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기행/삼국지 기행

소식(蘇軾) 소동파(蘇東坡)

佳人 2013. 10. 1. 08:00

낙산대불을 구경 왔는데 왜 소동파가 나오죠?

이곳에는 소동파의 흔적이 제법 많이 남아있네요.

소동파는 지금으로부터 천 년 전의 사람이죠.

 

바로 북송 때 이름난 시인이라는 것은 알고 있지만, 여기 낙산대불에는

왜 소원이라는 정원도 있고 동파루라는 누각도 있을까요?

소동파의 본명은 소식(蘇軾)이라 하며 당송팔대가 중의 한 사람이며 삼소(三蘇)라고

아버지 소순(蘇洵), 동생인 소철(蘇轍)과 더불어 대단한 가문을 이루었다 합니다.

 

소동파가 바로 이곳 인근인 메이산(眉山) 근처에서 태어났다 합니다.

1년 전 북송의 도읍인 카이펑에 갔을 때 그곳에서도 일했던 흔적을 보았습니다.

삼국지와 관련하여 적벽대전을 그린 적벽부를 쓴 것으로 유명하다고 하네요.

또 항주에 갔을 때 동파육이라는 돼지고기를 맛보기도 했습니다.

 

아까 북문으로 들어와 능산을 오르다가 소동파재주시유처(蘇東坡載酒時遊處)라는

석벽에 새긴 글도 보았고 재주정(載酒亭)이라는 정자도 보았습니다.

예술과 술은 도대체 어떤 관계인가요?

예술을 하려면 술을 잘해야 하나요?

佳人은 예술인이 되기에는 글렀습니다.

 

그는 자기의 시 중에 "러산에서 좋은 관리가 되는 일은 바로 여가 능산에서

술을 마시며 즐기는 일이다."라고 할 정도로 술을 좋아했나 봅니다.

술을 전혀 못하는 佳人은 그래서 예술적으로 부족한 게 많은가 봅니다.

예술의 길이란 참 어렵고 힘든 과정인가 봅니다.

 

동파루라는 게 있습니다.

짜장면 파는 중국집 이름인가요?

아니랍니다.

 

누각 하나가 보입니다.

촉중명루(蜀中名樓)라고 하네요.

중국에서는 어디를 가나 유명한 누각이 있어 자랑하지만, 여기는 인정해야 하겠습니다.

아름답거나 크다고 명루가 아니라 역사적으로 오래되었고

특히 소동파가 이곳에서 책을 많이 읽었나 봅니다.

 

유룡즉령(有龍卽靈)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물은 깊어서 신령한 게 아니라 용이 산다면 저절로 영험해진다는 말입니다.

누각이 아름다워서 명루가 아니라 소동파가 여기서 책을 읽었기에 명루가 아니겠습니까?

물론, 佳人이 다녀간 곳이라고 하여 명루라고 하지는 않겠죠.

 

소동파는 이미 8세 때부터 메이산의 도인(道人)이라 불리던 장역간(張易簡)의 문하에서

공부를 시작했는데, 그 영향을 받아 도가(道家), 특히 장자(莊子)의 제물철학(齊物哲學)을

접하게 되었다고 알려졌잖아요.

그랬기에 여기는 옛날 원래 이름은 동파 독서루였다고 합니다.

 

1.056년 그의 아버지 소순은 두 형제를 데리고 카이펑으로 상경하여 아들의 시를

당시 대단하다는 구양수(歐陽修)에게 보여주고 격찬을 받았다는 이야기도 있지요.

그러니 당시의 대가였던 구양수가 소동파를 보증한다는 말이기도 하잖아요.

 

그러니 이 누각은 이미 천여 년 전에 만든 것으로 2001년에 대대적으로 보수했다 하네요.

그동안 고증을 통해 글씨나 그림, 비각 등을 복원했고 옛 모습 그대로 대나무도 심었고

누각 앞에 세묵지(洗墨池)도 만들어 놓아 붓을 씻은 곳도 볼 수 있을 뿐 아니라 청음정이라는

정자도 만들어 음악 소리도 들을 수 있습니다.

 

이곳 동파루에 오르면 멀리 앞에 흐르는 세 개의 강을 바라볼 수 있고

낙산대불 부처의 소리도 들을 수 있답니다.

여기 소동파의 글과 그림을 몇 점 보고 가렵니다. 

소동파를 그린 그림인가 봅니다.

 

소동파가 쓴 글을 보고 갑니다.

한문은 역시 어렵습니다.

일부러 더 어려운 글자로만 쓴 듯합니다.

그래서 그냥 눈으로만 보고 갑니다.

보는 것과 이해하는 것은 물론 다르지요.

佳人은 그냥 눈으로 보기만 합니다.

 

위의 글도 모르지만, 이 글자는 더 모르겠습니다.

안다고 佳人의 세상이 달라지는 것도 없습니다.

 

점입가경...

작게 쓴 글이나 크게 쓴 글이나 글자의 크기만 구별합니다.

이런 글을 한 번에 드르륵 읽는다면 佳人의 삶도 한결 윤택해진 텐데...

 

역시 또 한자로 쓴 글입니다.

글자를 읽지 못한다고 손까지 떨려 초점조차도 제도로 맞추지 못했습니다.

이 글 또한 동파거사께서 쓰신 글이겠지요?

 

컥! 이건 그림입니다.

글자가 어렵다고 투덜거렸더니만, 이번에는 그림으로 보여줍니다.

술잔에 주전자까지 들고 마시니 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이런 모습을 보니 소식은 역시 술 고래였나 봅니다.

 

크게 써도 읽지 못하는데 이번에는 작게 쓴 글은 어찌 읽으라고요.

 

이 글은 취옹정기라는 글입니다.

술 취한 노인인 취옹은 당시에는 구양수라고 하던가요?

내용은 인터넷 검색으로 얼마든지 번역본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 중의 한 대목만 보면

"醉翁之意(취옹지의) : 취옹의 뜻은

不在酒(부재주) : 술에 있지 아니하고

在乎山水之間也(재호산수지간야) : 산수지간에 있었으니

山水之樂(산수지락) : 산수간에 노니는 즐거움은

得之心而寓之酒也(득지심이우지주야) : 마음으로 이것을 얻어 술을 빌어 표현한다."

술을 빼면 동파거사도 아무 것도 아닌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술 취한 늙은이의 뜻은 술에 있지 않다는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슬을 마시고 즐거워 하는 사람을 바라보는 데 있다는 말인가 봅니다.

佳人이 여행기를 쓰는 이유가 여행기에만 있지 않답니다.

함께 즐거워하며 댓글이라도 남겨주며 격려해주시는 분을 바라보는데 있답니다.

 

잘 쓴 글인지 못쓴 들인지 구분조차 하지 못하지만,

좌우지간 소동파의 글이라 하니 올려봅니다.

 

이 그림은 알겠습니다.

삿갓을 쓴 동파네요.

그런데 신발이 나막신입니다.

 

오늘 비몽사몽간에 소동파를 만났습니다.

물론, 여기에 소동파가 쓴 글을 한눈에 휘리릭 읽을 수 있어 그 의미를 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오늘은 음식 내용도 모르고 중국어로 쓴 중국집 메뉴판을 눈으로만 본 기분입니다.

내일은 낙산 대불을 보려고 내려갑니다.

아마도 내일은 음식 사진을 보고 음식을 판달할 듯합니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어둡다 불평하지 말고

작은 촛불 하나라도 켜라고 했습니다.

누가?

공자님이요.

佳人은 무식하다 불평하지 말고

한자 하나라도 더 외워야 하는 데 그냥 이러고 살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