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여행기 2014/그라나다

알카사바 벨라의 탑(Torre de la Vela)

佳人 2015. 12. 22. 08:00

 

알카사바 벨라의 탑(Torre de la Vela)은 알람브라 궁전에서는 최고의 전망대입니다.

그라나다 대평원이 앞에 펼쳐있고 도심 한가운데 위의 사진에 보이는

그라나다 대성당이 위용을 자랑합니다.

그라나다 대성당인 저곳도 원래는 모스크가 있던 자리지 싶습니다.

 

 

관광객은 좋은 풍경에 환호를 지르지만, 1492년 이곳에 서서 시시각각 몰려오는

카스티야 병사를 내려다보며 불안한 마음으로 적의 동태를 왕궁에 수시로

보고했던 이슬람 병사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같은 장소지만, 시간과 보는 사람에 따라 이렇게 세상을 달라집니다.

 

 

알카사바는 왕족이 기거하는 입구에 세운 군사요새가 되는 셈입니다.

알카사바 안 아르마스 광장이라고 부르는 곳에는 당시 병사가 훈련하고 퍼레이드를 한

운동장, 거주했던 숙소, 목욕탕, 화장실, 무기를 만든 사람과 대장장이의 숙소, 

그리고 물을 가두어 두었던 저수조와 당시 죄인을 가두었던 지하 감옥 터도 남아있다네요.

 

 

가운데 큰길을 두고 좌우에 한쪽은 장교 그리고 반대쪽은 사병이 주둔했다고 합니다.

위의 사진에서는 왼쪽인 북쪽 외벽 쪽(알바이신 지구)은 복잡하고 크기도 작게 나뉘었는데

이곳이 초기 알람브라에 왕궁이 지어지기 전까지 왕실의 주거터였다고 합니다.

 

 

남쪽은 크기도 크고 배치도 어느 정도 일정한 것으로 보아

군사의 병영이나 창고로 쓰였을 것이라 하네요,

그 후 이곳은 북쪽은 사병 주거지로 남쪽은 장교 숙소로 이용되기도 했다고 하네요.

 

 

알카사바로 들어가기 위한 아르마스의 문 주변에는 적의 침입에 대비해 직각으로 굽은

좁은 통로와 방어를 쉽게 하기 위한 함정도 만들어 당시 군사 방어 기술을

함께 볼 수 있는 좋은 예가 되겠네요.

 

 

또 지하 감옥으로 사용하기도 하고 곡식이나 향료를 저장했던 창고로도 쓰였을

것이고 위의 사진에 보이는 둥근 부분은 병사들의 목욕탕 터였다고 합니다.

그러니 이곳은 그들만의 작은 세상이었을 겁니다.

 

 

이곳에는 적의 침입에 대비해 세운 망루가 몇 개 남았습니다.

처음에는 모두 24개나 만들었다고 하네요.

얼마나 철저하게 대비하려고 그렇게 많은 망루를 만들었을까요?

 

 

위의 사진에 보이는 탑은 오메나헤 탑(Torre del Homenaje)입니다.

께브라다, 아다르게로 그리고 벨라 탑과 더불어 나스르 왕조 시기에 만든

이슬람의 탑이라 합니다.

이런 탑을 구름 위의 수호신이라고 했던가요?

 

 

그 많은 탑 중에 최고는 무하마드 1세 때 만든 높이 27m의 벨라의 탑이라 합니다.

알카사바를 찾은 사람은 제일 마지막에 오르는 탑으로 이 탑은 삼각형의

꼭짓점에 해당하는 지점으로 배 모양을 한 사비카 언덕의 제일 앞부분이죠.

 

 

여기 제일 앞에 올라 양손을 펴면 영화 타이타닉호의 한 장면이 되겠죠?

위의 사진을 보면 제일 왼쪽 끝 배로 치면 선수 부분이 바로 벨라의 탑입니다.

실제 알람브라 궁전의 부지를 배로 비유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언덕 위에 냉큼 올라앉은 듯한 모습이 배를 연상하기도 합니다.

 

 

그 탑에 오르면 멀리 시에라 네바다 산맥은 물론 그라나다 시내의 모습을

360도 회전하며 볼 수 있네요.

온종일 해가 비치니 탑의 그림자가 자연히 해시계의 역할을 했을 것이고

시간을 측정할 수 있는 곳이기에 태양의 탑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렸다 합니다.

 

 

그 후 가톨릭 세력이 이곳을 점령한 후 지금 보이는 종을 설치했기에 종탑이라고도

불렀고 이곳에서 종을 쳐 그라나다의 통행금지도 알렸고 시민들의

생활 지표로 삼았다고도 합니다.

매년 1월 2일 이곳에서 종을 치는 전통이 내려오는데 그 이유는 바로 그날이

물러가고 이곳을 다시 찾은 날이기 때문이라 합니다

 

 

벨라의 탑 위에는 국기 게양대도 있습니다.

기는 네 개가 걸렸는데 유럽연합 기, 스페인 기, 안달루시아 기 그리고 그라나다 기가

걸렸는데 이제는 다시 외침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결연한 느낌으로 말입니다.

 

 

아마 저 자리는 처음 이곳을 탈환했던 카스티야와 아라곤 양국의 국기가 걸렸을 겁니다.

이제 이곳은 우리가 접수했고 앞으로 아무도 넘보지 마라라는 의미로...

 

 

그라나다 여행에서 알람브라 궁전은 핵심이지요.

알람브라 궁전의 핵심은 나스르 궁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라 생각되네요.

그러나 알람브라 궁전이 자리 잡게 된 것은 사실, 군사적인 목적으로

제일 먼저 만든 알카사르가 있습니다.

 

 

이미 로마 제국이 이 지역을 통치하기 위한 목적으로 군사 주둔을 위해

성을 쌓았던 것이 시초가 되었고 나중에 무어족이 이 지역으로 진출하며

 지금의 모습으로 변모시켰다 합니다.

무어족은 크게 힘들이지 않고 로마가 버리고 간 사비카 언덕의 고성을 접수했습니다.

 

 

무어족은 무주공산이나 다름없는 이베리아 반도를 파죽지세로 밀고 올라갔지만,

세월이 흐르며 북쪽에서 전열을 정비한 여러 가톨릭 왕국이 나뉘었던 세력을

자꾸 하나씩 뭉치며 어느새 그 힘은 이슬람의 힘을 능가하게 되었다지요.

 

 

이렇게 점차 하나씩 밀리며 점령지가 대부분 가톨릭 세력에 넘어가자

이들은 이곳 그라나다를 주목하게 되었을 겁니다.

당시 그라나다는 무어인의 고향인 아프리카가 가장 가까운 도시 중 제일 번창한 곳이었죠.

차, 포 다 떼어주고 이제 남은 게 그라나다 뿐이었단 말이네요.

 

 

이에 나스르 왕조가 탄생하며 처음 군사주둔지로만 알았던 알람브라 궁전터에

1238년 왕궁을 세우는 첫 삽을 뜬 후 약 260년간 전성기를 누리게 되었다네요.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이곳으로 왕궁을 정한 이유는 고육책이었습니다.

이베리아 반도 거의 손아귀에 넣을 듯했지만, 그게 어디 마음대로 되었겠어요?

한번 밀리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는 지경에 처하잖아요.

이곳을 왕궁으로 정한 이유는 코르도바까지 고스란히 넘겨주며

자치권을 얻어낸 고육책이었습니다.

코르도바라고 하면 당시 세상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거대한 도시였답니다.

인구가 5-60만 명이었다고 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