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묘의 행단과 회 나무
대성문을 통과하면 엄청나게 놀랄 일이 벌어집니다.
이거 믿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그곳에 선사수식회(先師手植檜)라는 나무가 한 그루 우뚝 솟아 있는데
놀랍게도 공자가 손수 심은 회나무라 합니다.
정말 공자님! 왜 그러셔요~
공자님이 심으신 나무가 아니시죠?
나무가 아무리 오래 살아도 2.500년도 넘게 산다고요?
공자님의 氣가 통하면 가능하다고요?
공자님!
믿어지지 않사옵니다.
때로는 잘 자라기도 하고 때로는 시들기도 하며 여러 번 반복하다 청나라 옹정 10년에
신기하게도 지금의 나무가 다시 살아나 무럭무럭 자라고 있답니다.
물론 전설에 따르면 말입니다.
죽은 나무의 뿌리에 다시 꽃을 피운다 하면 이 나무가 무슨 비아그라라도 먹었단 말입니까?
미안했는지 안내 글에 루머라고 쓰고 괄호 열고 (전설)이라 쓰고 괄호 닫아 놓은 것을 보면
중국 사람도 모두 무대뽀는 아닌가 봐요. 그쵸?
위의 사진에 보이는 나무가 공자가 직접 심었다는 회나무인 선사수식회(先師手植檜)라는
나무인데 그렇다면 이 나무의 수령이 2천5백 년을 넘었다는 말이 아닙니까?
왜 중국은 회나무가 이렇게 오래 사는 겁니까?
나무도 부끄러웠는지 지붕 너머로 숨어버리는 중입니다.
청나라 때 한번 타버렸으나 옹정제 시절에 뿌리 부근에서 다시 자라나기 시작해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고 하니 알다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알 필요도 없기는 하지요.
나무도 귤화위지처럼 어디에서 자라느냐에 따라 이렇게 오랜 세월 살아갈 수 있나 봅니다.
그러나 이런 의심을 하면 안 됩니다.
공자의 가르침에 옛것을 살려 새로운 것을 알게 하는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이라는
명언이 있기에 이게 바로 비밀이 아닐까요?
옛것만 아니라 죽은 것도 살려 새롭게 하는 위대한 정신이 바로 이 회나무를 만들지 않았을까요?
공자의 손은 마이더스의 손입니다.
몰랐던 덜수 佳人이 바로 무식한 까닭이었습니다.
하도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는 일이라 잠시 넋을 잃고 바라보다 뒤를 돌아보았습니다.
방금 통과한 멋진 대성문의 전경이 보입니다.
다시 보아도 용을 조각한 돌기둥은 정말 멋지네요.
그런데 걱정입니다.
혹시 저 기둥의 용이 꿈틀거리며 살아 움직이면 대성문을 그대로 들고
하늘로 올라갈 게 아니겠어요?
다시 정신을 가다듬고 앞을 바라봅니다.
멀리 정자 하나가 있고 그 앞에 돌로 만든 무엇이 보이고 주변에 사람이 많이 모여 바라보네요.
저곳도 보통 지나칠 곳이 아니라는 말일 겁니다.
대성전(大聖殿)과 대성문 사이에 무엇이 있을까요?
지금 이곳이 공묘의 가장 핵심적인 곳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누각에 걸린 편액이 희미하게 보입니다.
한 발자국 더 다가갑니다.
이제 편액에 쓴 글이 보이시죠?
행단(杏壇)이랍니다.
행단이라고 하면 그 유명한????
당시 공자는 주유천하 하며 뜻을 펴려고 했지만, 그의 꿈을 받아들일 군주는 아무도 없었나 봅니다.
14년 동안이나...
제나라에서 버림받고, 위나라에서 물 먹고, 진나라나 채 나라 사이에서는
포로와 다름없는 생활을 했다는군요.
위나라에서는 제자 중 하나였던 자로의 눈총까지 받아보았고...
이런 모습을 당시 세간에서는 상갓집 개와 같았다 하며 공자도 그 말이 맞는 말이라 했다고
사마천은 기록했다 하네요.
상갓집 개라... 공자가 말입니다.
이렇게 공자는 그의 꿈을 접고 드디어 참담한 심정으로 "돌아가자! 이제 고향으로 돌아가~
내가 필요한 곳을~"하며 고향에 돌아와 바로 여기 살구나무 아래 제자를 모으고
후학을 기르는 일에만 전력을 기울였다고 하더군요
돌아가자고 한 그곳이 바로 우리가 서 있는 여기가 아닐까요?
천하의 공자라도 다 길이 있나 봅니다.
정치가로서의 참담한 실패는 공자의 길이 아니었나 봅니다.
당시의 정치상황은 군사전문가가 대우받고 덕치보다는 강한 법으로만 다스리자는 부국강병을
주장하는 사람이 득세했으며, 도덕을 앞세운 덕치를 주장하는 사람은 그리 필요하지 않았나 봅니다.
이렇게 싹이 튼 법가의 대표주자인 한비자를 중심으로 무럭무럭 자란 법가의 사상이 결국,
중국 최초 통일국가인 진나라를 탄생하게 한 원인인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너무 엄격한 통제와 절대복종만 강압하는 법가의 철학은 진나라가 15년 만에
세상에 안녕을 고하며 사라지게 되고 법가 철학도 상갓집 개보다 못한 신세가 되며
인정받지 못하게 되었나 봅니다.
