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미노 두 번째 날 곤사르를 향하여
이제 우리의 까미노 이틀째 이야기입니다.
어제는 까미노의 리허설이었다면 오늘은 본 게임이네요.
오늘은 페레이로스에서 곤사르까지 약 16km를 걸었던 이야기입니다.
지난밤은 10월 초순인데도 무척 추웠습니다.
방에 있는 옷장 속에 두꺼운 밍크 담요가 있어 두 개나 덮고 잤습니다.
지금까지는 밤이 그렇게 춥지 않았지만, 북으로 많이 올라왔나 봅니다.
2014년 10월 4일의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갈리시아 지방은 지금 10월부터 우기에 접어든다고 하네요.
이 시기부터는 늘 비가 자주 뿌리고 밤에는 무척 춥다고 합니다.
사실, 낮에는 걷느라고 더웠습니다.
아침 7시 반은 이곳에서는 아직 캄캄한 새벽입니다.
이제 두 번째 날을 걷기 위해 배낭을 챙겨 길을 나섭니다.
이렇게 새벽부터 서두르는 이유가 오늘 걸어야 할 거리가 어느 정도인지도 모르고
어떤 여정인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잠시 걷다 보니 이정표가 보이네요.
저런 것을 마일 스톤이라 하나요?
언제 우리가 벌써 100km 지점을 모르는 사이에 지나친 모양입니다.
너무 어두워 보지 못한 모양이네요.
낙서 중에 한글도 보입니다.
한글이 자랑스럽다가도 저럴 때는 부끄럽습니다.
아직 어두워 제대로 길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가지고 간 플래시를 비추니 함께 숙소를 떠난 프랑스 할머니가 새벽에 불을 켜면 귀신을 부른다네요.
그 할머니가 사는 동네는 귀신이 플래시 불빛을 좋아하나 봐요.
프랑스 귀신은 뭐가 달라도 다른가 봅니다.
나라마다 사는 곳에 따라 이상한 믿음이 있나 봐요.
캄캄한 새벽길을 걷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는 것보다 플래시를 켜는 게 낮지 않을까요?
프랑스 귀신이 할일도 없이 스페인 까미노 길에 오지 않은 이상 말입니다.
그리고 귀신이 뭐라해도 우리가 프랑스 말을 모르니까 귀신이 답답해 먼저 숨이 막혀 죽지 않을까요?
한참을 열심히 걷다 보니 서서히 아침이 밝아옵니다.
까미노 길에서 만나는 아침 해는 또 다른 느낌이 듭니다.
이래서 아침은 밝음이요, 삶이요, 탄생이요, 희망이요, 새 생명을 의미하나 봅니다.
작은 성당...
누구나 들어가 마음의 짐을 덜 수 있는 곳.
그러나 내 마음의 짐은 덜어줄 수 있을지언정 내 배낭의 짐은 누구도 덜어줄 수 없습니다.
내가 짊어지고 가는 업보는 내가 스스로 풀고 덜어내야 가벼워집니다.
여행을 준비하며 이것저것 필요한 것을 챙기다 보면 작은 승용차 하나는 충분히 채울 겁니다.
더군다나 제법 긴 시간을 여행하는 중이니까요.
그런데 그보다 더 긴 인생길을 걸어가며 필요한 짐은 얼마나 될까요?
한 30분 정도 걸었나 봅니다.
이제 날도 밝아졌고 주변 풍경도 눈에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길가에 식당이 보이네요.
간단한 아침 식사 데사유노라도 먹어야 하지 않겠어요?
이렇게 까미노에서는 1시간 안에 반드시 식당이나 가게가 있기에 돈만 들고 출발하면 누구나 걸을 수 있습니다.
잠시 쉴 겸 우리도 아침을 먹고 가야겠지요?
어멈?
와이파이도 연결됩니다.
비번을 물어보니 Santiago랍니다.
ㅋㅋㅋ
지금 우리는 산티아고로 가는 중입니다.
그런데 스페인에서는 와이파이를 위피라고 합니다.
어찌 보면 제대로 글자대로 발음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네요.
그런데 스페인에서는 대부분 그 비번을 알파벳 대문자와 소문자 그리고 숫자까지 섞어 무척 길게 쓰기에
제대로 물어봐야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보통 10자 이상의 난수표 번호처럼 사용하는 집이 많습니다.
샌드위치와 따끈한 커피 한잔을 마십니다.
아침 식사 데사유노는 보통 간단하게 샌드위치 빵에 커피나 수모 나투라(Zumo natura)라고 하는 생과일주스를
마시는데 가격이 3유로 정도입니다.
물론, 지역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그 수준이라 보시면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겁니다.
그때 봉고차 한 대가 도착합니다.
문을 열자 차 안에 배낭이 많이 보입니다.
그랬습니다.
까미노를 걷는 사람 중에 배낭이 무거워 다음 숙소나 마지막 종착지인 산티아고까지
택배로 보내는 사람이 많답니다.
산티아고 우체국은 상당 기간 보관까지 해준다 하네요.
세상에..
여기도 택배서비스가 호황입니다.
