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룡점정(畵龍點睛)
동서양을 막론하고 상상의 동물인 용이 있지요.
여행을 하며 다니다 보니 많은 용을 자주 보게 되는데 동서양이 모두 용을 현실적으로
받아들이기에 용이라는 동물은 세상 어디에서나 쉽게 만날 수 있습니다.
다만, 동양에서는 용을 상서로운 동물로 생각해 좋은 의미로 알고 있어 주로 황제나 군주의
상징이고 군주의 얼굴을 용안이라고 부르거나 입는 의복을 곤룡포니 머니 하며
용에 비유한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서양에서는 동양과는 많이 다른 동물로 취급하더군요.
사양에서는 용은 악의 상징으로 보는데 이는 용맹한 기사가 용을 무찌른 이야기가
많이 전해 내려 오더군요.
전해오는 말 중 화룡점정(畵龍點睛)이라는 말이 있지요?
용을 그린 다음 마지막으로 눈동자를 그린다는 뜻으로 가장 요긴한 부분은 마지막으로
처리함으로 일을 완성하거나 끝마친다는 의미일 겁니다.
중국 남북조 시대에 장승요(張僧繇)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용 그림을 아주 잘 그렸답니다.
그의 용 그림은 이미 신의 경지에 올라 세상에 그의 이름이 널리 알려졌었답니다.
양 무제는 그가 용을 잘 그린다는 말을 듣고 금릉(金陵 : 지금의 남경)에 있는
안락사라는 절의 벽에 네 마리의 백룡을 그리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네 마리의 백룡은 모두 눈동자를 그리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이상히 여겨 물었습니다.
"선생님은 용 그림을 아주 잘 그린다고 소문이 자자한데 어째서 용의 눈동자가 없습니까?
용의 눈동자를 그리기가 그렇게 어려운가요?"
장승요가 사람들의 질문에 조용히 답을 합니다.
"눈동자를 그리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내가 만약 눈동자를 그려 넣으면 용이 살아나 벽을 부숴버리고
하늘로 날아오를 겁니다."
어멈! 이게 무슨 소리입니까?
지금 비웃을 준비하시고 계시죠?
사람들은 장승요의 이 말을 들으니 더욱 궁금해지는 겁니다.
정말 용이 살아나 하늘로 오르는 모습이 보고 싶은 겁니다.
그래서 자꾸 장승요에게 눈동자를 그려 줄 것을 간청하기에 이릅니다.
워낙 많은 사람이 요청하자 장승요도 더는 사양하기가 미안해집니다.
장승요는 하는 수 없이 붓을 들어 우선 두 마리 용의 두 눈을 그리니
갑자기 천둥 번개가 치며 폭풍우가 몰려오고 그와 동시에 방금 눈동자를 그려 넣었던
두 마리의 용이 담장을 박차고 하늘로 높이 솟아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아직 눈동자를 그리지 않은 두 마리의 용만 담장에 그대로 남아 있는 겁니다.
물론, 중국에서만 있을 수 있는 일이 생긴 게지요.
이제 비웃으셔도 좋습니다.
중국의 이야기는 이렇게 너무 황당하기에 더 재미있지 않나요?
사람들은 그제야 장승요의 말을 믿게 되었다 합니다.
이 이야기는 당나라 장언원의 역대 명화기라는 책에 기록되어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화룡점정이라는 말은 이미 진나라 때부터 쓰인 말이라 하니 중국도 어느 게
오리지널인지 혼란스러운가 봅니다.
그런데 왜 이런 황당한 이야기가 옛날에만 있었고 지금은 일어나지 않는 겁니까?
지금의 화가는 옛날 화가만 못하기 때문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