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경궁 통명전(昌慶宮通明殿)
창경궁 안쪽 창덕궁과 연결되는 곳 부근에 통명전이라고 부르는 전각 하나가 있습니다.
그러니 서북쪽 가장 깊은 곳에 있는 셈이죠.
이 건물의 용도는 대비의 처소나 왕의 침전 겸 연회용으로 지은 곳이라 합니다.
창경궁 통명전은 보물 제818호로 지정된 건물이라고 합니다.
조선 성종 15년인 1484년에 세운 건물이라고 하네요.
그러나 임진왜란 때 한번 불탄 건물로 광해군 8년에 다시 지었지만,
정조 14년에 또 화재를 당해 전소하였다고 하네요.
목조 건물은 정말 화재에 취약했나 봅니다.
지금의 건물은 순조 34년에 창경궁을 재건할 때 지은 건물이라네요.
통명전이라는 현판에 어필이라는 글이 보입니다.
이는 순조가 화재로 소실된 통명전을 다시 지으며 직접 현판을 썼다고 합니다.
정면 7칸 측면 4칸의 제법 규모가 큰 건물입니다.
이 건물의 특징은 왕이 되어 내부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바쁜 걸음 속에 잠시 대청에 올라 그때를 생각해 보는 일도 나쁘지 않을 듯합니다.
가운데 나무를 깐 대청이 3칸이 있고 양쪽에 온돌방을 두어 왕과 왕비의 침실로 이용했다 합니다.
월대 위에 지은 멋진 추녀를 가진 건물입니다.
현존하는 창경궁 전각 중 유일하게 월대 위에 지은 전각입니다.
월대로 올라가는 계단이 정면에 3개이고 양옆으로 각각 하나씩 있습니다.
1833년 다시 세운 침전의 중심 건물답게 넓은 월대를 쌓고 그 위에 올린 건물로
특이한 것은 용마루를 없앤 무량각이네요.
궁궐에서 용마루가 없다는 것은 침전 건물이라는 의미가 아니겠어요?
이 건물은 우리도 아는 장희빈과 관계가 있는 건물이죠.
바로 희빈 장 씨가 인현왕후를 저주한 사건이 있는 곳입니다.
숙종 20년 갑술환국으로 인현왕후가 다시 복위하고 장 씨는 희빈으로 강등된 후
인현왕후를 저주하기 위해 자신의 처소인 취선당에 신당을 차리고
바로 통명전 주변에 흉물을 파묻었던 곳입니다.
결국, 이 일이 발각되어 장희빈은 취선당에서 사약을 받고 죽었던 이야기가 있는 곳입니다.
지금도 그때 숨겨놓은 흉물이 있을지 모릅니다.
주변을 자세히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특이한 것은 통명전 서쪽에는 동그란 샘과 네모난 지당(地塘)이라고 하는 연못이 있습니다.
샘과 연못은 작은 수로로 연결돼 아주 멋진 모습을 보여줍니다.
작은 수로로 흘러온 물은 석구라는 구조물을 통해 연못으로 폭포처럼 떨어지게 하였습니다.
그 샘은 지금도 물이 솟아나고 있지요.
이 지당은 우리나라의 지당 중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라고 하네요.
12.8m와 5.2m 연못의 난간도 아주 아름답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