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기행/삼국지 기행

조조가 계륵이라고 한 한중입니다.

佳人 2013. 5. 9. 08:00

 

고호두교에서 위연의 죽음을 구경하고 다시 길을 따라 고한대로 갑니다.

세상에 된장 구분법을 몰라 죽음을 맞이한 위연이었습니다.

인재 부족난을 겪고 있는 촉한으로서 위연의 죽음은 사실 큰 손실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래서 요즈음은 위연을 재조명하자는 운동도 벌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漢이라는 단어가 지니고 있는 뜻은 중국인에게는 영혼이며 뿌리로 여기는 단어지요.

한중(漢中)이란 지역은 삼국지에서도 무척 여러 번 언급된 아주 중요한 지역입니다.

이런 한중이 漢이라는 글자의 발생지이지만, 그 말이 생긴 이유를 알고 보면

코미디라고 봐야 할 겁니다.

 

 

바로 漢이라는 단어의 출생이 이곳 한중이라고 하니 그 이유가 궁금합니다.

그러면 한중이라는 도시 이름은 어찌 정했을까요?

조금 웃기는 이야기지만, 한중 시내를 흐르는 강이 한수라는 강이며

한중이라는 도시가 한수라는 강의 중간지점에 있다고 한중이라고 했답니다.

이름도 알고 보면 웃기는 이야기지요.

 

 

한중에는 중심가에 고한대라는 곳이 있습니다,

물론 지금은 박물관으로 사용하는 곳이지요.

그러나 이곳은 바로 유방이 항우에게 밀려 한중왕으로 이곳 한중에 쫓겨왔을 때

왕궁자리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때에 만든 아무런 흔적도 남지 않고 작은 박물관의 역할만 하고 있지요.

위와 아래의 사진을 보시면 박물관의 모습은 아님이 확실하네요.

 

 

유비도 한중왕을 칭하고 헌제에게 표를 올렸던 곳도 바로 여기라네요.

왜 유비가 다른 지역도 마다치 않고 익주에서 굳이 오기도 쉽지 않은

이 먼 곳까지 와 한중왕을 칭했을까요?

당시에는 한나라 헌제가 두 눈 버젓이 뜨고 살아있을 때였는데, 황제가 임명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양수가 죽은 계륵 사건을 일으키고 조조군이 물러나자 이곳을 점령한 후

한 일이 바로 한중왕에 스스로 올랐다는 것이지요.

그러니 여기서 직접 셀프 왕에 올랐다는 말이 아니겠어요?

바로 한나라의 시작인 유방의 후손이라 이곳에서 유방처럼 시작하는 의미고

조조를 항우라고 생각했나 봅니다.

 

 

그러니 유방의 후광을 보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한중왕을 칭했을 겁니다.

유방이 바로 한나라의 시조가 아니겠어요?

따라쟁이 귀염둥이 유비가 맞습니다.

이는 공명이 연출하고 유비가 주연한 고도의 마케팅 전략이라고 봐야 하겠네요.

천하의 한족은 모두 유비 아래로 모이게 하는 그런 전략 말입니다.

 

 

한중은 북쪽으로 진령산맥이 가로막고 남으로는 빠산(巴山 :파산)이 있어

그 안에 한중분지라 부르는 곳에 있네요.

위의 지도를 보시면 조조가 계륵이라고 했던 이유가 분명합니다.

북쪽과 동쪽 그리고 남쪽으로는 높은 산맥으로 막혔고 서남쪽인 광원 쪽으로는

약간 열려있지만, 그곳에도 가릉강이라는 강이 흘러 협곡으로 연결되어 길이 명월협이라는

잔도를 만든 곳으로 예전에는 그 잔도를 통해서만 오고 갈 수 있습니다.

나중에 명월협이라는 협곡의 잔도도 걸었기에 그 모습도 보여 드릴 수 있겠네요.

 

 

옛날에 영웅들이 필사적으로 다투던 군사요충지로 특히 한나라 초기에 장기판에서

다투던 초(楚)와 한(漢)이 직접 서로 다투던 지역이라고 봐야 하겠네요.

