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기행/삼국지 기행

그곳은 끝이며 시작이었다네..

佳人 2012. 12. 12. 08:00

어제에 이어 오늘도 노룡두의 모습을 더 살펴보려고 합니다.

우리는 지금 그 길고도 긴 만리장성의 끝자락을 향해 걸음을 옮기고 있습니다.

만리장성을 처음 걷는 것은 아니지만, 이곳은 다른 곳에 비해 그 느낌이 사뭇 다릅니다.

장성이라고 모두 같은 느낌이 아닌가 봅니다.

 

이제 노룡두라는 장성의 끝이 있는 바닷가로 내려갑니다.

내려가는 곳에는 처음 이곳에 성벽을 쌓을 때 진흙을 다져 쌓았던 모습이 그대로 속살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 모습은 유리로 덮고 그 위로 나무계단을 만들어 넘어갈 수 있도록 했네요.

 

그럼 흙을 다져 만든 만리장성의 주둥이 부분의 속살을 잠시 살펴보고 갈까요?

정말 뽀얀 속살로 부끄러워 감추려고 합니다.

그러니 속은 흙으로 다져 채우고 외부는 벽돌이나 돌로 쌓은 게 만리장성인가 봅니다.

 

어디 위에서만 봅니까?

보여주지 않으려는 것은 더 보고 싶습니다.

이번 사진은 옆으로 돌아가 본 모습입니다.

성벽 제일 위의 유리로 덮은 진흙이 바로 그 부분입니다.

바깥으로 벽돌을 쌓아 만든 것이 분명히 보이네요.

 

계단 아래에서 오른쪽을 바라보니 비석 하나가 서 있습니다.

그 비석에는 천개해악(天開海岳)이라는 글이 새겨져 있습니다.

그리 썩 잘 쓴 글이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아니?

중국 여행 몇 번 왔다고 佳人이 이런 말을 하다니요.

스스로 빠떼루에 들어가겠습니다.

 

이 비석은 청석으로 된 비석으로 누가 언제 썼다는 내용이 남아있지 않습니다.

다만. 명나라 때 쓴 것으로 추정한다 합니다.

높이가 3m 정도의 비석으로 이 말의 의미는 이곳이 바로 하늘을 여는 바다와 산이라는 의미일 듯합니다.

 

이 세상이 하늘로만 구성되어 있다면, 어찌 하늘이 열리고 닫힘을 알 수 있겠는가.

하늘은 바다와 산악과 맞닿아 있어서 하늘의 끝이 보이고, 하늘의 열림을 알 수 있다는 것.

결국, 산해관을 쉬운 말 말고 다른 말로 풀어 어렵게 쓴 게 아닐까요?

 

이곳에 서서 바다를 바라봅니다.

지금 바로 만리장성의 끝이 보입니다.

우리는 바로 만리장성의 시작이요 끝이라고 하는 곳에 섰습니다.

세상의 시작과 끝이라고 해도 되지 않겠어요?

 

서쪽에서 수천 km를 달려 그 끝이 보이는 곳에 지금 佳人이 서 있습니다.

여러분도 佳人과 함께 만리장성의 끄트머리를 바라보고 계십니다.

만리장성의 다른 곳과는 또 다른 느낌이 오는 곳입니다.

 

지금까지 보아왔던 산위에 만든 장성이 우람한 남성이라면, 여기는 다소곳한 새색시의 모습입니다.

같은 장성이라도 어디에 있냐에 따라 그 느낌이 사뭇 달라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이유는 佳人이 쓸데없는 생각을 많이 한다는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눈물을 흘렸습니까?

또 얼마나 많은 사람이 피를 흘리고 목숨을 잃었습니까?

땀을 흘리라 했고 마지막으로는 피를 요구한 게 만리장성이 아닌가요?

과연 이 구조물이 인류에 자랑스럽게 내놓을 걸작이라 할 수 있습니까?

 

이렇게 만든 만리장성은 과연 한족을 안전하게 지켰습니까?

이게 중국사람의 개방과 세계화를 가로막는 장벽은 되지 않았습니까?

사람은 늘 창문이 생긴 모습대로 세상을 바라본다 했습니다.

나를 지켜준다는 믿음으로 만든 담장은 결국, 중국인을 우물안의 개구리로 만들지나 않았나요?

그 끄트머리에 서니 많은 생각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갑니다.

 

이제 다시 입해석성(入海石城)이라는 곳으로 나아갑니다.

바로 저 앞이 만리장성의 시작이며 끄트머리네요.

그리고 유일하게 바다 위에 쌓은 만리장성이기도 하고요.

 

1579년 명나라 만력 7년 군사령관 척계광의 명에 의해 수하장수인 오유충에 의해 건축되었답니다.

