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정문을 통해 창경궁으로
창경궁은 세종대왕이 왕위에 오른 후 1418년 상왕인 태종을 위해 창덕궁 동편에 지은
수강궁이 있던 곳이라 합니다.
그 후 성종 14년 세조의 비 정희왕후, 덕종의 비 소혜왕후, 예종의 비 안순왕후를
모시기 위해 수강궁 터에 명정전, 문정전, 통명전을 지음으로 규모가 커지게 되었다네요.
그리고 이름도 창경궁이라고 정했답니다.
창덕궁과 더불어 조선의 정궁인 경복궁의 동편에 있어 동궐이라고 부르기도 했다네요.
창덕궁과는 담도 없이 후원도 함께 사용했다고 하니 같은 궁이라고 봐야 하겠네요.
창경궁은 창덕궁으로는 협소해 왕과 왕비는 물론 후궁이나 공주, 궁인의 처소로 사용되었고
그러다 보니 정궁의 모습과는 달리 동편을 향해 지었고 내부도 자유스럽게 만들었다 합니다.
이유는 동쪽에 있는 왕실 동산인 함춘원이 있고 낙산이 있어 그곳을 바라볼 수 있게 지었답니다.
그러나 다른 전각은 남쪽을 보게 지었다네요.
그 후 여러 차례 화재와 전란으로 소실되기도 했고 일본의 이상한 짓거리로 본래
모습을 잃어버리기도 했지만, 이제는 점차 원래 모습으로 찾아가고 있는 중이라 합니다.
지금은 사적 123호로 지정된 곳이죠.
창경궁 정문인 홍화문을 지나면 작은 돌다리인 옥천교가 나타나고
이 돌다리를 건너면 앞에 보이는 문이 명정문입니다.
정전으로 들어갈 때는 반드시 정전의 정문과 궁궐 대문 사이에 경계를 만드는
개천인 금천이 있습니다.
명정문으로 들어가기 전에 양쪽으로는 외행각이라는 건물이 보입니다.
외행각에는 궁궐을 지키기 위해 관원들이 거주했을 것입니다.
명정문으로 들어서는 돌길은 가운데가 약간 올라와 있습니다.
이 돌길이 삼도라고 하는데 가운데는 어도로 임금만이 걸어가는 길이지요.
명정문은 세 칸으로 가운데 문은 임금만이 드나들 수 있었을 것입니다.
대체로 정문을 들어서 정전에 이르는 문이 세 개지만,
여기 창경궁은 홍화문과 명정문 두 개만 있습니다.
이는 정궁이 아니라서 그랬지 싶네요.
명정문을 들어서면 명정전이 보입니다.
명정전은 국보 226호로 단층 팔작지붕의 모습으로 하고 앞면이 5칸이고
옆면이 3칸으로 된 정전이라네요.
2단으로 쌓은 월대 위에 전각을 세웠습니다.
1616년에 재건되었다 하니 창경궁에서는 가장 오래되고 중심이 되는 전각이라는 말이겠네요.
명정전 앞으로는 삼도를 따라 양쪽으로 품계석이 있어 자기 자리에 맞게 품계를 갖추
어 문무백관이 도열했을 겁니다.
우리가 사극에서 늘 듣는 말 중 하나가 임금을 부를 때 전하라고 하지요?
이는 임금은 정전에 계셨을 것이고 정전 아래에서 임금을 뵈올 때 문무백관이
정전 아래에 있었기에 전하라는 호칭이 생겼을 겁니다.
박석을 전체적으로 깔아 아름답게 보이며 일반석으로 깔아 햇볕에 반사되는 것을
막아주고 명전문과 이어지는 행각은 왕실 친위부대의 숙소로 이용되었으며
왕실의 초상을 치를 때면 재실로도 이용되었답니다.
명정전 양쪽 끝에는 드므라고 부르는 큰 항아리가 있습니다.
불이 났을 때를 대비해 물을 담아두었다고는 하지만, 이 물로 불을 끌 수는 없을 겁니다.
다만 불조심하자는 상징적인의미지 싶습니다.
그리고 불을 내는 귀신이 이곳에 왔다가 항아리에 담긴 물을 들여다보다가 물에 비친
자신의 흉측한 얼굴을 보고 놀라 도망하라는 주술적인 의미도 내포되었지 싶습니다.
뭐... 佳人도 가끔 거울을 보며 놀라기도 합니다.
명전전으로 오르는 계단에는 해치라고 부르는 석수가 있습니다.
아마도 화재예방을 위해 만든 것이지만, 불이란 녀석은 때와 장소만 아니라
해치도 가리지 않고 불장난을 하죠.
가운데는 임금이 가마를 타고 오르내릴 때 지나는 어도로 가운데
봉황 한 쌍이 새겨져 있습니다.
잠시 중국 자금성에서 찍은 위에 보이는 사진 한 장 보고 갑니다.
자금성 보화전에는 운룡대석조라는 게 있어 아홉 마리의 용이 구름 속에 노니는
모습으로 만들었지만, 그곳과는 비교해 규모가 작지만,
갖출 것은 모두 갖추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명전전 안에는 단을 높이 만들어 임금이 앉는 자리인 어좌가 가운데 있고
그 뒤로는 일월오봉도 병풍이 드리워졌습니다.
일월오봉도란 글자 그대로 해와 달 그리고 다섯 봉우리를 그린 그림으로
양쪽 끝에 소나무가 그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일월오봉도의 완성은 바로 가운데 어좌에 임금이 앉아야만 되는 게 아닐까요?
원래 저 자리가...
다른 말로 일월오악도 또는 일원곤륜도라고도 하고 병풍이기에 일월오봉병
또는 그냥 오봉병이라고도 한다네요.
임금이 주최하는 행사에도 임금이 앉은 곳 뒤로 병풍을 쳤다고 합니다.
이는 임금의 상징으로 해석되네요.
어좌 위로 천장을 바라보면 구름사이로 봉황이 노니고 있습니다.
우물형태의 천장입니다.
한 쌍의 봉황이죠.
바닥은 전돌로 되어있습니다.
숯을 넣어 구운 전돌이라네요.
이는 눈부심을 막아주기 위한 방법이 아니었나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