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기행/삼국지 기행

황택사는 대문만...

佳人 2013. 5. 28. 08:00

 

 

한중에서 11시에 출발해 네 시간만인 오후 3시에 광위엔에 도착했네요.

한중에서 여기로 오는 길은 정말 험했습니다.

물론, 새로 난 고속도로를  따라왔지만, 어느 지점부터는 고속도로를 벗어나

국도로 들어오는 바람에 제대로 험한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고가도로로 산을 연결하고 다리를 건설해 계곡을 가로지르는 길을 만들었더군요.

그런 험한 길을 옛날에 수많은 군마와 병기와 군량미를 이끌고 어떻게 오르내렸나 모르겠고

전쟁을 치르기 위해 오르내렸다지만, 전쟁도 하기 전에 진이 빠져 먼저 죽을 것 같습니다.

지도로 보면 그냥 한줄기 고속고로로 보입니다.

 

 

광위엔의 위치는 한중에서 보면 남서방향입니다.

광위엔이라는 도시는 쓰촨성을 흐르는 네 개의 강 중 진령산맥에서 발원해 흐르는

지아링장(嘉陵江 : 가릉강)을 끼고 양쪽으로 조성된 도시입니다.

바로 충칭에서 장강삼협 투어를 시작하는 조천문에서 장강의 본류와 만나는

길이가 1.100km가 넘는 유명한 강입니다.

 

이 강변에 제법 평평한 곳에 광위엔이라는 도시가 생겼습니다.

위의 지도에 나타난 지역은 삼국지와 관련해 무척 많이 입에 오르내렸던 곳입니다.

유비가 유장을 돕겠다고 군사를 이끌고 들어가며 공명의 북벌과

마지막 위나라의 공격을 받고 촉한이 패망할 때까지 말입니다.

 

당시 중국의 역사는 바로 위에 보이는 지형의 사건, 사고를 기록한 것이 대부분일

것이기에 그만큼 모든 뉴스의 중심은 바로 이 부근의 일이었을 겁니다.

 

 

광위엔 북쪽으로는 그 유명한 명월협이 보이고 그 길이 바로 예전에 북벌을 위해

공명이 오르내리던 잔도가 있는 곳입니다.

어디 공명만이 오르내렸을까요?

이미 명월협은 로마의 최초 포장도로보다도 이른 시기라고 중국에서만 주장하는

기원전에 만든 오래된 잔도이기에 문명의 길이었을 겁니다.

광위엔 아래 동남쪽으로 장비가 자다가 죽었다는 랑중 고성이 있고 서남쪽에는 유비가

군사를 이끌고 처음 들어온 부락산이 있는 미엔양으로 바로 천하 삼분지계를 실현할

프랜차이즈로 삼으려고 서천을 꿀꺽하려는 생각을 실제로 행동으로 옮긴 곳이죠.

이렇게 광위엔과 랑중과 미엔양은 삼각구도로 유비가 촉한을 경영했던

황금의 삼각지대라 봐야 할 겁니다.

 

 

광위엔 시내지도부터 먼저 보고 갑니다.

이 지도만 눈에 익혀두시면 광위엔은 바로 여러분의 손바닥 안에 들어옵니다.

완쪽의 제일 위의 장거리 버스 터미널은 기차역 바로 옆에 있습니다.

다른 큰 도시에서 온다면 기차나 버스가 대부분 여기에 도착할 겁니다.

 

그 아래 조금 걸어 내려오면 황택사라고 중국 유일의 여자 황제였던 측천무후의

개인 사당 같은 오래된 절이 있습니다.

가릉강 동쪽 위에는 천불애라고 하는 석벽에 만든 불상이 있는 곳입니다.

제일 아래에 남하(南河)터미널이 있어 소화고성과 검문관으로 가는 버스는 여기에서

출발하고 위로는 또 작은 버스 터미널이 있어 명월협을 가실 때는 그곳에서 타시면 됩니다.

