佳人 2012. 1. 9. 08:00

 

성정문에서 북쪽으로 곧장 뻗은 360m의 단폐교를 따라 올라갑니다.

아주 넓고 잘 만든 길입니다.

이 길은 무척 중요한 길이라는군요.

 

가운데는 天神이 걷는 神路라는 길이고 오른쪽은 황제가 걷는 御路라 하고

그리고 왼쪽으로는 황족이 걷는 王路라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하늘님과 함께 걷다니요.

이게 가능한 일이겠어요?

 

 

그러나 중국은 이렇게 하늘님을 불러 내려 황제와 함께 손이라도 잡고

걸어갈 수 있게 하였는데 환장하게도 하늘이 놀라고 땅이 요동치는 일이겠지만,

중국이라면 능히 할 수 있는 일이거든요.

이런 규범이 동양권에서는 모두 통했다는 것이지요.

다행인 것은 기년전으로 들어가는 가운데 길인 神路에서 들어가는 기년문은

위의 사진처럼 잠겨 있는데 오늘은 하늘님이 쉬는 날인가 봅니다.

 

 

북쪽으로 계속 오르다 보면 중간에 오른쪽으로 쥐푸타이(具服臺 : 구복대)라 부르는

넓은 석대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약 150여 평 정도 되는 넓이로 3면이 대리석으로 둘러쳐 있습니다.

제사 행사가 진행될 때 이곳에는 형형색색의 만장이 휘날렸으며 단폐교를 오르던 황제도

이곳에 잠시 들러 몸을 정갈히 한다는 의미로 손을 씻고 새 예복으로

갈아입은 뒤 의식이 행해지는 기년전으로 다시 걸음을 옮겼다 합니다.

물론, 형식적인 일이겠지만, 정성을 다한 예를 올린다는 상징적인 의식이

아니었을까 생각되네요.

 

 

옛날에는 일반인도 이곳은 아무도 지나다닐 수 없는 금단의 길이었고 평소 이곳을 관리하던

사람도 통행을 위해 위의 사진에 보이는 길 밑에 주성동(走性洞)이라고 부르는 통로를

만들어 다니게 했지만, 이 길은 제사 때 제물로 바쳐질 가축들을 들여오기 위한 길이기도

하였으니 이 길을 통과한다는 의미는 죽음을 뜻하기도 하기에 이 통로에는

귀문관(鬼門關)이라는 이름이 붙여져 평소 이 근처를 얼씬거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합니다.

 

 

그곳을 지나 더 북쪽으로 올라가면 기년문이 나타나고 그곳을 지나면

치녠톈(기년전 : 祈年殿)이 나타납니다.

기년전은 마지막으로 보기로 하고 우선 주성동 아래로 내려가 동쪽으로 난 길을 따라갑니다.

이 길은 숲이 우거져 여름에는 무척 시원할 것 같네요.

 

 

그 길을 걷다 보면 왼쪽으로 지붕이 있는 긴 회랑이 보입니다.

이를 창랑(長廊 : 장랑)이라 부른다는데, 폭이 5m 정도이고 350m 정도의

긴 복도입니다.

중국은 이런 장랑을 어딜 가나 쉽게 마주할 수 있지요.

 

 

모두 9의 배수로 만들어 72칸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우리도 한 칸이라는 기준을 기둥과 기둥 사이로 보는 것도 마찬가지이지요. 

72칸을 다른 말로 72 연방(連房)이라고 한다는군요.

이 말은 72칸을 각각의 방으로 보고 72개의 방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의미라네요.

 

 

장랑의 끝에는 위의 사진처럼 신의 창고라는 신고(神庫)와 신의 주방이라는 신주(神廚)들이

장랑과 연결되어 있어 72 연방(連房)이라고도 한답니다.

제천행사 때 이곳에서 준비한 제수용품과 음식들이 기년전과 연결된 통로를 따라

제단으로 운반되었는데 이때 준비한 물품 목록이 장랑의 칸 수와 같은 72가지로

하나도 빠뜨림이 없이 하기 위함입니다.

 

 

덜수처럼 늘 덜렁거리며 사는 머리 나쁜 사람도 음식을 준비하는데

절대로 빠뜨릴 일이 없겠어요.

