랑중 공원(貢院)
오늘은 랑중에서 장비 무덤이 있는 장환후사에 이어 두 번째로 유명한
공원(貢院)이라는 곳을 구경하렵니다.
공원(貢院)이라는 곳은 중국에서는 예전에는 무척 흔한 곳이겠지만,
지금은 자주 볼 수 있는 곳이 아니지 싶습니다.
지금 이런 옛날의 공원 원형이 남아있는 곳은 난징과 이곳 두 곳뿐이라고 합니다.
1652년에 세워진 이곳의 공원은 다른 곳과는 조금 다르기에
오늘 여러분과 함께 구경하려고 합니다.
흔히 공원이라 하면 휴식하는 쉼터를 말하지만, 오늘 구경하는 공원(貢院)은 한자가
다른데 공원은 이곳 랑중이 얼마나 대단한 지역인가를 알려주는
지표가 되는 곳이라 해도 될 겁니다.
지금부터 혹시 큰 시험을 앞둔 분이나 그런 자식을 둔 부모님께서는
아주 천천히 자세히 읽으시길 바랍니다.
왜?
여러분에게 아주 대단한 氣를 전해주는 곳이기 때문일 겁니다.
공원이라 하면 예전의 과거시험장을 말한다고 합니다.
지난번 소화고성에서 여기와 비슷한 고붕이라는 곳을 구경했지만,
여기는 그곳보다 더 큰 시험장이라고 합니다.
위의 사진에서 이미 다른 기를 느끼셨을 겁니다.
용문이라고 쓴 편액이 들어가는 입구에 걸렸고 그 위로 정말 두 마리 용이 출입하는
사람을 환영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면 佳人이 내민 손을 잡으시고 바로 등용문 안으로 들어가십시다.
바로 이 문을 통과해 들어가야만 황제라는 용을 만날 수 있으니
용문이라고 정했지 싶습니다.
이 공원(貢院)이란 명칭도 무척 오래되어 당나라 때부터 이렇게 불렀고 우리나라도
고려시대에는 과거시험장이나 과거시험을 관장하던 곳으로 공원(貢院)은 통상 육조 중
예부에 속한 지방 관청이라고 하더군요.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에는 옛날 공원의 모습이 남아있지 않을 듯합니다.
여기를 들어가려면 연표를 보관했다가 보여주어야 합니다.
공짜가 아닙니다.
중국이라는 나라는 이렇게 돈벌이에 무척 잘된 시스템을 만들어 관리합니다.
공원은 지방 시험인 향시나 회시를 치렀던 곳이겠지요.
이곳 랑중이라는 고성은 그 역사도 무척 오래된 곳이고 이 지역에서는 파서 지역을
모두 담당하는 관청도 있기에 지금으로 보면 도청소재지 같은 곳이었을 겁니다.
옛날에는 한때 랑중이 쓰촨성의 성도 역할도 했다고 합니다.
관우가 중원의 보루인 형주를 지켰듯이 그의 동생 장비가 있던 곳이 그냥 한적한 시골이
아니기에 이곳은 장비가 머물렀다는 것만 보더라도 당시 이 지역이 교통이나 군사적으로
얼마나 중요한 곳인가 알랑가 몰라~
청나라 때는 여기 랑중에 서천지방을 모두 관장하는 공원이 있었다는 말이 아닌가요?
그러니 황제 앞에서 시험 칠 자격이 부여되는 최종 합격자를 가리는 그런 곳이라는 의미지요.
이제는 교통상 아주 외진 곳이 되어 작은 마을로 남았지만, 당시에는 서천과 중원을 잇는
아주 중요한 곳이었다 합니다.
아무래도 장비가 여기에 머물며 파서 지역을 다스렸다고 하면 당시에
이곳이 얼마나 중요한 곳인가 알 수 있지 않을까요?
만약, 유비가 장비를 한적한 곳으로 보내 다스리게 했다면,
장비 성질에 그냥 가만히 있었겠어요?
아마도 술 먹고 유비에 "따거! 정말 이러실 겁니까?" 하며 대들었을 겁니다.
장비가 누굽니까?
장비는 공명의 책상도 발로 차 뒤집어버렸던 녀석인데...
술만 먹으면 개가 된 사람이 바로 장비가 아니겠어요?
물론 우리가 소화 고성에서 이미 고붕(考棚)이라는 과거 시험장을 본 일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곳은 소화고성과 인근의 유생이 시험을 치던 곳이고 문화 대혁명으로
대부분 파괴되어 크게 눈길을 끌지 못했지만. 여기는 소화고성과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규모가 크고 그 모습이 거의 온전하게 남아있다는 점입니다.
소화 고성의 고붕이 지방의 작은 시험장이라면 여기 공원은 황제 앞에서
시험 칠 사람을 최종 선발하는 큰 곳이었을 겁니다.
그러니 노는 물이 다르다는 말이겠지요.
더군다나 여기는 머리가 사라진 장비 귀신이 하늘나라로 가지 못하고 구천을 떠돌기에
그 귀신의 효능, 효과가 대단해 황제 앞에서 치른 전시에도 장원급제자를
여럿 배출한 곳으로 유명한 곳입니다.
