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여행기/산서성(山西省)

왕가대원의 성벽 위를 걸어봅니다.

佳人 2012. 3. 28. 08:00

 

너무 식상하시죠?

정말 인내심이 대단하시네요.

내용도 없는 이야기를 이렇게 빠지지 않고 읽어주시니 말입니다.

그래서 오늘 왕가 대원의 마지막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산서성에는 예로부터 부자가 많이 나온 지방이라고 합니다.

그중에서도 핑야오 고성을 중심으로 이 근방은 부자가 밀집해 있는 지역이라 하더군요.

그 이유는 진상(晉商)을 맥을 이어오는 곳이 바로 이 지역이기 때문일 겁니다.

아닌가요?

터가 좋아 그런가요?

 이 지방에서는 장사만 하면 모두 떼돈을 벌 수 있나 봅니다.

 

 

그런 부자가 이 지방에 개인 저택을 크게 지어 살았고 그런 집은

이 지방에서는 대원(大院)이라 부른다네요.

대원이라 하면 우리 생각에 큰 정원이 있는 집이라는 말로 들립니다.

그러나 들어가 보니 무척 답답하고 숨이 막히는 그런 곳입니다.

사합원을 다닥다닥 붙여서 지어놓았습니다.

 

우리네 99칸짜리 부잣집처럼 시원한 맛이 없어요.

그러나 그 안에는 돌과 나무, 그리고 벽돌에 많은 조각물로 아기자기하게 만들어

답답한 가운데에도 그나마 숨통을 틔게 하네요. 

중국은 우리와 달리 많은 인구로 말미암아 경제 규모가 또한 다른가 봅니다.

 

 

여러분은 이게 개인 집으로 보이세요?

佳人 생각에는 집으로 보이지 않고 하나의 마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니 이 집은 왕 서방네 인척들까지 모두 모여 사는 집성촌인가 봅니다.

그렇다고 사진 한 장에 모두 들어오게 찍을 수 없어

지금 위에 보이는 사진은 왕가 대원의 일부네요.

뭐 유럽에도 개인 저택을 성으로 짓고 살았던 귀족이 많기는 하더군요.

 

 

지금 걷고 있는 이곳은 왕가 대원의 안채에 해당하는 홍문보라는 곳을

둘러싸고 있는 성벽 위입니다.

주로 손님이 머물던 동쪽에 있는 객청보다는 더 높은 성벽으로 두르고 살았습니다.

그러니 이곳은 주인과 그 식솔이 거처하는 안채에 해당한다고 봐야 할 겁니다.

중국의 부잣집은 무섭다는 생각이 듭니다.

 

 

성벽 위로는 이렇게 길을 만들어 조깅도 할 수 있겠네요.

물론 말을 달려도 될 만큼은 됩니다.

카 레이싱은?

그건 어렵겠군요?

 

 

위의 사진이 제일 높은 북쪽인 뒤편에 있는 성벽 위의 모습입니다.

양쪽으로 각루를 두고 가운데 누각을 만들어 이곳에 올라 답답함을

조금이나 가실 수 있게 만들어 놓았네요.

북쪽이 높고 남쪽이 낮아 이곳에 올라 남쪽을 바라보면 제법 풍광을 즐길 수 있습니다.

남동방향으로 날이 좋으면 바로 면산이 보인다 합니다.

건너편에 보이는 성벽은 무슨 절이라 하네요.

지금 한창 복원 중이라 합니다.

 

 

이 지방에만 크고 작은 대원이 수백 개나 된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그중 가장 유명한 곳 중의 한 곳이 교가 대원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교가대원이 유명하게 된 것은 장이모 감독 공리 주연의 홍등이라는

영화 때문에 더욱 유명해졌다 합니다.

워낙 우리에게도 유명한 영화라 많은 한국인이 즐겨 찾는 듯합니다.

이렇게 영화 한 편이 그곳을 세상에 알리는 역할을 하게 되나 보네요.

