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기행/삼국지 기행

한소열황제지릉(漢昭烈皇帝之陵)

佳人 2013. 11. 5. 08:00

 

이제 유비의 묘 혜릉(惠陵)으로 갑니다.

봉토의 높이가 12m이고 묘지의 벽 둘레가 183m나 된답니다.

진수의 삼국지에서는 223년 8월에 백제성에서 숨을 거둔지 넉 달 만에 이곳으로 옮겨

매장하였다고 기록했으며 감 부인과 오 부인도 이곳에 함께 합장했다고 알려졌습니다.

 

이릉전투에서 대패를 하고 바로 익주로 돌아오지 못한 것은

아마도 부끄러움 때문이었을 겁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출진을 말렸습니까?

원래 성공하면 소신이고 실패하면 똥고집인 게 현실이지요.

유비는 산전수전 다 겪은 영웅이라 생각하고 나라의 기둥뿌리까지 빠질 정도로

많은 군사와 식량으로 오나라로 나갔지만, 서생출신인 어린 육손에게

무참하리만치 깨졌으니 어찌 다시 여기로 돌아올 수 있었겠어요.

 

 

공명원을 벗어나 그 옆의 문으로 나갑니다.

중국틱한 벽돌로 만든 담장의 색이 역시 아름답지는 못합니다.

이런 차이가 문화의 차이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 담장을 따라 들어가니 그곳이 바로 유비의 무덤이 있습니다.

얼마나 한 많은 무덤입니까?

세상에 한이 없는 무덤이 어디 있겠어요?

그러나 이곳은 느낌이 좀 다릅니다.

 

 

한소열황제지릉(漢昭烈皇帝之陵)이라고 쓴 듯합니다.

혜릉은 원래 유비가 백제성에서 죽자 이곳 성도로 모셔와

무덤을 만든 게 혜릉이라고 하지요.

청나라 건륭 때 만든 비석이군요?

 

 

둘레가 80여m에 높이가 10여m나 된다고 합니다.

역시 중국의 다른 곳처럼 무덤 위에 나무를 심었습니다.

신기하게도 이곳은 아직 도굴을 당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무덤 위에 심어놓은 나무 때문인가요?

얼마나 도굴이 사회적으로 번창했으면 이런 짓을 하나 모르겠습니다.

정말 믿을 사람 그렇게 없는 곳이 중국인가요?

 

 

혜릉의 앞에는 문인석인 옹중과 말 해태의 조각상이 있네요.

황제의 능치고는 그리 화려하지는 않습니다.

능과 능을 에워싼 담장이 너무 간격이 좁아 그냥 따라만 돌 뿐

멀리서 바라볼 수 없다는 게 아쉬울 뿐입니다.

 

넘버 쓰리인 관우 무덤은 머리만 묻었어도 넘버 원보다 더 크고 화려합니다.

넘버 투인 공명의 무담은 더 초라합니다.

이 동네는 서열도 따지지 않나 봅니다.

 

 

잠시 뒤돌아 봅니다.

원래 이 문으로 들어가야 하지만, 뒷문으로 들어와 이 문으로 나왔습니다.

처음 이곳을 온 佳人이 어느 게 정문인지 개구멍인지 알겠어요?

 

 

잠시 능 안에서 대문을 향해 밖을 내다봅니다.

문밖의 조벽 사이로 가을이 손짓하고 있습니다.

마치 안의 일이 궁금해 머리를 기울여 안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보입니다.

지금 우리는 가을여행 중이었습니다.

가을은 참 아름다운 계절입니다.

 

 

혜릉(惠陵) 입구에 걸린 현판의 글씨...
천추름연(千秋凜然)이라고 쓴듯한 편액이 걸려있습니다.

오랜 세월 위엄이 있고 늠름하다는 의미일까요?

글쎄요.

 

 

죽은 자가 위엄이 있으면 어쩌겠다는 말입니까?

더는 싸울 일도 미워할 일도 없어 이제 모두 끝난 일이 아니던가요?