이것을 아셔야 합니다.
한 명만이 아니랍니다.
만약, 한 명만 급제한 곳은 말을 하지 마셔~~
수험생님! 많이 당황하셨어요?
중국의 역사상 임금 앞에서 치른 전시는 모두 776차례가 있었고 646명의 장원이
탄생했다고 하는데 동시(童試), 향시(鄕試), 회시(會試)를 차례로 통과한 후
황제 앞에서 치른 전시(殿試)를 치를 수 있으니
그 단계를 거칠 때마다 생원(生員), 거인(擧人), 공사(貢士)라는 칭호가 주어졌고
최종적으로 진사(進士)라고 불렀으며 각 단계의 수석 합격자는 향시는 해원(解元),
회시는 회원(會元)이었고 전시는 장원(壯元)이라고 했답니다.
여기에 이름을 올린 사람은 정말 행복했을 겁니다.
입신양명...
가문까지 빛냈으니 가문의 영광이요, 마을의 자랑이 아니겠어요?
이름과 출신지역으로 합격자 방을 붙였나 봅니다.
제일 앞에 이름을 올린 장원급제가 아니면 또 어떻습니까?
제일 끝이라도 이름을 올린다는 일은 정말 행복한 일이 아닐까요?
장원 급제한 사람의 답안지인가요?
여행을 하다 보면 장원뿐 아니라 2등이라는 방안 급제나 지방에서 치른 거인에
합격만 해도 동네방네 잔치하고 대문 위에 대문보다 더 커다란
편액을 걸어놓은 것을 보았습니다.
하물며 장원급제란 거의 죽음입니다.
그때 공부했던 책인가 봅니다.
책이 너덜거려 걸레가 되도록 읽었다는 말이 아니겠어요?
공자에 관한 이야기 중에 위편삼절(韋編三絶)이라는 말도 있잖아요.
그러니 혹시 큰 시험을 앞둔 자녀를 두신 부모님이 계시면 여기에 가셔서
소원을 한번 빌어보세요.
장비 귀신이 도와줄지 누가 압니까?
기둥이라도 한번 손으로 쓰다듬어 보세요.
엿 먹으라고 엿이라도 기둥에 붙여놓아야 더 효과가 있을까요?
장비 귀신이라도 만나면 손을 꼭 붙잡고 잠시 한국에 다녀오자 하세요.
싫다고 하면 한국에 좋은 술이 있다고 하면 씨익 웃으며 따라나설 겁니다.
그게 어려우시면 지금부터 佳人이 올리는 사진을 뚫어지라 보십시오.
혹시 누가 압니까?
사진을 통해서도 장비를 느끼시면 장비 귀신이 도와줄지 모르잖아요.
그래서 우선 랑중에서만 볼 수 있는 장환후사의 대전에 있는 장비 조상의 사진도 보여
드리는데 위의 사진을 보니 벌써 장비가 소눈깔보다 더 큰 눈을 뜨고
우리를 뚫어지라 쳐다보고 있습니다.
이제 소 눈깔보다 더 부리부리한 장비와 눈을 맞추시고 속으로 빌며 "얍!"이라고 외쳐보세요.
佳人이 연구한 결과, 사실 장비의 힘은 저 소눈깔 같은 눈에서 나오는 것 같습니다.
어때요?
찌릿하며 장비의 氣가 느껴지세요?
느껴지지 않으셨다면 당연히 정성이 부족한 겁니다.
복채가 적어서인가요?
이런 시험장의 시스템은 제일 왼쪽부터 동생(童生)으로 들어와
현, 부, 원으로 점차 단계를 높여 나갑니다.
이곳에서 마지막 과정을 거쳐 합격하면 수재라 부르는 생원이 되고 이제 학문으로
꿈을 이루기 시작하는 첫걸음을 시작했네요.
여기에 패스한 사람이 모여 향시에 응시해 한 사람의 거인을 뽑습니다.
벌써 코끼리가 냉장고에 들어가는 것처럼 어려워집니다.
시험 감독관의 모습으로 보입니다.
거인만 되어도 이미 학문으로는 대단한 성과를 이루었다고 봐도 되겠네요.
이런 거인이 모여 회시를 치르는데 여기서 또 한 명의 공사(貢士)를 뽑는답니다.
바로 지금 우리가 구경하는 여기 공원에 모여 공부하고 시험을 치고...
그러니 여기는 코끼리가 냉장고에 들어가기보다 더 어려운 바늘구멍 통과하기처럼
어려운 일이 아닐까 생각되네요.
전국의 공원에서 시험을 통과한 오직 한 사람씩 모여 황제 앞에서 전시를 치릅니다.
그러면 일갑(一甲)이라고 부르는 세 부류를 뽑습니다.
일갑 삼 인은 장원 한 명, 방안 한 명 그리고 탐화 한 명을 뽑는군요.
이갑(二甲)과 삼갑(三甲)은 약간명씩 뽑나 봅니다.
