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기행/삼국지 기행

광위엔에서 검문관으로

佳人 2013. 5. 29. 08:00

 

2012년 11월 7일 여행 20일째

 

오늘은 아주 멋진 곳으로 가보려 합니다.

아마도 삼국지 기행 중에 몇 안 되는 멋진 곳이 바로 칼문이라고 하는

검문관(劍門關)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이곳이 얼마나 험한 곳이기에 새도 날아 넘어가기 꺼린다고 할까요.

오잉?

그건 우리나라 문경새재도 마찬가지인데?

 

 

그러나 여기 칼문은 문경새재보다도 더 험한 곳이었습니다.

좌우지간 이번 여행에서 느낌이 아주 좋았던 곳 중의 한 곳이었습니다.

이곳의 위치가 아주 고약한 곳에 있기에 접근 자체가 조금 힘이 들지만,

다녀오시면 무척 만족스러워 하실 겁니다.

 

 

아침에 일어나니 무척 날씨가 으스스합니다.

어제저녁에는 비까지 내렸습니다.

이번 여행에 친황다오에서 밤에 비를 만났고 두 번째로 비를 만났네요.

그래도 비는 많이 내리지 않고 다행히 이슬비 정도네요.

더 있어 달라고 내리는 이슬비 때문에 광위엔에서 2박 예정했다가 하루 더 있었습니다.

왜?

자유 배낭여행이니까!

 

사실 오늘 이곳을 보고난 후 옛날 가맹관이라는 소화고성까지 보려고 했지만,

여기를 적당히 보고 간다는 게 섭섭해 하루를 여기에 투자하는 바람에

하루 더 머무르게 되었네요.

물론, 장비가 측백나무를 심었다는 취운랑도 구경하지 못하고 돌아서야 했습니다.

 

 

우선 광위엔에서의 일정을 끝내면 다음 일정인 랑중으로 가는 방법과 시간을

바로 옆에 있 터미널에 가서 물어봅니다.

아직 여기 숙박을 며칠로 할지 결정하지 않았기에 우선 버스 시간만 확인할 겁니다.

중국이라는 나라는 터미널 안으로 들어가려면 간단한 배낭이라도

짐 검색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그 검사대가 오만가지 물건을 모두 올려놓기에 무척 불결합니다.

가능하면 올려놓고 싶지 않습니다.

그래서 입구에 짐 검색하는 여직원에게 물어보려고 했으나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겪어

그냥 가방검사를 하지 않고 안으로 들어가 안내 데스크에 물어봅니다.

 

 

처음에는 퉁명스럽게 쳐다보다 우리가 외국인임을 알고는 얼굴 표정을 바꾸며

웃기까지 하니 좋군요.

위의 사진에 보이는 시간이 바로 이곳 광위엔을 출발해 장비가 지역 사령관으로 있다가

졸지에 머리가 사라지는 불행을 겪었던 랑중이라는 고성으로 가는 버스 출발 시각입니다.

그러나 승객이 많지 않으면 첫차를 제외하고는 떠나지 않을 수 있다고 합니다.

역시 중국의 서비스업이란 승객을 위한 것이 아니라 업자를 위한 것임이 확실합니다.

밑에 보이는 6路나 20路는 시내버스 번호로 이곳 터미널에서 검문관으로 출발하는

난허(南河 : 남하)버스 터미널로 가는 시내버스 번호입니다.

 

 

모르면 물어보면 됩니다.

여행이란 앉아서 고민하면 해결되는 게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 부부는 이렇게 현지에서 부딪히며 직접 물어보고 다닙니다.

숙소도 예약하지 않고 현지에 도착해 구하고 기차표도 그렇게 사서 다닙니다.

세상에 완벽함이란 없습니다.

더군다나 여행에서 완벽한 준비란 없는 겁니다.

그냥 다니며 그때마다 최선을 다하는 게 좋은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곳 검문관은 천혜의 요새로 깎아지른 절벽이 양쪽으로 자리하고 있기에 여기 관문을

통하지 않고는 어느 사람도 촉에서 중원으로 드나들 수 없는 곳입니다.