이렇게 세월이 지나면 죽은 장소도 무덤도 모두 관광지가 되고 맙니다.

그때는 인생의 목표고 하늘의 뜻이라 했지만, 지금은 관광지가 되었다는 의미는

구경거리가 되었다는 말이잖아요.

 

오~

황제시여.

무엇을 걱정하시나요?

이제 모두 내려놓으시고 편히 눈을 감으세요.

그래도 황제 때문에 삼국지라는 이야기가 탄생했고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지금까지 많은 독자에게 즐거움을 주었으니 이 또한 즐거운 일이 아니겠습니까?

 

 

여기는 원래 유비의 무덤과 사당이 있었던 곳이지만, 제갈량의 사당을 이곳에

합치며 오히려 제갈량의 사당인 무후사로 불리고 유비보다 제갈량에

관한 전시물이 더 많은 것처럼 보입니다.

이런 이유는 많은 사람에게 유비보다 제갈량이 더 깊이 각인되었기 때문이 아닐까요?

 

 

이 이야기는 유비의 존재 이유인 한실 부흥이라는 본질은 점차 퇴색되고

신출귀몰했던 공명의 마법에 많은 사람이 환호한 결과라고 생각됩니다.

사실 유비보다는 공명이 더 큰 즐거움을 우리에게 주었잖아요.

그러나 현실은 오만하고 무례하기 짝이없는 관우가

공명보다 더 큰 존경을 받는 인물이지요.

 

 

처음 공명을 모신 무후사는 이곳이 아니고 여기서 가까운 곳에 만들었다 합니다.

그러나 이런 일에는 늘 감 놔라 대추 뇌라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아무리 수어지교니 뭐니 해도 군신 간인데 어떻게 옆에다 만들 수 있느냐고 하여

조금 떨어진 곳으로 옮겼답니다.

 

 

그런데 명나라 때 불이 나서 모두 타 버렸답니다.

어찌합니까?

다시 지어야지요.

그래서 청나라 시기에 여기다 지어 함께 모셨다네요.

 

왜?

두 사람은 연인보다도 더 가까운 사이라고 하니까요.

사내들 간에도 이런 애틋한 사이가 될 수 있다면 성공한 삶이 아닐까요?

지금 여러분의 물은 누구고 그리고 물고기는 또 누구입니까?

매운탕집 이야기냐고요?

 

 

사람은 누구나 평화를 원한다고 말을 하지만, 또 다른 일면에는

전쟁을 즐기는 마음이 있나 봅니다.

요즈음에도 가끔 불바다를 만들겠다는 이야기도 들리고...

존엄성을 훼손해 불벼락을 내린다고 하니 인간의 마음은 악이 자리하고 있나 봅니다.

 

 

관도대전은 조조를 영웅으로 만들었습니다.

관도대전을 승리함으로 조조는 중원의 최대 군벌로 발돋움했으며 황제를 보호하는

후견인으로 우뚝 서게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이로써 그때까지 중원의 최대군벌이고 가문마저 짱짱했던 원소와 원술 형제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집니다.

영웅이 사라진다 함은 새로운 영웅이 탄생함을 말하고

새로운 질서가 생긴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세상은 이렇게 먼저 핀 꽃은 먼저 지고 새로운 꽃이 피어나기 마련인가 봅니다.

 

 

적벽대전은 승승장구하던 조조의 기를 한풀 꺾고 새로운 스타인 주유를 영웅으로

만들며 공명이 바로 천하기재로 탈바꿈하는 일이 벌어지게 되었지요.

하룻밤 사이에 화살을 10만 개나 구하고 동남풍을 부르고...

신출귀몰했던 공명의 활약에 어린 시절 박수까지 치며 읽었지요.

 

그날 밤은 무척 화려한 밤이었습니다.

또 다른 영웅의 탄생을 축하하는 적벽에서의 불꽃놀이처럼 말입니다.

여기에 많은 독자를 스스로 공명 폐인으로 만든 사건이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짠 계획대로 일이 진행될 때 쾌감을 느낀다 합니다.

