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기행/삼국지 기행

오빤 장난 스타일

佳人 2012. 12. 8. 08:00

진황구선입해처 구경을 마치고 다시 시내버스를 타고 노룡두라는 곳으로 갑니다. 

그러나 여기는 볼거리가 너무 단순해 입장료 받기가 미안했는지 입구에 들어서

진시황 순행 조형물을 지나면 오른쪽으로 전국 7웅이라는 나라의 풍정을 볼 수 있도록

공원처럼 만든 입구가 보입니다.

그곳을 따라 들어가니 전국시대의 나라 모습을 재현해 놓은 곳이 있어

잠시 들려보고 노룡두로 갈 예정입니다.

사실 진시황이 우스운 꼴을 당해 후세에 웃음거리가 된 곳에 볼 게 많지는 않지요. 

 

이런 풍정구역이 있다는 것은 입장료는 받았고 보여줄 게 별로 없기에

미안한 마음에 만들었을 것 같네요.

위의 사진은 요즈음 유행하는 싸이의 말춤을 추는 모습인가요?

여기 숨어서 말춤 추며 놀고 있었네요.

석벽의 모습을 외부로 돌출되게 하여 무척 생동감이 있게 만들었네요.

 

이번 여행 중, 중국의 시골을 다니다 보니 "오빤 강남 스타일"이 무척 많이 알려졌더군요.

거리를 걷다가 귀에 익은 이 노래가 들렸고 컴퓨터 가게에는 이 동영상으로 도배했더라고요.

중국말로 강남(江南)을 장난이라 발음하니 장난 스타일이라고 하면서요.

유튜브도 막아놓은 중국에서도 젊은 세대는 대부분 이 노래를 알고 있더군요.

 

佳人도 그냥 지나치면 안 되죠?

오늘 같은 찌뿌듯한 날, 함께 말춤이나 추며 스트레스 날려보내면 어떻겠어요?

지금 누구하고 말춤을 추었는지 아세요?

뒤에 있는 저들은 바로 주원장을 도와 명나라를 세운 개국공신 서달장군과 그

수하장수로 22살에 대장군이 되어 나라를 세우는데 앞장선 서달장군과 함께 말춤을 추었어요.

 

혹시 佳人과 함께 말춤을 추며 스트레스를 날려보내실 분은 위의 유튜브를 클릭하세요.  

우선 유튜브에 올라있는 싸이의 "오빤 강남 스타일"을 클릭하시고 말춤이나 함께 추며 구경할까요?

중국의 젊은이들은 강남 스타일을 대부분 알고 있으며 스마트 폰에 저장해간 노래를 들려주면

함께 춤도 추고는 했습니다.

심지어는 기차 안에서도 버스 안에서도 함께 춤을 춘 적도 있었는걸요.

 

이곳에 전국시대의 일곱 나라를 재현한 이유가 바로 진시황의

천하 통일과 연관되어 만든 게 아닐까요?

그러니 한 사람의 영웅을 위한 들러리라는 말이 아니겠어요?

여기에는 전국시대였던 제, 연, 초, 한, 월, 위, 진나라의 전국 7웅의 풍정을 만들어 놓은 곳입니다.

 

편작행의라는 조형물이네요.

편작은 중국 의학계의 거두가 아니겠어요?

그 맥은 나중에 삼국지에 등장하는 화타로 이어지고 말입니다.

사실 화타와 관우, 그리고 화타와 조조의 관계는 삼국지에 나왔던 것과는 다르다고 하네요.

우리는 나중에 화타의 마을도 갔고 사당도 들려 물어보았거든요.

 

상상력이 풍부한 나관중이 관계조차 없는 화타를 끌어들여 조조를 악당으로 만들고

관우를 대단한 사람으로 미화하기 위한 희생양이 바로 화타였습니다.

화타가 뭐라 했길래 나관중은 조조를 나쁜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화타를 데려왔을까요?

화타와 조조는 보저우라는 같은 동네에서 태어났으며 두 사람이 태어나 살았던 마을이

걸어서 다녔을 정도로 가깝습니다.