물론 중원에서도 서천으로 쉽게 들어갈 수 없는 곳이기도 하지요.

따라서 이 관문은 아주 오래전부터 군사적으로나 경제적으로도 대단히 중요한 관문으로

관리했다고 하며 위의 위성사진으로 보시면 그야말로 바위로 된 돌산에

여기 원으로 표시한 곳만 뚫려있는 신기한 곳입니다.

 

 

위의 구글지도를 보시면 이 부근이 얼마나 험한 곳인지 알 수 있네요.

지금이야 여러 곳으로 고속도로를 새로 만들었기에 이 도로는 더는 사용하지 않고

그냥 관광지로만 이용하고 있지만, 그러나 과거에는 여기가 바로 관문이며 그 모양이

마치 암벽으로 이루어진 산을 칼로 자른 듯하다고 해 검문관이라 한다네요.

 

 

누구는 검문관의 모습이 칼을 꽂아 둔 것처럼 보인다고 해 검문이라고도 한다고 합니다.

함부로 지나다니다가는 다친다는 말인가요?

이곳으로 가기 위해서는 광위엔 기차역부근에서는 20번 시내버스(2원)을 타고

광위엔 남하(南河)터미널로 가서 그곳에서 검문관으로 출발하는 버스를 타야 합니다. (15.5원)

검문현이 아니라 꼭 검문관으로 가는 버스를 타야 합니다.

 

 

터미널에 도착해 안내 데스크가 보여 검문관을 가는 방법을 물어보니 친절하게도

직접 나와 우리를 표 파는 곳으로 안내하고 버스표를 사는 것도 옆에서 도와줍니다.

그리고 버스 타는 곳까지 친절하게 안내하네요.

위의 사진에 보이는 가슴에 띠를 두른 아가씨 보이시죠?

때로는 어리삥삥한 외국인 여행자를 위해 친절을 베푸는 고마운 사람을 자주 만나게 됩니다.

 

외국인이라 과잉친절인가요?

아니면 관광객에 친절한가요.

좌우지간 고마운 일이 아니겠어요?

 

그래서 명월협이나 소화고성까지 가는 방법을 물어봅니다.

덕분에 광위엔에서 출발해 우리가 가고자 하는 모든 곳의 정보를

이 아가씨를 통하여 모두 얻었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리고 이곳 물정에 어둡고 어리숙한 외국인이라 친절하게 도와주어 감사합니다.

 

 

위의 지도를 보시면 광원시에서 남서쪽 아래에 소화고성이 있고 계속 달리면 검각현이

나오고 검각현으로 가는 버스를 타면 다시 이동해야 하기에 바로 검문관으로 가는

버스를 타면 우리가 구경할 검문관 입구에 내려줍니다.

조금 더 아래로 달리면 장비가 측백나무를 심었다는 취운랑이라는 곳이 보일 겁니다.

더 아래로 내려가면 검각고성이라는 아주 오래된 고성이 있습니다.

광원시 위로는 천불애가 보이고 그 위에 명월협이라는 유명한 잔도가 있지요.

여기를 제대로 모두 보려면 며칠 동안 둘러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9시 20분 버스로 출발해 10시 30분에 검문관 경구 입구에 내려주고 버스는 계속 가버립니다.

그러니 버스 종점이 검문관이 아니고 정문을 통과하는 버스였습니다.

여기서 내릴 때 조심해야 합니다.

버스는 산 아래인 북쪽에서 진입해 산 위 높은 곳인 남쪽 즉 옛날 촉한의 진영에 내립니다.

올라오는 자동차 길도 워낙 험한 산이기에 무척 긴 터널을 뚫어 올라오게 하였습니다.

 

 

만약 아래서 먼저 내려 북문을 통해 남문으로 올라오려면 산이 험해 무척 고생합니다.

이게 옛날 종회가 20만 대군을 이끌고 겨우 2-3만의 강유가 지키는

검문관을 돌파하지 못한 이유입니다,

하늘로 오르기보다 더 어렵다는...

