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여행기/베이징(北京)

아름답지만, 슬픈 다리인 루거우치아오(盧溝橋 : 노구교)

佳人 2012. 1. 2. 08:00

다리의 목적은 이곳과 반대편을 이어주는 역할을 하지요?

이 다리가 세상을 아름답게 이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행운의 사자가 활짝 웃고 있는 노구교 다리 위에서 오늘 여행을 시작해 보렵니다.

 

베이징 서남쪽 약 8km 떨어진 융딩허(영정하 : 永定河)라는 강을 가로지른 다리가 하나 있습니다.

제일 처음 베이징과 중국의 서부를 잇는 길목이라 나루터가 이곳에 있어 교통의 주요한 길목이었다 합니다.

그러나 점차 왕래하는 사람도 많아지며 배로 건너다니기가 불편하여 다리 건설을 하였다 하네요.

 

제일 처음 1187년 금나라 때 다리를 만들었다가 청나라 시기에 제대로 만든 모양입니다.

지금은 새롭게 만들어 그 위에 옛 모습으로 모양만 냈지만, 당시로는 11개의 무지개 모양의 돌다리였다네요.

베이징에서 북서방향으로 들고나는 다리라 북방에서 내려온 민족인 금나라나 청나라는 고향 가는 길목이라

이 다리가 중요한 곳이라 여겼나 보네요.

 

총길이가 266.5m이고 폭은 7.5m인 당시로는 가장 긴 다리로 알려졌습니다.

이 다리가 아름답다는 말을 듣게 된 것은 다리가 아름다운 게 아니라 다리 위 난간에 돌로 조각한 사자가

떼거리로 올라가 앉아 있기 때문입니다.

민방위 훈련도 아니고 사자가 반상회라도 하나요?

 

이곳에 모인 사자의 합이 실제로는 486개로 모습이 같은 것은 하나도 없다고 하네요.

(공식적인 숫자는 501개라 합니다)

벌써 900살 가까이 먹은 다리라고 하니 베이징에서 가장 오래된 돌다리가 분명한가 보네요.

재미있는 것은 돌사자의 모습이 지금까지 보았던 심술궂고 험상궂은 모습이 아니라

해학적으로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이 다리를 권위적이고 어렵게 생각하지 않고 이런 재미를 곁들인 사람을 생각하며 빙그레 미소 짓습니다.

지금은 대부분 새로 만들고 수리한 흔적이 많습니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옛 모습 그대로 남아 있는 돌사자도 볼 수 있네요.

 

이 다리가 유명해진 이유 중 하나는 마르코 폴로가 이 다리를 보고는 뻑~ 소리 나게 갔다는 것 아니겠어요?

"세상에서 보기 드물고 가장 아름다운 다리"라는 극찬을 했다 하여 유럽에서는 마르코 폴로 다리라 한다네요.

그럼 佳人이 이곳에 와 한마디 하면 佳人橋라고 할 건가요?

 

사실 무척 아름다운 다리지만 그 다리에 얽힌 사연은 슬픈 이야기라네요.

마르코 폴로에게는 아름다운 다리였지만 사실 중국인들에게는 무척 수치스러웠던 과거가 생각나는 다리겠지요.

바로 노구교 사건이 일어난 곳이니까요.

다리도 시대와 보는 사람에 따라 이렇게 다른 모습입니다.

1937년 7월 7일 그날 무슨 일이 있었나 우리 함께 거슬러 올라가 봅시다.

 

당시 일본은 이미 한반도를 삼키고 만주지방 일대를 차지하고 있을 때였답니다.

만주에는 일본의 꼭두각시인 만주국을 세웠고 그 뒤에서 숨어 호시탐탐 중국 대륙을 넘겨다 보고

침을 삼키던 중이었다 합니다.

중국도 이 사실을 알고 있기에 중국 공산당과 국민당 정권은 서로 합의하여 임시 휴전에 들어가 있었습니다.

 

일본의 꼭두각시 만주국과 중국의 국경이 바로 노구교가 있는 영정하라는 작은 강이었습니다.

강을 건너 서로 째려만 보고 있었지만, 서로의 생각은 달랐겠지요.

