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안으로 갑니다.
2012년 10월 30일 여행 12일째
오늘은 뤄양에서 시안으로 이동합니다.
위의 사진처럼 천자 전용 마차를 타고 가느냐고요?
그랬으면 얼마나 좋겠어요.
마차는 사양하고 기차 타고 갑니다.
시안으로 가는 기차는 10시 23분 출발이라 아침 일찍 일어나 뤄양 시내를 산책했습니다.
옆길로 접어드니 사람도 차도 많지 않고 나무도 우거져 있더군요.
함께 온 친구에게 아침 일찍 어제 우리 부부만 다녀온 주왕성천자가육박물관
周王城天子駕六博物官館)을 다녀오라 했습니다.
그곳은 기차역 광장에서 별로 멀지도 않고 걸어서도 다녀올 정도의 거리기에...
대신 우리 부부는 그냥 시내를 걸어서 시티 투어를 하고요.
시내를 걸어 구경하다가 과일 파는 부부가 있어 몇 가지 과일을 사 배낭에 넣습니다.
우리가 한국인임을 알고 커다란 홍시 하나를 덤으로 건네줍니다.
우리 부부가 어디 마다합니까?
둘이서 아주 맛나게 먹었습니다.
숙소로 돌아와 배낭을 챙겨 기차를 타러 갑니다.
기차는 예정시각을 40분이나 연착한 11시경에 출발하네요.
시안에 도착은 4시 10분에 했으니 5시간이 걸렸네요.
시안으로 가는 기차 안에서의 일입니다.
우리가 앉은 자리 옆에 영어를 하는 중국 군인을 만났습니다.
중국 군인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독도이야기가 나왔지요.
중국 군인은 한국 총통의 독도방문을 알고 있다고 하며
엄지손가락을 들어 멋진 일이라 하네요.
그러면서 중국의 지도자는 왜 조어도를 가지 않느냐고 하더군요.
한 나라의 지도자라면 한 움큼의 땅도 내어주어서는 안 되며 지켜야 한다고 하네요.
군인이기에 영토를 생각하는 일은 다른 젊은이와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더군요.
가방에 넣고 다니는 佳人의 이번 여행의 주제인 독도에 관한 글을 꺼내 들고
함께 기념사진 한 장 찍습니다.
그 젊은 군인은 자기의 휴대전화로 동료에게 방금 우리의 일을 문자로 보냅니다.
그리고 佳人이 글을 든 모습을 휴대전화기 사진으로 찍어 동료에게 알리겠답니다.
문자의 글은 무슨 말이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독도는 한국땅이고 조어도는
중국땅이라는 것만 알 듯합니다.
이제 몇 사람의 중국 군인들도 독도는 한국땅임을 알게 했나 봅니다.
이렇게 佳人의 여행은 엉뚱합니다.
시안은 공명에는 무척 많은 생각이 들게 하는 도시일 겁니다.
그때는 장안이라고 불렀겠지만...
공명의 북벌은 일차 목표가 바로 장안을 점령하는 일이었을 테니까요.
그다음이 뤄양이었을 겁니다.
우리는 바로 공명이 염원했던 그 땅을 역순으로 가는 중입니다.
그러나 공명은 결국, 장안의 코앞인 오장원까지 밀고 올라왔지만, 결코 장안은
발을 딛지 못하고 가을바람 소슬한 날 오장원에서 눈도 제대로 감지 못한 채
하늘의 별이 되고 말았습니다,
공명은 이곳을 발도 딛지 못했지만, 우리는 두 발로 마음껏 활보할 생각입니다.
우리가 시안으로 가는 이유는 시안의 유명 관광지를 가기 위함이 아닙니다.
시안이라는 도시는 워낙 오래된 역사적인 도시기에 무척 많은 유적과 뮤물이 남아있는
곳이고 이미 6년 전인가 여행사를 따라 단체여행을 와 비림, 화청지, 시안성벽, 대당부용원,
그리고 병마용과 진시황 무덤까지 보았기 때문에 이번에는 가지 않으려 합니다.
다만, 그때 다녀온 사진이 그대로 있어 당시에 돌아본 모습을 여기에 여행기처럼 올려보렵니다.
시안은 이번 여행에서는 오장원으로 가기 위한 중간 기착점으로 생각하고
잠시 쉬었다 가려고 합니다.
