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기행/삼국지 기행

제갈량의 북벌은 꿈이었나 봅니다.

佳人 2013. 4. 13. 08:00

 

공명이 출사표를 유선에 올리고 30만의 군사를 이끌고 드디어 북벌을

떠나는데 숫자는 중요한 게 아닙니다.

삼국지에 나오는 군사의 숫자...

그런데 이게 모두 고무줄 병사입니다.

누구는 65만이라고 하고 누구는 100만이라고도 합니다.

 

진시황 병마용의 흙으로 만든 병사도 아니고 이게 뭡니까?

중국은 지금도 인구를 정확히 계산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워낙 넓은 곳이기에 세다 보면 자꾸 변하기 때문이겠죠.

숫자가 중요한 것은 아니죠.

공명이 출사표를 올리고 북벌을 나섰다는 게 중요한 일이 아니겠어요?

 

 

이미 도원결의를 했던 세 사람은 불귀의 객이 되어 모두 사라졌지만,

그들의 꿈을 이루기 위해...

공명은 후세 사람이 칭송하는 명문장이라는 출사표를 올리고 드디어 북벌에 나섭니다.

이 싸움의 시작은 도원결의한 세 사람이 시작했지만, 마무리는 공명에 맡기고 모두

떠나버렸는데 왜? 유비가 꾸었던 꿈인 천하 통일을 위해 공명이 나섰을까요?

유비가 팥죽 쑤는 데 왜 공명이 옆에서 땀을 흘립니까?

아니면 공명이 전쟁을 즐긴 전쟁광이었을까요.

 

오늘부터는 서안을 떠나 성도로 가기까지 작은 마을을 보며 가려고 합니다.

그 이유는 바로 공명이 염원했던 천하 통일을 위한 북벌을 감행했던 지역이기

때문인데 그렇다고 이야기 속에 나오는 모든 지역은 갈 수 없습니다.

능력의 한계와 경비와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역사를 과거로 잠시 돌려 유비가 공명을 청하기 위해 삼고초려를 했던 곳으로 돌아갑니다.

삼고초려라는 말은 삼국지 이야기 중에서 도원결의처럼 대단히 유명한 단어라고

생각되는데 유비가 도원결의로 호랑이와 용을 얻었다면 삼고초려로 용이

구름과 바람을 얻고 호랑이가 날개를 단 셈이니까요.

수어지교(水魚之交)라 했으니 고기가 물을 만난 셈인가요?

 

그때 유비가 공명의 지혜를 빌려달라고 했지요.

무엇을?

바로 부패한 세력을 내몰고 한실을 다시 세우는 방법을...

천하가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게...

 

 

그때 공명이 유비에게 건넨 말이 처음은 징저우라는 형주를 차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형주란 작은 곳이지만, 남방을 경영하기에는 가장 좋은 곳이기 때문이겠죠.

그리고 형주는 동오와 위나라와 촉한이 서로 머리를 들이밀고 있는 모습인 곳입니다.

군사적으로 징저우만큼 요긴한 곳은 없습니다.

그냥 삼국으로만 있으려면 필요 없지만, 천하를 통일하기 위해서는

기초공사처럼 중요한 지역이기 때문이겠죠.

 

두 번째가 지금의 성도인 익주를 차지하여 촉의 근거지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세상에 프랜차이즈가 없다는 것은 동가숙 서가식 하며 빌어먹고 산다는 말이지요.

익주를 차지해야하는 이유는 워낙 험한 지역으로 쉽게 남에게 침략당하지 않을뿐더러

기름진 땅이기에 군사를 조련하고 나라를 튼튼히 만드는 아주 좋은 곳이기 때문고

국력을 키워 중원으로 내달리기 위해서는 아주 좋은 곳이라는 말일 겁니다.

게다가 두 세력보다 약한 신생 세력이기에 짱 박혀 있으면

견제와 공세를 막아내기에도 좋고요.

 

 

그러나 무엇보다도 세상을 셋으로 나누어 견제와 균형을 맞추어 내실을 튼튼히 하며

후일을 도모하려는 천하삼분지계의 방점을 찍을 수 있기 때문일 겁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힘을 길러 북벌을 함으로 천하를 품어야 한다고 지혜를 유비에게

건넸고 그리고 동오와는 연합하고 위와는 담을 쌓고...

