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기행/삼국지 기행

정군산에서 길을 잃다.

佳人 2013. 5. 15. 08:00

 

그때의 정군산은 별로 볼 게 없었을 겁니다.

그러나 한창 단장 중이라 지금쯤이면 제법 볼 게 많은 듯합니다.

우리가 볼 게 있다고 여기를 찾아온 것은 아니기에 전혀 슬프지 않습니다.

삼국지에 나오는 많은 전투 중 정군산 전투보다 더 크고 대단했던 곳이 더 많지만, 

정군산 전투가 주는 의미는 그런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일이지요.

 

삼국지의 하이라이트라고 하는 북벌을 위한 베이스캠프를 차리기 위해 유비가

조조의 땅이었던 한중을 집어삼키기 위한 첫 전투를 벌였던 곳이 이곳이기에

느낌이 다른 그런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뭐 세상의 전투 중 가장 화려했다고 하는 불꽃놀이의 진수를 보여주었던

적벽대전은 또 어떻습니까?

많은 사람이 찾아가는 곳이지만, 강가 석벽에 붉은 글씨로

적벽이라는 글자뿐이 아니겠어요?

 

그런 것을 생각한다면 여기가 훨씬 좋습니다.

왜?

산에라도 올라오니 운동도 되고 공기도 더 좋은 곳이니까요.

지금 이곳도 돈이 보이기에 새롭게 단장하는 중입니다.

머지않아 많은 사람이 찾아올 그런 곳을 만들려나 봅니다.

 

 

독전대를 바라보고 공명이 앉아있습니다.

정군산을 찾아오는 모든 분에게 감사의 인사를 하려나 봅니다.

이른 아침 군사조련을 마치고 늦은 아침 밥상이라도 받으셨나요?

 

 

가까이 다가가 봅니다.

밥상이 아니군요?

그럼 여러분은 뭐라고 생각하세요?

佳人은 컴퓨터 키보드라 생각합니다.

워낙 천지의 조화를 아시는 분이라 모니터는 필요 없고 키보드만 있으면

출사표도 술술 나오는 사람이 아니겠어요?

거문고를 저렇게 작게 만들면 누구나 佳人처럼 오해합니다.

이 모습은 공성계를 상징하는 모습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군사를 조련했던 광장을 떠나 정군산을 오릅니다.

물론 여기도 정군산이지만, 여기 산을 넘어가야 공명의 무덤이 있는

무후묘로 가는 길이 나온다 하니...

그래서 위의 사진에 있는 낚시하는 사람에게 길을 묻습니다.

 

 

그냥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무후사로 간다고 합니다.

이렇게 쉬울 수가...

길도 포장하여 반듯하게 만들어 놓았기에 너무 쉽게 생각한 게 탈이었습니다.

정상 부근에 올라와 뒤돌아 봅니다.

 

 

왼쪽의 하얀 건물이 아까 지나쳤던 관광단지 입구를 만든 대문 역할을 하는

궐 모양의 조형물이고 그리고 오른쪽에는 독전대가 보입니다.

공명이 여기에 머무를 때 늘 저기에 올라 군사를 조련하고 북벌의 꿈을 키우던 곳일 겁니다.

이게 어디 공명의 꿈만이겠어요?

유비의 꿈이기도 했잖아요.

 

 

혹시 이곳을 가실 분은 위의 사진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여기가 갈림길이 있는 산 위의 삼거리입니다.

정군산에서 오를 때는 이 표지가 보이면 왼쪽 길로 가야 합니다.

그 길로 가야만 무후묘로 내려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작은 이정표도 하나 세워두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물론, 잘못된 길인 오른쪽으로 갔지요.

오른쪽이나 왼쪽이나 이렇게 길은 반듯하게 잘 만들어 놓았습니다.

이제부터 산속을 헤매기 시작합니다.

여기저기 창칼 부딪히는 소리가 들리고 군사들의 비명소리가 들립니다.

이게 황충의 칼에 맞아 죽어가는 하후연이 지르는 비명소리 같기도 하고...

 

 

언덕 하나를 넘으니 더 높은 언덕이 나타납니다.

이렇게 계속 오르내리기를 30분도 넘었습니다.

내려가는 길이 있다가 다시 올라만 갑니다.

저기만 오르면 무후묘로 내려간다고 누가 부르는 것 같습니다.

황충의 칼에 맞아 죽은 하후연과 그의 부하들의 귀신이

저기 모퉁이에 서서 부르는 것 같습니다.

 

 

길은 도무지 내려갈 기미조차 보이지 않습니다.

잠시 앉아서 쉬기로 합니다.

그런데 저 아래 젊은이들이 무리 지어 올라옵니다.

그래서 물었지요.

다행히 젊은이들은 영어가 되기에 쉽게 우리가 길을 잘못 든 것을 알았습니다.

지금 우리가 올라가는 꼭대기는 법정이 황충에게 깃발을 들어

하후연의 영채 안의 상황을 알려주던 그곳인지 모르겠습니다.