왜?
시안은 삼국지 기행을 하기 위한 유적이 별로 남아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이번 여행에서 우리에게 시안은 비중이 아주 적은 곳이지요.
그리고 시안은 아주 오래된 세계적인 고도이기 때문에 이미 많은 한국인이
이곳은 들린 곳이기에 많이 알려진 곳이지요.
그만큼 시안은 볼거리가 많은 곳이라는 말이겠네요.
이곳은 두 밤을 자고 가렵니다.
서안역에 내려 우선 모레 갈 공명의 한이 맺힌 장소 오장원으로 갈 기차표를 잉쭤로
15원/1인 예매하고 내일은 박물관 구경을 하고 이슬람 거리를 구경하고
그냥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다니렵니다.
숙소를 대안탑 부근으로 정해야 박물관도 가깝고 오늘 밤에 분수쇼도 쉽게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일단, 시안역 광장 건너편에 남쪽으로 뻗은 도로로 건너가 대안탑으로 가는
버스를 찾아보니 5번 버스가 갑니다.
버스는 광장 북쪽에서 내렸고 광장을 끼고 돌아 남쪽으로 갑니다.
그곳에 숙소가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제부터 시안을 떠나면 본격적으로 공명의 북벌 루트를 구경할 듯합니다.
시안은 동탁과 여포 그리고 초선의 이야기가 가장 재미있는 이야기일 듯합니다.
관우와 무예를 견줄 만한 장수는 누가 있을까요?
정말 삼국지에 출연한 모든 장수 중 여포만 한 싸움꾼은 없었나 봅니다.
아마도 관우를 능가하는 싸움꾼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천하의 영웅 여포도 초선이라는 여인을 가슴에 안았을 때 약간의 비음이 섞인 초선의
짧고 가냘픈 소리인 "아~'라는 소리와 함께 안타까움에 길게 내쉬는 한숨 소리에 그만
뻑~ 소리 나게 가버렸다는 것이 아닙니까?
그리고 초선은 여포의 손안에 파르르 떠는 한 마리 어린 새처럼 말했지요.
"온 천하에 많은 영웅이 있다고 하지만, 저는 영웅은 장군 한 사람뿐이라고만 생각하고
살고 있어요. 저를 어여 빨리 마귀와 같은 동탁의 손아귀에서 빼내 주세요."
여포의 품에 안긴 초선의 모습은 솜사탕보다도 부드럽고 아이스크림보다도
더 달콤한 모습이 아니겠어요?
고개를 살며시 돌려 꼬며 여포를 여보라 부르는 바람에 여포 쟤는
정신이 그만 나가버렸다는 게 아닙니까?
사내란 이렇게 여자를 품었지만, 사실 마음은 여자의 품 안에서 놀고 있는 겁니다.
초선이 쟤 나이는 어려도 푸로예요.
누구나 초선이에게 걸리면 뻑소리나게 갈 수밖에 없습니다.
초선이는 하늘이 보낸 꽃뱀일까요?
자고로 '영웅은 미인의 관문을 넘기 어렵다(英雄難過美人關).'라고 합니다.
佳人은 영웅이 아니기에 이런 문제에서는 무척 자유롭습니다.
스스로 영웅이라 생각하시고 살아가시는 분들...
미인은 언제나 당신의 앞길에 태클을 걸고 들어올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나중에 이 세 사람의 삼각 관계도 이야기를 들어보렵니다.
시안은 참 오래된 역사의 도시라 해야겠지요.
아테네, 로마, 카이로와 더불어 세계 4대 고도 중 한 곳이라 하니...
중화민족의 문명발상지 중 한 곳이며 진, 한, 당 등 13개 왕조의 도읍지였고 천 년 실크로드의
동쪽 출발지이기에 역사적으로 제법 그럴듯하게 등장한 시기가 바로 진시황이
중원을 통일하고 함양에 도읍으로 삼았다 했다지요?
그 후 서안은 한나라에 들어오며 장안이라 했고 장안이란 의미는 수도라는 의미일 겁니다.
오래도록 편안하게 길게 살고 싶어 이름을 그리 지었나 봅니다.
