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여행기/하남성(河南省)

고도(古都) 뤄양(洛阳 : 낙양)으로 가면서

佳人 2012. 6. 5. 08:00

 

오늘은 중국의 오랜 세월 동안 여러 왕조의 도읍지였다는 뤄양으로 가는

이야기를 해보렵니다.

뤄양만큼 중국 역사에 등장하는 이야기에 많이 오르내리는 도시도 흔치 않을 겁니다.

이 부근에 있는 도시 중 시안과 더불어 중국의 역사를 책임진 도시가 뤄양이 아닐까요?

이 말은 이 지역이 사람이 모여 살기에는 무척 좋은 조건을 갖춘 곳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과거에는 나라의 힘은 사람이 얼마나 많으냐에 따라 국력이 정해진 시기였을 겁니다.

그러기에 솥의 숫자로 계급을 나누던 시기도 있었다잖아요.

솥이 많다는 의미는 식솔이 많다는 의미고 식솔의 힘은 그 사람의 권력이 되었다 하네요.

여기 절벽장랑이라고 부르는 궈량촌도 결국 사람의 힘으로만 만들어

새로운 세상을 보여주잖아요.

 

 

난핑촌에서 운전기사와 안내양이 밥을 먹고 온다는 바람에 시간이 남아

버스 정차장 부근의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사진 몇 장 찍었습니다.

버스는 정시인 12시에 출발합니다.

나갈 때는 들어올 때와는 요금이 다릅니다. (11원/1인)

'네 마음대로 하세요.'입니다.

그러니 그때그때 다른가 봅니다.

 

 

우리를 태운 버스는 올 때와는 다르게 서서 기다리는 곳이 없어 1시간 조금 더 걸려

후이시엔에 도착하는데 중국에서는 이렇게 같은 곳을 오가는 버스 일지라고

올 때의 시간과 갈 때의 시간조차 많이 다릅니다.

후이시엔은 지도 상에는 작은 도시이나 중국의 작은 도시는 우리나라 대도시만큼

사람도 많고 크며 이제 어제 확인해 둔 뤄양으로 가는 2시 출발 버스를 타고 뤄양으로 갑니다.

 

 

뤄양은 후이시엔에서는 아침 8시와 오후 2시 하루 두 번만 운행합니다.

요금은 뤄양까지 41원이네요.

그러니 뤄양에서 후이시엔으로 오는 버스도 비슷한 시각에 있다는 말이 되겠네요.

지도 상에서 보면 이곳 후이시엔은 뤄양보다 정저우가 훨씬 가깝게 보입니다.

 

 

우리를 태우고 갈 뤄양행 버스입니다.

이 차를 타면 우리 부부를 뤄양까지 데려다 줄 겁니다.

뤄양 어디에 몇 시에 내릴지 알 수 없지만, 숙소를 구하고 뤄양에서 어떻게

시내버스만 타고 다니며 구경할지는 그곳에 도착해 생각해 보렵니다.

공연히 걱정을 먼저 시작한다고 아는 게 없으면 해결할 방법 또한 없을 테니까요.

 

 

틀림없이 포테이토 칩이라고 쓰여있고, 남자 모델이 엄청나게 폼도 잡고 있는데...

우리나라 생감자 칩을 생각하고 하나 사서 먹어보니 감자는 없고

옥수수가루로 만든 과자였습니다.

중국에서 감자는 土豆라고 하고 玉米는 옥수수라는 말이 아닌가요?

맛이 이상해 성분을 보니 玉米라고 되어 있습니다.

중국에서는 포테이토를 옥수수라고 하나요?

  

 

우리를 태운 버스가 뤄양으로 달려갑니다.

오후 2시에 출발한 뤄양행 버스는 다시 어제 아침 우리가 버스를 탔던 운대산

입구를 지났는데 어제 우리와 함께 한참 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던

중국 공로 직원이 오늘도 그곳에 있습니다.

아마도 이곳이 과적 차량을 검문하는 길목인가 봅니다.

우리 부부에게 버스를 잡아주고 목적지까지 부탁했던

고마운 주유소 사장도 흘낏 보입니다. 

 

 

바로 우리 앞으로는 초작에서 운대산까지 다니는 버스가 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탄 버스는 초작 터미널로 들어가지 않고 큰길을 지나다

그냥 승객을 내려주고 다시 출발해 뤄양으로 갑니다.

아침부터 일찍 서둘러 버스만 타고 얼마나 더 가야 도착할지 알 수 없네요.

 

 

초작을 지나 한참을 더 달리자 날이 어두워질 무렵 큰 강을 건넙니다.

느낌으로는 이 강이 황하가 아닐까 생각이 됩니다.

그러나 너무 날씨가 어둡고 또 달리는 버스 안에서 찍은 사진이라 흔들려 버렸지만,

황하라는 생각에 사진을 올려봅니다.

 

 

황하...

중국인에게는 어머니의 강이라 부르고 세상 4대 문명의 발상지 중 하나라는 곳이

이 부근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하남(河南) 성은 말 그대로 황하의 남쪽에 있다고 해 붙여진 이름일 겁니다.

