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여행기/하남성(河南省)

연화동에서 잠시 머뭇거립니다.

佳人 2012. 6. 12. 08:00

부처란 이곳 사람에게 어떤 의미였을까요?

이렇게 많은 부처를 만들게 되면 저절로 성불하는 겁니까?

그것을 알면 佳人이 지금 이렇게 살아가지는 않겠지요.

이미 득도하고 하산해 성불이 되어 더는 구도가 필요하지 않을 겁니다.

佳人은 산다는 게 무엔 지도 모르고 살아가는 미물 같은 존재가 아니겠어요?

 

불교뿐 아니라 옛사람에게 종교의 힘이란 전지전능한 경배의 대상이 아니었을까요?

인간의 능력을 넘어서는 초능력에 대한 경외의 마음으로 신은 필요한 존재였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곳 용문석굴에 새겨진 불상만 작은 것을 제외하고 15.000개의 불상이라 합니다.

손톱만 한 작은 크기의 불상을 제외하고 말입니다.

그러나 그 석불의 모양은 달라도 나라마다 부처를 섬기는 마음은 같은 마음이 아닐까요?

 

부처의 힘으로 나라의 안녕을 바라는 마음은 우리나라에도 팔만대장경으로 남아 있습니다.

이곳 용문석굴이나 운강석굴도 모두 안녕을 염원하는 상징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세상을 살며 인간은 부처를 통하여 바라고 원하는 게 무척 많았나 봅니다.

 

위의 넉 장의 사진은 용문석굴과는 아무 관계가 없는 사진입니다.

오래전 캄보디아 씨엠립을 여행하며 찍은 사진으로 동남아시아의 대국이라는 앙코르 제국을 가장 번성한 시기로

이끌었다는 자야바르만 7세라는 위대한 지도자가 바이욘 사원에 부처상을 만들었다고도 하고 자신의 모습을

형상화하여 만들었다는 모두 216면의 어마어마한 부처의 얼굴 사면상이 만들어져 있었던

사원의 사진을 잠시 이곳에 올렸습니다.

 

나라는 다르고 시대도 달랐지만, 나라의 지도자가 부처를 경외하는 마음으로 만들었다는 공통점은 있잖아요.

부처의 미소가 있어 앙코르의 미소라고도하는 부처의 얼굴이 이 사원에는 216면이나 있다는 곳입니다.

 

여행 중에도 샛길로 빠져 다니기를 좋아하는 우리 부부가 이번에는 여행기 속에서도

더운 나라인 캄보디아까지 잠시 다녀왔네요.

이제 제정신이 들어 다시 용문석굴로 돌아갑니다.

여행이란 게 어떤 룰에 따라 하는 게 아닐뿐더러 여행기도 정해진 틀이 없는 자유로운 이야기가 아니겠어요?

잠시 다른 생각 했다고 야단치지 않으실 거죠?

 

만불동을 지나면 쌍굴이라는 이름이 붙은 두 개의 석굴이 나란히 있는 게 보입니다.

쌍굴이라고 하니 고속도로 상하행선 터널도 아니고 어감이 영 그렇습니다.

이 굴은 당나라 때 만들 석굴이라 하네요.

위의 사진이 북쪽에 있는 석굴로 삼세불이라는 석굴입니다.

그 이유는 석굴에 "삼세불"이라는 글이 새겨져 있답니다.

 

위의 사진은 남쪽에 있는 석굴입니다.

남쪽 석굴 정면에는 가운데 주 존이 미륵불이랍니다.

그 주위 양쪽으로 두 보살과 두 제자 상이 있고 그 옆으로는 천불이 조각으로 새겨져 있습니다.

 

가끔 석벽을 파고 이렇게 탑을 조각한 곳도 있네요.

이게 따로 떨어져 어느 산속에 홀로 만들어졌다면 이 또한 대단한 작품이고 많은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겠지만,

수많은 석굴 사이에 이렇게 있다 보니 어느 누구 눈길조차 주지 않습니다.

세상을 살아가며 이런 모습을 우리도 많이 보아왔습니다.

 

이번에는 연화동이라는 이름이 붙은 석굴입니다.

연화동이란 석굴 천장에 아름답고 화려한 연꽃문양이 조각되어 있기에 붙인 이름입니다.

북위 효창 연간(525-527년)에 만든 석굴로 그 이름이 석굴 천장의 거대한 채색 연꽃 때문입니다.

지금까지의 석굴과는 달리 제법 멋진 예술작품을 보는 듯합니다.

연꽃은 더러운 물에서 피어나는 깨끗한 꽃으로 불교에서는 서방정토를 상징한다 했나요?

 

연꽃만 어디 확대해 바라볼까요?

어때요?

정말 멋지지 않나요?

지금 막 뽀드득 소리를 내며 연꽃이 꽃잎을 활짝 핀 듯하지 않나요.

제가 점점 맛이 가는 것 같다고요?

 

석굴 정면으로는 석가모니가 선 채로 중생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연화동 앞에서 잠시 머뭇거립니다.

