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달마는 정녕 없나요?
위의 사진은 달마일엽도강이라는 그림입니다.
이 말은 달마가 나뭇잎 하나를 타고 강을 건넜다는 일화를 그린 그림입니다.
뭐.. 달마는 워낙 내공이 깊어 이런 갈댓잎 하나 타고도 장강을 건넜을 겁니다.
갈댓잎 하나로 강을 건넜다는 것은 믿기 어렵지만, 달마는 실존인물임이 틀림없나 봅니다.
달마는 양무제를 만난 후 소림사로 돌아가는 길에 장강을 갈대를 타고 건너는 모습을 많은 사람이
보았다고 하여 그래서 달마일엽도강도가 많이 그려지나 봅니다.
앞으로 우리나라 승려 시험도 내공의 척도는 한강을 갈댓잎 하나만 타고 건널 수 있느냐
없느냐로 하면 어떨까요?
선택이 아니라 필수로 말입니다.
달마가 양무제를 만났을 때의 일입니다.
무제는 자신의 업적을 자랑하며 "짐은 많은 사찰을 짓고 불교를 부흥시켰소, 그러나 당신은
산을 넘고 강을 건너 여기 포교하러 온 것과 비교해 누가 더 큰 공덕을 쌓았다 생각하시오?"
정말 건방진 질문입니다.
공덕이란 이렇게 비교하며 내기하듯 하는 게 아니잖아요?
무제에게 빠떼루 주는 대신 갈댓잎 하나만 주고 장강을 건너라고 하고 싶습니다.
달마는 한 마디로 "공덕은 하나도 없습니다."라고 했답니다.
무제는 화가 나 돌아가는 달마를 추적하여 자객을 시켜 살해해 버렸답니다.
몇 년이 지나 무제는 서역에서 돌아온 사신을 만난 자리에서 어느 고개에서 달마를 만났다는
이야기를 듣고 무제는 당장 달마를 묻었다는 무덤을 파보니 그 안에는 달마는 온데간데없고
짚신 한 짝만 남아있더랍니다.
이런 전설 때문에 달마도를 그릴 때 위의 사진 속의 모습으로 늘 달마가 지팡이에 짚신 한 짝을
매달고 서 있는 척리달마(隻履達摩)의 모습을 주로 그리나 봅니다.
짚신은 삼국지의 유비가 전문인데...
아주 오래된 옛날에 눈이 펑펑 쏟아지던 어느 날...
죄송합니다.
위의 사진은 아주 오래된 그날의 눈 오는 모습이 절대로 아닙니다.
그때는 카메라가 없었기에 아주 오래전의 눈 오는 모습은
절대로 사진으로 찍은 것이 있을 수 없습니다.
먼 인도에서 오랜 세월 동안 수련한 선승 달마가 동굴 속에서 면벽 수도하던 소림사의
어느 도량 앞에 젊은 승려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도량문만 바라보고 서 있었습니다.
그 젊은 승려는 달마의 제자가 되길 간절히 원했건만 달마는 본체만체
좀처럼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습니다.
어찌 이리도 야박하단 말입니까?
하염없이 내리는 눈은 이미 문 앞에 선 젊은 승려의 무릎까지 차올랐으니 달마의 대답은
"돌아가라! 돌아가!!!"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젊은 승려도 좀체 뜻을 굽히지 않습니다.
아니 오히려 더 굳은 의지를 보여주고자 제자로 받아들여 달라고 자신의 한쪽 팔을
잘라버렸고 그러자 온 세상을 하얗게 덮은 하얀 눈 위에 젊은 승려의 팔에서 뿜어져 나오는
선혈이 빨갛게 물들입니다.
달마도 깜짝 놀랍니다.
달마는 얼른 자신의 가사를 찢어서 젊은 승려의 잘린 팔을 감싸줍니다.
그 일화를 보여주는 그림이 바로 위의 사진입니다.
단비구법(斷臂求法)이라...
득도의 길은 이리도 험하단 말입니까?
그럼 팔이 잘린 젊은 승려는 미리 팔을 자르려 칼을 준비했다는 말이 아닙니까?
달마가 받아주지 않을 걸 미리 예상하고...