그러다 보니 이곳만큼 역사적인 유물이 많고 이야기가 많이 남아있는 도시도 흔하지 않은
곳이며 그러다 보니 시안은 골목마다 이야기가 남아있고 거리마다
그때의 풍경이 그대로 남아있는 듯합니다.
한나라가 이곳에 도읍을 정하며 중국을 대표하는 漢이라는 단어가 시작된 곳이기도 합니다.
그 후 유방의 한나라가 이곳의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미적거리며 있었지요.
그러나 유방의 후손이 이곳의 地氣가 다 빠져버렸나, 영 힘을 쓰지 못하고 빌빌거리며 우리에게도
널리 알려진 영웅들이 나타나 개나 소나 모두 영웅이라고 영웅놀이를 했던 삼국지의 이야기가
시작되며 우리 부부의 이번 여행 중 대부분은 삼국지에 나타난 지방을
기웃거리는 일이기에 아주 적당한 도시네요.
그러나 삼국지에 장안이란 곳은 무척 중요한 도시였지만, 이야기의 비중은 크지 않아 보이네요.
원래 땅의 기운이 빠지면 도읍으로는 그 운이 다했기에 옮겨야 합니다.
안식년이라고 산도 입산금지 하고 잠시 쉬게 해야 하고 농사도 다른 품종으로 바꿔주어
쉬게 해야 하는데 단물 다 빠지니 도읍을 뤄양으로 옮겼다가 조조는 마침내
자기 고향이나 마찬가지인 쉬창으로 옮겼지요.
그 후 세월이 지나 안식년이 끝났다고 당나라는 이곳 장안으로 도읍을 다시 옮겨옵니다.
그동안 충전이 풀로 되었다는 말이겠지요?
그래서 그랬나 봐요.
성당시대니 뭐니 하면 중국 역사상 대단히 목에 힘을 주며 세상을 호령했지요.
그러나 그 후 다음 정권이 들어서며 다른 곳이 더 땅의 기운이 세다고 여기는
거들떠보지도 않으며 여기도 다시 안식년이 주어졌다는 말이고 아마도 다음 정권에서는
다시 이곳으로 도읍을 옮기려 하지 않겠어요?
중국 정부가 이 소리를 듣는다면 기겁하겠지만...
오래된 고도라 역시 볼 게 많은 곳입니다.
우선 진시황의 유물인 병마용을 비롯해 온전히 남아있는 성벽, 실크로드의
출발지이며 종착지, 동양인에게 큰 영향을 끼친 현장법사의 불교문화의 발상지...
시안은 유물의 백화점입니다.
시안에서의 이야기는 예전 2006년경에 佳人이 부부동반으로 여행사 단체여행을
따라온 적이 있었고 중국에서 처음 땅에 발을 디딘 곳이 시안이었습니다.
여러모로 佳人에는 인연이 많은 곳입니다.
그래서 이번 여행에서는 그때 다녀온 곳은 당시 다녀왔던 사진을
재활용하며 이야기를 할까 생각 중입니다.
비싼 입장료 내고 또 들어가 봐야 크게 다를 게 없다는 생각입니다.
역사가 오래된 도시에다가 유럽과의 교역으로 동양에서는
유행의 첨단을 걸었던 도시였을 겁니다.
중화민족 발상지 중 한 곳인 반파유적지가 있어 6천 년 전의 고대인의 모계씨족 사회의
생활모습을 볼 수 있고 완벽하리만큼 온전하게 남아있는 시안성벽이 있는 곳입니다.
현장법사가 천축에 다녀오며 불경을 가져다 번역한 곳이 대자은사고 현종과 양귀비의
로맨스를 우두커니 지켜본 화청지도 있답니다.
진시황의 병마용은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유명한 유적이지요.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삼국지라는 이야기의 시작은 유방이 세운 한나라의 말기에 나라가 어지러워지며
여러 군웅이 활거하며 황실이 이리저리 휘둘리며 시작된 이야기입니다.
이곳 시안은 당시 장안이라 불렸고 이곳에서 시작한 한나라를 서한, 또는 전한이라
부르고 왕망에 의해 잠시 숨을 고르다 뤄양으로 도읍을 옮기며 한나라의 맥이
다시 이어지는 시기를 동한 또는 후한이라 구분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유비가 세웠던 촉한도 있다는군요.
비록 마이너리그에서 놀았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