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미노의 상징 조개(가리비), 지팡이 그리고 표주박.
우리는 까미노(Camino)라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까미노라는 단어는 스페인어로 영어로는 Way라는 의미라 하네요.
우리 말로는 그냥 길이라는 말이지만,
지금은 고유명사처럼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가는 길을 의미하는 말이겠지요?.
또한 길을 걷다는 동사의 의미로도 사용된다 합니다.
이 까미노가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답니다.
세상에 그냥 시골길을 세계문화유산이라고요?
모든 길은 로마로 이른다 했나요?
스페인에서는 로마로 가는 길은 없고 모든 길이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가는
길뿐인 듯합니다.
그러니 산티아고에 이르는 까미노는 무척 많습니다.
그 많은 길 중에 지금 우리가 걷는 길이 가장 많은 사람이 걷는 길일 겁니다.
원래 프랑스 생장이라는 곳에서 출발해 이 길로 들어서서 가게 됩니다.
어디서 출발하느냐의 문제는 아니지 싶습니다.
까미노라는 것은 그 목적지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이르는 모든 길이
까미노가 되기에 크게 문제 되지는 않습니다.
지금의 길보다 더 북쪽인 해안을 따라가기도 하고 남쪽에 있는
살라망카에서 출발하기도 하지요.
또 포르트갈에서 출발해 북쪽으로 걷는 길도 있습니다.
세비야에서 출발해 북으로 올라가는 길도 까미노입니다.
좌우지간, 스페인에서는 모든 길이 산티아고로 향합니다.
까미노에서는 순례자가 묵어갈 수 있는 숙소인 알베르게라는 게 있습니다.
처음에는 수도원이나 성당에서 순례자를 위해 숙식을 제공했다 합니다.
그러나 점차 걷는 사람이 늘어나며 국가나 지방정부에서 운영하는 공립 알베르게가
생겼고 그마저 모자라기에 지금은 개인이 운영하는 사립 알베르게도 많이 생겼습니다.
그러니 추운 겨울이 되면 순례자가 많지 않기에 일부 공립 알베르게를 제외하고는
사립은 대부분 문을 닫는다 합니다.
공립 알베르게는 대부분 도미토리로 운영되고 사립은 도미토리와 개인실이나 가족실도
운영하고 물론, 고급 호텔도 간혹 보이기도 하더군요.
지금은 그런 알베르게 말고 오스탈이나 펜시온이라 부르는 모텔 급의 숙소가 많아
예약 없이 걸어도 노숙할 일은 거의 없습니다.
가격은 공립이 한 사람당 6유로 내외, 사립은 10유로 내외로 공립과는 다르게 이불이
주어졌지만, 모든 곳이 같은지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펜시온이나 오스탈은 2인실이 30유로 내외이고 물론 시설 면에서는 우리나라 모텔이나
그 아래로 생각하시면 됩니다.
물가 또한 많은 사람이 걷는 곳이지만, 폭리나 이런 것은 거의 없습니다.
그리고 까미노에는 대부분 마을이 형성되어 먹고 마시고 휴식 취하는 데
전혀 부족함이 없습니다.
아주 순박한 시골 분위기가 물씬 솟아나는 그런 곳입니다.
마을 대부분에서는 아주 큰 수페르마르카도가 있어 무척 저렴하게 생필품서부터
길을 걷는데 필요한 모든 것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러니 돈만 들고 가면 모두 해결되는 그런 곳입니다.
까미노 중간마다 음식점이 있고 무인 판매대도 많이 있습니다.
까미노 길에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의 남은 거리를 표시한 마일스톤을
500m 간격으로 자주 볼 수 있었고 그 마일스톤에는 조개(가리비)가 그려있지요.
마일스톤뿐 아니라 방향을 일러주는 표식도 조개 모양이고 걷는 사람도
조개를 몸에 부착하고 걷습니다.
조금만 방향이 달라지고 갈림길이 나오면 눈에 쉽게 보이는 곳에 노란색의
화살표를 그려놓아 초행자도 길을 잃을 염려 또한 없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이 줄을 지어 걸어가기에 길치라도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게 까미노이기 때문이겠죠?
