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여행기/베이징(北京)

어느 가을날 북경 인근의 고즈넉한 마을의 산책

佳人 2011. 12. 29. 08:00

가끔은 바쁜 여행 중에도 이런 마을을 찾아보는 일은 어떻겠습니까?

유명한 관광지도 좋지만, 사람 냄새가 물씬 나는 이런 곳도 좋지 않겠어요?

이런 곳을 찾아 걷는다면 그동안 마음 한구석을 억누르던 걱정 또한 잠시 내려놓을 수 있고

욕심 또한 버리고 올 수 있는 곳이 되지 않겠어요?

 

노래를 부르지 못하면 휘파람이라도 불며 마눌님 손이라도 잡고 산책한다면 맨날 같은 일상에 찌들어 살아왔던

마눌님도 머리를 식힐 수 있을 겁니다.

정신없는 베이징 여행에서 잠시 내 정신을 가지고 둘러볼 수 있는 이곳을 권해 드립니다.

우리를 잠시나마 어린 시절로 여행하게 하는 곳이니까요.

 

베이징에 와서 황제가 거들먹거리고 살았던 황궁을 보았네요.

혼자만 잘 먹고 잘살려고 높은 담장을 두른 부잣집도 보았고 민초가 죽을 둥 말 둥 쌓았던 만리장성도 보았네요.

황족이나 행세깨나 하던 사람이 살던 곳을 보고 다니다 보니 자꾸 건방진 생각이 듭니다.

그들의 삶이 마치 내가 살았던 것처럼 생각되어서 말입니다.

 

세계의 수도라는 베이징에서 그리 멀지도 않은 겨우 90km 정도 떨어진 곳에 이렇게 구석기시대의 삶처럼

살아가는 동네가 있다는 것은 중국 며느리들도 잘 모를 겁니다.

최신식 시설이라고는 마을로 들어가는 아스팔트 길과 길가에 주차된 자동차, 그리고 무서우리만치 이 마을까지

스며든 문화혁명의 자취인 모 주석 만세라는 표어뿐이며 마을 안내판 정도입니다.

 

이곳은 명, 청대에 지어진 수백 년이나 지난 오래된 집이 대부분으로 옛 모습을 고스란히 안고 살아가는 곳입니다.

그래도 산 중턱에 전망대를 만들어 놓아 그곳에 올라 내려다보면 마을 전경을 볼 수 있습니다.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동화 속으로 들어가는 느낌이 드는 마을입니다.

마을 석판로를 따라 돌담마저 정겨운 길을 걷는다면 그 동화책을 한 페이지씩 넘겨보는

그런 느낌이 드는 마을이지요.

현대화된 베이징에서 불과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곳에 이런 문화재 같은 마을이 있다는 것은 괴이한 일입니다.

 

오래된 돌담길을 돌아서면 백 년 전의 모습을 볼 수 있고 모퉁이 한 번 더 돌아가면

200년 전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습니다.

그곳에서 계단을 올라 대문 기둥에 귀를 기울이면 500년의 세월을 건너뛰어 그들이 이곳에 와서

처음 자리 잡던 그때로 돌아가 옛날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곳은 할머니 무릎을 베고 누워 듣던 그런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는 느낌이 드는 곳입니다.

 

안방에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주고받는 상상을 하다 보면 저절로 그들과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아니군요?

佳人은 중국어를 몰라 뭐라고 소곤거리는지 알지 못하겠군요.

여행이란 이렇게 우리를 500년 전으로도 돌려보내 줍니다.

 

올림픽을 전후해 이 마을을 알린 덕분에 지금은 제법 많은 사람이 찾아오기에 숙소도 있고

여행하기 편하게 변해가고 있네요.

과거로의 여행을 원하시면 베이징이라는 거대도시를 벗어나 이런 곳에 가 하룻밤을 보내고 오는 것도

좋을 것 같고 계획에 따라 노예처럼 움직이지만 마시고 가끔은 이렇게 엉뚱한 장소를 찾아 머리를 식히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겁니다.

그러나 자꾸 많은 사람이 몰려오면 이곳도 머지않아 그렇고 그런 관광지로 변해버릴지 모릅니다.

이미 벌써 그렇게 되어버렸나 모르겠네요.

 

사실 이 마을은 지금은 오지 중의 한 곳이지만 옛날에는 베이징과 산시성을 잇는 주요한 길목이었다 합니다.

마을의 모습이 마치 천혜의 요새처럼 생긴 곳이잖아요.

실제로 일본에 대항해 항일전쟁 중요한 장소 중 한 곳이기도 했고요.

 

집의 모양이 사합원의 전통적인 모습입니다.

어쩌면 이런 사합원 양식이 삶 그대로 남아 있기에 더 가치가 있는지 모르겠네요.

이 마을은 사람만 현대 사람이지 모두 수백 년의 모습으로 살아가는지 모릅니다.

마을 벽에 쓰인 문화혁명 때의 잔재가 그대로 남아 있잖아요.

이미 세상은 바뀌어 많이 변했지만, 이곳은 아직도 혁명이 진행형입니다.

 

이 마을의 좋은 점은 어느 집이나 들어가 둘러볼 수 있다는 점이 좋습니다.

이 마을은 모두 식당이고 객잔이기도 하기에 어느 집이나 들어가 마음대로 둘러볼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심지어 화장실까지 말입니다.

 

고대 촌락은 첩첩한 산이 둘러싸고 있는 가운데 지형의 높낮이 변화에 따라 지어졌습니다.

