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 여행기 2014/리스본

바스쿠 다 가마(Vasco da Gama) 석관, 제로니무스 성당.

佳人 2015. 5. 6. 08:00

 

제로니무스 수도원을 구경했던 이야기를 어제 했습니다.

이곳의 모습을 오늘 조금 더 보기로 합니다.

어제 보았던 모습은 사합원 형태의 건물로 사방으로 회랑을 만들어

한 바퀴 회랑을 따라 돌면 모두 볼 수 있습니다.

회랑은 아래층에도 있고 위층에도 있네요.

 

 

지금은 세계 문화유산으로 보호받고 있는 곳이네요.

그러나 관광객이 볼 수 있는 건물은 사각형으로 더는 볼 곳이 없네요.

다만 회랑을 따라 만든 건물 모양이 무척 아름다운 조각으로 만들었다는 게 특이합니다.

 

 

여기는 1755년 이 지역을 초토화한 대지진도 거뜬히 견딘 곳이랍니다.

바스쿠 다 가마(Vasco da Gama)의 힘이 얼마나 센지 감히 여기는 그대로 두었나 봅니다.

바스코라고 해야 할지 바스쿠라고 해야 할지...

Vasco를 읽을 때 포르투갈에서는 O가 마지막에 올 때 우리말로 오라고 하지 않고

우라고 발음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이 건물은 포르투갈의 전통 건축 양식이라고 하는 마누엘 양식의 대표작이라 합니다.

벨렝 탑도 마누엘 양식이라 했던가요?

건축에 관심도 없던 佳人이 이번 여행을 하며 많은 공부를 하게 되네요.

공부한다고 달라지는 것도 없지만 말입니다.

 

 

마누엘 양식의 특징은 당시 사회현상과 맞물려 해상무역이 활발했기에 바다와 연관된

장식을 건축물에 많이 사용했다는 점입니다.

문을 장식한 모습이 마치 배트맨에서 나온 날개 모양이 연상되기도 하네요.

 

 

산호나 조개를 몰딩으로 사용했고 밧줄은 띠를 둘러야 할 곳에 밧줄 모양으로 장식했다네요.

그러니 마치 배처럼 배와 연관이 많은 물건을 건물 장식으로 사용하는 건축 양식이

바로 마누엘 양식이라 할 수 있다고 하네요.

해양시대를 열며 국가 부흥이 함께했기에 항해에 필요한 것으로

건축 양식으로 했다는 말인가요?

 

 

수도원 건물에 붙여 지은 성당이 있습니다.

위의 사진처럼 이층에서 아래 보이는 성당 내부를 구경할 수 있지만, 바로 내려갈 수는 없네요.

그러나 여기서 성당 안을 모두 보았다고 그냥 가지는 마세요.

 

 

성당 안으로 들어가려면 아까 들어온 입구로 가면 그곳에서 성당 아래층으로

들어갈 수 있는 문이 있어 이제 성당으로 들어가 구경하렵니다.

이곳에는 아프리카 남단 희망봉을 돌아 인도항로를 발견했던

바스쿠 다 가마의 석관이 안치되어 있습니다.

 

 

남문 입구에 엔히크 왕자의 동상이 있고 성모 마리아상이 있지요.

그쪽 문은 늘 닫혀있고 관광객이 드나드는 곳은 따로 있습니다.

들어가자 오른쪽에 창이 있고 그 아래 두 손을 가지런히 모은 사람의 형상이 보입니다.

 

 

이 성당이 유명한 이유는 바로 바스코 다 가마와 포르투갈의 대표시인인

 루이스 데 카몽이스의 석관이 모셔져 있기 때문입니다.

우선 입구로 들어가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 성당 안을 시계 반대방향으로 돌며 구경합니다.

눈과 카메라가 어둠에 적응하니 이제 모습이 보입니다.

바닥에 여섯 마리의 사자를 깔고 석관 하나가 있습니다.

 

 

이 석관의 주인이 바로 포르투갈의 민족시인이라는 루이스 바스 데 카몽이스입니다.

아마도 포르투갈에서 글쟁이로는 이 사람을 능가할 사람은 없을 겁니다.

 

 

이제 주변을 살펴봅니다.

성당 주 제단 위로 그림이 보이지만, 저게 명화인지 아닌지는 佳人의 안목으로는

구분조차 하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림은 몰라도 이성당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스쿠 다 가마를 만난다는 일이지요.

바스쿠 다 가마라면 우리 귀에도 익은 그런 탐험가가 아닌가요?

오늘 위대한 탐험가며 항해사였던 바스쿠 다 가마...

비록 석관이지만, 그 사람을 만났습니다.

 

 

역시 여섯 마리의 사자가 빠떼루 자세로 바닥에 누워 석관을 받치고 있습니다.

저게 완벽한 빠떼루 자세 아닌가요?

 

 

카몽이스는 포르투갈의 국민시인으로 추앙받고는 있지만, 그 사람에게는 미안한

이야기지만, 사실, 이곳에 오기 전에는 이름조차 들어본 적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바스쿠 다 가마라는 사람에 대해서는 학교 다닐 때 배워서 조금은 알고 있잖아요.

