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만장한 공명의 삶
도원 왼쪽으로 아름다운 정원이 있고 분재를 전시한 공간이 있습니다.
분재에 대하여 아무것도 모르지만, 잠시 거닐며 분재 구경을 합니다.
중국의 관광지를 다니다 보면 이런 비슷한 분재공원을 만들어 놓은 것을 자주 봅니다.
중국에서는 입장료가 비싸서 그런가요?
이런 정원을 무척 잘 꾸민다는 느낌입니다.
물론 많은 구경꾼이 몰리는 곳이기에 많은 사람을 분산하자는 의미도 있지 않을까요?
이런 분재공원은 우리가 방문한 무후사와는 아무 관련도 없잖아요.
공명이나 유비가 생전에 분재광이었다는 기록도 본 적이 없걸랑요.
잠시 머리도 식힐 겸 생각도 정리하고 갑니다.
숲이 우거져 연인과 산책하기 딱 입니다.
우리 같은 사람은 이런 곳도 좋습니다.
그런데 울 마눌님은 이곳에 들어오지 않고 지금쯤 무후사 옆에 있는
금리거리를 걷고 있을 겁니다.
원래 삼국지에 관하여 관심이 없었고 그 내용도 모르기에 함께 여행하는 게 무척 지루했을
것이며 흥미도 없는 곳에 입장료를 내며 들어오고 싶지 않다고 하여
佳人 혼자 들어와 구경하는 중입니다.
부부 사이일지라도 서로 관심이 다르고 생각이 다르면 하나로 굳이 주장할 이유가 없습니다.
잠시 서로 떨어져 자기가 원하는 일을 하며 나중에 다시 만나 같이 움직이면 되니까요.
여행에서 서로간 불화의 원인은 바로 자기만의 주장만 관철하려고 함입니다.
이제 정원을 구경하고 그 옆으로 연결된 공명원이라는 곳으로 갑니다.
공명원은 공명의 일대기와 당시의 모습도 보이고 삼국지에 관련한 사진도 전시한 곳이네요.
잠시 둘러보며 공명을 생각해 보렵니다.
산동성 기남이 공명이 출생한 곳이라 했나요?
일찍 부모를 여의고 숙부 제갈 현을 따라 형주에 왔다네요.
207년 드디어 유비라는 물고기가 삼고초려를 하는 바람에 물이 되기로 작정했나 봅니다.
이에 감동해 융중대책을 알려주며 평생을 함께하기로 하고 융중을 떠나 유비 곁으로 오게
되는데 이때가 27살 때 입니다.
유비를 만난 후 원도 한도 없이 여기저기 옮겨 다니며 쌈박질로 평생을 보내다 결국,
과로사로 죽었는데 정말 공명의 일생을 조망해보면 모습은 샌님처럼 생겼지만,
생긴 것과는 영 딴판으로 평생 쌈박질로 세상을 살았습니다.
누구는 공명을 말하기를 일에 미친 일벌레이며 진정 전쟁을 즐긴 전쟁광이라고도 하지요.
와룡이라는 말은 자빠진 용이라는 말인가요?
고융중이란 패방이 보이는데 이곳 융중에 누워 있다가 삼고초려를 한 유비를 만나며
벌떡 일어나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내게 되었다 합니다.
이번 여행에 융중을 다녀오지 못했습니다.
다음 기회에 근처를 지나는 기회가 된다면 융중을 꼭 다녀오고 싶습니다.
공명이 세상을 나온 그때 나이가 겨우 27세라 하니 하늘이 내린 타고난 기재였던 모양입니다.
아! 佳人은 27살에 무얼 했더란 말인가?
고뇌하는 젊은이였을까?
생각조차 나지 않습니다.
정말 아무 생각없이 지냈나 봅니다.
적벽대전을 앞두고 10만 개의 화살을 만드는 중입니다.
배 안에 앉아 술만 마셔도 화살이 콸콸콸~
위의 그림처럼 지금 화살이 무한 리필 중입니다.
어린 시절 삼국지를 읽으며 저 모습을 보고 佳人도 공명의 천재성에 놀라 소리 지를 정도였습니다.
그야말로 공명은 신이라 생각했지요.
생각대로 하면 되는...
저 때 배 안에 노숙과 함께 앉아 술잔을 기울이는 모습에 공명은 佳人 인생의 멘토라 생각했지요.
칠성단을 쌓고 동남풍을 부르고...
조조가 도망하는 길목마다 쥐 잡는 틀을 놓듯 한 치의 빈틈도 보이지 않았고...
관우가 화용도에서 조조를 놓아준다는 것까지 미리 알고 관우 마음 한 켠에 늘 자리했던
조조의 은혜를 갚게 하는 대목에서 공명은 신이지 사람이 아니라 생각했습니다.
이건 무슨 말입니까?
지금까지 공명에 대한 신비감이 확 깨는 사진입니다.
맹획의 칠종칠금은 가공의 소설 속의 일인데 어찌 맹획을 잡았다는 장소를
이렇게 뻔뻔스럽게 만들었답니까?
사륜거... 비록, 무동력으로 사람이 미는 수레지만, 공명을 상징하는 학우선과 더불어
가장 유명한 자가용입니다.
아마도 공명은 신이 되고 싶었나 봅니다.