 

지금까지 1안과 2안은 달성했지만, 마지막 북벌만은 아직 시도하지 않았기에 이게 선제

유비의 마지막 꿈이었고 모두가 떠난 후 그 꿈을 실현해 줄 사람은 공명뿐이라는 말이니

비록, 그 꿈을 꾸었던 사람은 모두 갔지만, 그런 계책을 알려준 공명이 있기에

진행형이라 생각했겠지요.

 

 

정말 공명은 혼자 남아 답답한 심정이었을 겁니다.

전쟁이란 국력이 상대적으로 허약해지는 일이며 누구 하나 선제의 뜻을 이어받으려

하지 않고 현실에 안주하기를 바랍니다.

심지어 후주인 유선마저 "공명 아찌! 전쟁하지 않고 살면 어떻겠어요?" 하며 칭얼거렸지만,

그러나 공명은 선제와 약속한 신의를 중요하게 여기고 삼고초려를 했던 유비를 생각하면

그의 뜻을 뭉개버리고 현실에 안주하여 편히 주저앉을 수만 없었을 겁니다.

이에 공명은 주위를 물리치고 유선에 출사표를 올리고 드디어 출병하게 되었지요.

출사표를 읽어보면 어느 사람도 반론을 제기할 수 없는 내용으로 가득하잖아요.

 

조조가 출사표를 읽어 보았을지라고 고개를 끄덕였을 거예요.

정말일까요?

뭐가요?

조조가 자기를 치러 올라 온다는데 말입니다.

 

끄덕였을 겁니다.

왜?

조조는 원소 편에 몸담고 있으며 원소가 군사를 일으켜 조조를 치자는 격문을 쓴

허유마저 용서하며 그 격문이 아주 잘 쓴 명격문이라고 칭찬했던 대인이었잖아요.

자기 욕만 하지 왜 조상까지 들먹이었느냐고 농담도 한 대단한 사람이었으니까요.

 

그 선봉에는 오호장군 중 마지막 남은 조운이 선봉을 맡아 제일 앞에서 북벌을 나섭니다.

선봉에 선 장수마저 도원결의 한 장수가 아니라 나중에 유비에 몸을 의탁한 조자룡입니다.

세상일이란 이렇게 어디에서 출발하느냐에 따라 정 반대 이야기가 전개될 것 같습니다.

佳人의 삼국지 기행도 이렇게 내 눈으로만 보고 혼자 생각으로만 다니니

이야기가 정설이 아닌 엉뚱한 이야기가 자주 나옵니다.

 

 

이제 촉한은 위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돌아올 수 없는 루비콘 강을 건너게 됩니다.

죄송합니다.

루비콘 강이 아니고 진령산맥입니다.

진령산맥은 아주 험한 산맥으로 등산화 신고 넘는 일조차도 버거운 일입니다.

그 북벌 루트에 있는 많은 곳 중 지금 우리가 걷고 있는 이 길도 포함되었을 겁니다.

 

그랬습니다.

지금 이 길로 당시 수많은 군마와 수레가 대오를 맞추어 전진과 후퇴를 수없이 했을

것이기에 지금도 눈감으면 저 멀리 산에서 매복한 군사가 보이고 들판에서는 창칼이

서로 부딪치며 말발굽 소리가 천지를 뒤흔듭니다.

佳人이 많이 오버한다고요?

영화도 많이 보았다고요?

삼국지를 즐기는 사람은 누구나 이런 현장에 서면 그런 생각이 들 겁니다.

 

 

촉의 북벌 소식을 접한 위나라는 하후무에게 20만의 군사를 주어 촉의 야심을 깨뜨리라

하니 그 첫 번째 전투는 한덕이 이끌고 합류한 서강 군 8만이 위의 선봉으로

봉명산이라는 곳에서 조운과 마주치며 서막을 엽니다.

상대의 힘을 탐색하기 위한 잽부터 시작하지요.

 

이! 봉황의 울음소리가 들린다는 봉명산...

그러나 봉황의 울음소리는 들리지 않고 위군의 곡소리만 들립니다.

조자룡이 누굽니까?

아무리 나이가 들었다고 해도 유비의 아들 아두를 말에 태우고 단신으로 100만 명이나 되는

조조군 진영의 한가운데를 단기로 뚫고 장판교로 빠져나온 천하의 영웅이 아니겠어요?

