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들의 들판 산티아고 가는 길
산티아고 콤포스텔라(Santiago는 성 야고보의 스페인식 이름, Compostela는 별들의
들판이라는 뜻의 스페인어)에 세워져 성 야고보의 유골을 안치한 성당은 예루살렘과 로마에 이어
가톨릭 세계 3대 성지가 되었고, 이때부터 유럽의 각 지역으로부터 수많은 가톨릭 신자들이
산티아고 콤포스텔라를 향한 순례길에 나서게 되었고
덕분에 도시 이름도 별들의 들판의 야고보라는 말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가 되었다네요.
이때의 산티아고 순례길이 지나던 스페인 북부지역은 이베리아 반도를 거의 점령한
이슬람 세력과 북쪽으로 밀린 원주민인 아스투리아스 등 가톨릭 왕국이 첨예하게 대립하던 곳으로써
당시의 정치적 상황이 순례길의 탄생과 관련이 있었을 것이라는 추측도 있습니다.
사실, 이 말이 더 맞는 말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두 세력이 서로 먹고 먹히는 절체절명의 시기이기에 가톨릭 세력에게는 전쟁을 위해
힘을 하나로 뭉칠 계기가 필요하지 않았을까요?
바로 종교적인 구심점이 필요했다는 말이기도 하지요.
종교의 힘으로 뭉친다면, 그것은 엄청난 파괴력을 보여줍니다.
더군다나 그 종교란 서로 지금도 미워하며 적으로 생각하는 그런 종교가 아닌가요?
당시는 예루살렘이 이슬람의 수중에 있었기에 순례자가 갈 수 있는 곳이 없기도 했고요.
민초를 하나의 힘으로 뭉치게 하기 위해 필요한 어떤 것이 필요했다는 말이기도 하잖아요?
그런 힘 중의 최고는 바로 종교의 힘입니다.
이런 일로 말미암아 후에 십자군 전쟁이 생겨나지 않았을까 생각되네요.
그러나 이런 이야기만으로 많은 순례자가 이 길을 찾아오지는 않지요.
그래서 탄생한 이야기가 전설의 고향에 나오는 그런 이야기입니다.
당시 막강한 이슬람군은 압둘레만 2세의 지휘 아래 질풍노도처럼 북으로 군사를 몰아
올라오는 중이었고 이제 얼마 남지 않은 땅을 지키기 위해 아스투리아 왕 라미로 1세는
적은 군사로 클라비호 평원에서 이슬람군을 맞이해 전투를 준비하며 대치하고 있었답니다.
조금만 더 밀리면 바닷가에 도달해 모두 죽습니다.
배수의 진을 치고 싶지 않아도 자연히 그 부근까지 밀려왔습니다.
844년 5월 23일 드디어 풍전등화와 같은 소수의 아스투리아 왕국의 군사들은 이제
시기적으로도 형님뻘인 660년 황산벌에서 소수의 군사로 나당연합군을 맞이하는 계백의
사즉생의 심정으로 이슬람의 공격을 앞두고 있었지만, 사실은 모두 포기상태에 있었습니다.
군사적으로 너무 열세이고 지금까지 계속 밀려 여기까지 왔는걸요.
"아!!! 우리의 운명은 여기까지인가 보다!"
모두 이런 생각에 잠겨있을 때였답니다.
이때 하늘에서 하얀 백마를 탄 야고보가 내려와 비 오듯 쏟아지는 적의 화살을 뚫고 앞서서 싸우매...
헉!!! 여기도 백마 탄 초인이 등장했습니다.
우리의 이육사 님이 광야라는 시에서 노래했던 백마 탄 초인이 무척 바쁘게 지냈습니다.
야고보가 전쟁의 신이었습니까?
이에 용기를 얻은 아스투리아 군도 야고보와 함께 용맹스럽게 싸워 기적적인 대승을 거두었다고 합니다.