그리고 화타는 조조보다 12년 먼저 죽었기에 두 사람은 만난일 조차도 없다고 합니다.

 

정원도 멋지게 꾸며놓았습니다.

그냥 시간이 있으시면 산책하듯 가벼운 마음으로 돌아보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굴원문천(屈原問天)이라는 조각상이 있네요.

아마도 굴원이 하늘에 자신 생각이 옳지 않았냐고 묻고 따지고 있나 봅니다.

혹시 자신의 뜻을 관철하기 위해 멱라수에 몸을 던지기 직전의 모습인가요?

"南有屈平, 北有介子"라는 말이 있지요.

남쪽에는 굴평이라는 사람이 있고 북쪽에는 개자추가 있다는 말입니다.

굴평은 면산에서 불에 타죽은 개자추만큼 유명한 충신이었던 모양입니다.

두 사람의 공통점은 자신을 던져 뜻을 관철하려 했다는 게 아닐까요?

 

그 유명한 위나라의 오기장군 모습으로 보입니다.

조형물은 장군의 모습이 아니고 문신으로 보이네요.

나중에는 일인지하 만인지상이라는 승상의 자리까지 올랐으니 문신의 모습도 괜찮겠네요.

오기장군은 평생에 76번 전투에 참전해 64번을 이기고 한 번도 패하지 않고 12번을 비긴

전쟁의 달인이었다 합니다.

그러나 장군 자리에 오르기 위해 부인을 죽이는 살처구장(殺妻求將)이라는 오점도 남겼지요.

또한, 벼슬에 오르기 전에는 고향 땅을 밟지 않겠다고 집을 떠날 때 자신의 팔을 물어뜯으며

어머니와 약속했다고 어머니가 돌아가셨어도 어머니 제사조차 모시지 않은 냉혈한이었지요.

 

오기 장군은 연저지인(吮疽之仁)이라는 유명한 말도 만든 장본인입니다.

그 말은 종기를 입으로 빨아주는 인자한 마음이라는 의미라네요.

위대한 의성 드라마에 나오는 이야기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가 장수로 있을 때 부하가 종기로 고생하자 부하의 종기를 입으로 빨아

치료했다고 해서 나온 말이랍니다.

그만큼 부하를 사랑했다는 의미겠지만, 전투의 승리를 위해 군사를 관리했다는 의미기도 하네요.

 

요즈음 우리나라도 대선으로 매우 시끄럽습니다.

모두 민초를 향해 연저지인하겠디고 읍소를 합니다.

선거가 끝나고 돌아서서 룸싸롱에 들어앉아 양주병이나 빨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그런 오기장군도 여러 사람에게 모함과 시기를 당하고 여러 나라를 전전하는 팔자가 되어

마지막으로 초나라에 들어가 재상 자리에 올랐지만, 그를 발탁한 도왕이 죽는 날 역모가 일어나고

결국, 오기는 도왕의 시신에 엎드려 반란군이 쏜 화살을 맞고 숨을 거두었다 합니다.

그러나 그 후 태자가 왕위에 오르자 도왕의 시신에 화살을 쏜 자들을 모두 주살하며

이때 멸문지화를 당한 집안이 70여 집안...

오기는 마지막 반란군과의 전투에서 죽었지만, 결국 이긴 셈이 되었으니

1승을 더 추가해야 하지 않겠어요?

 

닭싸움 구경에 빠져 도낏자루 썩는지 몰랐던 위나라 왕의 모습도 있습니다.

취미도 참 여러 가지인가 봅니다.

그러나 조형물이 엉성하고 관리도 부실해 보입니다.

입장료만 챙기지 마시고 관리도 제대로 했으면 좋겠네요. 

달싸움의 역사도 무척 오래되었던 모양입니다.

 

여기도 말춤 추려고 정원 구석에서 대기하는 엑스트라가 있네요.

중국은 말춤 춘다고 정말 말을 데리고 나와 추려나 봐요.