조개가 의미하는 일은 예수의 십이 사도 중의 한 명인 성 야고보(영어로는 :
Saint James)는하나님의 복음을 더 넓은 지역으로 전파한다는 역사적
사명을 띠고 가 아니고 종교적 사명을 띠고 스페인 북부 갈리시아(Galicia)지방으로
전도 여행을 떠났답니다.
아주 먼 옛날이야기입니다.
그곳이 지금의 스페인 북쪽 지방인 갈리시아 지방이었고 그곳에서 내륙으로 내려오며
자신이 땅끝인 갈리시아 바닷가에서 왔다는 표시로 몸에 가리비를 지녔기에 까미노나
그 길을 걷는 사람 모두 상징적으로 조개를 지니고 다닙니다.
그게 묵시적으로 순례자라는 의미가 아니겠어요?
우리처럼 그런 일에 무관심해 조개를 지니지 않고 걸어도
누가 시비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그냥 걸어도 순례길을 걷는 사람으로 알아봅디다.
조개 외에 지팡이에 표주박을 매단 순례자도 쉽게 볼 수 있지만 , 우리는
조개는커녕 표주박도 없고 지팡이도 없이 그냥 물병을
배낭 안에 넣고 길을 걸었습니다.
사실, 지팡이는 필요할지 모르겠습니다.
스페인에서는 길을 걷다 보면 송아지만하게 큰 개를 자주 만나니까요.
그리 위험하지는 않았지만, 개는 개가 아니겠어요?
약 7년여의 전도를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성 야고보는 헤롯왕에게
참수를 당하여 예수의 십이 사도 중 첫 번째 순교자가 되었으며, 제자들은
그의 유골을 생전에 그가 전도하던 스페인 북부지방으로 옮겨달라는 유언에 따라
야고보의 유해를 탈취해 배에 실어 강에 띄웠답니다.
신통방통하게도 야고보의 유해를 실은 배는 강을 따라 바다에 이르고 배는 그가 처음
전도활동을 했던 갈리시아 지방에 도착했으며 그를 알아본 주민이 유해를 거두어 지금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묻었고 그 무덤 위에 야고보임을 알리기 위해
표시로 가리비로 덮었답니다.
그로부터 700여 년의 세월이 흐른 후 산티아고 지방의 목동인 펠라요가
집으로 돌아가던 중 유난히 밝게 빛나는 별이 있어 그 별을 따라가다가
별이 비추는 곳이 이르르니 그 별빛은 신기하게도 어느 무덤을 비추더랍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원래 위대한 사람은 이런 초자연적인 일이 일어났다고 하더군요.
이 소식을 들은 그 지방의 주교인 테오도미르는 그 무덤을 파게 하니 석관이 나오고
그 안에 야고보의 시신과 유물이 발견되어 세상이 이를 알리니 이로써 성 야고보의
전설이 세상에 빛을 발하게 되었다네요.
주교는 교황 알폰소 2세에게 그 무덤이 발견된 장소에 교회를 짓자고 청원했고
이로써 작은 교회가 지어졌답니다.
700여 년이 지난 후에 발견된 무덤에서 나온 유골이 야고보로 확인되었다?
유전자 감식이 스페인에서는 아주 오래전부터 있었나 봅니다.
그렇지만, 원래 이런 일에는 묻고 따지는 일은 어리석은 일이지요.
이런 사연으로 까미노 길이 생겼으며 그 상징으로 가리비와 표주박 그리고 지팡이가
상징적으로 사용되었고 세상에 많은 길이 있지만, 이렇게 역사가 있고 이야기가 있는
길이기에 많은 사람이 모여드나 봅니다.
뭐... 우리처럼 종교적인 신념도 없이 걷는 사람이 있으니 많지 않겠어요?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사랑하는 사람에 집착하지 마라.
미워하는 사람도 가지지 마라.
사랑하는 사람은 만나지 못해 걱정이고
미워하는 사람은 또한 만나서 걱정이리니...
세상은 그 자체가 걱정이고 우리는 걱정 속에 살아가느니 이 또한 살아가는 일이 걱정이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