너무 높은 곳까지 올라왔습니다.

지금 우리가 아침부터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지금 가는 길로 계속 가면 낭떠러지고 무후사로 가는 길은 다시 뒤로 돌아

가운데 길로만 가라는 말입니다.

그러니 아까 정군산 풍경구 사진 찍는 지점에서 이쪽과 반대편으로 간다는 말입니다.

이정표가 없는 정군산에서 이렇게 산속에서 길을 잃고 마냥 걸어보았습니다.

 

공명에는 정군산이 즐거운 곳으로 기억에 남았기에 이 산기슭에 무덤을 만들어

달라고 유언했겠지만, 우리에는 식은땀이 등어리를 타고 흘러내린 곳입니다.

물론 하후연은 황충의 칼에 목숨을 잃은 곳이지만...

 

 

여러분!

우리처럼 중국의 산에서 길을 잃고 헤매 보셨수?

우리 고생해 봤수~

그 젊은이들을 만나지 못했다면 얼마나 더 고생했을지 모릅니다.

혹시 나중에 이곳을 가시려면 위의 지도를 잘 보시고 정군산 능원을 올라

산 위에 오르면 왼쪽으로 내려가시기 바랍니다.

오른쪽은 우리 부부만 다녀온 곳으로 남겨두시기 바랍니다.

 

이곳은 산은 옛 산이지만, 황충도 하후연도 모두 사라지고 없습니다.

그때는 이기고 진 사람이 있었지만, 세월이 흐르고 나니 모두 같아졌습니다.

칼파의 세월 속에 우리가 너무 아웅다웅하며 사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한 시간을 산속을 헤매다 겨우 길을 찾아 무후묘로 내려갑니다.

덕분에 양평관과 마초묘는 포기합니다.

친구와 오지 않았다면 하루 더 머물며 모두 보았겠지만, 혼자만의 욕심으로

시간을 보낸다는 게 미안해 포기하고 오후에는 석문잔도를 가기로 합니다.

이번 여행에 함께한 친구는 삼국지에 큰 관심이 없는 친구고 울 마눌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갈량을 나타낼 때 누구나 알 수 있는 것이 바로 손에 든 학우선일 겁니다.

삼국지에 관한 그림을 보더라도 학우선만 들면 누구나 그 사람이 공명이라 생각하잖아요.

개가 들었다면 의심하겠지만...

물론, 사륜거도 있지만, 사륜거는 공명의 인생 후반전에 주로 나오더군요.

학우선이 바로 공명이며 공명이 학우선이라고 할 정도로...

그러면 이 학우선은 왜 공명의 손에 들려 있을까요?

 

 

어느 날 공명이 부인 황씨와 함께 길을 걸어갈 때였답니다.

그때 공명 주변으로 많은 거위 떼가 모여들었답니다.

혹시 공명에 지혜라도 배울까 해서였을까요?

 

잠시 기다리자 거위들은 모두 지나가고...

그러나 공명의 옷에는 그만 거위의 깃털이 잔뜩 붙어있더랍니다.

이를 본 부인 황씨가 그 거위의 깃털을 하나씩 모아 한 땀 한 땀 손으로

직접 부채를 만들었다 합니다.

 

그때까지 늘 손에 병법책만 들고 다녔던 공명이 부인 황씨가 직접 만든

학우선이라는 부채로 바꿔 들었다나요?

믿거나 말거나겠지만...

오리털보다 거위털이 더 비싸다고 하데요.

그러니 공명의 학우선은 황 부인이 한 땀 한 땀 정성 들여 만든

명품 부채라는 말이 아니겠어요?

 

 

이렇게 엉뚱한 상상을 하며 내려오다 보니 어느새 성채 입구에 도착합니다.

우리 여행은 늘 이렇게 불완전하게 다닙니다.

佳人의 삶 자체가 늘 모자라는 삶이니까요.

그래도 이렇게 제대로 길을 찾았으니 그 기쁨은 완벽한 사람이 얻는 기쁨보다 더 큽니다.

이렇게 부족한 사람도 하나씩 얻어가며 이루어가는 재미 또한 삶의 기쁨이지요.

 

 

이렇게 산속을 한 시간이나 더 헤매다 겨우 제 길을 찾아 내려왔습니다.

이게 모두 공명의 학우선 때문인가 봅니다.

아닌가요?

하후연의 귀신에 씌어서 그랬나요?

귀신아~ 물렀거라~~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삼국지를 좋아하시면 정군산을 올라보세요.

그곳에 가시면 공명의 사당이 아닌 무덤이 있는 무후묘도 있습니다.

공명은 오장원에서 죽었지만, 정군산자락에 묻어달라 유언했다 합니다.

못다 한 북벌의 꿈을 죽어서도 바라보고 싶다고 북쪽을 향해 묻어달라 했답니다.

정군산에 오르면 하후연의 비명소리가 들릴 겁니다.

그래도 그 소리를 따라가지 마세요.

엉뚱한 곳이 나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