그래서 가볍게 물병 하나만 들고 걷는 사람이 종종 보였습니다.
순례자의 덕목에서 벗어나는 일이지만, 어쩌겠어요?
뭐... 차를 타고 순례길을 다녀왔다는 사람도 있는 걸요.
그런데 택배비가 다음 숙소까지는 보통 2유로 정도로 저렴하다고 하니 만약 까미노를 걷고자 하시는 분께서
배낭 무게 때문에 고민이 있으신 분은 이용할만한 방법이 아닌가 생각되네요.
숙소나 이렇게 식당에서 택배 서비스를 받아준다고 합니다.
그러나 차를 타고 순례길을 돌았다고 하면 반칙입니다.
이곳 식당에서 재미있는 일이 있었네요.
아침 식사로 빵과 생과일주스를 시킨 울 마눌님이 주스를 직접 그 자리에서 짜서 주니 한 잔 더 시켰습니다.
그리고 얼마냐 물어 2유로를 주니 조금 전 먹은 주스값도 내라고 하더래요.
그것은 빵과 함께 나온 데사유노에 포함된 것인데...
그래서 갑자기 우리 말로 "방금 아침 먹은 값은 드렸잖아요."라고 이야기하니
그 여자가 우리 말을 마치 알아들은 것처럼 웃으며 "아하! 맞아요."라고 하는 듯 웃으며 뭐라 하더랍니다.
급하면 이렇게 우리 말로 해도 다 알아듣는다는 말인가요?
아니면 울 마눌님이 스페인어로 이야기했을까요.
잠시 또 걷다 보니 길가에 사람들이 서 있습니다.
뭔가 하고 가서 보니 무인 판매대입니다.
과일 몇 가지를 내다 놓고 1유로를 내고 집어가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과일 상태가 상품성이 있는 게 아니라 복숭아도 포도도 무척 작고 볼품이 없습니다.
시장에 내다 팔 정도의 품질은 아니고 집에서 그냥 먹을 그런 종류였네요.
까미노 길을 걷는 사람에게 이렇게 내놓고 돈을 내고 필요한 만큼 집어가도록 했네요.
우리도 1유로를 내고 포도 한 송이를 집어 들었습니다.
까미노에서는 이렇게 무인 판매대를 자주 볼 수 있습니다.
길가에 사과밭이 보입니다.
그러나 사과도 사람이 사서 먹기는 쉽지 않은 아주 작고 맛도 없이 퍽퍽한 그런 사과네요.
그냥 떨어져도 누구 하나 쳐다보지 않아 아마도 가축 사료로 쓰기 위해 재배하나 봅니다.
길가에 심은 것은 까미노 길로 떨어져 뒹굴지만, 맛이 별로 없어 누구 하나 눈여겨보는 사람이 없습니다.
까미노 길은 심심하지 않습니다.
가는 길마다 보이는 식당, 가게...
잠시 쉬었다 갈 수 있고 커피 한 잔 마실 수도 있는 길입니다.
위의 가게는 까미노에 필요한 물품을 모두 파는 집이네요.
만나는 사람마다 건네는 인사 "올라!"나 "부엔 까미노~" 때문에 심심할 겨를이 없습니다.
까미노 길에서는 동네 개도 부엔 까미노라는 인사말을 알아들을 겁니다.
한참 오래된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 나온 장면 중 한 가지가 생각나네요.
키팅 선생님은 좁은 교실 안에서 학생들에게 책상 위에 올라서 바라보라 합니다.
이 장면을 아마도 여러분께서도 기억하실 겁니다.
비록, 좁은 교실이지만, 앉아서 보는 교실과 책상에 올라서서 보는 교실의 느낌이 다르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한 것이라고 기억합니다.
아마도 그 장면이 암시하는 것은 시각을 더 다양하고 넓게 느끼라는 의미지 싶습니다.
바라보는 위치만 바꾸더라도 세상이 달라 보일진대 직접 배낭을 메고 까미노를 걷는다면 어떻겠어요?
지금 우리가 걷는 길도 세상에 많고 많은 다른 길과 다름없지만, 늘상 걷던 길이 아니고
이야기가 다른 길이기에 그 느낌이 다르지 싶습니다.
여태껏 살아오며 아등바등 세상을 바라보았던 무수히 많은 길과
지금 이렇게 걸어가며 보는 길은 전혀 다른 길입니다.
하나는 살아가는 현실의 길이고 다른 하나는 환상의 길이라서 그럴까요?
아니면, 佳人이 갑자기 성불이라도 했단 말입니까?
갑자기 왜 엉뚱하게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는 말이 생각납니까?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그러나 시야를 넓게 다양하게 가지려고 하지만, 佳人 같은 우매한 사람은 느낌이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냥 걷고 있다는 생각뿐입니다.
그리고 힘들다는 생각도 함께합니다.
성불은 쥐뿔...
1주일을 걸어보니 처음 2-3일은 힘이 들었지만, 그다음부터는 그냥 걸을만했습니다.
이렇기에 프랑스 생장부터 한 달을 걸어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