중국의 구도자는 이렇게도 엽기적인 방법으로 득도의 길로 들어선답니까?
팔이 하나 잘린 외팔이 젊은 승려가 바로 선종의 2대 조실이라는 혜가 스님이라 합니다.
그리고 그 도량은 눈을 맞으며 그 앞에서 있었다고 해 입설정(立雪亭)이라고 불리었다 하네요.
지금 여러분은 바로 위의 사진에 보이는 입설정을 보고 계십니다.
지금 佳人이 사진을 찍은 자리가 아마도 혜가 스님이 단비구법을 했던 자리로 생각됩니다.
바로 혜가가 여기에 서서 내리는 눈을 맞으며 저 안에서 참선에 들어간 달마에게
득도의 길을 가르쳐 달라고 했다지요.
방법이 중국답게 조금 엽기적입니다만, 득도를 향한 의지는 어느 사람도 막을 수 없었습니다.
이 입설정의 원래 이름은 달마를 기리는 일대조라는 의미의 초조암(初祖庵)이랍니다.
또 다른 말로 달마정이라고도 부르고요.
안에는 청나라 황제 건륭이 직접 쓴 설인심주(雪印心珠)라는 편액이 걸려 있습니다.
오늘은 눈이 내리지 않고 단풍이 아름답게 물든 낙엽만 내립니다.
佳人도 저 앞에 서서 내리는 낙엽을 맞으며 달마의 가르침을 얻고 싶습니다.
한참을 서서 바라보니 떨어지는 낙엽이 마치 핏빛으로 물든 그런 모습입니다.
그러나 팔은 자르지 않으렵니다.
팔이 없다면 사진을 찍을 수 없고 여러분에게 보여 드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득도를 위한 정성이라고 하지만, 너무 엽기적인 방법 아닌가요?
상대의 입장은 전혀 배려하지 않고 어찌 그런 일을 벌였단 말입니까?
누가 성불의 길을 알려 달라고 하면 얼른 알려줍시다.
마치 오래전 버스에 올라 면도칼을 내보이며 '한때 잘못된 생각으로 감옥에 들어갔으며
어느 판사의 배려로 출소했다, '고 하며 '지금이라도 나쁜 마음만 먹으면 여러분의 소중한 것
어느 것이라도 요절낼 수 있다.'라고 하면서 도와달라고 이야기하던 그런 일이 생각납니다.
그렇게 볼펜을 파는 방법도 단비구법에서 배웠나 봅니다.
그리고 소림의 승려들은 그때부터 피로 물든 달마대사를 기리기 위해 대대로
붉은 승복을 입는다는 것이라 하네요.
혜가 스님은 달마대사의 가사를 너무도 붉게 물들였나 봅니다.
지금 도를 얻기 위해 얼마나 많은 승려가 자신의 팔을 자를 수 있습니까?
가르침을 받기 위해 얼마 동안이나 눈 내리는 도량 앞에 서 있을 수 있습니까?
팔을 자르는 대신 혹시 지금도 권력에 기웃거리고 내 주머니 채우는 일에 팔을 걷고 있지나 않습니까?
팔이 없으면 양주도 마시기 어렵고 고스톱도 못하니까 요즈음 승려는 단비구법을 할 수 없겠네요.
그래서 언제 성불하시겠습니까?
이게 비단 어디 승려에만 해당하는 말이겠어요?
과연 지금의 종교인은 민초를 위한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너나 잘하라고요?
그렇군요.
정치하는 사람이 정치 잘하고 종교인이 모법적인 신앙생활을 할 때 세상은 편해지는데
요즈음은 민초가 오히려 그런 사람을 걱정하는 세상이 되어버렸습니다.
佳人은 누구의 가르침을 얻기 위해 눈이 내리는 벌판에 서 있습니까?
또는 당신은 누구의 가르침을 들으려 서 계십니까?
지금 누가 눈 내리는 문밖에 서서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까?
득도의 길은 멀고 오랜 시간이 걸려 얻는 게 아닌가 봅니다.
바로 내 마음 안에 성불의 길이 있지 않을까요?
