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길, 탐욕의 길... 석문잔도
석문잔도 풍경구 입구에는 석문 문화광장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사실, 잔도란 게 그냥 협곡에 만든 판자길이라 크게 볼 것은 없으니 입장료는
받았지만, 미안한 마음에 눈요깃거리라도 만들어 놓았나 보네요.
광장 안에는 한나라와 삼국지의 내용 중 이곳 한중을 스쳐 간 사람들의
일화를 남긴 석각들을 만들어 눈요기하게 하네요.
여러분은 지루하시지만, 佳人은 이런 풍경을 보는 일이 무척 즐겁습니다.
한자를 많이 알면 여기만 구경해도 입장료가 아깝지 않을 것 같습니다.
아니... 시간만 충분해도 더 많은 이야기를 곁눈질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2시간 이내에 한참 걸어가 또 산으로 올라야 볼 수 있는
잔도까지 보려면 개나 말처럼 견마지로를 해야 하네요.
문화광장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아주 역동적으로 만든 제갈량의
북벌 당시 모습을 담은 석상으로 석상을 받치고 있는 아래쪽에는
군사북벌(挥師北伐)이라는 명패에 이런 글귀가 새겨져 있습니다.
"촉한 건흥 5년 227년 승상 제갈량은 후주 유선에 출사표를 올리고
위를 치기 위해 길을 나섰다.
한중의 면양(지금의 면현)에 군사를 주둔하고 북벌을 계획한 지 어언 8년 육출기산
(기산으로 여섯 번 나갔다는 의미나 사실 기산으로는 그렇게 많이 나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북벌의 상징적인 말로 기산육출이라는 말을 사용하더군요.)하며 건흥 12년
234년 봄, 제갈량은 12만의 군사를 이끌고 위연을 선봉으로 삼아 포사곡으로 출발했다.
오장원에 군사를 두고 위의 사마의와 위수를 사이에 두고 대치했다."
석문잔도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벽을 따라 무척 많은 그림과 조각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잔도(棧道)라고 부르는 길은 중국여행을 하다 보면 자주 만나는 길입니다.
잔도란 벼랑 같이 사람이 그냥 다닐 수 없는 곳에 나무로 선반처럼 달아맨 듯
만들어 다니기 쉽게 만든 길이라는 의미입니다.
그 벼랑이 절벽이 될 수도 있고 강물이 흐르는 협곡일 수도 있습니다.
좌우지간 아찔한 길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처음 이런 길을 만든 목적이 무엇일까요?
옛날에는 문명이 이어지고 사랑이 오고 가고 정이 싹트는 길이었지만,
점차 인간의 탐욕으로 전쟁을 위한 길이 되었습니다.
요즈음도 중국은 잔도 건설에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왜?
돈벌이를 위함이지요.
관광객을 불러모으는 최고의 투자시설이 잔도라고 생각하나 봅니다.
오늘 우리가 걸어 본 석문잔도는 그 이름이 협곡을 따라 길을 만들다 보니 중간에
큰 바위가 가로막아 그 바위를 뚫고 길을 만들었기에 마치 돌로 만든 문을 통과하는
기분이기에 석문잔도라는 이름을 붙였다 합니다.
여기의 석문잔도는 한중에서 포사도를 따라 중원으로 올라가는 그런 길입니다.
물론 올라가는 도중에 왼쪽으로 방향을 틀면 진창도를 만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곳의 잔도는 대부분 옛 모습이 사라지고 새롭게 만든 길이 되어버렸습니다.
그 이유가 바로 물길을 막아 전기생산을 하기 위해 댐을 만들었기에
잔도가 모두 사라질 수밖에는 없었겠네요.
그러나 아직 약간의 옛 모습은 남아 있기에 그냥 눈으로만 볼 수 있네요.
처음에 이 잔도는 희망의 길이었을 겁니다.
꿈을 실현할 수 있는 그런 길 말입니다.
중원의 앞선 문명을 가져올 수 있었고, 사람과 사람을 잇는 사랑이 이어졌을
것으로 덜수와 덜순이의 사랑이 이어졌고 돌수가 장사를 위해
봇짐을 지고 오가던 그런 길이었을 겁니다.
그리고 유방이나 공명처럼 중원을 품을 수 있는 거대한 희망의 길 말입니다.
나중에 우리는 명월협이라는 잔도를 구경했습니다.
명월협은 광위안에서 한중으로 올라오는 가릉강 협곡에 만든 잔도로 옛날 그 자리에
그대로 있는데 이미 기원전에 만들었던 그곳에 말입니다.
물론 옛날 자재가 남아있는 게 아니라 관광객이 안전하게
걸어 다닐 수 있게 하려고 보수하여 놓았습니다.
이제 안으로 들어가며 보이는 모습을 몇 가지만 그대로 여기에 옮겨보겠습니다.
지금 시각에는 들어가는 사람은 별로 보이지 않고 나오는 사람만 보이니까
공연히 마음만 바빠지네요.
조조가 계륵이라는 말을 했다고 똑똑한 양수가 그 말의 의미를 확대하여 해석해
미리 보따리 쌌다가 참수당하는 모습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5분 먼저 가려다 50년 먼저 간다는 말은 운전 중에만 쓰는 말이 아닙니다.
