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간 일이 달빛에 물들면...
이렇게 궈량촌을 올라가는 길과 내려가는 길을 달리하면 절벽장랑 속을 걸어볼 수 있고 애상인가의
관경대에서 절벽의 장엄한 모습과 인간의 힘을 느낄 수 있답니다.
절벽 위의 궈량촌을 돌아 나오며 멋진 광경을 만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 부부는 그냥 올라갈 때는 버스를 타고 올라갔다 내려올 때 걸었습니다.
절벽장랑도 흔히 그냥 올라갔다 내려가기 바빠 이 멋진 광경을 놓치는 분도 계실 겁니다.
여행이란 이렇게 천천히 여유롭게 속도를 늦추면 더 멋진 모습을 볼 수 있을 수 있습니다.
관경대에 서서 발아래를 내려다보면 누구나 현기증을 일으킬 수 있을 곳입니다.
그야말로 누가 일부러 90도 각도로 칼로 잘라버린 듯한 모습에 짜릿함도 느낄 수 있습니다.
아마도 처음 절벽장랑을 만들기 위해 밧줄을 타고 이런 절벽을 내려가 손으로
정을 쪼아가며 구멍을 뚫고 굴을 팠을 겁니다.
이런 중국의 인민은 칭찬받아야 마땅합니다.
해발 1.287m의 높은 곳에 있는 궈량촌...
남경에서 황제에 오른 주원장이 천하를 가슴에 품자 그때까지 자기를 도운 세력가를 정리하는 과정에
申 씨 성을 가진 사람이 토사구팽 당할 처지에 이르자 목숨만이라도 부지하기 위해 야반도주하기로 하고
아무도 모르게 이 마을로 숨어들어 살아오며 지금도 궈량촌에서는 가장 많은 성씨가 신 씨라고 하네요.
중국이라는 나라는 전쟁을 피해 이런 오지에 많은 사람이 모여 살아가나 봅니다.
중국에서는 평안하게 산다는 일이 정말 힘든 일이었나 봅니다.
어디 이 마을 뿐이겠습니까?
중국이라는 나라는 돌아다니다 보니 오지라고 생각되는 곳은 대부분 난을 피해 숨어든
사람이 살아가는 곳이었습니다.
숨어 우는 게 바람뿐이 아니었습니다.
목숨 하나를 부지하기 위해 깊은 산속으로 숨어들어 울음마저 삼키며 살았나 봅니다.
물론 잦은 정권교체 때문에도 그렇겠지만, 대부분의 오지마을은 난을 피해 숨어들며 생긴 촌락입니다.
그만큼 중국이라는 나라는 도적이 떼 지어 돌아다녔던 약탈과 전쟁의 역사였나 보네요.
그런 패거리 도적이 때만 잘 만나면 황제가 되기도 하잖아요.
전쟁이 아니더라도 수시로 도적 떼가 들끓었으니 집집이 높은 담장과 마을마다 난공불락의
성벽을 만들어 놓고 불안한 마음으로 평생을 살았나 봅니다.
산다는 일이 하루하루를 죽음을 피하는 일이었나 봅니다.
그런 생활이 중국인의 국민성으로 변해 남을 믿지 못하고 의심하고 속이고 욕심만 부렸기에
지키려는 자와 빼앗으려는 자와의 동거생활이 중국인의 삶이었나요?
그러나 시골을 다니다 보면 뜻밖에 순박하고 아름다운 사람을 만날 수 있습니다.
여기도 그런 아름다운 사람들이 모여 사는 작은 마을이었습니다.
즐거운 일이 생기면 함께 웃고, 슬픈 일이 있으면 같이 울어줄 그런 사람 말입니다.
워낙 잦은 전쟁으로 남자는 전쟁터를 누비며 살다 보니 예전 중국에서는 아버지에 대한 공경심이 없었다는데
그 이유가 바로 자기를 낳은 어머니는 확실하게 알지만, 아버지는 알 수 없는 경우가 많았다고 하네요.
수시로 도적이나 군사들이 들이닥쳐 마을을 쓸고 지나갔기에 아버지란 하룻밤 풋사랑도 아닌 늑대에
불과했으니 사랑 없이 태어나면 그 사람이 성장하며 삐뚤어지기 쉽다고 했나요?
그게 오랜 세월 동안 지내고 모여지면 국민성이 될 수 있잖아요.
개인이 사는 집은 높은 담장으로 둘로 싸고, 마을은 성벽으로 둘러싸고, 천하는 만리장성으로 둘러싸고...
세상과 죽의 장막까지 치고 살았으니...
이런 삶을 살다 보니 국민성도 남을 의심하고 믿지 못하는 게 아닌가 생각되네요.
나와 다른 사람을 구분하고 나를 보호한다는 담장 문화가 결국, 세월이 흐르며 나를 고립시키는
그런 역할을 하지 않았을까요?
그게 어려우면 이렇게 외부의 접촉이 불가능한 절벽 위에 집을 짓고 살았나 봅니다.
먹고살기 위한 땅도 별로 없어 돌을 쌓아 밭은 일구고 집 짓는 자재도 변변한 게 없어 주로 돌로 쌓아 살았습니다.