물론 그 지역은 주 무대가 함양이겠지만, 유방은 여기 한중에서 은밀하게 힘을 키운

곳으로 조상이 이곳을 두고 피 터지게 싸웠다고 한나라 말기에 그 후손인

유비와 공명이 여기에서 또 사생결단하던 전쟁터였습니다.

 

 

그러나 삼국지 이전에 진시황이 천하를 통일한 이후 그 아들이 위대한

통일국가였던 진나라를 바로 말아먹습니다.

진나라를 이어 한중은 한나라 왕실의 발원지이기도 하지요.

기원전 206년인 진나라 말기 항우와 유방이 자웅을 겨루던 시절 항우는 유방을

산시성 홍문으로 초대해 연회를 베풀었다죠?

그 유명한 홍문연이라는 연회 말입니다.

 

 

컥! 전화 한 통으로 미래가 바뀔 수 있답니다.

중국의 구혼 광고가 골목길을 빼곡히 채우고 있습니다.

잘만 하면 팔자 고칠 수 있다는 말입니까?

친구가 아주 찬찬히 들여다봅니다.

왼쪽은 남자가 여자를 구하는 쪽지고 오른쪽은 여자가 남자를 구하는 것이군요.

그런데 佳人의 친구는 왜 남자 쪽을 보고 있을까요?

 

홍문의 연회는 사실 연회의 이름을 빌렸을 뿐, 실제론 항우가

유방을 제거하기 위해 꾸민 함정이었잖아요.

유방은 부하 덕분에 겨우 목숨을 건져 달아나고 그로부터 얼마 후 항우에 의해 유방은

한중왕에 봉해져 황무지나 다름없는 지금 우리가 온 한중 지역으로 내쳐졌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일은 세월이 흘러 홍문의 연회와 같은 일이 또 벌어진다는 일이지요.

부락산에서의 연회가 바로 그런 일이었습니다.

고호두교에서 비명조차 제대로 지르지 못하고 마대의 칼을 맞고 바로 황천길을 떠난

위연이 유비를 초대해 잔치를 베풀던 유장을 죽이려고 선무당처럼 칼춤을 추었던 일은

바로 홍문의 연회를 모방한 방통이 꾸민 칼장난이었지요.

물론 유장의 부하도 같이 나와 홍문에서와 같이 맞상대하며 칼춤을 추었지만...

초대받은 사람이 오히려 주최 측을 죽이려고 생각한 방통의 파격적인 생각에 깜짝 놀랍니다.

 

 

이곳으로 쫓겨올 때 뒤를 추격하지 못하도록 한중으로 들어오는 유일한 길이었던

석문잔도를 불태웠다고 했던 가요?

실망하고 있던 유방에게 책사 소하가 한신을 소개하니 유방은 한신의 도움으로 날개를

달게 되고 드디어 항우와의 결전에서 승리를 거머쥐고 결국, 천하를 손에 쥐게 된

약속의 땅이 바로 한중이 아니겠어요?

유방은 천하를 통일한 뒤 중국인의 자존심인 한나라를 세운다는 일이

바로 그 시작 지점이 여기랍니다.

 

 

위의 사진이 바로 한나라 개업식 때의 사진이 아닌가요?

한중이 이처럼 한나라와 깊은 연을 맺고 있기에 삼국지에서 유비는 천하대업을

이루기 위해 전략적으로 한중을 공략했고, 제갈량은 바로 이곳 한중에 베이스캠프를

설치하고 선제 유비의 꿈을 실현하는 한실을 부흥시키기 위해 마지막 숨을 몰아쉬며

오장원에서 눈을 감을 때까지 심혈을 쏟았던 곳이 바로 여기랍니다.

약속의 땅...

미래의 땅...

그러나, 그냥 꿈만 호되게 꾸고 말았나 봅니다.

 

 

한중이라는 지역은 삼국지에 나오는 지명 중 재미있는 곳이지요.

세월이 많이 흘렀지만, 그 이름이 아직도 한중이라고 불리는 곳으로

변치 않은 곳입니다.

아마도 漢中이라는 이름이 갖는 중요성 때문이 아닐까요?

 

 

위의 사진은 한중 시내 노동자 임금인가 봅니다.

월급 시세표라는 말이 되겠네요.

