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오팡동(藥方洞 : 약방동)에는 처방전이?
사실 봉선사를 보고 나면 나머지 석굴은 시시합니다.
그 정교함이나 섬세함에 많이 떨어지고 규모 또한 기대에 미치지 못합니다.
용문석굴이 아무리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해도 이곳에 있는 모든 석굴이 다 멋지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사실 하나하나를 따로 떼어놓고 보면 그게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시시함이 아닌 것은
분명하며 같은 곳을 다녀와서 쓴 여행기도 무지하게 많지만, 佳人의 여행기처럼
만들다가 만 석굴과도 같은 시시한 여행기도 있지만, 그러나 몇 곳은 정말 한참을 서서
바라보아도 좋은 곳이 있더군요.
멀리서 바라보면 규칙도 없이 생각날 때마다 심심하면 올라가 마치 벌집처럼 석벽에 굴을 파고
불상을 만든 것처럼 보입니다.
어느 곳은 만들다가 잠시 집에 밥 먹으러 갔다가 와보니 어디에 굴을 팠는지 잊어버려
그대로 둔 곳도 있고 또 다른 곳은 만드는 도중에 치매기가 생겨 그만둔 것도 보이고
그냥 굴만 파다가 왜 파고 있는지 잃어버리고 만 것도 보입니다.
물론 덜수같은 석공 이야기입니다.
아마도 만드는 도중 설사라도 났나요?
갔다 와 보니 너무 많은 석굴 중 자기가 어느 것을 만들다가 갔는지 잊어버리기라도 했나 봅니다.
또 너무 훼손이 심해 지금은 그 형태조차 알아보기 어려운 석굴도 많습니다.
일부러 훼손한 것도 있지만, 석굴 자체의 돌이 부실해 세월이 흐름에 따라 서서히
무너져내리는 것도 보이는데 위의 사진처럼 그동안 관리조차 하지 않아 먼지가 뽀얗게 앉아
보기조차 민망한 경우도 있더군요.
오늘 여기 온 김에 세족(洗足)이라도 해 드리고 싶습니다,
경로할인도 해주지 않으면 관리라도 제대로 하든지...
이번에는 화소동(火烧洞)이라는 석굴을 보겠습니다.
주불은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너무 심하게 훼손되었습니다.
북위 시대에 만든 석굴이라 합니다.
동왕 위로 불꽃무늬 문양이 보이고 서왕의 모친이 용을 타고
승천하는 조각이 그려져 있습니다.
비록 훼손이 심한 곳이지만, 자비로운 마음만은 변함이 없습니다.
자세히 보시면 주불의 두 손이 가지런하게 모여있고 배 부분에
새 두 마리가 안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이 상황은 조각으로 새겨진 게 아니고 실제상황입니다.
부처의 마음은 사람만 아니라 작은 새라도 추위에 떨면 이렇게 따뜻하게 품어줄 겁니다.
이번에는 황보공굴(皇甫公窟)입니다.
이 석굴 또한 북위 시대에 만든 석굴입니다.
정면으로 좌불이 자리하고 있고 그 옆으로 두 제자와 네 보살이 서있습니다.
비록 작은 석굴이지만, 이 자체가 하나의 세상이 아닐까요?
세상은 넓은 세상도 있지만, 이렇게 작은 세상도 있걸랑요.
이 작은 석굴 안에서 세상을 보았다면 이미 득도의 경지에 가깝게 다가 선 겁니다.
칠 소불(小佛)이 그 옆으로 있고 유마거사와 문수보살의 설법 그림도 있습니다.
남북 벽 아래에는 예불도가 새겨져 있습니다.
훼손만 되지 않았다면 무척 아름다운 곳이라고 생각됩니다.
입구에는 비천상이 비행소녀처럼 멋지게 비행하고 있습니다.
이 모습은 예전에 터키의 에페소스에서 본 정복과 승리의 여신인 니케와 무척 닮았습니다.
그때 보았던 니케(Nike)는 너무 뚱뚱해 절대로 비행할 수 없이 보였지만,
여기의 플라잉 압사라는 아주 잘 날아다니는 것 같습니다.
이번에는 당나라 때 만든 팔작사동(八作司洞)입니다.
이 팔작사동이라는 이름은 북벽 하부에 동경팔작사라는 글이 새겨져 있어 그리 부른다 합니다.
불상이 모셔진 좌대 아랫부분을 자세히 보시면 춤추는 사람이 조각으로 남아있습니다.
지금은 선명하지 않지만, 당시는 무척 화려했던 석굴 중 하나였을 겁니다.
이 석굴을 만든 장인은 춤추는 조각상을 만들 때 자신도 덩실덩실 춤을 추고 싶었을 겁니다.
남을 행복하게 만들어 줄 때 진정 자신이 스스로 제일 행복해지는 법이 아닙니까?
무심한 세월로 말미암아 무척 훼손이 심하지만, 그중에서도 몇 곳은 아주 멋진 석굴도 남아
있어 오늘은 특별한 석굴 하나를 소개해 보렵니다.
봉선사 바로 옆에 야오팡동(藥方洞 : 약방동)이라는 석굴이 있습니다.
조금 철로 만든 계단을 올라가야 볼 수 있습니다.
북위 때 조성을 시작해 북제 때 완공했다고 하는데 약방동이라는 이름은 동굴 안으로
들어가는 기둥 입구 양쪽으로 약 처방이 음각으로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석굴 천장에는 3중 연화 문양이 조각되었고 정면으로는 오존(五尊)의 조각이 보입니다.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없기에 천장의 모습을 자세히 찍을 수 없으나 그을음이 무척 심한 천장을
자세히 보시면 어느 정도 여러분도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이 중요한 보물과도 같은 석굴 안을 지금 창고로 사용하나요?