음악만 들리면 바로 나올 자세로 기다리는군요.

 

담장을 따라 예전 고사에 나온 글의 의미를 간단하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위에는 황량몽(黃梁夢)이라는 말로 한단지몽처럼 인생이나 영화는 모두 꿈처럼 덧없다는

말인듯하고 아래는 한단학보(邯鄲學步)로 남을 따라 하다가는 제 것조차도 잃어버린다는

의미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한단은 나중에 츠시엔을 가려고 들렸던 곳입니다.

진시황의 생모도 한단 출신이고 아버지는 한단에 인질로 와 있었고 그 유명한 장삿군인

여불이가 한단에서 진나라를 경영하는 사업을 시작했죠.

한단에 얽힌 이야기가 무척 많지요.

 

이번에는 지상담병(紙上談兵)을 나타낸 말로 종이 위에서 병법을 논해봐야

모두가 허사라는 의미인 듯합니다.

전투란 실전에 강해야지 말로는 무슨 일을 못하겠어요?

말로는 모든 국민을 행복하게 한다고 하지만, 세상에 모두를 만족하게 하는 나라는

세상에 하나도 없습니다.

 

이번에는 절부구조(窃符求趙)라는 말이 있습니다.

훔친 병부로 조나라를 구했다는 말로 대의를 위해 작은 것은 버려도 좋다는 의미가 아닐까요?

  여기에 얽힌 이야기 한 토막...

중국의 전국시대, 위나라의 신릉군(이름은 무기無忌)은 안희왕의 배다른 동생이었다네요.

신릉군은 덕과 지혜를 겸비하였으며, 또 인자하고 겸손하며 예의가 바른 까닭에 선비들이

사방 수 천 리에서 앞을 다투어 모여들어 식객이 3천 명이나 되었답니다.

신릉군은 그중에서도 동문을 지키는 후영이란 문지기를 깍듯이 모셨다네요.

이때가 전국시대 사공자는 경쟁적으로 식객을 거둘 때였지요.

 

  위나라 안희왕 20년, 진나라의 소왕이 조나라를 쳐들어가 조나라의 수도 한단을 포위했자

조나라의 혜문왕과 평원군은 여러 차례 위나라의 안희왕과 신릉군에게 편지를 보내

다급하게 구원을 청했습니다.

안희왕이 장군 진비를 시켜 10만의 군사를 이끌고 조나라를 돕게 하자,

진나라의 소왕이 사자를 보내어 이렇게 말했답니다.

 “만약 제후 중에 누구든 조나라를 돕는 나라가 있으면, 조나라를 격파한 후

반드시 군사를 돌려 그 나라를 공격하겠다.”

 

  이 말을 들은 안희왕은 진비의 진격을 멈추게 하였고 진비는 왕의 명령에 따라

진나라를 공격하지 않고 진나라와 조나라의 싸움을 멀리서 구경만 했답니다.

그렇지만 신릉군은 처남 매부 사이로 평원군의 구원요청을 거절할 수 없었습니다.

  신릉군은 스승처럼 모신 동문을 지키던 후영의 조언을 받아 안희왕이 총애하는

여희(如姬)에게 뇌물을 주고 그녀를 꾀어 안희왕의 병부를 훔치게 하였다네요.

 

신릉군은 이 훔친 병부로 왕의 명령으로 속여 말하고 진비를 죽이고 그의 군대를

손에 넣은 다음, 스스로 군대를 지휘하여 진나라의 군대를 공격하여 물리치고 조나라를 구하였답니다.

  이 이야기에서 나온 말이 바로 절부구조(窃符求趙)라는 말로

병부를 훔쳐 조나라를 구하다라는 의미라네요.

 

이번에는 부형청죄(負荊請罪)라는 말이 있네요.

글자의 의미는 가시나무를 등에 지고 때려 달라는 의미일 듯합니다.

그냥 때려도 아픈데 가시나무를 등에 지고 맞으면 더 아프지 않을까요?