여기 행단이 바로 공자님이 서 계셔야 할 장소였던가 봅니다.
佳人도 잠시 그 자리에 서서 그때를 상상해 봅니다.
그런데 어쩌죠?
중국에 가서 상갓집 개만 보면 자꾸 공자님이 생각날 텐데 말입니다.
네.. 말로만 듣던 공자가 제자들에게 강의했다는 야외 교실이라는 그 유명한 곳이 바로
여기로 행목(杏木) 아래에서라고 전해진다네요.
행단(杏壇)이 대성전 용도(甬道) 중앙에 있는데 공자는 살구나무 아래서 강의를 했다고 합니다.
가만히 눈을 감고 귀를 기울입니다.
왜?
혹시 그때 공자께서 하신 가르침을 들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입니다.
들리시죠?
공자님과 그 제자들이 토론을 하는 소리 말입니다.
자~ 여러분도 함께 눈을 감고 귀 기울여 볼까요?
무엇이 들리십니까?
그러나 이게 얼마나 바보 같은 짓인지 금방 깨닫습니다.
그 이유는 헐! 공자와 제자가 중국어로 이야기했을 게 아니겠어요?
지나가는 중국인 가이드의 말도 알아듣지 못하며 공자와 대화를 나눈다고요?
어리석은 佳人은 이렇게 여행 중입니다.
사실, 공자 살아생전 이런 누각 안에서 강의한 게 아닐 겁니다.
이 누각은 후에 송나라 때 처음 만들었고 다시 금나라와 명나라 때 중수한 것이라 합니다.
나무요?
그때 심어놓은 나무가 아직 살아있을까요?
지붕도 노란색의 유리기와를 얹어 더욱 멋지군요.
행단 주변에는 건륭황제가 썼다는 행단찬(杏壇贊)이라는 어비(御碑)가 2층으로 된 정자 안에 있습니다.
대성전 앞에는 자신의 지혜를 세상에 알린 장소인 행단이라는 정자가 있습니다.
원래 살구나무라고 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은행나무라 알려져 성균관 주변이나 향교 주변에
은행나무를 많이 심었다 합니다.
공자의 가르침이 중요하지 부근에 심은 나무가 중요한가요?
佳人도 여기 오기 전까지는 은행나무로 잘못 알았습니다.
예전에는 대성전이 바로 행단이라는 자리인 이곳에 있었다 하더군요.
행단이라는 편액도 건륭제가 썼다고 하니 확실히 글쓰기를 무척 즐긴 황제였나 봅니다.
이곳에 서서 후학들에게 자신을 뜻을 전하며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왜 자신의 개혁사상이 세상을 움직이지 못했을까요?
문제가 어디에 있었을까요?
내 탓이 아니고 남 탓이었을까요?
그것은 아무도 모릅니다.
공자도 몰랐을 테니까요.
공자도 풀지 못한 것을 지금도 우리 정치인은 서로 풀겠답니다.
국민 모두를 행복하게 만들어 드린다고 잡룡들이 다시 준동하고 있습니다.
정말 이번에는 제대로 된 용 하나 탄생하여 국민 모두의 눈물을 닦아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모두 서로 자기가 용이라 하면 소는 누가 키웁니까?
세상의 석학이라는 사람도 때로는 자신의 뜻이 먹혀들어가지 않는답니다.
정치란 이렇게 자신의 뜻을 펴는 게 아니라 있는 듯 없는 듯하여 민초의 뜻을 살피는 일이지
똑똑한 척 나대며 괴이한 짓이나 하는 일은 시정잡배나 하는 일이 아닐까요?
세상을 안다는 일은 무척 어려운 일이 분명한가 봅니다.
佳人의 여행기도 쓰는 듯 마는 듯하여야지 이렇게 오래도록 써대니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쓰는 사람도 모른답니다.
佳人이 하는 짓은 분명 괴이하고 시정잡배와 같은 일일 겁니다.
그래도 내일 다시 공묘 안을 돌아다닐 겁니다.
왜?
갈 데가 없으니까요!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사마천이 쓴 사기(史記)의 공자세가(孔子世家)에 이런 대목이 있다 합니다.
공자가 제자를 거느리고 여러 나라를 다닐 때
정나라에 이르러 제자와 서로 길이 엇갈려 공자는 동문 앞에 쪼그려 앉아 있었다네요.
자공을 위시한 제자들은 사방으로 흩어져 열심히 공자를 찾았을 겁니다.
자공이 지나가는 정나라 사람을 만나 공자의 인상착의를 설명하며 "혹시 이런 노인 한 분을
본 적이 있습니까?"라고 물었겠지요.
그 사내 대답이 "동문 앞에 한 노인이 쪼그려 앉아 있는데...." 하며 그 모습을 장황하게 설명하며
나중에 하는 말이 "노인의 지친 모습이 마치 상갓집 개(若喪家之狗) 같았소!"라고 하더랍니다.
자공이 다른 제자와 함께 동문을 찾아가 공자를 만나 뵙고 방금 사내가 했던 말을 공자에게
전하니 공자가 껄껄 웃으며 그 사내가 제대로 보았다 하며 지금 세상을 주유하며 찾아다니는
자신의 처지가 상갓집 개와 같다고 했다네요.
그러면 공자님이 상갓집 개라면 공자님과 함께 주유천하 한 제자를 한꺼번에 뭐라고 불러야 하나요?
개 떼?
천하의 공자를 喪家之狗라고 한 그 사내를 만나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