 

 

그러나 무엇보다도 한국인이 이 대원을 즐겨 찾는 이유는 아마도 타이위안이라는

산서성 성도에서 핑야오 고성으로 가는 길에 중간에 쉽게

찾아갈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되네요.

그냥 가는 길에 있기에 잠시 차에서 내려 구경하고 이동하면 되기 때문일 겁니다.

우리 부부도 처음 계획은 교가 대원이었지만, 치커우에서 핑야오로

바로 오는 바람에 왕가 대원으로 변경했습니다.

 

 

따라서 우리 같은 여행자가 구경할 곳이 거가(渠家, Qujia) 대원, 상가(常家,

Changjia) 대원, 왕가(王家, Wangjia) 대원 등 셀 수도 없을 정도로 말입니다.

이런 대원들은 교가 대원보다 더 크기도 하고 특색이 있어

모든 대원이 집주인의 부와 실력을 보여주고 있답니다.

왕가 대원만 하더라도 유명한 교가 대원보다 4배나 넓다고 합니다.

 

 

아마도 이곳이 예전에는 돈이 모이는 곳이었나 보네요.

중국이라는 나라는 워낙 인구가 많기에 조금만 다른 사람과 차별화 전략으로

만든 제품만 있으면 금방 떼돈을 버나 봅니다.

왕가 대원은 북쪽이 높고 남쪽이 낮은 산비탈에 지은 건물군입니다.

그러다 보니 햇볕이 제법 잘 들게 생겼습니다.

답답한 사합원의 건물로 빽빽이 채웠지만, 그나마 약간의 숨통을 틔워주나 봅니다.

그러나 오늘처럼 안개가 자욱하게 끼는 날이 많은 지역이지요?

 

 

이런 건물들은 중국의 명, 청 왕조의 건물로 수백 년 동안 갖은 풍상을 겪었는데도

여전히 그 대범한 기개를 자랑합니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점은 왜 이런 대규모의 저택이 이 지역에 경쟁적으로 밀집되었을까요?

불편한 진실을 알아보시려면 여러분이 직접 가셔야 합니다.

 

 

산서성에 이토록 많은 호화로운 저택을 만든 데는 아마도 충분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요?

한때의 풍조일 수도 있고 서로 경쟁심의 발로일 수도 있고 말입니다. 

중국의 명, 청 시기는 생활의 근대화 덕분에 상업이 아주 빠른 속도로 발전했다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물류의 유통이 같은 시간에 더 많이 움직였기에 더 많은 부자가 탄생했을 겁니다.

 

 

이 지방은 지정학적으로 내륙지역에 있어 사람은 많고 땅이 적고 자원이 부족한

지역이라 이 지방 사람들은 다른 지방의 사람보다 일찍 외부로 눈을 돌리게

되었고 빠르게 시대의 조류를 타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남보다 한 발자국 먼저 시작했고 더 빨리 움직였기에 더 많은 돈을 벌었을 겁니다.

 

 

그러다 보니 많은 산서성의 남자들이 생계를 위해 고향을 떠나 타향으로 가게 되었고

그래서 중국의 남과 북에서 산서성 사람들은 처음에는 생계유지를 위해 두부와 염료를 파는

작은 장사로부터 시작해 점차 근면과 성실함으로 장사에 성공하게 되었다는군요.

시작은 비록 미약하였으나 그 끝은 무척 크게 장사를 하게 되었답니다.

 

 

점차 성공한 산서성 사람의 가게는 중국 전역에 생기게 되었고 이들은 눈을

중국 안에서 외국으로 돌려 동남아시아와 서남아시아의 일부 나라에까지

뻗어 나가게 되었답니다.

이렇게 돈을 모아 큰 부자가 된 산서성 사람들은 그야말로 금의환향하게 되었고

그 돈으로 호화로운 건물을 지었는데 이런 건물들이 바로 우리가 찾아다니는

대원이라 부르는 큰 저택들이라는군요.

 

 

그중 정원이 가장 집중되고 규모가 가장 큰 지역이 바로 산서성 중부의

핑야오(平遙, 평요) 고성 지역입니다.