예로부터 중국인은 이 지역을 중국의 중앙으로 여겼기에 중원 또는 中州라 불렀다는군요.

 

 

처음에는 문명 발생지라는 곳일지라도 이렇게 돌로 사냥하며 살았을 겁니다.

그런데 말이죠~

저런 돌이 어떻게 옛날 사람이 만들었다고 단정하죠?

돌도끼니 뭐니 하는 것 말입니다.

채석장 부근에 가면 저런 돌은 얼마든지 구할 수 있는 게 아닌가요?

이렇게 의문이 생기지만, 무식하다는 핀잔을 들을까 봐 저런 돌이 진열된 곳에 가면

佳人은 심각한 표정으로 유심히 이리저리 보기도 하고 고개를 끄덕거리기도 합니다.

사진도 찍었잖아요.

참 가식적으로 사는 佳人입니다.

 

 

이 지방에 살았던 옛날 사람은 코끼리를 이용하고 이곳에 문명을 개척했기에 이 지방을

예(豫)라고 불렀고 이 지방은 인류의 4대 문명 중 하나인 황하문명이

 이곳에서 시작하지 않았을까요?

그래서 허난 성의 자동차 번호판이 예(豫)로 시작한다 하네요.

허베이 성의 자동차는 기(箕)로 시작되고 산서상은 진(晉), 산동성은 제(齊)로 시작하는 이유가

모두 옛 이름이기 때문이 아닐까요?

춘추전국시대야말로 중국이 세계에서 제일 먼저 지방자치를 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겁니다.

그게 당시는 모두 다른 나라이며 또 군주국과 제후국으로 서로 교통 했다고도 하더군요.

유럽에서는 도시마다 제후가 있어 도시국가를 형성했을 것이고요.

사실 로마 제국도 속주가 많았기에 영토가 너무 넓어 네 명의 황제가 나누어 다스리기도 했으니...

 

 

또 예(豫)라고도 부른 이유는 예라는 글자가 코끼리(象)를 형상화한 글자로 예전에는

이 지방이 무척 습하고 더운 곳으로 코끼리가 많이 살았을 거라고 하네요.

지금이야 날씨조차 달라졌기에 코끼리는 구경조차 할 수 없을 겁니다.

이게 빈말을 아닐 거라고 합니다.

당시 이 지방에 코끼리가 살았다 하고 그 뼈가 가끔 발견된다고 하니 말입니다.

뭐 우리나라에는 공룡도 살았으니까요.

 

 

버스는 어둠이 내려 캄캄한 밤인 6시 30분에 뤄양에 도착합니다.

일단 내리라 하여 내렸지만, 동서남북조차 구분되지 않습니다.

우선 숙소부터 정해야 합니다.

 

터미널 건물을 끼고 2층에 초대소라고 있군요?

일단 올라가 방을 보니 예상외로 깨끗합니다.

얼라리요?

방마다 컴퓨터도 있습니다.

지난밤에도 산꼭대기 산골 마을에 움막 같은 곳에서 지내다 나오니

뤄양의 초대소는 천국이군요?

중국의 시골을 다니다 보니 초대소라는 곳이 비교적 가격도 저렴하고

제법 깨끗하게 관리하는 곳도 많습니다.

 

 

가격을 물어보니 1박에 150원이라는군요.

울 마눌님은 중국에서는 협상의 달인이잖아요.

얼마나 깎으면 달인이라 할 수 있을까요?

비싸다고 깎아달라 하니 120원까지는 해준다 하네요.

우리 부부는 이곳에서 내일 온종일 돌아보고 모레 아침에 떠날까 합니다.

그러니 1박이 아니고 2박이지요.

 

결국, 1박에 90원씩 2박을 하기로 하고 남자 주인은 울 마눌님의

정신 빼기 작전에 홀려 키를 주고 마네요.

나중에 드나들며 자꾸 너무 싸게 주었다고 투덜거리더군요.

야진(보증금) 120원까지 모두 300원을 치르고 영수증을 꼭 받아 두었습니다.

중국은 웃으며 협상하니 가격도 내려갑니다.

 

 

저녁을 먹기 위해 밖을 나오니 바로 길 건너편에 뤄양 기차역이 있네요.

저녁을 먹고 들어오며 주인에게 내일 갈 용문석굴로 가는 버스 타는 곳을 알아두었습니다.

이제 인터넷으로 내일 뤄양에서 볼 곳을 결정해 보렵니다.

 

물론 용문석굴과 관림, 소림사, 그리고 백마사 등 몇 곳은 처음 여행 계획을 할 때

미리 가려고 했지만, 우리 부부의 일정을 고려하면 대부분 생략해야 할 지경입니다.

그래서 이곳 뤄양의 일정은 내일 하루만 볼 작정입니다.

우선 아침 일찍 용문석굴은 꼭 봐야 하고 오후에는 시간을 내어서

고묘 박물관을 보려고 합니다.

 

 

"세계를 지배하려면 중국을 지배하고 중국을 지배하려면 중원을 지배하라."라고 했나요?

다 옛날이야기죠.

