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견의 탑(Padrão dos Descobriment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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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어제 구경했던 벨렝 탑에서 약 1k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발견의 탑이라는 곳을 구경합니다.
발견의 탑을 발견 기념비라고 한다지만, 여기서는 그냥 발견의 탑이라 하겠습니다,
먼 곳이 아니기에 그냥 걸어서 갑니다.
가는 길 중간에 비행기 한 대가 전시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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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형 비행기라 생각했지만, 아주 의미 있는 실제로 운행했던 비행기라 합니다.
비행기 앞에 있는 비행기에 대한 내력을 적어놓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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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비행기는 최초로 여기 리스보아에서 출발해 대서양을 횡단해
남미 브라질까지 갔다 온 비행기라 합니다.
당시로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겁니다.
작은 비행기에 생명을 맡긴 조종사의 심정은 어땠을까요?
그러나 인류의 발전은 이런 사람의 용기 있는 행동에 따라 발전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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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대륙의 끝에서 대서양과 가장 가까운 나라가 아무래도 포르투갈이라는 데
이견이 없을 겁니다.
그러나 대서양 시대를 여는 대항해 시대의 종결자는 스페인이라고 봐야겠지요.
시작은 포르투갈이었지만...
발견의 탑은 범선 모양의 배의 형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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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스페인보다 더 일찍 세계화를 부르짖고 바다로 나아간 나라는 포르투갈이라네요.
사실, 일찍이 항해술과 조선기술이 스페인보다는 포르투갈이 먼저 앞섰나 봅니다.
그 이유는 이슬람의 영향이 아닌가 생각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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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선 사람이 바로 엔히크 왕자가 아니었나요?
스페인어로는 엔리케라고 하지만, 포르투갈의 왕자니까 포르투갈식으로 엔히크라고 불러야
하며 이 기념비는 엔히크 왕자 탄생 500주년을 기념해 1960년에 만들었다네요.
위의 사진을 보니 범선을 손에 들고 앞장선 엔히크를 따라
오늘 여기서 반상회라도 하려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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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포르투갈이 해양국가로의 초석을 다진 그의 공적을 기리기 위한 공덕비라고나 할까요?
그게 바로 발견의 탑이라 부르는 범선 모양의 돌탑입니다.
아무래도 만든 지 얼마 되지 않기에 아직도 돌가루가 떨어지기에
유적이라고는 볼 수 없는 일이 아닌가요?
이 자리가 바로 바스쿠 다 가마가 인도항로를 개척할 때 출발했던 지점이라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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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견의 탑 높이는 53m로 건물 내부로 엘리베이터를 운행해 위로 올라가 볼 수 있답니다.
그러나 외부 주변을 그냥 구경하는 것은 무료입니다.
기념비 내부에 설치한 엘리베이터를 이용할 경우 별도의 입장료를 내야 한다네요.
위의 사진 아래를 보시면 문이 하나 보이는데 그 문으로 들어가면
엘리베이터를 탈 수 있고 꼭대기에 오를 수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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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 먼저 앞장선 사내가 바로 엔히크 왕자고 아마도 그는 뭐
"나를 따를껴? 말껴?"라고 하는 겁니까?
그 뒤를 이어 콜럼버스.
그대는 왜 이곳에 있는겨?
그대 처갓집이 포르투갈이라 놀러 왔는감?
그리고 마젤란, 바스쿠 다 가마 등이 줄줄이 따라갑니다.
대장만 갑니까?
선원도 가야죠.
천문학자, 지리학자, 선교사, 주방장 등 모두 필요한 사람이 아닙니까?
오늘 뱃사람들이 여기 모여 반상회라도 하는 모양입니다.
그런데 제일 뒤에 덜수는 왜 따라갔을까요?
줄을 잘못 서서 얼떨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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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지도가 발견의 탑 광장 바닥에 보이는데 포르투갈의 이런 뱃사람들로 말미암아
세계로 나간 연도를 표기해 놓았습니다.
1541년...
위의 사진에 보이는 한반도 옆에 바로 일본이 보이고 포르투갈이
일본에 진출한 연도가 아닌가 생각되네요.
정말 멀리까지 진출하지 않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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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히크 왕자는 왕이 되지 못한 왕자지만, 포르투갈 사람은 왕이라는 칭호를 붙여줍니다.
해상왕이라고요.
우리나라의 해상왕은 장보고가 아닌가요?
포르투갈을 여행하다 보면 엔히크 왕자의 동상을 제일 많이 보게 됩니다.
그 말은 가장 존경받는 사람이라는 말이 아니겠어요?
그의 공적으로는 1415년 모로코의 세우타를 처음으로 점령함으로
해상으로 나아가는 발판을 만들었기 때문이겠죠.
바로 포르투갈의 전성시대를 연 초석을 쌓는 일을 한 사람이라는 말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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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그는 항해술을 집대성하고 천문 지리를 공부하여 포르투갈이라는 작은 나라가
세상에 식민지 경영에 제일 앞장선 나라로 발돋움하게 한 장본인이라지요?
그래서 발견의 탑 제일 앞에 서서 범선을 손에 들고 대서양을 바라보고 있나 봅니다.
"포르투갈의 세계경영은 나로부터 시작이야~"라고 하는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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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선 모양으로 특이한 모습이지만, 과연 저 돌덩어리가 물에 뜰까?
한번 강물 위로 밀어 보고 싶습니다.
얼마 전 중국 여행 중 보았던 이화원 서쪽에 있는 스팡(石舫 : 석방)이라고 부르는
돌로 만든 배가 있었습니다.
스팡이라는 돌로 만든 배는 중국 여행을 하신 분은 자주 보았을 겁니다.
스팡을 만든 이유는 그 의미가 깊은 이야기가 있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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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위의 사진에 보이는 것이 이화원에서 보았던 돌로 만든 배 스팡입니다.
그 사연을 거슬러 올라가면 춘추시대 사상가였던 순자로까지 올라간다 하네요.
그가 했다는 말 한마디가 이렇게 호수에 배를 만들었다 하네요.
"군자주야, 서인자수야(君者舟也, 庶人者水也)"라는 말에서 유래했다고 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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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은 "군주는 배고 백성은 그 배를 받치는 물이다."라는 말이랍니다.
어찌 보면 백성을 물로 보고 하는 건방진 이야기 같지만,
백성은 편안할 때는 배를 받들어 주지만 화가 나면 그 배를 들러 엎어버릴 수 있다는
무서운 말이 아니겠어요?
(水能載舟, 亦能覆舟 : 수능재주, 역능복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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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역사는 대부분 이렇게 흘러왔습니다.
그러니 백성을 물로 보지만 말고 무서운지 알라는 의미지요.
물론 청나라 황실이 반석 위에 올라서기를 기원하는 뜻에서
"강산이 수백 번 변해도 달라지지 않고 영원히 침몰하지 않는다."
라는 생각에 만든 석주이지만, 청나라는 결국 물로 보았던 민초에 의해
물 먹고 전복되고 말았습니다.
권력이란 이렇게 허망한 일이기도 하지요.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동서양이 같은 형태로 배를 돌로 만들었지만, 그 배가 의미하는 이야기는 사뭇 다릅니다.
아무래도 동양사상이 우리에게는 더 느낌이 있지 않을까요?
잠시 샛길로 빠졌습니다.
혹시 중국 여행을 하시는 분이 계시면 돌로 만든 배를 보시면 그 의미가 생각나실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