그러나 반대로 걸어서 내려가면 룰루랄라~

아주 즐겁고 행복한 산책을 할 수 있지요.

 

 

이곳은 광원에서 서남쪽으로 32km 정도 떨어진 검각현에서 다시 동남쪽으로 5km 정도

더 들어와야 하고 원래 청두로 가려면 서남방향으로 가야 하는데 반대로 돌아내려 가는

이유가 아주 험한 대검산이라는 암산이 가로막고 있어 부득이 반대쪽으로 방향을 틀면

바로 검문각이 있는 곳에 이릅니다.

바로 여기가 암봉을 칼로 잘라낸 듯 협곡이 있어 절묘하게 길을 내서 드나들 수 있는 곳입니다.

 

 

佳人이 방문한다고 오랜 세월 기다렸던 강유가 오늘 목을 놓아 통곡하나 봅니다.

하늘도 감동해 눈물을 흘려 비가 내립니다.

겨우 그깟 일로 감동해서 말입니다.

 

 

버스에서 내려 들어가는 곳은 역시 양쪽으로 상가입니다.

중국에서는 이렇게 관광지에서 들어가는 길은 꼭 상가를 거치게 하지요.

물론 나오는 길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비까지 추적거리며 내리는 관광객도 많지 않아 더 쓸쓸합니다.

 

강유두부노점이라는 간판이 보입니다.

강유가 여기서 두부가게라도 열었나요?

아니면 강유가 죽어서 두부라도 되었단 말입니까?

나중에 강유 두부도 먹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잠시 안으로 들어갑니다.

앞에는 석패방이 보이네요.

오래되 보이지는 않지만, 중국에서는 어느 곳이나 흔히 볼 수 있는 게 패방이고

없다면 중국이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지요.

그런데 패방 안으로 옛날 군사복장을 한 젊은이들이 들어가네요.

아마도 관광객을 위한 이벤트성 공연을 하지 않을까 생각되어 뒤를 따라갑니다.

 

 

아무리 급해도 패방에 새긴 조각이 있어 잠시 구경합니다.

위의 모습은 검문관의 관루 양쪽으로 성벽을 쌓는 모습으로 생각됩니다.

지금은 얼마 전 쓰촨성 지진으로 성벽은 모두 무너져 사라지고 오직 관문 하나만 남았답니다.

검문관은 오래전에 만들었지만, 위의 사진에 보이는 사람은 강유라고 생각합니다.

그때 위나라의 공격을 막기 위해 검문관 주변을 튼튼하게 성벽을 쌓았을 것 같습니다.

 

 

위의 사진에 보이는 조각은 공명이 이곳 검문관을 지나가는 모습일 겁니다.

왜?

학우선을 들었으니까요.

뒤를 따르는 장수는 조자룡이나 위연이 아닐까요?

한중을 치기 위해 유비와 같이 올라갔고 나중에 유비가 죽은 후 북벌을 위해

이 길을 지나간 후 다시는 돌아오지 못했다지요.

못한 게 아니라 안 했다고 봐야 하겠네요.

 

 

유(劉)라는 깃발이 보이니 유비가 통과하는 모습으로 보입니다.

유비는 이 길을 지나갈 때마다 한중왕도 되고 황제도 되었다지요.

그러니 이 검문관은 유비에게는 꿈이 이루어지는 행복의 관문인 셈입니다.

강유에는 한 맺힌 곳이겠지만...

황제가 되고 나면 그 다음에는 뭐가 남았을까요?

신? 귀신?

 

 

처음 올라갈 때는 한중을 차지하고 조상인 유방 흉내를 내어 한중왕에 올랐다가

나중에는 익주로 돌아와서는 헌제가 죽었다는 소식에 접하고 6개월 후에는

준비하고 있었다는 듯 촉한의 황제에 오르는 행복한 사내였지요.

짚신 팔고 돗자리 팔던 유비가 말입니다.

 

 

이번의 석각은 강유의 모습으로 보입니다.