당연한 이야기가 아니겠어요?
귀신이 함께 싸우는데...
그때 이슬람군을 이끌고 왔던 압둘레만 2세는 도저히 패배가 믿어지지 않았을 겁니다.
압도적인 군사와 지금까지 승승장구하며 올라왔는걸요.
그래서 제일 앞서 싸웠던 장수를 불러 물어봅니다.
"누구냐! 도대체 하얀 백마를 타고 질풍노도처럼 우리 군진을 휩쓸고 다녔던
저 적군의 장수가 누구더란 말이냐?"
"폐하! 그는 사람이 아니무니다. 그는 귀신이무니다."
"그럼 우리가 가루상과 싸웠더란 말이냐?"
뭐 어떻습니까?
살아있는 사마중달도 죽은 공명과 싸워 패했는걸요.
이 전투로 전황은 역전되어 지금까지 수세에만 있던 기독교 세력이 다시 남쪽으로
이슬람 세력을 몰아붙이기 시작합니다.
부처의 세상이 끝나면 온다고 했던 칼키의 세상이 바로 백마 탄 초인입니다.
그런데 벌써 클라비호 평원에 나타나버렸습니다.
세상이 혼란하면 나타나는 레퍼토리가 백마 탄 초인이 아닌가 생각되네요.
이런 기적적인 이야기가 피레네 산맥을 넘어 유럽 기독교 나라에 전해지고 이를 몸으로
느끼기 위해 수많은 순례자가 산티아고 콤포스텔라로 모여들며 지금의 까미노가 시작되었답니다.
바로 까미노의 힘은 야고보의 힘이었습니다.
이를 계기로 힘을 얻은 기독교 세력은 승승장구하며 이슬람과의 전선을 점차 남으로
밀어내게 되었고 지금의 갈리시아 지방에 생긴 까미노 길은 안전한 순례길이 되었답니다.
순례자가 늘어나며 길을 따라 성당, 수도원 그리고 마을과 도시가 점차 많이 생겨나기 시작했겠지요.
점차 순례자가 늘어나다 874년 좀 더 큰 성당을 세웠으나 그러나 977년 이슬람의 알만소르
군대가 산티아고로 군사를 이끌고 들어와 성당은 소실되고 맙니다.
왜 이때는 야고보가 백마를 타고 나타나지 않았을까요?
그것도 자신의 무덤이 있는 곳이 바로 산티아고 대성당이 아니겠어요?
그러나 알만소르는 야고보의 묘역은 파괴하지 않고 그대로 두었고 다만 산티아고 성당의 종만
들고 돌아가 코르도바의 회교사원인 메스키타에 등으로 사용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야고보가 훼방하지 않아 그의 묘역을 그대로 두었을까요?
야고보와 알만소르 사이에 무슨 뒷거래라도 했다는 말입니까?
아니면 야고보의 백마가 고장이라도 나서 A/S라도 들어갔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항상 이런 기적만 있는 게 아닙니다.
천 년도 넘게 이어온 기독교 국가인 비잔틴 제국은 "피의 그믐달"이라고 부르는
1453년 5월 29일 오스만 제국의 겨우 21살 먹은 햇병아리 술탄인 메흐메드 2세에 의해
마지막을 고하게 됩니다.
전날 마지막 미사를 지금의 아야 소피아라는 성당에서 올리며 마지막으로
하나님에게 간절히 기원했다지요?
비잔틴 제국은 20만이 넘는 대군 앞에 7천 명의 병력으로 버텼지만,
더는 버틸 수 없기에 성당 안으로 피신했던 시민은 모두 참살되고 맙니다.
그들도 아야 소피아 성당 안에 모여 백마 탄 야고보의 기적을 기대했습니다.