이 모든 곳이 시내버스로 이동할 수 있는 작은 도시입니다.

 

 

이 모든 곳은 시내버스로 오갈 수 있기에 굳이 택시를 타지 않아도 충분합니다.

위의 사진을 보시면 소화고성을 가는 방향을 이정표로 만들고 고맙게도

한글로 표시했지만, 이게 뭡니까?

무슨 조화를 부렸기에 소화고성이 조화고성으로 변했답니까?

빠떼루 한 장 주고 갑니다.

중국에서 한글로 표시한 이정표를 자주 볼 수 있지만, 믿지는 마세요.

잘못된 글자가 뜻밖에 많기에 꺼진 불도 다시 보듯 늘 주의 깊게 살펴야 합니다.

 

 

터미널에 도착하니 작은 마을답게 터미널도 무척 작습니다.

역시 반가운 삐끼가 다가옵니다.

우리는 이런 삐끼가 무척 좋습니다.

왜?

말도 통하지 않는 낯선 도시에서 모두 퉁퉁 부은 얼굴을 하지만,

오직 삐끼만은 웃는 얼굴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웃으며 먼저 말을 붙여준다는 점입니다.

그런다고 원활한 의사소통이 되겠어요?

 

그러나 서로의 목적은 이미 알고 있기에 상담은 그리 힘든 일이 아니더군요.

佳人은 이미 공명의 무덤까지 다녀왔기에 천기를 약간은 읽을 수 있기에

상대의 심리를 모두 꿰뚫고 있는 걸...

돈을 벌기 위한 외국어는 어려워도 관광을 위해 돈을 쓰는 언어는 무척 쉽습니다.

돈을 벌기 위해 저들이 우리 말을 알아들으려 더 열심인걸요.

 

우선 방부터 구해야 합니다.

왜?

무거운 배낭부터 내려놓아야 자유스러우니까요.

위의 호텔은 1박에 250원을 부릅니다.

물론, 우리는 이렇 곳에 묵을 능력이 되지 않지만, 시장조사를 위해 들렸습니다.

그러나 이런 곳도 가끔 특가방이라고 100원내외로 나오는 경우도 있더군요.

 

세상에 살아가며 미소 짓는 얼굴을 보는 것처럼 행복한 일이 없습니다.

더군다나 여기는 말도 통하지 않는 중국 하고도 시골이 아니겠어요?

이런 곳에서도 낯선 곳에 도착한 우리에게 다가오는 삐끼는 모두 미소짓는 얼굴이라는 겁니다.

이 얼마나 행복한 일입니까?

 

 

장거리 버스 터미널은 기차역 바로 옆에 있습니다.

그러니 이 부근에 숙소는 널널하다는 말이 아니겠어요?

우리는 삐끼를 따라 하루 100원 한다는 방을 이틀에 두 개가 필요하기에

각각 하루에 50원씩 하기로 합니다.

물론, 비수기에나 가능한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외국인도 되느냐고 물어보니 등기하는 법을 모른다 해 공안에 물어보라고 하고

결국, 등기 서류를 나중에 가져와 우리가 주숙 등기 서류를 직접 써주었습니다.

이제는 외국인 주숙 등기를 가르쳐주며 다녀야 하나 봅니다.

여행을 하다보면 이런 경험도 하고 다닙니다.

중국도 요즈음 대부분 컴퓨터가 있어 전산으로 주숙등기하지만,

가끔 컴퓨터가 없는 작은 숙소에서는 예전처럼 직접 써서 신고하기도 합니다.

 

다음부터 한국사람이 오면 저렴한 가격에 무조건 방을 내주라고 부탁했습니다.

이제 그 업소도 우리를 통해 외국인 주숙등기하는 방법을 알았으니 다음부터는

내외국인 가리지 않고 손님을 받을 겁니다.

방은 작지만, 무척 깨끗하게 관리해 만족합니다.