긴장감이 감돌지 않습니까?

벌써 종회가 이끄는 위나라 군사가 가까이 다가와 고함지르며 검문관을 집어삼킬 기세네요.

그러나 강유는 부하에게 침착하라 이르고 나라와 민족을 위해 적을 무찔러

한나라를 다시 세우는 거룩한 일을 우리가 하자고 다독이는 소리도 들립니다.

 

그래요. 나라를 지키는 일은 숭고한 일입니다.

나라가 없는 민족은 영혼마저 없는 민족입니다.

그런데 주변을 살펴보면 나라가 있어도 영혼이 이상하게 병들어

좀비같은 영혼을 지닌 민족도 보입니다.

손바닥으로 해를 가리려는 우둔한 인간들 말입니다.

 

 

일어나라~ 병사여~

여기서 이렇게 쭈구리고 앉아서 잠에 빠지면 누가 이곳 검문관을 지킨단 말인가?

지금 자네 뒤에서 천군만마가 뒤엉켜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데...

나라의 운명이 바람앞에 등불이 아니더냐?

그런데 어찌 이렇게 컴컴한 곳에 숨어서 쭈구리고 앉아 졸고 있단 말인가?

 

 

이곳에 서서 눈을 감으면 이런 소리가 정말 들립니다.

사내로 태어나 진정 가치있는 일이 무엇이냐고 묻고 있습니다.

뜻을 세우고 그 뜻을 펴기 위해 목숨을 바치는 일이야 말로 사내로 태어난

가장 가치있는 일이라고 말입니다. 

 

 

영웅이라 자부한 1세대가 모두 사라지고 이제 공명의 후계자로 자부하는

강유가 이곳 검문관을 지키는 모습이지요.

그러나 친구!

자네는 여기를 지킬 이유도 없는데 웬 칼장난을 하시는가?

그러다 다치시면 어쩔려고 그러시는가?

 

 

강유는 2-3만의 군사로 10만이 넘는 위나라 군을 여기서 처절한 전투 끝에 영웅적으로

막아냈으며 종회가 이끄는 위나라 군사에 한발자국도 허용하지 않고 용감하게 맞선 자가

바로 촉한의 명장 강유와 그를 따라 여기를 지켰던 이름도 알 수 없는 무명용사들입니다.

얼마나 많은 촉한의 젊은이가 여기에 피를 흘렸고 뼈를 묻었습니까?

이렇게 지킨 이 관문은 후주 유선이 항복함으로 저절로 열리고 말았습니다.

정말 죽어야 할 사람은 누구입니까?

 

 

이렇게 여기에 새겨진 그림만 보아도 삼국지에 나오는 이곳의 역사를 대강 알 것 같습니다.

내일부터는 검문관 안으로 들어가며 보았던 모습을 사진과 함께 구경해보려 합니다.

이런 곳이 좋은 이유는 역사가 있고 이야기가 있고 그리고 멋진 풍경이 더해졌기에

더욱 아름다운 곳이 아닐까요?

내일도 여기 검문관을 걸어보며 시비도 걸어보고 째려도 보며 이야기도 청해보려 합니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그러나 종회와 함께 이곳으로 군사를 이끌고 내려온 위나라 장수 등애가 이곳이 막히자

음평(陰平)이라는 험한 곳을 우회해 지금 청두인 촉한의 도읍으로 들이닥침으로

 후주인 유선은 항복하게 되며 촉한은 사라지고 맙니다.

이렇게 되며 파란만장한 삼국지는 막을 내렸다지요.

 

그러나 여기 검문관만은 강유가 그의 수하장수들과 함께 목숨을 걸고 그때까지도

전혀 흔들림 없이 전선을 지켰고 강유는 유선이 항복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여기 검문관의 문을 스스로 열어 위나라군에게 길을 열어주었다 합니다.

문을 열 때 강유는 얼마나 슬펐겠습니까?

이곳에서 강유의 등어리나 두들겨 격려하고 싶습니다.

허리만 툭치면 오해합니다.

잘못 격려하다가 인생 조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