성당 안에 피신하여 하늘을 향해 기적을 보여달라고 울부짖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기적은 더는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술탄의 공격이 시작되자 그들은 모두 성스러운 소피아 성당에 모여 서로를
격려하며 마지막 기적을 간절히 기원했지만, 더는 견딜 수 없는 상황에 이르자 동로마의
마지막 황제 콘스탄티누스는 황제의 상징인 붉은색의 망토를 벗어던지고 하얀 백마를 타고
몇 명의 근위병만 거느리고 무모하게 적진으로 돌진함으로 세상의 기억 밖으로 사라집니다.
황제는 스스로 야고보가 되고 싶었을 겁니다.
이로써 그들의 마지막 기적은 더는 오지 않았습니다.
하늘은 철저하게 외면했고 성당 안에 피신해있던 기독교도들은 이슬람의 창칼 아래
모두 참살되어 성당에서 흘렀던 피는 보스포루스 해협을 붉게 물들였다지요?
그리고 그곳을 점령한 술탄 메흐메드 2세는 손을 들어 군사를 향해 호기를 부리며 외쳤겠지요?
뭐라고요?
"이제 기독교도들이 믿는 하나님은 이곳에 더는 없도다. 오직 알라만이 있을 뿐이다!"
술탄이란 원래 칼리프라는 이슬람 종교 최고 권위자로부터 권력을 부여받은 사람이라고 하네요.
그러나 기독교 세력을 무너뜨리고 유럽 대부분을 장악한 튀르크의 술탄은 칼리프까지
겸임하니 교권과 정권을 한 사람이 모두 가진 최고의 위치에 오른 사람이 되었다지요?
바로 전지전능한 사람 말입니다.
요즈음 그런 사람을 꿈꾸는 나라가 생겼다고 합니다.
IS라는 약칭으로 이슬람 국가라고 칭했던 그 지도자는 어떤 때는 하늘의 부름에
자기 마음대로 하고 또 어떤 때는 권력자로서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사람이지요.
그는 신이며 또한 인간인 셈입니다.
요즈음 매일 세상을 떠들썩하게 뉴스를 장식하는 바로 그 나라가 맞습니다.
어린 소녀까지도 테러리스트로 양성하는...
1075년 다시 산티아고는 재건되며 튼튼한 성벽을 쌓고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세 번째 성당 축성에 들어갑니다.
그 후 1100에 이르러 성당을 카테드랄인 대성당으로 바꾸기 위해 당시 제일 유명한
마테오에게 성당 건축을 의뢰해 짓게 되며 지금의 성당 정면과 영광의 문을 만들었다고 하네요.
나중에 산티아고 카테드랄에 도착하면 안팎으로 모두 구경하렵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는 곳이기에 처음에는 종교적인 순례자의 길로 시작하게 되었지만,
지금은 종교인보다는 우리 같은 사람이 더 많이 걷습니다.
우리도 끝까지 걸어가 야고보의 눈도장이나 꽝 찍어두면 혹시 나중에 죽어서
천당으로 갈지 누가 알겠어요. 그쵸?
우리 부부는 산티아고 순례자 사무실에서 발행한 까미노 완주증도 이미 받아두었는걸요.
어려울 때 야고보가 백마를 타고 나타나 싹쓸이해줄지 그것은 아무도 모릅니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세상을 살맛 나는 세상으로 만들고,
아름다움으로 가득하게 하며, 엉킨 실타래처럼 꼬인 오해를 풀어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만드는 일은 바로 우리의 마음을 여는 일입니다.
닫힌 마음으로는 오해와 불신과 짜증 나는 세상만 있을 뿐입니다.
지금 우리 주변의 모습을 보면 모두 자기 마음의 문은 닫고 상대만 열라고 하는 듯합니다.
욕설과 빈정거림만 있고 격려와 토닥임은 보이지 않습니다.
자기 본분에 맞는 일에 충실해야지 너도나도 모두 자기주장만 하면
세상은 점점 짜증 나는 세상이 됩니다.
우선 내 마음의 문을 먼저 열어야 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