벽만 바라보고도 달마는 득도를 했다고 하는데 룸살롱에서 양주 마시며
득도하지 말라는 법이 있겠어요?
고스톱을 치며 득도하려는 승려도 많잖아요.
달마를 그릴 때는 늘 못난 얼굴로 그립니다.
사실 달마가 佳人처럼 추남이었을까요?
아니랍니다.
달마는 원래 엄청나게 잘생긴 미남이었답니다.
어느 날 못생긴 신선 친구와 함께 길을 가다가 어느 정자나무 아래 이르자 잠이 쏟아져
두 사람은 나무 아래서 한숨 자고 가기로 했다네요.
달마대사는 잠을 잘 때 신기하게도 육신은 그대로 두고 혼만 빠져나와 세상을 살피곤 했답니다.
몽유병 환자도 달마대사와 비슷하다고 빡빡 우기지만, 근본이 다를 겁니다.
한참이 지나 다시 자리로 돌아와 보니 짓궂은 신선 친구가 몸뚱어리를 바꾸어 떠나버렸답니다.
이게 바로 페이스오프가 되는 겁니까?
페이스오프가 아니라 그것보다 엄청나게 더 어려운 보디오프인가요?
중국은 이미 오래전부터 페이스오프라는 놀이를 했기에 페이스오프의 역사 또한
오래되었나 봅니다.
이때부터 달마는 추남의 얼굴로 살았다 합니다.
그런데 친구 신선도 만만한 사람이 아니었나 봅니다.
달마만 잠을 잘 때 혼이 나오는 게 아닌가 봅니다.
당시는 개나 소나 모두 그런 놀이를 했나 봅니다.
육조당이라는 건물이 있네요.
여기는 중국 선종의 시조인 달마로부터 여섯 분의 지도자를 모신 곳입니다.
왜 여섯 분만 모셨을까요?
육조란 바로 보리달마로부터 시작된 계보라고 봐야 하겠네요.
중국의 선종은 이렇게 맥을 이어왔나 봅니다.
팔을 잘라 구도를 했던 혜가는 그 때문에 넘버 투가 되어 한자리 당당하게 차지했습니다.
혜가 선사는 당연히 그럴 자격이 있습니다.
한약을 파는 약방도 소림사 안에는 있네요.
정말 신기한 일이 무척 많습니다.
우리와는 같은 종교지만, 우리와는 또 다른 모습입니다.
여기서 약을 지어먹으면 만병을 모두 물리칠 것 같습니다.
사이비 의료행위라고요?
이곳 벽면에 동전 붙이는 놀이를 하는 곳인가 봅니다.
중국은 사찰에 가면 이런 놀이를 자주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영험한 조벽인지, 아니면 그냥 장난인지...
소림사에서 예전에 물을 긷던 우물입니다.
지금은 모두 수도시설이 되어있어 물 긷는 일은 더는 하지 않을 겁니다.
이런 일은 주로 초보 인턴 스님의 몫이 아닐까요?
세상이 발달하면 할수록 인턴의 삶은 편해지는 겁니까?
이제 우리는 소림사를 떠나 이상한 경험을 합니다.
내일은 그곳으로 가보렵니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다르다는 것과 틀린다는 것은 분명 구분해야 합니다.
나와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은 틀린 게 아닙니다.
다른 생각을 하는 겁니다.
세상을 선과 악으로 구분한다는 일은 분명 갈등만 불러옵니다.
만약, 그런 생각을 한다면, 오만과 독선이라고 할 수 있지요.
우리 사회는 언제부터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을 틀린 사람이라 생각하고 살게 되었을까요?
다르다는 생각을 할 때는 이해와 포용과 인정을 하게 되지만,
틀린다는 생각을 할 때는 배척과 질투와 편 가르기만 있습니다.
틀린다고 생각할 때 오만과 독선이 따르고
다르다는 생각을 할 때는 미소와 인정을 하게 됩니다.
나만 옳다는 생각은 분명 잘못된 생각입니다.
세상은 나 혼자만의 세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라도 다른 사람의 생각을 다르다고 인정할 때 우리 사회도
한층 성숙한 사회로 나가지 않을까 생각되네요.
그러나 佳人은 아직도 다름과 틀림을 구분하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