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주석각의 부모은중경변상(父母恩重經變像)
보정산 석각은 주로 9세기경부터 만들기 시작해 13세기경까지 만든 석각군이라 합니다.
조지봉이라는 승려가 시작했지만, 어느 한 시기에 한 사람에 의해
완공된 곳은 아니라는 말이네요.
그렇다고 지금 완벽히 마무리된 것도 아닐 겁니다.
그러나 미완의 대작이지만, 그 중 31m에 달하는 부처의 열반상은 압권입니다.
여기는 중국의 다른 곳처럼 불교의 석각만 있는 게 아니라 도교의 흔적도 무척 많이 보입니다.
물론 평범한 민초의 모습도 보이고 자연의 모습도 간간이 볼 수 있습니다.
물론 덜수의 모습도 보이고 다양한 동식물의 석각도 보이죠.
다른 석각군과는 달리 글자도 무척 많이 보입니다.
이런 다양한 모습 때문에 다른 곳의 석각보다는 더 사랑받는지 모르겠습니다.
또 천수관음상은 실제로 천 개 이상의 손과 눈을 만들었다고 하는데,
아직도 보수 중으로 볼 수 없어 제일 안타까웠습니다.
방금 본 석가열반성적도(釋迦涅槃聖迹圖)와 구룡욕태자도(九龍浴太子圖)가
U자형으로 생긴 석각군의 제일 안쪽입니다.
이제부터 들어온 곳을 마주 보며 돌아나가게 되었네요.
이제 위의 사진은 거위를 탄 마야부인(摩耶夫人) 상이라 합니다.
물론, 중국에서는 거위보다 봉황이라 할 겁니다.
마야부인(摩耶夫人)은 석가모니의 어머니라고 했나요?
인도 카필라바스투의 슈도다나의 왕비로 석가모니를 낳고 7일 후 죽었다고 하더군요.
힌두교의 신들도 모두 타고 다니는 짐승이 있답니다.
시바는 난디라는 소를..
부처의 원래 모습인 비슈누는 가루다라는 머리는 독수리이고 인간의 몸을 한 동물을...
그리고 브라만은 신성한 거위를 타고 다닌다 합니다.
그럼 이 거위가 그 거위?
몰라 몰라~
이제 그 옆의 비로도장으로 갑니다.
컥! 문을 잠가놓았습니다.
왜?
그런다고 못 봅니까?
철망 사이로 손을 넣어 카메라만 들이밀고 사진만 찍습니다.
왜 보지 말라고 하면 더 보고 싶습니까? 나 원 참!!!
비로도장이라고 했으니 비로자나불이 아닐까요?
혼자 중얼거려 봅니다.
이제 그 옆에 있는 부모은중경변상(父母恩重經變像)을 보기 위해 이동합니다.
그런데 첫 번째 만든 석각이 무척 기분 나쁜 얼굴로 바라보고 있네요.
佳人이 불효자였다는 사실을 마치 알고 있는 듯 코를 킁킁거리는 듯합니다.
얼굴 근육을 모두 코를 향해 모으고 있는 중입니다.
부모은중경변상(父母恩重經變像)은 흔한 게 아니라 합니다.
물론, 그림으로는 자주 접할 수 있으니 이렇게 돌에다 일일이 새긴 조각상은
흔한 게 아닌가 봅니다.
높이가 7m이고 폭이 14.5m의 석벽에 44존의 각상을 만들었습니다.
그 깊이가 2.5m로 석벽을 파고 들어갔다는 말이 되겠네요.
정말 대단한 광경이 아닙니까?
혼자만의 생각이라고요?
제일 윗단에는 상반신만 조각한 7존의 부처가 있습니다.
제일 아랫단에는 자식을 점지해달라고 부처에게 기원하는 모습을 석상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중간 단에는 10개의 그룹으로 나누어 좌우가 서로 연결되는 그림책처럼 만든
부모의 헌신적인 자식 사랑의 모습을 차례로 만들어 이곳을 찾는
모든 사람에게 느껴보라고 하는 듯합니다.
눈이 있되 보지 못한다면 佳人처럼 이곳을 찾았다고 다 보는 것은 아니라 생각됩니다.
이곳의 석각은 무척 생동감이 있고 인상적입니다.
이 석각은 불교가 중국에 토착화한 후의 작품이라고 본다고 하네요.
투불기구사식(投佛祈求嗣息)이라고 쓴 글도 보입니다.
부처에게 자식을 점지해달라는 기원인가요?
하나하나 뜯어보면 모두 고개가 저절로 끄덕여지는 부모의 큰 공을 나타내는
석각으로 효란 유교의 기본 덕목입니다.
여기는 효라는 개념은 모든 종교의 기본이라는 의미일 겁니다.
어디 꼭 종교나 도덕을 이야기할 때만 효를 말할 수 있겠어요?
요즈음 이런 정신도 점차 퇴색되어 가는 듯하여 안타까울 뿐입니다.
사진의 제일 오른쪽을 보시면 출산의 모습을 보실 수 있습니다.
부모란 자식이 태어날 때 입이 삐뚤어지고 지옥과도 같은 고통을 인내하며
자식을 생산한다고 하지요.
임신한 모습, 아이를 안고 있는 모습, 젖을 물리는 모습...
이 모두가 아이를 향한 부모의 한없는 사랑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 괄시받고 천대받는 꼴통인가요?
그러나 요즈음의 세태는 부모란 자식의 앞을 가로막는 그런 귀찮은 존재가 되어갑니다.
효란 책에서나 나오는 말이고 그 의미는 꼴통의 의미입니다.
"은혜를 아는 자식은 적고 그 은혜를 배반하는 자식은 많다(知恩者少 貧恩者多)"라는 말이
이곳에 새겨져 있습니다.
그때도 그런 자식이 많았나 봅니다.
그러니 그런 글이 있고 이렇게 계몽하기 위해 석각으로 새겨놓았지요.
佳人은 자식에게 어떤 부모로 비칠까요?
또한, 부모님에게 佳人은 어떤 자식으로 보였을까요?
가슴을 쥐어짜고 후회해도 답이 보이지 않습니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어버이 살아실제
(송강, 정철)
어버이 살아실제 섬기기를 다 하여라
지나간 후(後)면 애닯다 어이하리
평생(平生)에 고쳐 못 할일 이뿐인가 하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