친절하고...

나중에 친구는 방에 열쇠를 꽂은 상태로 외출했다 돌아와 깜짝 놀랐지만,

주인이 친절하게 문을 잠그고 열쇠를 보관했다 돌려주기도 한 곳이었습니다.

 

 

광위엔은 작은 곳이지만, 이 부근에는 제법 구경할 곳이 많습니다.

우선 장비와 마초의 사생결단을 한 곳이며 군사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삼국지에 무척 비중이 높았던 가맹관이었던 소화고성이 있습니다.

이름이 지금은 소화고성이지만, 옛날 장비가 삼국지에 출연해

썰매 타던 시절에는 가맹관이라고 불렀다네요.

 

그리고 이곳 광위엔에서도 구채구로 바로 갈 수 있습니다.

아침 일찍 하루 한 대의 버스가 이곳과 구채구를 운행합니다.

거리상으로는 여기가 청두보다는 가까워 요금도 저렴하지만,

걸리는 시간은 비슷하다 합니다.

 

 

그리고 공명의 후계자 강유의 아픔이 남아있는 검문관이 있는데 한 사람이 막아서면

만 명도 막을 수 있다는 一夫當關(일부당관), 萬夫莫開(만부막개)의 아주 험준한 곳이죠.

또 아주 멋진 잔도로 제법 옛날 그 자리에 그 모습을 간직하며 남아있는 명월협 잔도가 있고

여기에 황택사도 있지만, 삼국지와는 관계가 없는 곳이고 천불애라는 석벽의 불상도

바로 가릉강변에 있는 마을입니다.

 

 

또 여기서 장비가 심었다는 측백나무의 숲인 취운랑도 있고 금우도라는 도로도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곳입니다.

대중교통을 이용해 모두 다 돌아보려면 닷새 이상이 필요하지만, 우리 일정상 아직

모든 일정을 확정하지 못하고 우선 2박만 먼저 하기로 합니다.

결국, 나중에 1박을 더하며 3박을 할 정도였지만, 모두 구경하지 못하고 일부만 본 곳입니다.

혹시 이곳을 계획하시는 분이 계시면 넉넉한 시간으로 여유롭게 돌아보시길 권해드립니다.

 

청두에서 송판, 황룡, 구채구를 보고 광위엔으로 와 검문과, 소화고성, 천불애, 황택사,

명월협을 보고 랑중으로 넘어가 장비 마을을 구경하고 미엔양으로 가 부락산으로 보고

뤄지앙으로 내려가면 방통이 죽은 낙봉파와 백마관을 볼 수 있죠.

그 다음 청두로 내려가는 코스도 아주 좋은 여행 코스가 될 겁니다.

 

청두에서 갈 수 있는 곳은 러산대불, 두장위엔, 무후사 외에도 무척 많은 곳이 있잖아요.

나중에 마음 맞는 여행자가 있다면, 이 코스로 다시 한번 돌아보고 싶은 곳입니다.

佳人은 구채구를 가을이 아닌 다른 계절에 다시 가고 싶은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가방을 내려놓고 우선 황택사를 걸어서 갑니다.

멀지 않고 가까운 곳에 있기에 큰길 따라 그냥 곧장 걸어가면 만납니다.

황택사 입구에 있는 석비에 광원 황택사라는 글은 곽말약이라는 사람이 쓴 글입니다.

특히 이번 중국 여행을 하다 보면 아주 자주 만나는 사람입니다.

 

 

여기 광위엔은 도로이름도 측천로가 있는 곳입니다.

그만큼 이 도시는 측천무후를 배출했기에 자랑으로 여기나 봅니다.

황택사는 북위 때 처음 만든 절이라 합니다.

역시 북위라는 나라는 불교 국가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입니다.

 

그러나 이 절이 유명한 것은 1.500여 년의 긴 역사만 아니라 바로 그 이름에서 보시듯이

측천무후를 기리는 절이기 때문입니다.