그러니 자신의 잘못을 뼛속까지 인정하고 처벌을 자청하는 의미가 아니겠어요?

 

조나라 혜문왕 시절에 문관 인상여와 무장 염파가 있었답니다.

두 사람으로 말미암아 이웃의 강대국인 진나라도 함부로 집적거리지 못했답니다.

진나라와 회맹의 자리에서 인상여는 기지를 발휘해 우세한 입장에 서게 했고 게다가

진나라로부터 화씨벽(和氏璧:초나라 화씨가 봉황새가 깃든 돌에서 캐낸 옥)을 되찾아오는

 임무를 완수하고 상경(上卿)에 임명되어 그 명성이 염파를 능가하게 되며 이렇다 보니

염파는 몹시 불만스러워 인상여를 만나면 욕을 보여 주겠다며 허세를 부렸답니다.

 

이 말을 전해 들은 인상여는 될 수 있으면 염파를 만나지 않으려고 병을 핑계로 조정에

나가지 않았고 얼마 뒤, 인상여는 외출하였다가 길거리에서 염파와 마주치자,

얼른 수레를 끌고 골목으로 피해버렸습니다.

그러자 그의 부하들이 그 까닭을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인상여가 하는 말...

"진나라 왕의 위세에도 놀라지 않은 내가 어찌 염파 장군을 두려워하겠는가?

지금 진나라가 우리나라를 무시하지 못하는 것은 나와 염파 장군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국가의 위급을 뒤로하고 사사로운 원한만을 따진다면,

이는 진나라가 바라는 일이 될 것이다."

염파는 이 말을 전해 듣고, 옷을 벗어 어깨를 드러낸 채 가시나무를 짊어지고

인상여의 집 문 앞에 와서 크게 사죄하였다네요

"비천한 인간이라 귀공의 관대함이 이토록 크신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이리하여 두 사람은 마침내 친하여져 서로를 위해 목을 벨 수 있는

사이가 되었다고 합니다.

 

완벽귀조(完璧歸趙)라는 글입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완벽이란 단어는 흠이 없는 둥근 옥이라는 말에서 나온 말일 겁니다.

그러니 온전하게 돌려준다는 의미로 조나라의 인상여가 구슬을 가지고

진나라에 갔다가 온전하게 다시 가져왔다는 말에서 유래했나 봅니다.

진(秦)나라 소왕은 유명한 보물인 화씨벽(和氏璧)이 조나라 혜문왕의 수중에 있다는

말을 들었고 소왕은 화씨벽을 차지하고 싶은 욕심에 편지를 보내 혜문왕에게 진나라의

열 다섯 개의 성과 바꾸기를 청하였다네요.

그러나 혜문왕은 화씨벽을 주더라도 15성을 얻지 못한 채 그저 속을 것만 같고

그렇다고 주지 않으면 진나라의 공격을 받게 될 것이 걱정되었습니다.

혜문왕이 대신들에게 사신으로 누가 적당한지를 묻자 모두 인상여를 추천하였답니다.

혜문왕이 인상여를 불러 몇 가지 이야기를 나누어 보고는 적당한 사신을 추천해보라고 하자,

인상여는 이렇게 말했다네요.

"적임자가 없으시다면 신으로 하여금 벽옥을 가지고 진나라에 갈 수 있게 해주십시오.

만약 약속한 성들이 조나라에 들어오게 된다면 화씨벽을 진나라에 주겠습니다만,

성들이 수중에 들어오지 않는다면 신은 벽옥을 완전하게 보존하여 조나라로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臣請完璧歸趙)

바로 이 말에서 따온 고사인가 봅니다.

 

너무 지루하셨죠?

내일은 노룡두라는 곳으로 가겠습니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여행 중에도 가끔 여유를 가지고 이렇게 고사와 얽힌 이야기도

음미하며 다니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우리는 여행도 전투적으로 너무 빨리 발도장만 찍고 다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대단한 풍경도 좋지만, 이런 이야기 속으로 다니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