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기행/삼국지 기행

보병구(宝瓶口)에는 물이 콸콸콸

佳人 2013. 12. 20. 08:00

 

 

위의 사진에서도 기둥 위에 조천후라는 개가 냉큼 올라가 앉아있고

그 아래 용의 입에서 토수가 콸콸콸 나오고 있습니다.

물이 떨어지는 곳을 보니 웬 어린 동자가 토수를 바라보고 하염없이 앉아 있습니다.

도강언은 이렇게 물의 마을이었습니다.

 

도강언 시내 어디서나 맑은 물이 시내를 흐르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시내를 버스로 움직이다 보니 그 물길이 무척 여러 갈래로 흘러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도시도 그 물로 물청소하니 아마도 중국에서는 제일 깨끗한 도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보병구로 흘러들어온 물은 이렇게 시내 곳곳을 흘러 쓰촨 평야로 실핏줄처럼 흘러들어 가 이 지역을 살찌게 합니다.

 

역시 도강언은 마음에 드는 그런 도시였습니다.

치수를 잘한 곳이기에 그것도 기원전부터 말입니다.

그러니 도강언은 언제나 물이 콸콸콸...

나온다는 말이 되겠네요. 그쵸?

우왕이 이 모습을 보면 뭐라고 할까요?

자기보다 더 고수가 이곳에 있다고 가르침을 청하려고 달려올 듯합니다.

 

입구로부터 안으로 복룡관까지 언공도(堰功道)라고 부르는 150여m의 길이 있습니다.

양쪽으로 많은 사람 동상을 세워놓았습니다.

그 사람들은 중국 역사상 치수에 관해 크게 이름을 남긴 그런 사람들이라 합니다.

 

그런데 왜 제갈량이 여기까지 오셨나요?

일기 불순한 가운데 佳人의 삼국지 기행을 빛내주시려고요?

워낙 공사다망하신 분이기에 이렇게 왕림하셔서 감사합니다.

사람들이 제갈량의 발을 하도 만저 반질거립니다.

발은 만져 총명해진다면 입맞춤이라도 못하겠어요?

 

여기 또 삼국지에 나온 인물 중 한 사람인 장송의 모습이 보입니다.

장송은 유장의 신하로 유비가 형주에 있을 때 한중 장로의 공격을 막기 위해 조조의 도움을 청하러 갔다가

매만 맞고 유비에게 와 분에 넘치는 접대를 받고 그만 익주로 군사를 이끌고 들어오기를 간청한 사람이죠.

그 바람에 유비는 공명의 제안대로 천하 삼분의 기틀을 이루게 되었고요.

 

공명과 장송 두 사람은 아직도 못다한 이야기가 남았나요?

아니면 아직 정산하지 못한 부채라도 남았나요.

서로 마주보고 서 있습니다.

 

장송은행이라는 석비가 있습니다.

그럼 이 은행나무를 장송이 심었단 말입니까?

장송은 그 유명한 서천의 세밀한 지도를 그려 유비에게 건네준 사람이기에 여기 직접 심은 나무도 기록했을까요?

그러니 1700여 년 전의 심었다는 말이 아닌가요?

 

자 이제 오늘은 도강언을 빛낸 그 물이 흘러들어오는 곳으로 천천히 걸어서 찾아가보겠습니다.

물살이 제법 세차게 흐릅니다.

이곳은 원래 산자락이었지만, 이빙 부자가 산을 깎아내고 물길을 연 이후 지금까지 하루도 쉬지않고

이렇게 물이 콸콸콸 흘러 많은 사람을 먹여살리고 이 지역의 땅을 천부지국으로 만들었습니다.

 

지금 사진에 보이는 물길이 인공으로 뚫은 물길로 산을 헐어내고 쓰촨의 곳곳으로 실핏줄처럼 연결하여

 물을 흘러 보내는 동맥이라고 봐야 하겠네요.

바로 그 물이 처음 흘러들어 가는 입구가 위의 사진에 보이는 보병구라는 곳입니다.

 

화주잔도..

여기는 바로 건너편 옥루산(玉垒山)의 산자락이었지만, 지금은 물길로 다른 곳처럼 보이는 길입니다.

이렇게 산을 허물고 물길을 내기 위해 산을 뚫어 지금 생각해도 쉽지 않은 대공사를 했던 지점입니다.