그리고 전투마다 패전이 한 번도 없는 상승장군이잖아요.

 

누구나 이 이야기를 읽고 이게 말이 되느냐고 따지고 싶겠지만,

소설은 많은 과장이 있기에 그냥 믿어야 합니다.

물론 말 꼬랑지에 "아두가 탔어요."라고 스티커를 붙이고 달렸을지 모릅니다.

위나라의 군사는 아두를 아이로 잘못 읽고 "아이가 탔어요."라고 생각하고

얼른 양보했는지 모릅니다.

 

 

조자룡은 말을 몰고 달렸던 그 모습이 마치 싸이가 말춤을 추는 모습과

똑같이 보였을 것이고 노래 또한 볼륨을 최대한 올려 전 세계인이

말춤 신드롬에 빠지듯 위나라 군사 모두가 함께 춤을 추었을지 모릅니다.

뭐라고?

"오빤 자룡 스타일~"

 

그 전설 같은 춤으로 이곳 봉명산에서도 말을 몰아 파죽지세로 적과 마주치니

서강 군은 추풍낙엽이고 이어 하후무의 본대와 만나 겨루었으나 결국, "오빤 자룡 스타일~"

이라며 여세를 몰아 몰아붙이니 자룡 오빠가 첫 전투는 대승을 거둡니다.

그러나 전투의 승패란 병가지상사...

삼국지에 흔히 등장하는 후퇴와 매복의 전법에 패하기도 했지요.

 

 

사실, 이때 공명도 다른 사람의 말을 들었어야 합니다.

누구?

반역의 상이라고 내침을 당했던 위연 말입니다.

위연은 장안을 함락하려고 하면 자오곡이라는 골짜기로 진격하자고 건의했지만,

공명에 의해 묵살당했는데 사마의 중달도 공명이 왜 자오곡을 넘지 않았을까

의아하게 생각했답니다.

이 사실은 佳人도 의문입니다.

 

 

잠시 위의 지도를 보고 가시죠?

한 가운데 한중이라는 도시가 있고 그 위로 동서로는 험준한 진령산맥이 좌우로

가로막고 있어 그 산맥을 넘어갈 수 있는 길은 위의 지도에 보이는 제일 우측의

자오도부터 좌측의 기산도까지 몇 개의 길 뿐입니다.

 

공명이 위연의 건의를  따르지 않은 이유는 아마도 자오곡을 넘어 진격하면 장안에는

금방 도달할 수 있지만, 천수나 뒤에 주둔한 서량족이 두려웠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되며 그래서 1차 북벌에 제일 먼저 장안이 가장 먼 기산을 통해 천수로 나아갔을

것인데 그래도 먼저 장안을 치고 나면 뒤는 그리 걱정할 게 없는 곳이 아닌가요?

 

 

촉의 입장에서는 북벌이라 할지 몰라도 위의 입장에서는 코털이지요.

사실 그렇게 많은 군사와 군량을 동원해서 겨우 한중 주변만 맴돌다 말았습니다.

적어도 당시 위의 심장 허도까지는 아니더라도 낙양도 조금 먼 곳이니 뺍시다.

워낙 먼 곳이라고 공명도 계획에서 빼버렸으니까요.

그러나 장안 정도는 식겁하게 불바다를 만들어야 하지 않겠어요?

 

그런데 천하의 공명이 북벌이라고 군사를 일으켜 겨우 변경지방만 들락거리다가

문지방도 제대로 넘어보지 못하고 젠장.... 과로사로 죽어버렸습니다.

적어도 장안을 불바다로 만들지는 못하더라고 군사들이 장안성 근처까지 진격해

내지르는 소리라도 장안성에서 희미하게라도 들려야 하지 않나요?

그러니 그게 하늘이 돕지 않으면 이룰 수 없는 일이 아니겠어요?

천하의 공명일지라도...

 

 

에고에고 이게 무슨 일이랍니까?

천하의 공명이 자기 명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죽다니요?

공명은 학우선만 한 번 흔들면 동남풍을 부르고 천기를 읽고 천하를 얻고

슈퍼맨처럼 사는지 알았습니다.