더군다나 전쟁이라는 치열한 전투에서 그 계획에 있는 암수에 적이 말려들고 그 적을

생각대로 섬멸할 때 느끼는 쾌감을 무엇과도 바꾸기 쉽지 않은 즐거움일 겁니다.

그래서 게임 중에도 전쟁게임은 가장 인기있는 게임이지요.

 

 

이릉지전은 유비의 몰락을 가져온 촉한으로는 불행한 전투였지요.

능력이 부족한 사람, 똥고집으로 소탐대실을 그대로 보여준 한 편의 드라마입니다.

삼국지의 줄거리가 전투의 연속입니다.

이릉지전으로 육손이라는 젊은 영웅을 만들며 유비는 퇴장하고 맙니다.

 

지금 우리 주변에 재미있는 많은 게임이 있지만, 전투를 빼고 나면

재미있는 게임이 몇 개나 되겠어요.

인간은 잔인함을 배척하고 평화를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인간의 혈관을 타고 흐르는

혈액 속에는 우리도 모르는 그런 잔인함이 함께 흐르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공명이야말로 이런 전쟁을 은근히 즐긴 사람일지도 모르겠어요.

융중은 공명이 시마휘 수하에서 공부하며 때를 기다린 곳이지요.

아니라고도 하고요.

사마휘는 유비에게 공명이나 방통 하나만 얻어도 천하를 얻는다고 뻥을 치는 바람에...

 

 

유비는 그 말에 혹해서 두 사람 모두 데리고 있었지만, 사마휘는 그 후에

등장하지 않아 책임지는 모습도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믿을 놈 아무도 없습니다.

유비가 사마휘에게 당한 겁니다.

자기가 가르친 제자의 취직 추천서를 너무 거창하게 천하를 운운하며 뻥을 친 거지요.

 

그러나 사마휘 수경 선생이 틀린 게 아니라 두 사람을 제대로 부리지 못한

유비의 능력부족일지 모릅니다.

쓸데없는 체면 때문에 방통을 일찍 보냈고 출전을 막은 공명의 말도 뿌리치고

사지로 들어간 유비의 잘못 말입니다.

결국, 유비의 능력으로는 두 사람의 천재를 활용하지 못했다는

비난에 자유롭지 못할 겁니다.

 

 

그런 수경 선생이란 자는 순전히 佳人처럼 아니면 말고입니까?

이 얼마나 편한 이야기입니까?

요즈음 우리 주변에 佳人처럼 무책임하게 아니면 말고처럼 사는 사람 참 많습니다.

작은 명성을 얻었다고 때만 되면 메뚜기처럼 한철이라 나타나 별의별 소리 다 하고 다니다

시간이 지나면 조용하더군요.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유비의 무덤은 그래도 황제의 무덤이라 제법 컸습니다.

유관장의 무덤을 이번 여행에서 모두 보았습니다.

그리고 공명의 진묘까지도 보았지요.

그 중 공명의 무덤이 가장 초라하고 볼품 없었습니다.

공명은 죽을 때 무덤에 입던 옷 외에는 아무것도 넣지 마라고 했지요.

그리고 무덤에 지붕이나 담장조차도 쌓지 말라고도 했고요.

 

무덤 중 관우의 무덤이 가장 컸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관우는 머리만 묻었다는데...

관우는 죽어서도 오만하게 보이네요.

하극상처럼 생각되기도 했습니다.

 

여기의 무덤은 바로 굴러온 돌의 무덤입니다.

익주목이었는 종친인 유장이 원래 이곳에 박힌돌이잖아요.

유비는 군사를 이끌고 서천으로 들어올 때 방통에게 희생 번트를 대고 죽게했으며

이를 기화로 유비라는 굴러온 돌이 박힌돌을 과감하게 제거하고 멀리 던져버렸지요.

그리고 이렇게 박힌돌 행세를 하고 있습니다.

고행으로도 돌아가지 못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