼각대는 불가하며 유모차나 개도 들어갈 수 없습니다.

물론 가장 주의해야 할 일이 옷차림입니다.

 

민소매나 짧은 치마 또는 반바지도 금지사항입니다.

로마에서는 로마법을 따라야 하고 바티칸에서는 바티칸의 법을 따라야 합니다.

사실 아무리 자유로운 여행자라도 이런 기본적인 것은 갖추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입구에서 제지받는 사람이 꼭 있습니다.

 

바티칸은 하나의 국가입니다.

그러니 교황이 다스리는 신권 국가라는 의미네요.

비록 인구 900여 명에 면적이 0.44㎢의 작은 나라일지라도 말입니다.

그 영향력은 세상 어느 나라의 지도자보다 강한 분이죠.

 

큐폴라로 올라가는데 6유로였고 일부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나머지 구간을 걸어 올라가면 2유로

추가하여 8유로를 받습니다.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면 끝까지 올라가는지 알았는데 중간에 내려 그다음부터 무조건 걸어 올라가는데

모두 320계단을 더 걸어야 큐폴라에 오를 수 있습니다.

올라가는 계단은 일방통행으로 내려오는 계단과 다릅니다.

 

예전에는 이탈리아가 교황령이었지만, 한때는 반대로 바티칸이 이탈리아에 편입되기도 했다네요.

1929년 라테라노 조약이 체결되며 이탈리아에서 독립된 하나의 국가로 서게 되었다네요.

그러나 국방을 이탈리아에서 담당하고 교황청의 경호는 스위스 용병인 근위대에서 한다고 합니다.

스위스 근위대는 1506년 교황 율리우스 2세에 의해 창설되었으며 지금까지 그 전통이 이어지고 있다네요.

 

교황을 지키는 근위병은 오직 스위스 용병만 한다고 하죠.

왜 스위스 용병만이 교황의 안위를 위해 근위대로 근무할까요?

 

1506년부터 교황청을 지켜온 스위스 근위대의 위용이 세상에 알려진 것은 1527년 5월 부르고뉴(현재의 네덜란드,
당시 신성로마제국)의 왕 샤를 5세(Charles Ⅴ)가 로마를 침략한 이른바 로마 약탈에서였다고 하더군요.

이 전투에서 189명의 근위병 중 147명이 목숨을 잃으면서까지 교황 클레멘스 7세를 끝까지 지켜냈다고 합니다.

빨강, 파랑, 노랑의 화려한 르네상스 시대 복장에 도끼 창을 든 스위스 근위대

는 510년 동안 교황청을 지켜오고 있습니다.

 

근위대 신병들은 로마 약탈 때 교황을 호위하다 목숨을 잃은 것을 기려 매년 5월 6일 충성 서약식을 거행한다고

하며 서약식 때 사용하는 깃발에는 현재의 교황과 스위스 용병 군단의 창설자 율리시스 2세, 그리고 사령관을

상징하는 세 개의 방패가 등장한다고 하네요.

현재의 근위병 제복은 1548년에 제정되었으며 미켈란젤로가 디자인했다고 하네요.

 

근위대에 입대하려면 키 174㎝ 이상, 19~30세의 용모 준수한 스위스 출신의 미혼 남자여야 한다는 규정이 있네요.

또 가톨릭 신자여야 하며 수염을 길러선 안 된다고 하며 월급은 1000달러 정도 된다고 합니다.

적어도 2년간은 복무해야 하며 25년간 복무하는 사람도 있다고 하며 병력은 사령관을 포함해 장교 5명,

사병 101명 규모로 스위스는 1859년 스위스인의 외국군 입대를 법률로 금지했지만,

교황청 근위대만큼은 예외로 인정하고 있다네요.

 

당시 스위스는 먹고 살기 어려워 이렇게 다른 나라의 용병으로 나가 전쟁터를 누비며 가족을 먹여 살렸나 봅니다.

먹고 살기 위해 싸웠으니 용감할 수밖에 없었지 싶습니다.

스위스도 알고 보면 이런 험난한 세월을 보내며 먹고살았답니다.

 

이러한 스위스 용병의 용맹함이 로마 교황청에도 알려졌으며 추기경 시절 이들 스위스 용병과 함께

전쟁에 참여했던 교황 율리우스 2세는 1505년 6월 교황청을 지키는 상비군으로 용병을 파견해줄 것을

스위스에 정식으로 요청하며 스위스 용병이 교황청을 지키는 역사가 시작되었다지요.

 

처음 용병으로 뽑힌 150명의 스위스 용병들은 무려 720㎞를 두 발로 걸어서 이듬해인 1506년 1월 22일

교황청에 도착해 임무 수행에 들어갔다고 하네요.

바티칸을 지키는 군대인 교황청 스위스 근위대는 이렇게 탄생하게 되었답니다.

이들의 공식 명칭은 코홀스 헬베티카(Cohors Helvetica)라고 합니다.

 

위의 사진은 옆으로 약간 경사가 심하게 누워있습니다.

일부러 이렇게 찍은 게 아니라 큐폴라 올라가는 길과 계단이 그렇게 생겼기 때문입니다.

큐폴라 자체가 공을 반으로 잘라 놓은 듯하기에 이런 모습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 앞사람이 가다가 지치면 연쇄적으로 밀리기도 합니다.

가끔 중도에 포기하는 분도 계시지만, 그리 힘들지는 않습니다.

내려오는 계단은 반대편에 있기에 서로 겹치지 않습니다.

 

지금 위의 사진에서 내려다보이는 산 피에트로 광장은 바로 열쇠의 모양이라 합니다.

여러분이 보시기도 그렇게 생겼습니까?

 

그 의미는 초대 교황인 사도 베드로가 예수로부터 천국의 열쇠를 받았다는 이야기 때문이겠죠.

여기 그 증거가 있네요.

아주 멋진 황금 열쇠를 예수가 베드로에게 전해줍니다.

저 열쇠를 받은 베드로는 바로 바티칸의 제1대 교황이 되고 교황청의 문장이 열쇠를 X자로 한 형태잖아요.

 

위성 지도를 통해 하늘에서 내려다보니 정말 열쇠처럼 생겼습니다.

저 모습이 천국으로 인도하는 열쇠가 분명하겠지요?

佳人은 이미 천국의 열쇠를 보고 왔습니다.

이 말은 천국으로 들어가는 예매표를 받았다는 의미가 아니겠어요?

에매까지는 아니라도 예매 가능한 번호표 정도는 되겠지요?

 

위에서 내려다본 모습이 제법 근사하지 않습니까?

좌우 대칭으로 만들었네요.

 

위의 사진 저 끝에 보이는 건물은 천사의 성입니다.

앞으로 뻗은 도로와 강이 만나는 지점의 왼쪽에 보이는 둥근 건물입니다.

테베레 강이 흐르는 강변에 세운 성이지요.

 

위의 사진은 바티칸 박물관의 모습이죠.

박물관은 워낙 많은 사람이 오는 곳이기에 미리 입장권을 예매하시거나

박물관 투어를 이용하시는 게 여러모로 필요한 곳이죠.

그냥 찾아가 표를 구한다면 몇 시간을 기다려야 하겠지요.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이제 佳人은 천국으로 들어가는 열쇠를 보았습니다.

큐폴라에서 내려다본 풍경은 아주 감동적이었죠.

이제 살아가는 일이 전혀 두렵지 않게 되었습니다.

천국의 문 앞에서 열쇠 구멍으로 이미 천국의 모습을 살짝 맛보았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