佳人 2012. 12. 13. 08:00

 

노룡두는 산해관에서 동남쪽으로 약5km 정도 떨어진 바닷가에 있네요. 

그리고 해신묘라는 곳은 노룡두 바로 아래 있습니다.

아마도 바다를 오가는 사람이 풍랑으로부터 안전하게 지켜달라는 의미로

제사지내던 곳이 아닐까요?

 

바다 위에도 장성을 쌓으면 좋으련만 중국은 아직 그런 기술은 없나 봐요.

이제 더는 갈 곳이 없어 조형물로 만든 곳이 여기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래서 이곳에는 노룡두(老龍頭)라는 멋진 이름을 붙여주었습니다.

노룡두라고 하는 말은 늙은 용 대가리라고 하기보다

거대한 용 대가리라고 해야 맞는 말일 듯합니다.

 

 

해신묘로 가는 길에는 가을의 전령사인 코스모스가 가냘픈 허리를 하늘거리며 우리를

반겨주며 우리의 즐겁고 안전한 여정을 기원하며 손을 흔들어주는 듯합니다.

해신묘도 바다를 향해 뱃사람의 안전을 기원하는 듯하네요.

 

중국은 용을 환장하리만큼 좋아하는 나라로 황제를 용에 비유하고

동네 이름이나 산 이름에 용이 들어가지 않으면 이름을 지을 수 없지요.

심지어 다랑논마저도 용의 허리라고 용척이라고 하잖아요.

중국에서 용을 빼면 아마도 중국 전체가 대부분 이름없는 곳이 될 겁니다.

중국은 정말 꿈속에 살았던 나라였나 봅니다.

그래서 뻥이 센 나라라고 하는 말이 맞나 봅니다.

 

 

장강도 황하도 모두 용의 모습이고 만리장성도 용에 비유한다고 하더군요.

이곳에는 중국의 진실이 숨어있습니다.

요즈음 역사 왜곡이니 뭐니 말들이 많지만,

여기 중국이 자랑하는 가장 기다란 용 한 마리가 발해만에

머리를 들이밀고 숨도 쉬지 않고 있네요.

 

 

왜? 숨조차 쉬지 않고???

역사 왜곡이나 하는 후손이 부끄러워 차라리 바닷물에 머리를 감추고 있는 게 편해서일까요? 

노룡두는 명나라 시기에 만든 곳이라 하더군요.

노룡두의 명칭은 사람들이 만리장성을 한 마리의 거대한 용으로 비유한 데서

유래하였다고 봐야 하겠네요.

이 용은 서쪽으로 나아가 높은 산과 험준한 골짜기를 지나 하천과 사막을 가로지르고

아득히 먼 서북쪽으로 닿게 되겠지요.

명나라 까지는 중국의 역사는 만리장성 안이라는 명백한 증거가 아니겠어요?

 

 

장대가 보이고 그 위에는 서달장군이 앉아있습니다.

서달장군이라면 바로 주원장을 도와 22살 때 대장군으로 원나라를 무너뜨리고

명나라를 세운 개국공신이 아닌가요?

게다가 만리장성을 넘어 도망가는 원나라군을 집요하게 따라가 궤멸시킨 독한 장군으로

알려졌으며 그런 연후에 여기로 와 바로 산과 바다를 가로지르는 성벽을 쌓고

그 이름을 산해관이라 이름 지은 장본인이랍니다.

바로 서달이 만리장성의 시작은 여기라 했고 중국의 영토는 이 성벽 안으로 정한 사람이지요.

주원장도 모르고 서달도 모르는 역사를 지금 중국은 장성 밖으로 창조하고 있지요.

 

 

어떻게 아느냐고요?

佳人이 장대에 올라 말춤을 가르쳐주며 물어보았습니다.

어디부터 중국의 역사고 땅이었느냐고요.

누구에게 물어보지 않아도 여기에만 서면 모두 저절로 알게 되잖아요.

