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람브라 궁전은 무어인이 남긴 선물입니다.
알람브라 궁전은 그라나다의 랜드마크입니다.
어디 그라나다 뿐이겠어요?
스페인의 랜드마크라 해도 누가 뭐라지 않을 겁니다.
무어인은 척박한 아프리카에 살다가 800여 연간이나 이베리아 반도에 넘어와
살았기에 그 고마움의 증표로 그라나다에 이런 아름다운 선물을 남기고 떠났나 봅니다.
그러기에 죽기 전에 꼭 한번 보아야 할 곳이라고 이야기 하나 봅니다.
이미 많은 분이 다녀오신 곳이기에 우리에게도 그리 낯선 곳은 아니지 싶습니다.
우리가 이곳에 머무는 중에도 우리나라 단체 여행객을 여러 팀을 만나기도 했거든요.
이제 어디를 갈까요?
알람브라 궁전을 모두 보았으니 건너편에 있다는 산 니콜라스 전망대
(Plaza Mirador de San Nicolas)로 가보렵니다.
여행 안내서에서는 차를 타고 가라고 하지만, 물론 우리는 걸어서 갑니다.
헤네랄리페 구경을 모두 마치고 오솔길을 걸어 나오는데 길옆으로 오죽(烏竹)이
보이는데 대나무란 유럽 여행에서는 좀처럼 보기 쉽지 않지요.
게다가 까만색의 대나무 오죽은 더욱 귀한 대나무가 아닌가요?
유럽에 있는 오죽은 1823년에 처음 보이기 시작했다는데 그 유래는 중국이라 하네요.
여기에 심은 오죽은 1920년에 심은 것이라 합니다.
그러니 여기 심은 오죽은 헤네랄리페를 만든 무어족과는 아무 관계도 없는
생뚱맞은 것이라는 말이지요?
알람브라의 시작은 작은 로마의 요새였습니다.
위의 사진에 보이는 육교는 알람브라 궁전과 헤네랄리페를 연결하는 다리입니다.
이 두 곳은 서로 다른 언덕으로 이렇게 육교를 통해서만 서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두 곳은 서로 다른 언덕에 있다는 말입니다.
그렇기에 멀리 떨어진 시에라 네바다 산맥으로부터 수로를 만들어
이리로 끌어온 물은 헤네랄리페까지만 연결할 수 있지요.
그러나 정작 물이 더 필요한 곳은 알람브라 궁전이 아니겠어요
당시 알람브라 궁전은 5천여 명의 사람이 살았던 작은 도시인걸요.
술탄과 그를 따르는 후궁이나 궁인만 있는 곳이 아니라 군사가 주둔했던 알카사바가
있었고 그리고 당시 이름깨나 날리며 거들먹거리고 살았던
귀족과 그의 식솔도 함께 살았습니다.
이러다 보니 알람브라에만 5천여 명의 사람이 살았던 작은 도시였잖아요.
그들이 사용하는 물의 양만 해도 엄청난 양이 아니겠어요?
그래서 헤네랄리페까지 끌어온 물길을 알람브라 궁전까지 연결하는 겁니다.
그런데 두 언덕은 가운데 계곡이 있어 직접 연결할 수 없잖아요.
그래서 생각한 게 바로 로마의 특허인 수도교처럼 만들어 연결하는 겁니다.
아무리 가물어도 365일 화수분처럼 솟아나는 물은 바로 이렇게 연결하였습니다.
위의 사진에 보이는 두 개의 다리 중 앞에 보이는 다리가 바로 헤네랄리페에서
알람브라 궁전으로 물이 흘러들어 가는 수로입니다.
그리고 뒤에 보이는 다리는 두 곳을 이어주는 통행인을 위한 다리고요.
이 물길이 생겼을 때부터 지금까지 일분일초도 쉬지 않고 물이 흐르고 있습니다.
이 수도교를 통해 거의 천여년간이나 물이 흐르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아침에 알람브라 궁전으로 왔던 길과는 다른 길로 내려갑니다.
