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경궁 옥천교(昌慶宮 玉川橋)에서 보았던 나티의 얼굴.
창경궁(昌慶宮)을 들어갈 때 보통 정문인 홍화문(弘化門)을 통해 들어갑니다.
물론 창덕궁 후원 들어가는 매표소 부근에서 들어갈 수 있지만...
옛날엔 창덕궁과 창경궁의 구분이 없었고 경복궁의 동쪽에 있다고 해
동궐(東闕)이라고도 불렀다지요?
일제는 조선의 궁궐의 격을 떨어뜨리기 위해 창경궁 안에 동, 식물원을 만들고 일반에게 공개하며
창경원이라고 이름마저 바꾸어버렸죠.
지금은 다시 옛 모습을 하나씩 복원하며 다시 궁궐 본래의 모습을 찾아가는 중이라네요.
이름도 다시 창경궁으로 원래대로 바꾸고 옛 모습으로 돌아가는 중이랍니다.
일본은 궁궐의 이름만 바꾼 게 아니죠.
조선 왕조도 이 씨 조선이라는 의미로 이조라고 바꾸어 왜왕은 천황이라고 격상시켜
마치 조선을 다스린 나라로 은연중에 바꾸는 작업도 병행했지요.
지금도 한국인이면서도 조선을 이조라고 부르는 어처구니없는 사람이 우리 주변에 많습니다.
창경궁의 정문인 홍화문을 들어서면 제일 먼저 만나는 게 옥천교라는 다리입니다.
바로 위의 사진에 보이는 돌다리죠.
옥천교 아래는 금당수가 흐릅니다.
금당수는 금천(禁川)이라고 불렀다네요.
금천이라는 말의 의미는 상징적인 의미로 궁궐과 일반인의 경계선이라고 봐도 되겠네요.
우리가 들렀던 시기는 가뭄이 극심했던 시기라 물이 흐르지 않습니다.
옥천교는 길이가 9.9m이고 폭이 6.6m로 크지 않고 아담합니다.
그러나 이 다리가 보물 386호랍니다.
개천 중앙에 초석을 두고 두 개의 무지개다리를 만들었습니다.
비록 작은 다리지만, 그 아름다움은 작다고 할 수 없지요.
다리, 네 귀퉁이에 기둥을 세웠고 그 기둥 위에 석수를 올려놓았는데
재미있는 것은 홍화문 쪽의 두 마리는 서로 다리를 사이로 마주 보고 있고
명정문 쪽의 두 마리는 명정문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비록 작은 차이지만, 변화를 주어 보는 사람에게 즐거움을 주고 있네요.
세월이 많이 흘러 석수의 등에 조각했던 문양은 대부분 사라지고 홍화문을 들어가며
처음 만나는 오른쪽의 석수는 아직도 등에 조각했던 석수의 문양을 제법 볼 수 있습니다.
물이 흐르는 방향이 명정문을 바라보고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흐릅니다.
금당수는 창경궁이 동쪽을 바라보고 있으니 북에서 남으로 흐르네요.
그런데 두 개의 홍예 가운데를 보면 나티라고 부르는 무섭게 생긴 도깨비 형상을 볼 수 있습니다.
홍예 중간에 만들었기에 주변과 균형을 맞추기 위해 역삼각형으로 만들었습니다.
물론 물이 흘러오는 곳과 빠져나가는 양쪽에 모두 도깨비가 있지요.
여기서 우리가 눈여겨 볼 것은 남쪽과 북쪽 두 곳의 도깨비입니다.
도깨비를 만든 목적은 다리를 건너는 모든 이의 안전을 도모하자는 의미일 겁니다.
물이 흘러 들러오는 곳의 도깨비는 무척 험상궂은 표정을 하고 있지만,
흘러 나가는 곳의 도깨비는 웃는 형상을 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는 금당수의 물이 이곳을 지나며 깨끗하게 정화되어 흘러간다는 의미도 있지 않겠어요?
그러니 입구는 화내고 출구는 웃고있지요.
만든 연대는 성종 14년인 1483년이라고 합니다.
비록 눈에는 쉽게 띄지 않고 그냥 지나치면 볼 수 없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재미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