 

이게 얼마나 힘든 공사였을까요?

지금처럼 건설장비와 자재가 풍부했던 시기도 아니고 말입니다.

포크레인 한 대라도 있었다면 쉬웠겠지만...

위의 그림처럼 모두 사람의 힘으로 산을 깎고 그 흙을 퍼서 담아 날랐을 겁니다.

 

위의 사진에서 보면 물길 건너편에 보병구라는 글이 보입니다.

바로 여기를 뚫어 물길을 돌려 새로운 수로를 만들었습니다.

이 잔도 위를 걸어보면 그 세찬 물줄기를 직접 몸으로 느까는 길입니다.

 

이물은 위의 사진처럼 지금 도강언 시내를 향하여 흘러들어갑니다.

아까 입구에서 보았던 남교라는 다리 아래로 말입니다.

위의 사진 저 멀리 다리 하나가 보이시죠?

 

도강언 수리시설은 일찍이 진나라 시기에 만들어졌으나 아직도 그때 그 모습 그대로 사용하고 있는

관개용수를 공급하는 생명의 물줄기입니다.

물론, 약간의 손질을 했겠지만, 원형은 아직 그때 그 모습일 겁니다.

 

지금 위에 보이는 사진이 이퇴(离堆)라는 곳과 옥루산(玉垒山)이 갈라진 곳인 보병구(宝瓶口)라는 곳입니다.

그 사이가 아래 바닥은 14.3m이고 윗부분은 28.9m이며 높이는 18.8m라 합니다.

길이는 36m로 만들었다 합니다.

 

보병구 하류 쪽은 그 너비가 40-50m 정도로 약간 넓어서 병목처럼 생겼고 이곳을 통과한 물은 바로 청두평원과

쓰촨 중부지역의 구릉지대로 흘러가는 길목인 관계로 그래서 이름을 보병구(宝瓶口)라고 지었나 봅니다.

물이 흘러들어 가는 첫머리인 목구멍과도 같은 곳이기에 도강언에서는 가장 중요한 곳이라 봐야 하겠네요.

 

보병구의 3대 역할이라 하면 물을 끌어들여 하류로 물을 흘려보내며 농업용수와 생활용수를 공급하는

항운 수로의 역할이 첫번째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두 번째로 보병구의 특이한 구조로 물이 보병구 입구에 도달하면 바로 앞에서 역류현상을 일으킨다 합니다.

위의 사진을 참고하세요.

그런 현상은 비가 많이 내리는 우기에는 비사언과 인자제를 통해 다시 외강으로 흘러나가기에

홍수를 예방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사진 왼쪽 중간의 얕은 턱을 넘거나 왼쪽 아래로 빠져 외강으로 다시 나간다는 말입니다.

 

세 번째 마지막으로 모래를 배출하는 역할을 한다고 합니다.

물 흐름이 빨라지면 보병구 입구 아래에는 오히려 물의 흐름이 감속한다 합니다.

이런 이유로 바닥의 모래와 자갈은 오히려 비사언을 넘어 외강으로 흘러가고 이곳에 쌓이는 모래도

특정지역에만 쌓이는 데 이는 보수 수리를 할 때 쌓인 토사를 퍼서 건자재로 이용할 수 있다고 합니다.

비사(飛沙)라는 이름이 모래가 날린다는 의미로 비사언을 지은 이름이 그런 현상을 보고 지은 이름이지요.

정말 대단한 과학 아닙니까?

기원전에 만든...

 

이해를 돕기위해 건너편 비사언에서 보병구 쪽을 바라보고 찍은 사진을 먼저 올려드립니다.

홍수가 나면 오른쪽 자갈밭으로 물이 넘치게 되어 외강으로 다시 흘러나가기에 왼쪽 보병구로 흘러들어 가는

물의 양은 항상 일정하게 유지되어 들어간다는 것이지요.

 

이제 다음 장소인 복룡관을 구경하렵니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위대한 인간 승리이기에 그 대단한 모습으로 구경하고 있습니다.

도강언으로 가는 방법은 청두에서 버스를 타고 가거나 기차를 타고 가는 방법이 있다 합니다.

 우선 갈 때는 버스를 타보고 올 때는 기차를 탐으로 두 가지 모두 경험해 그 방법을 여기에 올려볼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