 

 

그 앞쪽으로 해신묘를 만들어 바닷속으로 들어가는 다리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위의 사진에 보이는 건물이 바다의 포세이돈이라는 해신을 모신 곳이고 그 뒤로는

여신인 천후를 모신 천후궁이 있습니다.

그러니 바다를 관리하는 두 신을 한꺼번에 모셔놓고 아무나 놀고 있는 신이 도와달라는

의미겠지만, 그런데 아무리 신이라도 남녀를 같이 둔다면?

신이기에 괜찮겠지요?

 

 

노룡두는 만리장성의 중요한 구성 부분 중의 하나로, 성 북쪽의 각산산성(角山山城)과

성 동쪽의 위원성(威遠城)과 함께 독특한 각도를 이루어 산해관성을 둘러싸고 있답니다.

각산상성은 글자 그대로 산 위에 뿔이 난 것처럼 생겼다 하여 붙인 이름이라네요.

그러니 여기 노룡두와 함께 생각해 보면 용의 머리는 여기에 있고 용의 뿔은

바로 저기 산성에 돋아나 있다고 봐야 하나 봅니다.

그런 이름을 붙인 의미는 그곳 모습이 마치 용의 뿔처럼 생겼던 모양입니다.

그걸 갈아 마시면 용각산이 되나요? 

 

 

명나라 초 홍무년간에서 명나라 말기의 숭정년간에 이르는 260여 년 동안

노룡두는 끊임 없이 보수되었으며, 이러한 과정을 거쳐 차츰 지금의 완벽한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고 하네요..

청대에 와서 나라가 만리장성 안팎으로 모두 통일되자, 노룡두는 군사방어의 역할 대신

황제, 왕후장상, 문인, 협객들의 관광 명승지로 탈바꿈하게 되었다네요.

 

 

 북방민족인 청나라에는 만리장성이라는 존재가 거추장스러운 걸림돌이 맞을 겁니다.

그렇다 보니 만리장성이란 중원에 터를 잡고 살았다고 자부하며 살아온 한족에게나 중요한

건축물이지 주변의 다른 민족에게는 무척 불편하고 부숴버리고 싶은 그런 구조물이 맞나 봅니다.

 

 

해신묘란 아마도 바다를 터전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여기서 신을 모셔놓고

제사라도 지냈을 것 같습니다.

흔히 해신묘라고 하지만, 남신을 모신 해신묘와 천후라는 여신을 모신 천후궁이

나란히 노룡두 아래 서남쪽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천후, 해신묘라고 해야지 왜 해신묘라는 이름을 사용합니까?

이것도 여성부에서 알면 여성차별이라고 트집잡을 텐데...

중국은 아직 여성부가 없나 봅니다.

 

 

우선 인공위성에서 본 노룡두의 모습입니다.

왜 하늘에서 보아야 하나요?

바로 여기가 만리장성의 시작이며 끝이라는 것을 확인해 보기 위함입니다.

장성은 바로 여기서 시작했음이 분명하고 더는 갈 곳이 없다는 것이 확실해지잖아요.

 

이제 해신묘도 보았으니 서달장군 뒤로 난 오솔길을 따라 만리장성의 끝을 관리했던

영해성의 서문을 통하여 안으로 들어가 봅니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청나라가 중원을 장악한 후, 강희, 옹정, 건륭 등의 황제가 여러 차례 노룡두를 다녀갔으며,

그 중 건륭황제는 4차례에 걸쳐 이곳 누각에 올라 바다를 조망하며 많은 시문을 남겼다네요.

청나라 황제는 풀방구리 쥐드나들 듯 여기를 자주 찾아왔나 봅니다.

 

아마도 조상이 처음 중원으로 문을 연 곳이라 아무래도 감개무량했나 봅니다.  

그냥 구경 온 우리 같은 일반 여행자도 노룡두에 올라 드넓게 펼쳐진 넓은 바다를 바라보면,

이 유일한 해상 만리장성의 시작이며 끝 지점의 웅장한 자태를

한눈에 담을 수 있어 또 다른 느낌이 드는데 하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