그러나 머지않아 이런 세상이 올지도 모르겠네요.

그러나 세상은 반대로 이 지역이 지금은 중국에서도 가장 가난한 지역 중 한 곳이고

"절대 하남 사람을 믿어서는 안 된다.'라는 말이 있다고 하니 

중국의 천덕꾸러기였나 보네요.

그러나 이 말속에는 아픔이 스며있습니다.

 

 

믿지 말라는 말은 워낙 많은 전쟁으로 힘 있는 자의 편에만 섰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되네요.

그게 이 지방 사람이 목숨을 부지하며 살아가기 위한 고육책이었을지도 모르겠네요.

어찌하겠습니까?

이놈 저놈 힘 있는 놈은 죄다 여기가 물 좋다고 군사를 몰고 들이닥치는데, 살아남기 위해서는

웃는 얼굴로 "어서 오세요. 오랜 세월 눈이 빠지라 기다렸어요~"라고

해야 살아남을 게 아니겠어요?

오는 놈마다 모두 주인으로 섬기며 살다 보니 믿지 못할 사람이 사는 동네가 되지 않았을까요?

 

한때는 세상의 중심이라 생각했지만, 세월이 흐르니 개털보다도 못한 처지로 변해버렸나 봅니다.

세상에 전쟁을 즐기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겁니다.

그러나 살아남으려는 방편으로 힘 있는 자의 편에 기대는 게 습관이 되어 하남 사람을

믿지 말라는 말이 생겼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지방은 황하와 더불어 흥망을 함께한 지역입니다.

이 지역을 차지해야 천하를 손아귀에 넣었다 인정하니 죽을 둥 살 둥

이 지방은 전쟁이 그칠 날이 없었을 겁니다. 

일찍이 유방과 황우가 천하를 둘로 나누자고 한 곳이 바로 이 근처였다고 했나요?

그러니 전쟁이라면 신물 날 정도로 많이 했을 거예요.

 

 

덕분에 이 지방은 언제나 정권의 주요 거점으로 가장 많은 나라가 도성으로 삼았을 겝니다.

그러다 보니 마당만 쓸어도 유물이 나오니 뭐니 하는 말도 생겼나 보네요.

뒷간 만든다고 구덩이만 파도 말입니다.

그런데 이해할 수 없는 일은 그런 화려한 역사의 중심지였다고 하는데

남은 유적은 그리 많지 않다는 생각입니다.

혹시 황하의 범람이 먼저 화려한 역사를 모두 쓸어버리고 땅속으로 숨겨놓지나 않았을까요?

 

 

중국의 역대 정권 중 황하를 차지한 왕조만이 천하를 손아귀에 움켜잡았다 하잖아요.

황하를 다스리는 자가 천하를 다스린다고도 했잖아요.

그래서 황하는 중국인에게는 어머니의 강이니 뭐니 하지만, 우리에게는 그냥

누런 흙탕물이 흐르는 강일뿐입니다.

누런 황토물이 흘러오며 수시로 범람하고 세월이 지나면 이 범람한 지역은 비옥한 토지로

만들고 곡식이 잘 자라는 지역이 되며 많은 사람이 모여들게 되잖아요.

 

 

여러 왕조가 일어났다가 사라졌지만, 지금은 안타깝게도 유적은 별로 남아 있지 않습니다.

아마도 그 많은 유물이 대부분 진흙 밑에 묻혀있지 않을까요?

그래서 이 지역은 빗자루로 마당만 쓸어도 유물이 나온다 했나 모르겠어요.

그래서 지금도 땅을 파다 보면 나오는 유물이 대부분 전쟁에 사용되었던 것들이 많이 나오나 봅니다.

 

 

하남은 그래도 중국의 역사가 시작이 된 곳이잖아요.

허풍쟁이라는 중국에서 그나마 역사로 인정받는 최초의 국가인 하나라, 그리고 이어서 은, 주...

송, 금에 이르기까지 20여 개의 왕조가 이 지역에서 명멸하지 않았나요?

 

 

우리 귀에도 익은 정주, 안양, 낙양, 개봉...

그러기에 이 지역은 중국의 살아있는 박물관인 셈입니다.

그러나 이 지방의 슬쩍 훑어보니 남아있는 역사적인 유적은 별로 많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중국인이 시조로 여기는 황제의 고향도 이 부근이고 역사적으로 이름깨나 떨친 노자, 장자,

여불위, 두보, 한유, 백거이, 악비 등..

100년의 중국은 상해요, 1000년의 중국은 북경이요, 2000년의 중국은 서안이라...

그리고 3000년의 중국은 하남이요 5000년의 중국은 탁록이라 해도 되지 않겠어요?

아니면 말고입니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뤄양이라는 도시는 우리에게도 무척 친근한 도시일 겁니다.

워낙 역사에 자주 등장하는 도시 이름이라 우리에게도 익숙하지만, 와서 보니

별로 마음에 흡족하게 들지 않네요.

사람에 따라 이런 도시가 좋은 사람도 있겠지만, 우리 부부에게는 감동하지 못한 곳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냥 이야기 속에서만 유명한 곳이 이곳이 아닌가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