그러나 결국, 그도 인간이기에 딱 부채도사 정도만 살고 죽나 봅니다.

공명이 직접 군사를 이끌고 나선 북벌은 모두 다섯 차례라 합니다.

그 루트를 하나씩 보며 오늘 이야기를 끝냅니다.

 

 

모든 북벌은 대부분 한중에서 출발했습니다.

그러니 한중은 북벌을 위한 베이스캠프 역할을 했나 봅니다.

건흥 5년 228년 봄, 1차 북벌은 주력군이 기산을 지나 가정까지였습니다.

이 루트는 한중에서 장안으로 바로 가는 길이 아니라

제일 왼쪽으로 우회하여 돌아가는 길이었습니다.

 

결국, 가정에서 마속의 판단 미스로 실패한 후 마속을 참수하며 후퇴하게 되었지요.

이 일은 읍참마속이라는 말로 남아있습니다.

비록 실패는 했지만, 1차 북벌은 공명이 후계자로 점찍은 강유라는 젊은이를

얻은 곳이 천수라는 곳이었다네요.

그러니 절반의 성공은 했다고 보입니다.

 

 

228년 건흥 6년에 5월에 2차 북벌은 그 루트가 다른 곳입니다.

1차 북벌을 했던 기산도 오른쪽인 진창도라는 길을 택합니다.

그래서 지금의 보계인 진창으로 바로 넘어갑니다.

그러나 진창성에는 명령에 충실한 버티기의 달인인 학소라는 장수가 버티고 있어 쉽지

않은 곳으로 진창성을 나오지 않고 버티기만 하는 바람에 엉망진창이 되어버렸습니다.

 

 

손권이 위나라의 후방을 공략하며 공명을 배후지원하기까지 했기에 다시 북벌에 나서게

되는데 여기서도 진창성 공략에 실패하며 또 북벌은 실패하게 되었지요.

모든 게 엉망진창이 되었던 곳이 진창성 공격이었지요.

작은 성이었지만, 성을 지키기만 하고 위나라 군은 나오지 않았기에 공성전이 실패로

돌아가며 2차 북벌은 또 실패하고 맙니다.

공명의 약점은 싸우러 나오지 않고 영채 안에 버티는 적은 제압하지 못한다는 점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때 강유가 공명의 의중을 읽고 이(離)라는 글로 공명의 마음을 움직였다지요?

 

 

건흥 7년 229년 봄, 2차 북벌이 있은 지 1년이 지나 다시 3차 북벌을 감행합니다.

이 또한 변죽만 올리다 말았지요.

그러나 실패란 성공으로 가는 진행형이지만, 자꾸 실패를 하다 보면

습관성 실패 증후군이 생기게 되지요.

 

 

건흥 9년 231년 2월에 4차 북벌을 또 하게 됩니다.

이때 새로운 운송기구인 목우유마를 만들어 실전에 투입했다 합니다.

목우라고 나무로 소처럼 만들고 유마는 말처럼 만들어 좁은 길에

수레로 이용했던 것이 목우유마라고 합니다.

공명이 설계해 만든 당시로는 최신의 운송기구라지요.

 

그러나 지금 보면 이 또한 과장된 이야기로 보입니다.

그냥 수레에 말과 소의 모양으로 만들었다는 게 다르지 용도는 수레잖아요.

삼국지의 이야기를 보면 이를 역이용한 계략에 사마 의가 당하고 어쩌고 하는

이야기가 나오지만, 그냥 평범한 손수레입니다.

 

 

위의 사진에 보이는 나무로 만든 말이 유마라고 하지요.

대략 4백 근 이상 실을 수 있었다고 알려졌습니다.

촉군 10만 대군의 식량 운송에 투입되어 아주 훌륭하게 이용했다 합니다.

말로만...

수레에 말대가리나 소대가리만 붙이면 모터도 없이 저절로 굴러갑니까?

저런 형상을 붙이면 오히려 무게만 가중되기에 수레 잡이는 더 힘이 들게 마련입니다.

 

 

소나 말도 사람의 식량을 운반할 수 있지만, 운반에 이용되는 동물은

자기들이 먹을 것도 필요하잖아요.

목우나 유마는 쌀 한 톨도 먹지 않고 운반하니 얼마나 좋았겠어요.