그 길은 알람브라 궁전과 헤네랄리페가 있는 언덕 사이로 난 계곡 길을 따라 내려갑니다.
이 길을 치노스의 언덕길(Cuesta de los Chinos)이라 부릅니다.
이 길은 사람도 별로 다니지 않는 그런 한적한 길이네요.
오늘도 수로를 통해 흘러간 물이 알람브라 궁전에서 여러 가지로 사용되고 난 후
다시 이곳으로 흘러나옵니다.
저 물은 사자의 정원에 보았던 사자 입을 통해 나오기도 했고 36명의 목숨을 앗아갔던
아벤세라헤스의 방 안에 있는 분수에서도 사용하고 난 물이지 싶습니다.
어디 그곳에서만 사용했을까요?
옛날에는 술탄이 목욕한 물이고 후궁이 목욕한 물이기도 하겠지요.
이렇게 사용하고 난 물은 다시 원래 흘렀던 다로 강으로 돌려보내는 중입니다.
다로 강 가까운 곳에는 다른 수로를 만들어 낮은 곳에서 사용할 물을 보내는 시설도 했네요.
깨끗한 물이 필요한 곳은 뚜껑을 만들어 덮었나 봅니다.
이슬람이 이곳에 들어오며 그 요새를 그냥 군사 주둔지로만 생각하고
처음에는 그대로 둔보로 삼았습니다.
올려다보니 위압적인 망루입니다.
이렇게 높이만 쌓으면 저절로 안전해질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며 그동안 무슬림이 점령했던 이베리아 반도의 많은 도시가 하나씩 무너지자
그들은 이곳까지 다시 밀려 내려왔습니다.
이제 높은 성벽도 멀리까지 적의 동태를 살폈던 망루도 무너지는 전선과 함께 자꾸 사라지고 있습니다.
튼튼하게 성벽을 쌓는다고 일정하게 중간에 막대를 끼운 흔적도 보입니다.
신토불이라고 이곳에 있던 붉은 흙과 자갈로 다져 만들었습니다.
이제 더는 물러날 곳이 없자 이곳 둔보에 궁전이 더해지며 예술적으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인간의 예술작품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에 이르러 이곳은 세상에서 최고의 관광상품이 되었네요.
그동안 이 땅에 뿌리를 내리고 살았던 이민족인 무어족이 잘 먹고 잘살았다는
고마움의 표시로 유럽인 스페인에 이 궁전을 선물로 남겼나 봅니다.
어느 무슬림은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로 불교유적 파괴에 앞장서는데...
1492년 이곳을 포위한 이사벨 여왕은 이쑤시개 하나만으로도 알람브라를
허물어 버릴 수 있을 정도의 힘을 지녔고 보아브딜 왕은 이사벨 여왕의 콧김에도
벌러덩 나가 자빠질 정도로 힘이 빠졌을 겁니다.
그러나 이사벨 여왕은 즉각 공격하지 않고 주변을 포위한 체 1년을 기다립니다.
왜?
알람브라의 아름다움에 전투로 파괴되는 것이 안타까워서였을까요?
이제 마지막 다로 강과 만나는 지점까지 내려왔습니다.
모두 사용하고 난 물은 이곳에서 다로 강과 만나 다시 흘러갑니다.
처음에 다로 강 시작 지점에서 서로 헤어져 다른 길로 여기까지 흘러 왔지만...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결국, 보아브딜 왕은 1년 후 더는 버틸 수 없었기에 이곳을 포기하고
시에라 네바다 산맥을 넘어 고향인 아프리카 땅으로 돌아갔다 합니다.
"어머니! 이곳은 원래 우리 땅이 아닌가 봅니다.
왕국을 잃는 것보다 알람브라를 잃는 게 더 애통합니다."
산 정상 언덕 모퉁이를 돌아 한탄의 고개를 넘어가며 이곳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는 아들에게 어머니가 뭐라고 했답니다.
뭐라고요?
"있을 때 잘하지!!! 아들아! 이것도 잊어야 하느니,
모든 것을 버릴 줄 알면 열반에 이르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