일본은 언제 건너갈까를 생각했고 중국은 제발 건너오지 말라고 했을 겁니다.

 

일본은 언제 건너가 중국을 손에 넣을까 생각했고 중국은 그냥 이렇게 세월만 흘러갔으면 좋겠다고 했을 겁니다.

일본은 그들의 주장처럼 욱일승천하는 기세였고 중국은 저무는 석양에 불과했으니까요.

같은 다리를 바라보며 세상은 또 이렇게 다르게 생각되나 봅니다.

일본은 다리의 서쪽에 주둔하고 있었으니 맨날 동쪽으로 떠오르는 태양만 보았고

중국은 동쪽에서 지는 석양만 바라보았으니 말이 되잖아요.

 

당시 일본은 관동군 100만 명으로도 중국 전역을 모두 지배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을 때였습니다.

그날 밤 야간훈련을 마친 일본은 자기네 부대원 한 명이 사라졌다고 중국 측에 생떼를 씁니다.

아니 자기네 병사 없어진 것과 건너편에 있는 중국군과 무슨 관계입니까?

일본군은 행방불명된 일본군 한 명이 중국군의 소행이라고 억지를 부립니다.

관계가 없으니 이렇게 관계를 맺게 하네요.

 

그래서 다리를 건너와 중국군 관할 구역을 수색하겠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바로 이 짓거리를 하려고 없어졌다 한 게지요.

원래 깡패들은 멀쩡한 사람을 보고 한마디 하고 쳐다보면 왜 째려보느냐고 시비 걸며 덤비잖아요.

 

아무리 나라가 비실거려도 자기 집 안방을 뒤져보라는 사람은 없잖아요.

그리고 알지도 못하는 사실인데 말입니다.

그래서 당연히 거절했답니다.

 

그리고 병사 한 명이 사라지는 것을 누가 보기라도 했답니까?

열 명이 사라졌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 아닙니까?

누가 보아도 억지라는 것을 알지만, 원래 사건의 발단은 이렇게 일을 꾸며 만들잖아요.

일본도 사실 속으로 억지를 부리니 부끄러웠을 겁니다.

그래도 그런 사실을 부끄러워하면 일본이 아니지요.

 

이게 일본군에게는 호재로 작용합니다.

아니지요? 호재거리로 만들었습니다.

준비된 작업이기에...

 

생떼를 부리고 다음날 몇 발의 포 소리가 들리고 바로 군사를 일으켜 노구교를 넘어 중국군 지역으로 들어오게

되며 이 포격 소리가 중국에서 쏜 것인지 일본에서 쏜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서로 상대가 먼저 도발했다고 할 것입니다.

바로 정전협정이 맺어졌지만, 노구교는 이미 일본군의 수중에 들어가 버렸습니다.

네..

바로 이렇게 하려고 밤에 군인 한 명이 사라졌다 했습니다.

당시에 중국이라는 나라는 용이라고 혼자 중얼거리지만,

사실 이쑤시개 하나만 찔러도 꼬꾸라질 정도로 허약체질이 되어 있었지요.

 

정전협정이란 앞으로의 계획을 세울 수 있는 시간 벌기에 불과합니다.

일본 정부는 이번 사태가 중국의 계획적인 도발이라 단정하고 드디어 속내를 드러내며 파병을 결정합니다.

원래 계획적인 도발을 한쪽에서 이런 말을 잘하더군요.

 

드디어 일본은 무력행사에 들어가 톈진과 베이징을 공격함으로 전선은 확대되기 시작합니다.

이를 노구교 사건 또는 7월 7일 날 발생했다 하여 7. 7 사변이라고도 한다는군요.

 

1945년 일본이 태평양 전쟁에서 큰 것 두 방 얻어맞고 항복을 한 8월 15일까지 이어지는 8년간의 중일전쟁이

시작되는 일이 바로 이 다리에서 트집 잡고 넘어오면서 시작되었잖아요.

 

사실 한 명의 병사가 행방불명이 되었다는 일본의 주장은 확인할 수 없는 일로 전쟁을 일으키기 위한

구실을 만들어 낸 일이 분명합니다.

한마디로 단정하면 자작극이지요.