폭이 8.3m, 높이가 9.2m, 그리고 바다로 22.4m 진입한 규모라고 합니다.

모두 9층으로 돌을 쌓았고 4, 5, 6번째는 처음 쌓았던 돌구조로 예전의 축성기술을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사용된 돌은 화강암이고 돌 두 개를 각각 위의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홈을 파고 그 홈에 쇠를 녹여 결합하는

방식으로 하나로 연결해 쌓았다 합니다.

이는 옛날 사람의 바닷물 속에서의 축성기술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알 수 있는 것이라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훌륭한 기술이라도 세월의 힘 앞에는 이기는 장사 없어요.

지금 바닷가에는 그 위대한 기술이 그대로 방치되어 뒹굴고 있습니다.

그럼 위에 전시된 돌은 위대한 조상의 유적이고 저 바다 아래에서 파도와 씨름하며 무수한 세월을 파도에

얻어맞아 가며 시퍼렇게 멍이 들어 눈물 흘리며 견디는 저 돌은 그냥 돌입니까?

 

위의 사진은 정로대(靖鹵臺)라고 부르는 망루입니다.

정로 1호적대(靖鹵一號敵臺)로 적대라 하면 적의 동태를 살피는 누대를 말합니다.

그러니 여기가 1호 적대로 중국이 만리장성 밖 다른 나라를 감시하는 시작점이라고 알려졌습니다.

명대 가정 44년 주사 손응원이 건설한 것으로 융경 4년 척계광이 정로대라 개명했답니다.

바로 여기가 만리장성의 수많은 파수대의 시작점이라 봐야 하겠네요.

1987년 개축되며 그 높이가 17m에 이르고 만리장성의 수많은 망루 중 유일하게 바다 위에 만든 망루로

그 가치를 인정해야 하겠습니다.

 

이제 만리장성의 동쪽 끝이며 시작점이라는 노룡두에 섰습니다.

더는 만리장성이 없습니다.

이제 더는 발걸음을 옮길 수 없습니다.

천하의 끝이며 중국의 끝은 여기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그런데 왜 요즈음 엿가락 늘이듯 장성이 자꾸 늘어나는 겁니까?

혹시 우리가 모르는 바다 밑에 비밀이라도 있는 것 아닙니까?

저 앞에 보이는 바닷속으로 말입니다.

그 밑으로 비밀리에 장성이 연결되어 세상의 땅이 모두 중국의 영토고 역사로 변해가지나 않습니까?

누가 보아도 시작과 끝은 여기가 분명한데...

 

노령두 성벽 아래에 문이 하나 있습니다.

그 이름이 남해구관(南海口關)이라고 합니다.

명나라 홍무시기에 건설한 문으로 바다와 육지 방어를 위해 병사가 드나들었던 문입니다.

그러나 청대 말에 훼손되어 모래 아래 파묻혀버려 잊혔지만, 1987년 노룡두장성을 재건하며 10여 m 깊이에서

유적을 발견하고 원래 모양으로 복원하였다 합니다.

 

사실 노룡두장성의 건설은 북방 기마민족인 만주족의 침입을 두려워 쌓은 장성입니다.

장성 끄트머리의 바다를 돌아오면 쉽게 들어올 수 있지만, 만주족은 이 정도의 물도 두려워했을까요?

 

만리장성의 유명한 관문을 열거하라면 거용관, 가욕관 그리고 산해관을 들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사실 제일 첫머리에 있는 남해구관도 무시해서는 안될 것 같습니다.

작지만, 강한 놈... 바로 남해구관이 아닐까요?

 

혹시 맹씨네 집에 흥부와 놀부의 이야기에 나왔던 제비가 물어다 준 박씨가 재크와 콩나무처럼 무럭무럭 자라 

이웃집 밭인 강씨네로 넘어가 자랐다고 하여 맹강녀라고 이름 짓고 나중에 만리장성 축성에 끌려나가 죽었다는

사랑하는 서방을 그리며 심청이처럼 바다에 몸을 던진 곳이 여기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여러 이야기를 비벼 만든 이 도시 북쪽에 있다는 맹강녀묘는 이번에 가지 못할 것 같습니다.

 

노룡두의 모습을 천천히 돌아다니며 대부분 보았습니다. 

이제 발걸음을 옮겨 바로 옆에 보이는 해신묘라는 곳을 찾아가렵니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노룡두는 만리장성의 끝이며 시작점이 분명합니다.

중국은 만리장성을 용으로 여겼고 그 머리 부분을 여기에 만들어 놓았으니까요.

그리고 외부 적의 동태를 살피는 망루를 만들고 그 이름으로 1호 적대라 칭했으니 만리장성의 시작점이 확실합니다.

자꾸 늘이려는 의도가 무엇일까요?

그러면 더 폼이 나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