이 사륜거는 강유의 아이디어라 했나요?
이 사륜거 자체가 또 하나의 신비감을 불러일으켰지요.
그런데 비포장 도로에서 저걸 미는 사람을 정말 고생했을 겁니다.
우리가 들러봤다고 생각했던 가정고전장의 사진입니다.
여기가 바로 읍참마속이라는 말을 만든 곳입니다.
산길을 막아 위나라 군사의 진행을 막으라 공명이 지시했는데 마속은 얄팍한 자기의 지혜만 믿고
산 위에 주둔함으로 아래에서 불을 지르고 식수 공급을 끊어버리는 바람에 전투도 해보지 못한고
군사를 거의 모두 잃어버리고 자신의 목숨마저 잃어버리는 결말을 초래했지요.
이 대목에서는 공명이 야속하기 까지 했습니다.
그게 병가지상사라고 하는 보통 전투 중 한 번 패한 일이라면 얼마나 좋겠어요.
그때까지 승승장구하며 장안으로 들어갈 예행연습까지 할 지경이었던 공명이 이끈 촉은
더 진격할 수 없어 천하 통일의 꿈을 접고 철군을 결정하게 한 전투였지요.
그때 공명이 처음으로 눈물을 흘렸는지 모릅니다.
일은 사람이 도모하지만, 그 결과는 하늘이 정한다 했나요?
5차에 걸친 제갈량의 북벌 루트입니다.
한중을 근거지로 하여 다섯 번이나 북벌을 감행했지만, 결국, 모두 수포로 돌아가고 맙니다.
그러니 북벌이라는 것은 하늘의 뜻이 아니었나 봅니다.
천기를 읽고 세상의 이치를 안 공명일지라고 인간 공명의 능력은 여기까지였습니다.
그러나 북벌 기간동안은 강한 위나라가 수세만 취했으니
오히려 촉한은 안전했다는 의가 아닌가요?
공격이 최선의 수비라는 것을 몸소 실천한...
공성계를 의미하는 거문고가 앞에 있고...
그 뒤로는 마지막 북벌을 하기 위해 주둔했던 오장원 언덕으로 생각되는 곳을
그림으로 그려놓았습니다.
이 앞에 학우선을 들고 앉아 사진을 찍도록 했지만, 돈을 내는 장사였습니다.
배경은 아마도 위수를 사이에 두고 중달과 대치했던 오장원으로 보였습니다.
사실 오장원에서 내려다 보니 저런 풍경은 있지도, 있을수도 없는 작은 강이었습니다.
옛날 촉한의 식량창고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촉한뿐이겠어요?
당시 모든 곡식은 이렇게 만든 저장고에 넣어두었나 봅니다.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요인 중 가장 중요한 일은 병사의 사기였습니다.
병사의 사기를 올리는 일 중 가장 중요한 일이 배불리 먹이는 일이지요.
그래서 전쟁 중에 식량 보급을 맡은 자의 역할을 대단히 중요시하여
만약 그 명령을 어길 때에는 사형으로 다스렸다지요.
전투에서 가장 먼저 하는 일도 적의 식량창고부터 빼앗는 일이고요.
삼국지에 나오는 여러 전투 중 조조의 기반을 마련해 준 관도대전도 조조는 후퇴마저
걱정할 정도로 어려운 전투였지만, 원소의 식량창고를 급습함으로 적은 병사로
원소의 대군을 이길 수 있었지요.
그때문에 조조가 후세에 조조라는 이름을 얻으며 영웅 반열에 오를 수 있었을 겁니다.
제갈량 또한 한중을 공격함에 있어 위나라의 식량창고부터 빼앗았기에
쉽게 조조의 한중을 취했지요.
아~ 이게 제갈량이 만들었다는 목우와 유마라는 건가 봅니다.
그러나 이게 이야기 속에서 공명의 번뜩이는 재치를 과대 포장하기 위해 꾸민 말을
그대로 재현하려 하니 만드는 사람이 욕 좀 보았겠네요.
전혀 과학적이지도 않고 그저 그런 운반도구입니다.
그냥 수레입니다.
그런데 왜 번거롭고 무겁게 소 대가리와 말 대가리는 만들어 붙였을까요?
대가리를 달면 저절로 움직이기라도 했다면 몰라도..
이번 여행을 하며 가장 실망스러웠던 것이 목우유마와 연노라는 화살이었습니다.
공명의 대단한 발명품으로 알려진 실체를 보고 갑자기 공명이
안쓰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누가?
佳人이 말입니다.
그런데 佳人이 이렇게 공명의 필생의 역작을 함부로 평가해도 되나 모르겠어요.
여기는 무후사 안에 있는 공명원으로 공명의 일대기를 간략하게나마
알 수 있게 꾸며놓았습니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힌두교의 신은 모두 저마다 탈것이 있답니다.
시바는 난디라는 흰소, 비슈누는 용을 잡아먹는 독수리형상의 가루다, 인드라 신은
머리 셋 달린 코끼리 아이라바타를 탔고 브라마는 백조를 탔다 합니다.
공명은 사륜거를 탔다고 하니 역시 공명은 신의 반열에 올려야 하나 봅니다.
佳人은 요즈음에는 BMW를 타고 다닙니다.
Bus, Metro 그리고 Wal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