사람이 너무 똑똑해도 좋지 않으가 봅니다.
이럴 때는 덜수처럼 살아가는 佳人이 행복합니다.
우리 앞에 위풍당당하게 버티고 서 있는 석상...
당신은 누구세요?
그 크기를 알려주기 위해 친구가 석상 앞에 섰습니다.
가운데 위풍당당한 모습이 바로 한 고조 유방입니다.
왼쪽이 소화로 보이고 오른쪽에 한신이 함께 인중 사진을 찍었나 봅니다.
이번에 당신은 누구세요?
한 무제 유철입니다.
선친 경제의 열 번째 자식으로 모친 효경 황후의 화려하고 현란한 활약 덕분에
우여곡절을 끝내고 황제에 올라 중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황제 중
한 사람으로 추앙받고 있다고 하네요.
왼쪽에 위청이 보이고 오른쪽으로는 곽거병입니다.
당시 효경황후의 활약을 보시려면 효경황후의 무한도전 1 - 꿈을 향하여 (daum.net)
효경황후의 무한도전 1 - 꿈을 향하여
자고로 '영웅은 미인의 관문을 넘기 어렵다(英雄難過美人關).'라고 합니다. 저는 영웅이 아니기에 이런 문제에서는 무척 자유롭습니다. 스스로 영웅이라 생각하시고 살아가시는 분들... 미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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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가 포사잔도라 했습니다.
중원으로 가는 길 중 포사도로 들어가는 입구에 설치한 잔도이기 때문이죠.
포사라는 지명은 이곳이 바로 그 유명한 경국지색이라는
포사의 고향이 이 부근이기 때문이랍니다.
포사의 입궁부터 미니어처로 만들었기에 잠시 보고 갑니다.
흐미~ 벌써 유왕의 사랑을 듬뿍 받아 백복을 뻥~ 하고 생산했습니다.
유왕이라면 벌써 모든 사내가 멘토로 삼고 싶은 그런 사내지요.
왜?
유왕은 원래 호랑이 등에 곰의 허리를 갖고 있어 정력이 무한하고
용마의 정기를 타고난 사내기 때문이죠.
그러니 변강쇠의 모범 답안 같은 사람이 아닐까요?
포사는 서주의 마지막 왕인 유왕의 부인이었지요,
우리가 뤄양에서 본 동주 시대의 유물인 주왕성천자가육박물관(周王城天子
駕六博物官館)을 볼 때 포사 이야기를 했지요.
그때의 이야기를 다시 읽어보시려면 아래를 클릭하세요.
http://blog.daum.net/nhk2375/7164880
동주의 신장개업
주나라가 서주에서 동주로 이름을 바꾸어 신장개업한 이유가 있다고 하더군요. 상나라라고 하는 은나라를 지금 안양이라는 곳에서 달기와 엽기적인 놀이에 빠져 뻘짓하던 주왕이 홀랑 말아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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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을 잃어버린 여인 말입니다.
그래서 유왕은 포사의 웃음을 찾아주기 위해 웃기는 사람에게 천금의 포상금을
내걸었는데 이를 일소 천금이라고 하더군요.
정말 웃기는 일이 아닙니까?
그 방법 중 당첨된 것이 여산에 올라 봉화를 올려 당시 제후국의 출병을 구경하게 하는 겁니다.
물론, 이 안은 아부의 달인이라는 괵석보의 안이었지요.
괵석보는 황금 천 냥을 받았을 겁니다.
이를 기쁨 주고 칭찬받는 일이라 하지요.
당시에 제후국은 군주국에서 지원을 요청하면 묻고 따지지 못하고 무조건
출병해야 하는데 그러나 지 마누라 웃기려고 출병을 알리는 봉화를 올린 사실을 알고는
모두 욕을 하며 돌아갑니다.
물론, 몇 번은 출병하는 예를 갖추었지만...
이게 제 마누라 웃기려고 "늑대가 나타났어요~"라고 외치는 일과 똑같은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늑대가 나타났다!"라는 장난 때문에 나중에 정말 늑대가 나타나면?
바로 여기에서 이런 일이 실제로 벌어집니다.
원래 태자를 죽이고 포사가 낳은 백복을 태자로 올리고 원 오리지날 태자를 죽이려 하자
원 태자의 외가에서 위기감을 느끼고 유왕을 토벌하기 위해 이웃 나라
견융의 지원을 받아 군사를 몰고 들이닥칩니다.
제후국에 알리려고 봉화를 올렸지만, 제후국에서 어느 하나 출병하지 않았지요.
왜?
또 장난하는지 알고요.
그때의 일을 미니어처로 만들어 유리 안에 전시했습니다.
유왕도 죽고 서주라는 나라마저 말아먹었지요.
그래서 서주는 뤄양으로 도읍을 옮기게 되었고 동주를 새로 세우게 되었다네요.
누가?
원래 태자가...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한 마음이 선하면
모든 선이 이에 따라 일어나고
한 마음이 악하면
모든 악이 이에 따라 일어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마음은 모든 선악의 근본이 되느니라.
(화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