어느 집은 마당을 나서 몇 걸음만 옆으로 나아가면 100m가 넘는 천애 절벽을 만나는 곳에 집을 짓고 살아갑니다.
그래도 살아가는 그 자체가 힘들다 투정하지 않고 서로 토닥이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자연히 동네의 단합된 힘이 있어 이런 대단한 역사를 이루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협곡의 가장 좁은 바닥에서 하늘을 올려다보면 하늘이 손바닥만 해 보일 겁니다.
절벽 길은 암석을 쪼아 동굴을 파거나 혹은 돌을 쌓아 만들었는데 마을 밖으로 통하는 유일한 길이 되었습니다.
궈량촌의 사람들은 대대손손 산속에 갇혀 세상과 거의 동떨어져 살아왔습니다.
아침이나 저녁의 햇살을 받을 때마다 붉은 색깔을 띠는 홍암 절벽은 더한층 신기하게 보입니다.
지금이야 완공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기에 사람의 손에 만들어졌다고 하겠지만, 이 또한 세월이 지나면
어느 날 용이 내려와 마을 사람을 위해 절벽에 몸부림치며 길을 만들어 주었다고 할는지 모릅니다.
왜?
중국이니까.
안개가 갑자기 장랑 안으로 밀려들어 옵니다.
아마도 용이 佳人의 헛소리를 듣고 조화를 부리나 봐요.
지나간 일이 햇볕에 바래면 역사가 되고, 달빛에 아름답게 물들면 신화가 된다고 했던가요?
이곳이 바로 그런 신화가 무럭무럭 자라고 있습니다.
그 신화가 무르익으면 절벽장랑은 사람이 만든 게 아니라 용이 빠져나간 자리라고 하겠지요.
석창의 모습이 같은 모양이 하나도 없습니다.
투박하고 거칠게 만들었습니다.
모양을 내지도 않고 어떤 격식도 없습니다.
그냥 하늘을 향해 뚫어놓은 문일 뿐입니다.
투박하기에 오히려 더 예쁘고, 모양이 다르기에 인간승리가 상상됩니다.
다시 우리 부부는 조잘대며 길을 걷습니다.
당신이 내게 의지하려는 마음이 있고 내가 당신을 믿을 수 있다면 우린 아직 조금은 더 사랑하며
함께 걸어갈 수 있는 여유가 있습니다.
낯선 곳을 걸어가며 말입니다.
당신! 내게 울타리가 되어주었으면 좋겠다고 했지요?
그러면 당신은 그 울타리 안에서 언제까지나 아름다운 꽃이 되어 피어있고 싶다고 했지요?
비록, 부실한 울타리였지만, 아직 난 울타리가 되어 견디고 있어요.
당신은 그 울타리 안에서 은은한 꽃향기를 언제나 가득 채우고 있고요~
세상에 부부만 둘이서 아무도 없는 아침 길을 걸어 내려갑니다.
우리 부부는 이렇게 걷는 것을 무척 좋아합니다.
걸어가면 많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걸어가면 많은 대화를 할 수 있습니다.
걸어가면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걸어가면 많은 고마움을 느낄 수 있습니다.
걸어가면 사랑하는 옆 지기가 아직 이렇게 함께 걸어갈 수 있다는 것이 정말 행복한 일임을 알게 해 줍니다.
고마움이란 이런 길을 걸어가면서도 느낄 수 있습니다.
정말, 이렇게 부부가 함께 걸어갈 수 있다는 일은 축복입니다.
우리 부부가 걷는 이유는 바로 함께 걸어갈 수 있는 건강을 찾았기 때문입니다.
그때는 삶에 대해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캄캄한 시기였지만...
우리 부부는 그 어려운 시간을 이겨냈습니다.
삶이란..
여행이란...
그리고 함께 걸을 수 있다는 일이 모두 행복입니다.
걸어서 행복하고 걸어서 행복을 느낄 수 있어 또 행복합니다.
숨만 쉬어도 축복이라 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걸어 다닐 수 있는 건강을 다시 주셨습니다.
그러니 걷는 일에도 감사함을 느끼며 걷는 겁니다.
세상은 감사해야 할 일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비록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 걸어갈지라도 즐겁고 행복한 마음으로 걷는다면 그게 힘든 일인지 모릅니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오른쪽 어깨가 아파 한 달 이상을 고생했습니다.
그래도 다시 여행을 떠난다면 우리 부부는 또 걸을 겁니다.
함께 떠날 수 있다면 말입니다.
아주 즐겁고 행복한 마음으로 말입니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우리 부부가 여행길에서 자주 걷는 일은 그 자체가 즐겁기 때문입니다.
즐겁지 않으면 걸을 수 없는 길을 우리 부부는 걷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길에도 두리번거리며 살아왔기에
여행길에서도 두리번거리며 걷습니다.
우리 생애 언제 다시 이런 길을 걷겠습니까?
언제나 우리 부부가 걷는 길은 우리 삶에 마지막 길일지 모릅니다.
되돌릴 수 없는 게 우리 삶이 아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