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수강산 대한민국/경기, 인천

남한산성 수어장대

佳人 2015. 6. 18. 12:22

오늘은 남한산성의 대표적인 건물인 수어장대를 구경합니다.

수어장대(守禦將臺)란 전투가 발생하면 장수가 장대에 올라가 방어를 위한 지휘를 하던 곳이라는 의미죠?

높은 건물을 지어서 말입니다.

 

주변의 상황을 수시로 보고받고 파악하여 경우에 적절한 명령을 하달하는 그런 장소 말입니다.

원래 남한산성에는 모두 다섯 개의 장대가 있었다네요.

지금은 모두 사라지고 여기에 유일하게 남은 것이라 합니다.

 

위의 사진은 1892년-1893년 사이에 이플리트 프랑뎅이라는 사람이 찍은 것이라 합니다.

2층으로 된 건물 누각이 아주 멋지군요?

갓 쓴 사람도 보이고 상투를 튼 사람도 보입니다.

기둥에 기대어 놓은 지게가 인상적입니다.

 

지금의 수어장대 안에는 무망루와 청량당 모두 세 개의 건물이 있습니다.

 

먼저 보이는 건물이 청량당이라는 건물입니다.

청량당에는 이회와 그의 처첩에 관한 슬픈 이야기가 전해오는 곳이라 합니다.

이 회는 조선 시대 남한산성을 축성할 때, 동남쪽 부분을 책임진 사람이었다 합니다.

그러나 경비를 탕진하고 공사도 게을리함으로 제날짜에 공사를 완공하지 못하였다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처형당했다 합니다.

 

그때 그의 처첩도 남편의 일을 도우려고 모자라는 공사기금을 마련하려고 삼남지방으로 가 축성 자금을 마련해

이곳으로 오는 도중에 남편이 억울하게 처형당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강물에 몸을 던져 자살했다고 하네요.

그 후 이회의 무고함이 밝혀졌고 그와 그의 처첩의 억울한 한을 풀어주기 위해 서장대 옆에 사당을 지어 

그의 넋을 위로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위의 사진이 바로 1960년대 두 사람의 넋을 위로하는 굿을 하는 모습이라 합니다.

죽고 난 후 저런다고 억울함이 풀어지겠어요?

이를 도당굿이라고 한다는데...

 

이번에 보이는 사진이 바로 무망루라는 누각입니다.

무망루는 조선 영조 27년(1751년) 이 지역 광주 유수 이기진이 증축한 수어장대 2층의 내편 문루로서

그 편액이 2층 누각에 있어 1989년 전각을 마련하고 이곳에 현판을 새로 설치하여

일반인도 쉽게 볼 수 있도록 했답니다.

 

무망루는 병자호란 때 인조가 겪은 시련과 수모 그리고 8년간이나 청나라 심양에 볼모로 끌려가 지내다

귀국한 후 북벌을 꾀하다 승하한 효종의 원한을 잊지 말자는 의미로 영조가 무망루라는 이름을 지은 것이라 합니다.

 

무망루 옆으로는 나무 한 그루가 보입니다.

초대 대통령 이승만이 심은 나무라 하네요.

 

사진 몇 장 더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