그중에서 룽터우(龙头, 용두) 산을 중심으로 남북으로 지어진 70여 채의 사합원은 아주 정밀하고 오묘합니다.

이들은 정해진 터전 안에서 산세의 높낮이 변화에 따라 상하층으로 나뉘고,

부채꼴 모양으로 아래를 향해 뻗어 나가는 등 땅이 생긴 모습대로 집을 짓고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집의 배치 역시 빈틈없이 오밀조밀하고 조화로워 질서 정연한 느낌이 드는 그런 곳입니다.
말 그대로 촌락의 전체적인 배치가 하나의 귀한 금괴를 연상시키며, 웅대한 기백을 느끼게 하는 곳이라 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앞서 보여 드린 사진처럼 사발에 금괴를 담아 놓았더랬습니다.

 

중국은 요즈음 뜨는 나라라고 하더군요.

그런 나라의 수도인 베이징에서 불과 얼마 떨어지지 않은 이런 마을이 있습니다.

정말 현대 중국의 모습과는 다른 별세계의 마을처럼 보이는 곳이지요.

 

촨디시아춴(爨底下村)이라는 마을 이름에서 아마도 이 한자를 읽는 한국사람은 많지 않을 겁니다.

사실 저도 당연히 몰랐고요.

중국사람도 이 글자를 정확히 아는 사람이 별로 없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이미 이 단어가 더는 많이 사용되지 않기 때문이라네요.

 

마을 이름조차 생소하고 요란한 마을입니다.

그래서 이 마을은 지금은 찬(爨)이라는 글자를 천(川)이라고 변경해 사용한다 하네요.

중국어 발음으로는 같은 "촨"이라고 읽는다 하네요.

보세요~

중국사람도 이 글이 어려워 이미 발음만 같은 쉬운 다른 글자로 바꿔버렸다 하잖아요.

 

우리에게도 낯선 글자인 爨의 의미는 불 땔 찬으로 부뚜막이나 밥을 짓는다는 뜻이라 합니다.

그러니 마을 이름이 저 아래 부뚜막에 밥 짓는 마을이라는 의미인가요?

그렇다면 먹을 게 풍부한 곳이겠군요?

이제는 평생 밥걱정하지 않고 살겠네요.

이 마을이 생겨난 이유를 들어보면 그 말의 의미가 이해되실 겁니다.

 

이 마을은 아직도 많이 알려지지 않은 마을로 산골의 작은 마을입니다.

베이징에서 서쪽으로 약 90km 정도 떨어진 마을로 사람이 찾지 않아 오히려 옛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는 곳입니다.

지금으로부터 500여 년 전 산시성에서 가뭄을 피해 이주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마을로 주로 화전을 일구며 가난하게

살아갔던 곳이었습니다.

 

보세요!

가뭄을 피해 이곳으로 이주한 韓氏가 식솔을 이끌고 이 마을로 이주하며 생긴 마을이라 하니

얼마나 밥이 그립고 가난이 징그러웠으면 마을 이름도 이렇게 지었을까요?

爨이라고 이름 지은 것에서 벌써 눈치채셨다고요?

이제 이해가 되시나요?

 

그런데 글자가 어려워 마을 이름을 川으로 바꾸어 사용하였으니 밥 짓는 부뚜막이 강으로 변해버렸습니다.

이제부터는 물만 먹게 생겼는데 어쩌면 좋겠습니까?

아닙니다.

이제부터 밥만 팔지 않겠다는 의미가 아닐까요?

바로 술도 팔겠다는 의지가 강해 川이라 바꾸었나요?

 

걱정 마세요.

이제부터 관광객을 유치하여 부뚜막에 밥도 짓고 술도 팔면 그게 아주 행복한 일이 되겠군요?

처음에는 배가 고파 이곳으로 이주하며 마을 이름을 지었지만, 그 이름으로 말미암아 이 마을을 찾는

관광객에게 밥을 지어 팔게 되었으니 조상의 선견지명을 의심하면 안 되겠죠?

그래서 이곳은 많은 집이 밥을 파는 밥집이랍니다.

물론 요리도 팔고 숙박도 된다는군요.

 

사실 높은 곳에 올라 마을 모습을 내려다보면 부뚜막처럼 생겼기에 그리 짓지 않았나 생각되기도 합니다.

어때요?

위의 사진을 보세요. 

가운데 솥단지 하나 걸치고 그 아래 불을 때면 이곳을 찾는 관광객 모두 밥을 먹여 돈을 벌지 않겠어요?

 

맞은편으로 오르다 보면 중턱에 낭랑묘라고 있습니다.

자식을 점지해 준다는 삼신할머니와 동급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누군가 빌고 갔나 봅니다.

한 상 거하게 차려놓았네요.

이곳에서 빌면 혹시 마네킹 아기를?

꺄아아악~ 그러면 안 되는데... 

 

이곳 촨디시아춴을 돌아다닌 곳을 지도에 표시해 보았습니다.

우리 부부는 노란 선을 따라 걸었습니다.

그러나 이게 정담일 수는 없습니다.

여행이란 사람마다 보고 싶은 게 모두 다르기에 그냥 길을 따라 걷기만 하면 되지 않겠어요?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여행 중에 가끔 이런 한가한 곳을 다녀오는 일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너무 짜인 여행 스케줄에 바삐 다니다 보면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조차 잊어버릴 때가 있잖아요.

내가 즐겨야 할 여행임에도 여행이 나를 지배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여행의 주체는 내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럴 때는 "빠샤~"하고 외치며 이런 마을도 다녀오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