지금은 그냥 주변 동네 사람이 모여 마작이나 쯔파이를 하는 서늘한 그늘로만 존재합니다.

옛날에는 제수음식을 보관하고 나르는 곳이라 무척 신성시했을 곳이지만,

세월은 이렇게 이곳을 동네 경로당겸 놀이터로 만들었습니다.

세월은 무상합니다.

 

 

천단에서 제사를 지내는 전날 밤에는 이곳 장랑에 불을 밝혔다 합니다.

제사에 쓸 짐승을 죽이는 곳도 바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제사에 사용되는 玉이나 면, 곡식이나 과일 등이 장랑을 통하여

제단까지 운반되었다 하네요.

 

 

장랑을 지나 동문이 있는 곳으로 가면 그곳에 치싱스(七星石 : 칠성석)이라는

전설의 고향과 같은 이야기가 있는 돌이 있습니다. 

일종의 북두칠성의 상징물입니다.

명나라 때 설치한 풍수진석(風水鎭石) 7개를 말합니다.

 

 

여기에도 전설이 있답니다.

어디 한번 들어보죠?

명나라 영락제가 베이징에 황도를 결정하고 건설에 들어가며 우선 하늘에 제를 올릴

장소를 물색할 때 어느 날 갑자기 하늘의 문(天門)이 열리고 북두칠성이 떨어졌다고 합니다.

이런 일은 중국에서 늘 일어나는 사건, 사고이기에 佳人에는 이제 전혀 신비롭지 않습니다.

묻고 따지지도 않겠어요.

왜 더 강한 것으로 하지 그래요?

은하수가 떼거리로 떨어졌다거나 해와 달은 어떨까요?

그래도 놀라지 않을 겁니다.

 

황제는 황급히 사람을 불러 그 떨어진 자리를 찾게 하니 그 자리에 7개의 돌이 남아

있었더라는데 그러니 황제는 당연히 그 자리에 천단을 세우라 명령을 내리니

그곳이 바로 여기랍니다.

이런 기묘한 일은 지금은 중국에서 더는 일어나지 않지만, 요즈음에도 세상에 가끔

알려지는데 그곳은 멀지 않은 가까운 곳에 위대한 사람에게 일어나더군요.

 

 

세상에 북두칠성이 떨어졌다면 지금 하늘에 북두칠성이 없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영락제! 이런 말을 하고 나면 부끄럽지도 않으세요?

중국은 하늘의 북두칠성도 땅에 불러 내립니다.

 

원래 이 돌은 북두칠성을 의미하는 7개였으나 훗날 건륭제가 그 동북쪽에 청나라

황실의 고향인 동북지방을 잊지 말라고 의미로 또 하나의 돌덩어리를

이곳에 옮겨놓았다 합니다.

그래서 지금은 8개가 되었다네요.

북두칠성이 하늘도 놀라 자빠질 북두팔성이 되는 일이 벌어진 게지요.

하늘의 별도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 중국의 무한한 능력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집니다.

이런 중국을 여행한다는 일은 경이로운 일이잖아요.

 

 

건륭제가 영락제보다는 조금 인간적이네요.

원래는 그냥 그런 평범한 돌덩어리에 불과했겠지만,

그 돌이 있는 곳에 천단이 들어서니 보통 돌이었지만, 유명세를 타게 되었겠지요.

천단이 있는 자리는 그 땅의 기가 무척 센 곳이 아니겠어요?

 

 

그러나 이 돌은 또 몰지각한 사람에 의해 괴로움을 당하게 되었다네요.

영험하다는 소문이 나자 몰래 돌조각을 떼어내 자기 집에다 장식했다 하네요.

개똥도 천단에 있다면 훔쳐다가 모셨을지 모릅니다.

만리장성의 돌도 빼내어 집도 짓는데 이 정도면 애교로 보아줄 수 있지 않겠어요?

이제 내일은 천단에서 제일 중요한 장소인 기년전으로 가렵니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힘든 장애물에 부딪혀 넘어지고 실패하는 것은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닙니다.

실패 역시 우리가 살아가는 일 중의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여행 중에 실수하고 잘못 알고 지나가는 일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런 일 또한 부끄러운 일이 아닙니다.

잘못 알아듣고 이해하는 일은 우리가 여행 중의 겪는 많은 일 중의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그게 여행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