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수의 복희묘(伏羲廟)
선인애에서 천수 기차역까지 나오는데 버스로 1시간이 걸렸고 오후 3시 반으로 아직 시간이
조금 남아 어디를 갈까 생각하다가 시내버스를 타고 복희묘(伏羲廟)를 가기로 합니다.
천수는 복희의 고향이라고 하네요.
물론 전설 속의 인물이지만 어떻게 여기가 고향이라고 우기는지요?
복희라 하면 전설 속의 인물이 아닌가요?
그렇다면 당연히 고향이 없으리라는 생각을 하지만,
여기가 태어난 고향이라 하니 좀 이상합니다.
천수는 우리가 내린 기차역과 원래 천수 시내는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우리가 맥적산을 가기 위해 내린 기차역은 천수역이지만, 이곳은 맥적구라
천수 시내에서는 무척 먼 거리에 있네요.
어찌 보면 다른 도시라 해도 틀린 말은 아니지 싶습니다.
복희(伏羲)묘는 여기서 멀리 떨어진 천수 시내에 있다고 해 시내버스로 찾아가렵니다.
같은 시내인데도 버스 요금이 3원 하는 것으로 보아 무척 멀다는 말이 아니겠어요?
시내버스를 타고 천수 시내에 도착할 즈음 이미 시간은 4시 50분이 되어 주변이 약간
어두워지기 시작했고 버스 기사에 복희묘를 물어보니 기사가 우리 내리는 곳을
알려주며 버스를 내려 걸어가는 방향까지 자세히 알려줍니다.
그 길을 따라 한참 걸어가니 드디어 복희묘로 들어가는 입구가 나타나네요.
돌로 만든 패방을 지나 안으로 들어가니 다시 나무로 만든 패방이 여러 개가 보입니다.
패방이 많다는 말은 중요한 곳이라는 의미가 아닐까요?
요즈음 세상을 떠들석하게 한 슈퍼 甲이라는 말인가요?
문표 파는 곳 입구에는 패방이 두 개나 양쪽으로 서 있습니다.
그런데 이미 시간은 늦어 매표구는 문을 닫았고 출입문을 닫으려고 합니다.
아직 나오지 않은 사람이 있어 기다리나 봅니다.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복희묘 대문만 보고 가게 생겼어요.
그래도 복희묘라고 쓴 대문 사진만이라도 찍었으니 용서받을 수 있겠죠?
그래서 근무자에게 부탁했습니다.
5분 만 시간을 주면 잠시 안에 들어가 사진만 몇 장 찍고 나오겠다고요.
물론 말이 통하지 않지요.
카메라를 손으로 가리키며 사진 찍는 모습을 보이며 손가락을 펴 5분이라고
했고 어디서 왔느냐고 묻는 것 같아 한궈런이라고 했더니만,
빨리 들어가 사진만 찍고 나오라고 합니다.
여러분~ 근무자가 佳人이 말한 한궈런이라는 말을 알아들었어요~
궁하면 통한다 했나요?
늦게 도착해도 통하더이다.
물론 입장료는 내지 않고...
왜?
입구 문 앞에 있는 문표 파는 창구가 이미 내려졌기 때문이죠.
입장료가 살인적으로 비싼 중국에서 중국인의 조상인 복희묘를 무료로 들어갔어요.
복희씨는 알랑가 몰라~
이렇게 고마울 수가...
뭐 우리에게는 중요한 곳이 아니기에 안 된다 하면 그냥 돌아서려 했지만,
중국인에게는 우리의 단군 신이나 같은 곳이 아니겠어요?
멀리서 온 한국인에게 잠시 사진 몇 장 찍는 아량은 베풀어줍니다.
이렇게 안으로 들어가 내부의 모습을 간단히 담았습니다.
지금 여러분께서 보시는 사진은 이렇게 돈도 내지 않고 찍은 사진들입니다.
龍祖라 하면 용의 조상이라는 말이 아닌가요?
복희가 용의 조상이라고 하면 그럼 중국인이 용이란 말입니까?
복희씨를 일컫는 최고의 존칭어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렇게 정확하게 5분만에 사진을 찍고 밖으로 나왔습니다.
우리에게는 그저 그런 장소지만, 중국인에게는 무척 중요한 곳일 겁니다.
이곳의 복희묘는 이미 명나라 때 복희를 숭배하기 위해 만들었다 합니다.
그러니 그 역사 또한 제법 오래되었고 2001년에 성 정부에서 국가 주요 문물로
공표함으로 국가적으로도 공인한 그런 곳이 되었나 봅니다.