왜?

너무 아름다워서요.

 

불본생전(佛本生傳)에 따르면 석가모니가 태어났을 때 신기하게도 연못가에서 기묘한 연꽃이 피어났다고

했고 석가모니는 태어나자마자 걷기 시작했다는데...

뛰지는 않으셨다니 다행입니다.

석가모니가 사방으로 일곱 걸음씩을 걷자 그 자리에서 연꽃이 피어났다 합니다.

 

성불 후 석가모니가 연꽃 위에 앉았기 때문에 연꽃은 정토(淨土)의 상징이자 불교에서는 제일로 치는 꽃이

되었을 것이며 이러한 이유로 연꽃은 많은 불교예술에서 제일 많이 볼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러나 연화동처럼 이렇게 큰 연꽃은 흔히 볼 수 없는 대형 연꽃입니다.

 

주불의 오른쪽을 살펴봅니다.

이번에는 가섭이 석장(錫杖)이라고 하는 지팡이를 손에 들고 서 있습니다.

지팡이가 보이시죠?

사진 중앙에서 왼쪽입니다.

그러니 부끄러워 돌출된 조각상 뒤로 지팡이를 손에 든 가섭 말입니다.

가섭과 아난타의 얼굴은 약탈 당해 프랑스 기메(Guimet) 박물관이 보관하고 있답니다.

 

만약, 안 보이시면 연꽃 한 송이를 들고 흔들어 보이세요.

흔들 때는 어느 수도자처럼 화투패 석 장이나 지팡이라는 석장이 아니라 아니라 꼭 연꽃입니다.

석장을 든 가섭을 찾으셨으면, 이미 성불의 문턱에 발을 디미셨습니다.

 

왼쪽 위로는 많은 불상이 있는데 작은 것이 바로 손톱 크기의 2cm 정도의 크기라 하니...

이 불상이 용문석굴에서는 가장 작은 석불이라고 하네요.

연화동의 입석불 좌우로는 석벽을 파고 많은 벽감을 만들어 그 안에 석불을 새겨 놓았습니다.

 

이번에는 보태동(普泰洞)이라는 석굴입니다.

이 석굴도 북위 시대 때 만든 석굴이라 합니다.

얼굴이 훼손되어 안타깝습니다.

오른손을 들고 손가락 하나를 폈나 봅니다.

만약, 저 때 어느 손가락은 절대로 하나만 펴서는 안 됩니다.

어멈? 그런데 자세히 보니 가운뎃손가락 같기도 합니다.

 

우짜면 좋겠습니까?

양쪽으로 각각 제자도 있고 보살도 있는데 말입니다.

옆의 제자는 "그리하시면 아니 되옵니다."라고 하며 두 손을 모아 간절히 합장하나 봅니다.

벽감 속에는 "彿本行" 등 글이 새겨져 있다고 하지만, 절대로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막아놓았습니다.

 

그다음에 있는 석굴은 당나라 때 만든 파동이라는 석굴입니다.

당나라 고조의 부인인 유(劉)씨를 위해 만든 석굴이라 합니다.

그래서 그랬나요?

지금까지 보았던 석굴과는 달리 무척 인테리어에 신경을 많이 써서 만들었다는 느낌이 들지 않나요?

산수화를 보는 듯한 느낌도 들고 많은 사람을 만들어 그 안에서 놀아도 심심하지 않도록 배려했네요.

유 씨 부인은 평소 혼자 있으면 외로움을 많이 탔나 봅니다.

 

이번에는 위자동(魏字洞)입니다.

북위 효명제 정광 4년인 523년에 만들었나 봅니다.

주불은 석가모니고 옆으로 두 제자와 두 보살이 있습니다.

천장에는 역시 연화문과 비천상인 압사라가 붕붕 날아다닙니다.

북위의 불교는 우리와는 달리 인도의 비슈누에서 많이 착안해 압사라를 무척 많이 조각으로 남겼습니다.

 

위자동 옆인 왼쪽에는 지붕 모양을 만든 굴이 당자동이라는 석굴입니다.

이곳 석굴 대부분은 입장료를 할인해주지도 않으면서 가까이 다가설 수조차 없게

멀리 바리케이드를 쳐놓았습니다.

그러니 가까이하기에는 너무 먼 석굴이 되어버렸습니다.

게다가 날씨마저 어두컴컴하여 내부의 모습도 제대로 볼 수 없는 날입니다.

 

내일은 용문석굴의 귀염둥이며 대표선수인 봉선사로 가보렵니다.

사실 봉선사가 이곳 용문석굴의 백미라고 하던가요?

벡미인지 흑미인지는 가봐야 알겠죠?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마음이라는 것은 그 자체가 하나의 세상입니다.

그곳에는 지옥도 있고 천국도 있습니다.

지옥을 천국으로 바꿀 수 있고 반대로 천국을 지옥으로도 바꿀 수 있습니다.

바로 우리가 마음대로 만들어가며 살 수 있는 게 그곳입니다.

그게 어려우면 부처를 찾아야 하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