핑야오는 명, 청 왕조 시기의 한족 고유한 건축방식을 그런대로 완전하게 보전하고

있는데 1997년에 유네스코로부터 세계유산에 등재되었습니다.

 

 

2 제곱킬로미터의 옛 도시에는 화려하고 웅장하고 독특한 부호들의 저택이 거리에 널려

있고 상업과 주택을 일체화한 이런 뜰은 두텁고 높은 담의 보호 하에 그때의

그 번화함을 잃지 않고 있고 푸른 벽돌, 검은 기와 사이에 홍등이 높이 걸려

가게의 번창함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돈이 아주 많은 사람은 이렇게 주변 고향마을에

엄청나게 큰 대원을 짓고 살았나 봅니다.

 

 

기본적인 색채는 칙칙하고 무미건조한 회색입니다.

그냥 바라보면 미소조차 짓지 못하는 얼굴로 보입니다.

그러나 거기에 간혹 빨간색과 검은색이 조화되어 아름다움을 연출합니다.

설계 분야에서는 전반적인 구도가 아주 엄밀하고 일부 세밀하게 계획적으로

설계되어 만들어졌다고 보입니다.

예를 들어 색깔의 운용이라든가 모양의 설계에서 판에 박은 듯하지 않고

유연성도 가지고 있어 전반적인 느낌이 아주 좋습니다.

그런 칙칙한 사이사이로 예쁜 조각을 배열하여 가끔 빙그레 미소 짓게도 합니다.

 

 

이렇게 부를 쌓았지만, 세상이 변하면 구름 같은 것이 되어 버립니다.

신중국이 탄생하며 사유재산이란 바람처럼 사라집니다.

그러니 완벽한 개털이 된다는 의미입니다.

 

왕 서방이 꿈꾸던 세상은 이제 이 세상에는 사라지고 없습니다.

그 후손은 지금 어찌 살아갈까요?

그런 중국이지만, 또 다른 부자가 탄생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먼저 빼앗긴 부자만 개같이 살아간다는 말이 되겠군요.

 

 

우물마저도 이렇게 아름답게 만들어 하나는 용이고 다른 하나는 봉황이라 했건만...

사유재산을 인정하지 않는 나라에서 아무리 부자면 무엇합니까?

지금도 중국에서 부자들은 국외 이민을 생각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립니다.

지금도 많은 중국인이 한국의 부동산에 눈독을 들이고 돈을 투자하고 있다고 하더군요.

부자도 가난한 자도 없는 세상이 신중국의 염원이 아니었나요?

 

 

어디 한국뿐입니까?

한때 일본의 자금이 미국의 할리우드나 부동산을 휩쓸었던 적이 있지만, 

지금은 중국의 돈이 미국을 휩쓸고 있지요. 

주체할 수 없어 세상을 모두 담고 싶은 겁니다.

 

 

그런 중국도 중국 내의 사유재산을 한시적으로 인정해 주잖아요.

개인이 아파트를 사고 거주는 할 수 있지만, 그 유효기간이 딱 70년이라고

들었던 것 같은데 70년이 지나면 자연히 국가로 이관된다고 하니 돈 있는 사람이

외국으로 목숨을 걸고 나가려고 하는 것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나의 문은 다른 문과 일직선으로 두지 않고 어슷하게 만들어 놓은 이유는

속이 보이지 않게 하기 위함입니다.

아마도 이런 게 중국인의 성격과 맞아 들어갈 겁니다.

그렇다고 누가 중국사람을 음흉한 사람이라 말하겠어요.

사합원으로 들어가는 문도 문을 들어가면 비록 작은 정원이라도 바로 내부를

볼 수 없게 벽을 하나 만들었잖아요.

황손의 집에 구룡벽을 설치하는 이유도 그런 목적이 아닌가요?

 

 

그렇게 하는 이유가 우선은 내부의 모습을 감추는 역할도 하지만,

입과 입이 서로 마주치지 않게 함이랍니다.

입구라는 말의 口는 입을 말함인가요?