거기에 모터까지 달면 더 빨리 많이 운반할 텐데...

 

그러나 목우유마가 저절로 가는 것은 아니고 병사가 운반해야 하는 데 운반하는 병사는

아무것도 먹지 않고 일할 수 없고 소나 말은 식량보급이 제때 이루어지지 않으면

잡아먹기라도 하지 목우유마를 움직이는 병사는 잡아먹지도 못하잖아요.

아!! 중국은 이때도 인육을 먹었기에 식량이 부족하면 병사까지 먹었을지도 모릅니다.

이번에도 1차 북벌 루트인 기산으로 다시 나갑니다.

진령산맥은 넘었지만, 위수를 두고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답니다.

 

 

이렇게 마지막 5차 북벌이 바로 오장원까지였나 봅니다.

5차 북벌은 포사도라는 협곡으로 통하여 바로 넘어갑니다.

결국, 중달의 버티기 작전에 공명은 진이 빠져 여기 오장원에서 사망합니다.

그때 중달은 배에다가 강력한 본드를 붙이고 꼼짝도 하지 않았다지요?

공명의 약점은 버티기에 들어가기만 하면 된다는 점입니다.

빠떼루 자세 말입니다.

 

지금 보계에서 한중으로 가는 도로가 바로 옛날 포사도라고 불렀던 이 협곡에

만들었는데 포사도는 서주의 마지막 왕과 놀아났던 포사에서 따온 이름입니다.

그녀가 태어난 곳이 아마도 그 부근 어디였나 봅니다.

우리가 나중에 한중으로 버스를 타고 갈 때 포사도라는 계곡으로 만든 길을 따라갔습니다.

 

공명은 이렇게 5차 북벌을 끝으로 오장원의 별이 되었습니다.

만약, 조금 더 살았다면 6차 북벌은 틀림없이 많은 사람이 의문을 가졌던

자오곡으로 통해 장안으로 나갔을 것이고 틀림없이 성공해 촉이 위나라를 멸하고

천하 대업을 이루어 죽은 유비의 꿈이 이루어졌을 겁니다.

 

 

공명은 결국, 그의 꿈을 접어야만 했습니다.

유비의 꿈도 도원결의를 했던 관우나 장비의 꿈도 함께 말입니다.

천하 대업이란 이루지 못한 불가능에 도전했을지 모릅니다.

하늘이 내린 사람이 그런 것을 모를 리 있었겠어요?

 

그러나 그 때문에 북벌을 하는 동안 위나라는 방어에만 급급했기에 공명은

최선의 수비는 공격이라는 마음으로 북벌을 감행했는지 모릅니다.

닥공이라고 닥치고 공격만 한다는 전법은 바로 공명이 했던 북벌을 의미합니다.

만약 공명이 북벌에 나서지 않았다면 위나라가 군사를 몰아 촉의 심장인

익주를 이전에 초토화시켰을 겁니다.

 

모든 북벌이 실패한 원인이 있지만, 그 책임은 사실 공명 자신에 있다고 봐야 합니다.

다만, 부하 장수에게 책임을 물었지만....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당시 두 나라 사이의 국력은 5배에 달했다 하니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고 북벌을 한다고 들락거린 덕분에 위나라의 남침은 당분간 없었으니

그것으로 만족해야 하나 봅니다.

공명이 노린 것은 바로 위나라의 남침을 막기 위해 미리 군사를 일으켜

공격이 최선의 방어임을 증명하고 싶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조조가 佳人에 그러더군요.

왜 삼국지냐고.

삼국지라면 세 나라가 국력을 따졌을 때 비슷한 수준이어야 하는데 국력과 국격으로 따져

아무리 좋게 봐줘도 1.7 국지라고요.

오나라의 국력은 위나라의 반으로 0.5국으로 인정하지만, 촉한은 사사오입하더라도

위나라의 0.2 정도 수준이랍니다.

같은 레벨로 취급하지 말아 달라고 하더군요.

조조가 유부녀만 밝히는지 알았는데 계산도 무척 밝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스페인과 브라질의 축구시합이 세기의 대결이지 스페인과 네팔과의 축구시합을

세기의 대결이라고 할 수 없어 누구 하나 관심조차 갖지 않잖아요.

자꾸 삼국지라 우기면 조조가 빠떼루 준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