전시에 급제한 사람은 모두 진사라고 부르지만, 그래도 이들 사이에도 또 구분을 해
일 갑은 진사 급제, 이 갑은 진사 출신그리고 삼갑은 동진사 출신으로 구분하나 보네요.
당시 공원 안에서 공부했던 모습을 마네킹으로 재연해 놓았습니다.
물론, 시험 칠 때도 바로 이렇게 주위와 전혀 소통할 수 없도록
격리된 상태로 시험을 보았을 겁니다.
마치 감옥에 갇힌 것처럼 좁은 공간에 들어앉아 암기 위주의 기계적인 공부만 했나 봅니다.
당시 모습이 저렇게 생활했다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고시원이라는 쪽방과 비교해 보면 더 좁고 숨도 쉬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이렇게 좁은 세상에서 무슨 호연지기를 키울 수 있을까요?
폐소 공포증이 오지 않겠어요?
여기서 공부했던 수험생들 중에는 공황장애도 많이 겪었을 것 같습니다.
암기 위주의 교육은 그 역사가 무척 오래되었나 봅니다.
그래서 이런 과정을 거치고 나와 입신양명의 길로 들어서면 나쁜 짓만 골라 하나 봅니다.
그런데 이렇게 출세를 한 후 힘 있는 자리에 있으며 청탁인의 돈을 받아도 그 사람들은
그게 죄인지 느끼지 못한다는 게 더 큰 문제입니다.
관례라고 하면 면죄부가 주어지는 겁니까?
무과 시험장입니다.
공원 안에 설치한 실제상황입니다.
물론, 지금은 돈을 내고 활을 쏘게 하지요.
시험이 이렇게 간단했다면 얼마나 좋겠어요.
이곳 공원에서는 옛날 모습을 재연하는 의미로 관광객에 시험을 실제로 치게 하기도 합니다.
우리나라 양궁 선수가 여기에 시험을 치면 모두 장원급제로 딱!!!
청나라 초기에 이곳 출신인 거인 합격자 명단인가 봅니다.
이미 향시에 합격해 거인 칭호만 들어도 신동이며 꿈동이 취급에
학문으로는 성공한 사람 축에 들 겁니다.
집으로 들어가는 문 위에 거인이라는 편액도 걸더군요.
거인이라는 것만으로도 벌써 학문적으로 최고의 경지에 올랐다는 의미가 아니겠어요?
급제하면 이렇게 행차도 했나 봅니다.
우리나라 춘향 서방인 이몽룡이가 이렇게 고향으로 오지 않고 거지 행세로 왔다면서요?
민생보다는 비겁하게 변학도 때려잡으려고,
우리는 이몽룡의 정정당당한 그런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다른 공적인 일을 제쳐두고 자기 애인 스토커 때려잡으러 변장한 행동은
칭찬받기 어려운 일이 아니겠어요?
그러나 현실은 변학도 잡으러 육모방망이 들고 뛰어드는 장면에
우리 모두 손뼉 치며 환호를 보냈지요.
변학도도 그 당시 그렇게 수청 받는 게 관례였는데 왜 연인 관리에 등한시한
이몽룡은 난리를 칩니까?
우리나라에서도 문제가 생기면 관례라고 지금도 하지 않나요?
물론, 재력과 권력이 있는 사람만이 관례라는 말로 변명하겠지만...
당시 다른 곳에도 일이 산더미같이 밀렸을 텐데 사적인 감정으로
자기 애인 스토커 잡는다 그리 한 것 아닌가요?
그렇다고 변학도가 잘했다는 것은 아니지만...
공무보다 개인적인 일을 하기 위해 국민의 세금으로 급여를 지급하는 포졸들 거느리고
뛰어드는 모습은 조금 그렇더군요.
아! 그일도 탐관오리를 척결하는 일 중의 하나였군요?
박수를 쳐야 하나 봅니다.
재일갑 제일명의 답안지입니다.
이 답안지만 바꿔치기할 수 있다면 佳人도 장원급제가 아니겠어요?
위의 사진에서 수험생은 기를 받아야 합니다.
그러면 옷도 달라집니다.
금의환향한다는 말에 나오는 비단옷인가 봅니다.
옛날에 佳人이 입었던 기억이 자꾸 가물가물 납니다.
여러분은 이런 기억이 없으세요?
왜 그럴까요?
심각한 증상이라고요?
여러분~ 佳人의 황당한 생각에 많이 당황하셨어요?
아.. 원래 그런 사람이라고 알고 계셔서 전혀 당황하지 않으셨다고요?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우리가 잡을 수 없는 많은 것 중에 제일 중요한 것은 시간입니다.
시간은 내가 지금 무슨 일을 하건 하지 않든 간에 흐르기 때문입니다.
그 시간의 끝은 어디일까요?
살아있는 동안 꼭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지금 바로 해야 합니다.
나중에 한다고 미룬다면 그때는 후회할지 모르고 그 시간의 끝자락에 서면
누구나 하지 못했던 일에 대하여 회한의 눈물을 흘리며 후회할 겁니다.
그러나 그 시간을 정확히 예측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