야간개장도 하는가 봅니다.
조명시설도 그대로 남아있네요.
석굴 왼편의 모습입니다.
석굴 안에서 곰이라도 잡아먹기라도 했나요?
그을음이 석굴 안을 까맣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어떻게 중요한 유적을 이렇게 관리할까요?
그러나 우리 같은 관광객은 가까이 다가갈 수 없게 멀찍이 바리케이드를 쳐 놓았습니다.
위의 사진처럼 석굴 입구 벽 양쪽으로 보이시죠?
여기에 140여 종 이상의 한약 처방전이 새겨져 있어 약방동으로 불리는 곳입니다.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석각 처방전이라고 해야 할 겁니다.
이는 고대 약학의 중요한 자료라고 평가하고 있다네요.
벽이 새까매진 것은 아마도 탁본을 뜨느라 그리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우쒸~ 그럼 환자는 처방전을 여기에 와서 탁본으로 떠서 가져가야 하나요?
이 처방을 살펴보면 당시의 살았던 사람이 주로 걸렸던 질병도 알아볼 수 있고 어떤 동식물을
약재로 얼마 정도의 양으로 처방하고 사용했나를 연구하는 무척 중요한 자료가 될 겁니다.
약방이라는 게 개인의 주요한 지식인데 이렇게 동굴을 찾는 모든 사람에
그 비방을 공개해도 되나 모르겠어요.
이때도 처방과 조제가 분리됐나 모르겠네요.
그리고 누가 처방을 했을까요?
민간 처방일까요? 아니면 황제를 돌보는 어의였을까요.
그다음이 고양동이라는 석굴로 고양동은 용문 석굴 중 493년도에 만든 석굴로
이곳 용문석굴 중 가장 먼저 만든 석굴이라 합니다.
이 동굴은 매우 중요한 곳이라 합니다.
그러나 석굴 내부의 모습은 관리상태가 형편없습니다.
많은 부분이 인간의 손에 부서진 모습이 역력합니다.
석벽 양쪽으로는 많은 벽감을 만들고 그 안에 불상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또한, 조각 내용도 하나의 동굴 안의 조각으로는 가장 풍부한 모습이라고 알려졌습니다.
지금 보이는 저 동물조각은 상상 속의 동물인 기린이 아닌가 생각되네요.
저명한 위나라 서법의 진품이라는 "용문 이십 품"이라고 하는 글씨본 중 19품이 여기에
새겨져 있다고 하며 그러나 석굴 안으로 들어갈 수 없도록 멀찍이 막아놓았고 날씨 때문에
내부가 어두워 사진 찍기가 쉽지 않습니다.
용문석굴의 많은 석굴 중 가장 풍부한 조각이 남이 있다고 하니 왼쪽도 둘러보고...
어때요?
정말 많은 조각이 빈틈없이 새겨져 있지요?
아무리 귀중하고 대단한 글씨가 있고 훌륭한 석굴 조각이 있다고 해도 멀리서 보고
사신을 찍을 수 없기에 안타까울 뿐입니다.
오른쪽도 다시 한번 둘러봅니다.
위의 사진 중 왼쪽 중간을 보시면 古陽洞이라고 쓴 글이 보일 겁니다.
그래서 이곳을 고양동이라 하나 봅니다.
이렇게 남북 벽면에는 벽감을 층층이 만들고 그 안에 효문제를 비롯한 왕공 귀족과 고급 관리의
모습도 볼 수 있기에 북위라는 나라는 석굴 파는 기술만큼은 인정해야 하겠습니다.
석굴 안으로 들어갈 수만 있다면 더 훌륭한 작품을 여러분에게 보여드릴 수 있지만....
주불은 미소를 머금은 석가모니불이라 합니다.
지금 여러분을 바라보시고 미소 짓는 부처를 확인하세요.
물론 연꽃을 들고 계시지는 않지만, 바라보는 우리 또한 미소로 화답합니다.
주불의 양쪽으로는 머리에 보관을 쓴 보살이 만들어져 있고
아주 장엄한 모습으로 지금까지 남아있습니다.
돌아보니 많은 불상의 얼굴이 훼손되었습니다.
다른 종교의 핍박을 받은 것도 아닐진대 왜 이렇게 훼손되었을까요?
이곳도 붉은 광기가 발동했나요?
문명을 입에 올리며 사는 신중국이 설마 비문명의 전형인 유적 파괴에 앞장섰을까요?
만약, 그랬다면, 개도 하지 않을 짬뽕 같은 짓을 중국 정부가 앞장서서 했다는 말이겠네요.
앞으로는 문명을 입에 올리며 뒤로는 망치를 들어 문명을 파괴했다는 말인가요?
내일은 만수교라는 이하 강을 가로지른 다리를 건너 동산 석굴을 구경하렵니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굵고 강한 나무는 자기가 원하지 않아도 중요한 기둥으로 쓰이고
약하고 무른 나무는 아무리 좋은 곳에 쓰이기 원해도 항상 묶여서 땔감으로 사용된다고 했습니다.
사람도 그 재능에 따라 운명이 스스로 결정된다고 했습니다.
땔감으로 사용되기를 바랍니까?
아니면 중요한 기둥으로 쓰이기를 원하십니까.
바로 우리 하기 나름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