북주, 수, 당을 거치며 점차 확장했지만, 결정적인 것은 바로 무측천 때문이라고 봐야 할 겁니다.

왜?

바로 그녀의 고향이 이 깡촌 광위엔이고 그녀가 중국 유일의 여황제가 된 후

여기는 그녀를 기리는 절로 성장하게 되었기 때문이죠.

 

 

황택사 안에는 이성전이라는 전각이 있습니다.

바로 그녀와 서방님을 모신 곳이죠.

정문에서 들여다보니 바로 앞에 보이더군요.

들어가지 않고도 그냥 문 앞에서 사진만 찍습니다.

 

무씨 가묘라고 측천무후의 가문 사당도 있답니다.

그곳에 만든 소상은 무측천의 나이 든 모습 그대로라고 하는 무후 진용전도 있답니다.

뭐 황제까지 지낸 여인인데 이 정도라면 아주 겸손하게 조성했다고 봐야 하겠네요.

 

 

중국의 3대 여걸을 꼽으라면 누구를 꼽으시겠어요?

대부분 사람은 나이 순서대로 한 고조 유방의 부인인 여태후를 우선 꼽을 겁니다.

그다음이 바로 여기가 고향인 측천무후를 꼽을 것이고

마지막으로 청나라를 말아드신 서태후가 아닐까요?

 

 

그 중에 제일 폼 나게 살았던 여인이 바로 유일한 여황제였던 무측천일 겁니다.

그녀는 이 서방의 당나라를 둘러 엎고 주나라로 한때 국호까지 바꿀 정도의

여인인데 원래 무후는 태종의 후궁으로 궁에 들어갔다고 하지요.

 

여기 물 좋은 가릉강의 정기를 타고 난 그녀는 서방 태종이 죽자  잠시 절에 들어가 살다가

신분세탁을 거치며 물처럼 그릇에 따라 수시로 변화하고 적응하며 아들인 고종의 후궁으로

들어갔다 그도 성이 차지 않아 눈에 걸리는 여인을 차례로 정리하고 

드디어 황제의 자리까지 오른 여인이지요.

중국 유일의 여황제 말입니다.

 

 

입장료는 50원입니다.

그러나 마침 빗방울이 뿌리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잠시 고민을 하다가 그냥 돌아서기로 합니다.

 

이렇게 황택사는 대문만 찍고 돌아섭니다.

비가 내린 이유도 있지만, 이제는 중국의 사찰이 별로 우리의 관심을 끌지 못하네요.

또 이번 여행의 목적인 삼국지 기행과는 전혀 어울리지도 않고

크게 관심이 가지도 않았기 때문입니다.

 

내일은 삼국지 중에 치열한 전투가 있었던 검문관으로 갑니다.

검문관은 정말 대단한 곳이었어요.

오늘은 코~ 하도 자고 내일 함께 가시겠어요?

물론, 택시는 타지 않고 버스만 타고 갈 겁니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측천무후는 정말 여성으로는 대단한 사람임에는 분명한가 봅니다.

남자뿐 아니라 천하를 마음대로 주물렀고 나라 이름도 바꾸었으니까요.

여기 광위엔에는 여성의 날이 되면 가릉강에 밤새 배를 띄우고 여성들이 마음껏 즐긴다

하는데 지금 생각하면 별 게 아니네요.

우리나라도 신라 시대에 여성이 나라를 다스렸죠.

그것도 세 사람씩이나...

그리고 무측천보다도 더 이른 시기에 말입니다.

측천이 690년에 즉위했고 선덕여왕은 626년에 즉위했으니 측천이 선덕여왕을

멘토로 생각하고 베끼기 전략을 했나 봅니다.

지금은 옛날 황제와 같은 대통령직을 여자가 수행하고 있으니까요.

중국은 우리나라보다는 여권신장이 느린가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