복희묘는 제일 처음 명나라 때인 1483년에 처음 만들었고 남쪽을 향해 건물 배치를 했다네요.
그러니 이미 500년이 넘은 오래된 건물이네요.
그 주전 안에는 나뭇잎으로 만든 옷을 입은 3m가 넘는 복희가 팔괘를 들고
앉아있는 모습이 있다고 하지만, 들어갈 수 없어 보지는 못했습니다.
이런 모습은 중국을 여행하다 보면 자주 보는 모습이죠.
나중에 랑중이라는 마을을 들렸을 때 위의 설명과 같은 모습의 복희씨를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 건물은 명나라 때 지은 건물이라 당시의 건축기술을 그대로 볼 수 있어
건축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건물이 되는 셈이네요.
복희씨는 중국 전설의 삼황 중 첫 손가락으로 꼽히는 전설의 인물이라고 하더군요.
용이 아니고 뱀의 몸을 가지고 태어났다 합니다.
뱀보다는 용이 더 좋은데...
왜 용의 나라 중국이 전설의 조상을 용보다 품격이 떨어지는 뱀으로 표현했나 모르겠어요.
나뭇잎 화관을 썼다든가 가죽옷을 입었다는 이야기가 있기에 복희를 표현하
는 상징물에 주로 이렇게 등장하더군요.
그의 아내 또는 누이라고도 알려진 여와(女媧)도 나뭇잎을 입었어요.
마치 인류의 시작이라는 아담과 이브를 보는 듯하네요.
우리에게도 익숙한 주역에 나오는 팔괘를 처음으로 만들었다고 늘 이런 팔각형
운전대 비슷한 것을 들고 등장하지요.
전설에 따르면 복희는 기원전 2800년 무렵에 살았다 합니다.
사람의 머리에 뱀의 몸을 한 이상한 생명체였나 봅니다.
위의 조형물은 한중 석문잔도로 들어가는 입구에 만든 조형물로 아마도
중국의 건국설화를 나타내는 그런 게 아닐까요?
복희의 상상도가 신장지역에서 출토되며 복희는 한족이 아니라는 설이 제기되며
비판적인 이야기도 있지만. 중국 남부지역의 민간 전설로도 복희의 존재가 있기에
조상으로 생각하나 봅니다.
신장지역이라면 한족과는 무관한 지역이 아니겠어요?
그의 무덤이 허난성 회이양현(淮阳县 : 회양현)에서 발견되었다고 하면서
그런데 왜 천수라는 도시가 그의 고향이라고 우기고
여기다 사당을 만들었나 모르겠어요.
왜 중국인은 복희를 중국의 시조 중 하나로 생각할까요?
위의 조형물은 여와입니다.
여와가 심심해 하늘에서 내려와 어느 날 물가에 서서 물에 비친 자신을 바라보았답니다.
누구는 자신의 아름다운 모습에 도취했다고도 하지만, 여와는 다른 생각을 했나 봅니다.
놀면 뭐하겠어요?
그래서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과 같은 인간의 모습을 진흙으로 빚었답니다.
위의 사진에 진흙 인간이 보입니다.
재미가 있었나 봅니다.
레고 블록도 처음에는 가지고 놀기가 재미있잖아요.
그래서 몇 개를 더 만들고 또 심심해...
이번에 옆에 있던 칡넝쿨을 잘라 진흙을 두드리니 진흙이 사방으로
흩어지며 그게 인간이 되었답니다.
지금 위의 사진에 아이를 손에 든 모습이 바로 그때 진흙으로
빚어 만든 장난감 아이일 거예요.
그러니 기독교의 교리와 비교해 보면 여와가 인간을 창조한 하나님의 위치에 있나요?
복희(伏羲)의 원래 이름이 태호(太昊)라고 합니다.
그래서 태호궁이라는 편액을 걸어두었네요.
복희묘 앞으로 큰 광장이 있고 그 광장에는 팔괘의 여덟 배나 되는
64괘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 광장 주변으로 돌로 만든 용 기둥을 세워놓았는데 그 기둥에 새긴 용도 볼만합니다.
장쩌민이 다녀가며 글 하나 남겼네요.
여기가 희왕고리라고요.
정말 장쩌민은 복희를 알까요?
고향이 여기라고...
복희가 장쩌민도 모른다고 할 텐데...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이곳은 특별히 찾아갈 이유는 없을 것 같습니다.
중국인에게는 중요한 곳이겠지만, 한국인에는 별로 의미를 부여하기
어려운 곳이 아닐까요?
우리야 시간이 조금 남아 별로 갈 곳은 없고 시간 죽이기 하려고 다녀왔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