 

삼국지라는 이야기 이전에 이미 한중은 漢나라의 이름에 기여를 한 곳으로

항우에 의해 유방이 한중왕으로 봉해지며 유명세를 타기 시작하지 않았을까요?

유방은 결국, 진나라에 이어 중원을 통일하며 그 이름을 漢나라로 정한 이유가

이곳의 지명을 빌렸다고도 하고 지금 漢族이는 漢文이니 하는

글자의 원본이 된 곳이라고도 합니다.

 

 

그런데 이 한중이라는 지명도 무슨 철학이 깃든 것이 아니라 마을 한가운데 흐르는

강의 이름이 한수였고 그 한수라는 강 중간에 마을이 있어 한중이라는 이름을 정했다고

했으며 그렇다면 한수 상류에 있었다면 한상으로 지었을 것이고

하류에 있었다면 한하라고 지었을까요?

 

 

이름이 굳이 어렵고 철학적인 의미가 있을 필요가 없지요.

그냥 생긴 대로 부르면 그게 좋은 이름이 아닐까요?

우리나라의 한양도 한강을 끼고 있었기에 붙인 이름일까요?

남쪽으로 한강이 흐르며 볕이 잘 들었기에 한양으로 지었을지도 모르겠네요.

그냥 군의 북쪽에 있으면 군북면이고 남쪽에 있으면 군남면이라 부르면 되지 않겠어요?

 

 

또한, 조조가 계륵이라고 했던 곳도 이곳이기에 좌우지간 재미있는 지역인 것만은

사실이며 그러니 이곳을 계륵이라고 했던 조조가 사실은 한중의 의미를 깊이

생각하지 않고 너무 즉흥적으로 판단한게 아닌가 생각되네요

우선 삼국지 이야기 속에서 제일 먼저 본격적으로 한중이 언급되기 시작한 것은

아직 유비가 제대로 프랜차이즈를 정하지 못하고 비실거리며 구차하게

오나라 영토인 형주에 있을 때였을 겁니다.

야구팀도, 축구팀도 모두 자기 연고지가 있잖아요.

연고지도 없으면 푸로도 아닙니다.

좌우지간, 한중이라는 도시는 관광지로는 매력적인 도시입니다.

 

 

위의 지도를 자세히 보세요.

삼국지를 좋아하시는 분에게는 아주 중요한 장소이기도 합니다.

한중은 한나라의 시작이고 유비가 공명과 함께 무척 공을 들인 곳으로 북벌의 베이스캠프지요.

여기를 중심으로 삼국지에 등장하는 많은 전투가 벌어집니다.

북벌을 시작하기 전 조조가 차지했던 한중을 공략하기 위해 공명이 유비와 함께 군사를 이끌고

조조군과 첫 전투가 벌어진 곳이 정군산으로 지도상으로 보면 바로 왼쪽에 보이실 겁니다.

 

 

황충이 하후연을 단칼에 베이며 전투를 유리하게 이끌었죠.

그 정군산 기슭에 공명의 무덤이 있습니다.

청두의 무후묘보다 50년이나 먼저 만든 오리지널 무후의 진짜 묘가 여기에 있습니다.

촉한의 오호 상장 중 하나이며 조조가 평생 제일 겁을 낸 장수

마초의 무덤이 또 여기에 있습니다.

많은 이야기 속에 등장했던 양평관이 바로 면현이라는 곳에 있습니다.

북으로 올라가는 길인 석문잔도가 또 한중 북쪽에 있습니다.

그리고 고한대라고 유방의 왕궁이 이곳에 있습니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이번 여행에서 모두 보지는 못했지만, 몇 곳은 직접 보았기에

다녀 온 곳은 하나씩 사진으로 보여 드리렵니다.

원래 다 가보려고 했지만, 정군산에 들어갔다 공명의 귀신에게 홀려 그만 길을

잃어버려 시간을 많이 허비하는 바람에 오후 일정을 포기하고 나와야 했습니다.

만약 혼자만 이곳에 왔다면 하루를 더 연장하여 모두 찾아보았을 겁니다.

그러나 함께 움직이는 여행은 혼자만의 욕심으로 다닐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