입이 서로 마주치면 싸움이 일어나잖아요.

아예 원천적으로 남과 시빗거리를 막아놓겠다는 의미입니다.

 

우리에게도 많이 알려진 버스 안에서의 다툼에 절대 남의 일에 끼어들지 않는

그런 중국인의 몰인정한 태도 말입니다.

누가 옆에서 죽어가도 눈도 깜짝하지 않는 앙큼한 사람이 사는 나라 말입니다.

사실, 佳人은 입과 입이 마주치는 일을 무척 좋아합니다.

입과 입이 서로 자기의 목소리만 낼 때 다툼이 있지 그게 서로 화음을 낸다면

아름다운 합창이 된다는 사실은 왜 몰랐을까요?

 

 

건물을 다니다 보면 조각상을 눈여겨보면 정말 재미있습니다.

재산이 들어오면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문지방을 높게 만든다든가,

포도를 조각해 놓은 의미는 돈이 주렁주렁, 자손이 주렁주렁...

남이야 욕심이 하늘을 찌른다고 욕을 해도 그 욕이 어디 배 째고 들어오나요?

그래서 정원에 나무도 포도나무를 심어 놓았나 봅니다.

중국이라는 나라에서 마당에 심는 나무도 아무 나무나 심지 않는다 합니다.

 

 

뜰의 구성에 아주 신경을 많이 쓴 것으로 보입니다.

가장 최초로 만들어진 뜰을 보면 입구에 말을 매어놓는 돌과 상마석(上馬石)이 있어

가마와 말의 출입에 편리를 줍니다.

아마도 그 가마가 독일산 B로 시작하는 가마가 아닐까 모르겠네요. 

정문을 들어가 정교한 나뭇조각의 홀을 지나면 벽돌로 쌓은

높이 2m도 넘는 벽이 맞은편에 보입니다.

 

 

이것은 민간에서 사악함을 막기 위해 만든 벽인데 벽에는 복(福)과 녹(祿), 수(壽)를

대표하는 세 명의 신선이 서로 다른 모양으로 그려져 있고 장수와 길함을 의미하는

백학, 소나무, 사슴 등이 그 사이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왕 서방이 어디 돈만 벌어 유명해졌을까요?

집안에 이렇게 반듯하게 공부하라고 양정서숙(養正書塾)이라는 학교도 꾸며놓아

후손의 교육에 매진했기에 돈 냄새만 풍기는 장사꾼의 집안을 먹물 냄새도 나게 덮었고

후손에게는 먹기 싫다고 해도 강제로 종아리를 때려가며 먹물을 먹인 곳일 겁니다.

 

왕가 대원은 중국 정부에서 AAAA를 줄 정도로 높은 점수를 주는 곳입니다.

아마도 원형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기 때문일 겁니다.

다니다 보면 지금 우리가 무엇을 보고 있나 회의감이 들 정도로 넓은 곳입니다.

내일은 면산 구경을 가려합니다.

이곳에서 탐욕에 더럽힌 눈을 씻어버릴 수 있는 자연 속으로 들어가 보렵니다.

함께 하시겠어요?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이렇게 거대한 저택을 짓고 살아가면 황제가 부러웠을까요?

성벽이 높다는 것은 외부와 교통하지 않고 따로 살자는 말이지요?

이게 바로 진상의 몰락과 중국인의 마음을 대변하는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사람은 서로 어울려 슬픔도 나누고 즐거움도 나누며 살아야 재미가 있지 않나요?

비록, 佳人이 이런 덜수 같은 글을 쓰지만, 못난 글일지라도 함께 나눌 수 있다면

좋겠다는 마음에 쓰는 것입니다.

함께 나눈다는 일은 행복한 일이잖아요. 그쵸?

그런데 여러분의 격려를 받을 때 얼마나 즐거운지 모릅니다.

그런데 궁금한 것은 이 대원의 집마다 매일 아침에 문을 열어 놓을 텐데 마지막 집까지

열고 나면 어두워질 텐데 닫는 것은 언제 닫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