 

 

특히 바스쿠 다 가마의 관이 있는 부근 벽에는 손에 밧줄을 쥔 모양의 조각이 있는데

당시 이 조각을 만지면 성공적인 항해를 한다는 속설이 있어 많은 뱃사람이

이곳에 들러 한 번씩 만져보고 갔다는 곳입니다.

우리야 배를 탈 일이 없어 그냥 사진만 찍고 왔습니다.

 

 

그런데 밧줄을 잡은 손이 하나 더 있습니다.

이 손은 누구의 손입니까?

어느 게 오리지널일까요?

그렇다고 죽은 바스쿠 다 가마를 깨워 어느 게 더 효과가 좋은 손인지 물어볼 수도 없잖아요?

두 개의 손은 모두 많은 사람이 만져 반들거리잖아요.

 

 

제로니무스 수도원은 원래 입장료 7유로이나 벨렝 탑과 함께는 10유로이고

하나 더 발견의 탑까지 하면 13유로에 모두 볼 수 있답니다.

그러나 리스보아 카드를 18.5유로에 사면 트램도 포함이고 다른 곳까지 모두 별도의

요금없이 볼 수 있는 곳이 많기에 통합권보다는 리스보아 카드가 훨씬 유리합니다.

 

 

오늘 여기 온 김에 한 가지 의문점을 풀고 가렵니다.

우리가 남미 여러 나라가 사용하는 언어가 스페인어와 포르투갈어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남미 국가 대부분은 스페인어를 사용합니다.

그러나 브라질만은 유일하게 포르투갈어를 씁니다.

왜?

 

 

1940년대 여러 유럽 국가는 신천지를 개척하기 위해 바다로 진출하는 해양 무역시대가 열렸습니다.

당시 지중해를 통한 뱃길은 이탈리아의 방해와 이슬람교도들의 방해로 어려워지자 이들 두 나라는

새로운 무역항로를 개척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인도를 비롯한 아시아는 이들에게는 황금알을 낳는 곳이었죠.

그래서 이들은 새 항로로 포르투갈은 아프리카 남단 희망봉을 돌아가는 동쪽 항로를 택했고

스페인은 콜럼버스처럼 곧장 대서양을 가로질러 가는 단순 무식한 길을 택했습니다.

 

 

그러나 남미를 두고 이들이 발견한 신대륙의 식민지 쟁탈전이 심해지며 심지어 두 나라 사이에

전쟁이 벌어질 만큼 대립이 심각해지자 1494년 당시 교황 알렉산드르 6세가 중재를 하게 되었답니다.

 

두 나라 사이에 발견하는 신대륙의 소유권은 아프리카 서쪽 끝 해안에서 서쪽으로 1.500km 되는

지점까지 선을 그어 그 선의 동쪽에서 발견되는 땅은 포르투갈의 소유이고 서쪽에 발견되는 땅은

스페인이 차지하라고 중재를 하였다네요.

 

 

위의 사진은 바스코 다 가마의 인도항로와 브라질 항로로 보입니다.

설명 중 제일 아래 보이는 두 줄의 점선은 남미의 여러 나라 중 브라질만 포르투갈어를

사용하고 나머지 모든 국가가 스페인어를 사용하게 된 아주 중요한 선입니다.

 

이 1.500km의 선을 그어놓은 조약이 Treaty of Tordesillas라고 합니다.

그 결과 1.500년 포르투갈 사람 카브랄에 의하여 브라질이 발견되었는데 브라질이 바로

교황이 그어준 토르데시야스 분계선 동쪽에 있었던 까닭에 브라질은 포르투갈의

차지가 됨으로 남미 국가 중 유일하게 브라질만 포르투갈어를 쓰게 되었답니다.

 

 

이 얼마나 웃기는 일입니까?

두 나라의 왕과 교황이 머리를 맞대고 정작 주인은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이런 엉뚱한 짓이나 하고 말입니다.

우리 땅 간도를 두고 주인인 우리는 배제된 체 일본과 중국이 서로 딜을 해 간도는

중국이 먹고 만주 괴뢰 정부는 일본이 먹고..

세상은 힘 있는 자가 지배하나 봅니다.

 

 

교황이 중재하고 선 하나를 그어놓은 결과 남미의 모든 국가의 언어가 정해진 결과입니다.

정말 나라말이 정해지는데도 이런 일도 있군요.

그런데 교황은 왜 식민지 경영을 위해 침략과 약탈을 일삼는데 앞장서서 말리지 않고

못된 부로커처럼 나눠 먹으라고 중재를 했을까요?

그들이 살인도 서슴지 않고 약탈했던 황금에 눈이 멀어서였나요?

우리가 예전에 보았던 "미션"이라는 영화가 바로 당시의 이야기가 아닐까요?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평온한 바다는 결코 유능한 뱃사람을 만들 수 없다고 했습니다.

천하가 어지럽고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을 지경이라야 영웅이 탄생합니다.

대항해시대를 맞아 서로 앞다투어 바다를 건너갔습니다.

대항해 시대가 바로 그런 시기였나 봅니다.

바스쿠 다 가마도 콜럼버스도 이때 바다로 진출했습니다.

지금 우리의 영웅은 누구입니까?

佳人의 영웅은 또 누구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