자해공갈단처럼 말입니다.

지금도 노구교의 양 끝에는 성벽이 있고 아마도 일본군이 다리를 건너기 전에 쏜 대포로 생각되는

자국이 남아 있습니다.

 

다리 입구에는 양쪽으로 청나라 황제가 글을 쓴 비석이 남아 있습니다.

위의 비석은 강희황제의 글이라 하네요.

강희제는 이곳 영정하를 시찰하고 돌아가는 길에 기념식수하듯 글을 남겼나 봅니다.

비석을 보호하는 네 기둥에는 황제의 상징이라는 용이 꿈틀거립니다.

직접 그 용을 바라보시면 파란 하늘로 올라가는 느낌이 들 정도로 멋집니다.

 

건륭황제의 어필이라 합니다.

건륭황제는 평소에 서예를 잘하여 무척 즐겼던 모양입니다.

중국을 다니다 보면 그가 남긴 글을 자주 보게 됩니다.

내용은?

佳人에 너무 많은 부담을 주시는군요?

미워서 그러시는 거죠?

직접 가셔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노구교의 난간에는 돌로 만든 사자상이 무척 많이 올라가 앉아 있답니다.

이 사자상의 모양은 같은 게 하나도 없을 정도로 모두 다른 얼굴을 하고 있으며

특히, 사자의 모습이 무척 해학적으로 재미있게 만들었다는 겁니다.

마치 당시의 미련하고 늙어 죽기 일보 직전의 용이었던 중국의 모습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 말입니다.

 

아닌가요?

말도 되지 않는 일본의 억지를 비웃는 모습인가요?

이 사자의 모습만 하나씩 보며 지나가도 즐거운 곳입니다.

마르코 폴로도 이 다리를 건너 베이징으로 들어오며 틀림없이 하나씩 찬찬히 구경했을 겁니다.

그래서 佳人도 하나씩 뚫어져라 바라보았습니다.

 

지금은 세월이 지나 그 사자의 모습이 많이 퇴색되어 마모되거나 부서져 버렸습니다.

그래서 새로 만들어 올려놓은 게 무척 많습니다.

원본만 못한 복제품이라 우리 눈에도 바로 후대에 만든 것이라고 알 수 있네요.

 

이곳의 사자상이 유명하여 이화원에도 다리 난간에도 흉내 내 만들어 놓았고

중국을 다니다 보면 다리 위에 이런 모습을 가끔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모두 짝퉁이고 오리지널은 바로 노구교 난간입니다.

 

물론 다리는 최근에 모두 보수하여 새로 만들다시피 했으며 위의 사진에서 보듯 가운데 일부분에 

옛 모습의 돌다리 모양이 남아 있습니다.

그 부분만 가까이 다가가 사진을 찍어봅니다.

오랜 세월 다리를 수많은 마차가 지나다니다 보니 마차 바퀴에 돌이 깎여 골을 만들었습니다.

세월의 흐름이 고스란히 돌다리 위에 그 흔적을 남겼습니다.

 

이 다리 위를 걷는다는 일은 그 흔적을 하나씩 밟고 지나가는 일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의 이야기가 녹아 있기에 이리도 돌이 피일 정도로 변했답니다.

돌다리 위에 서서 가만히 눈을 감고 있으면 덜수가 콧노래를 부르며 지나가는 것도 느낄 수 있습니다.

덜수의 손을 가만히 잡아 봅니다.

체온을 느낄 수 있습니다.

앗! 울 마눌님의 따뜻한 손이었습니다.

 

지금도 이 다리는 일본 관광객이 많이 찾아온다 합니다.

실제 우리가 그 다리 위를 거닐고 있을 때도 일본 단체관광객을 만났으니까요.

일본인은 이런 곳에 오면 향수라도 느끼나요?

과거 힘자랑할 때를 생각하며 자부심이라도 생길까요?

 

완핑성에는 당시 일본군이 쏘았다는 포탄 자국이 위의 사진처럼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일본은 중국 측에서 먼저 공격했다고 하지만, 이렇게 자국이 선명히 남아 있는 것을 보면

일본의 자작극임이 분명하지 않을까요?

현장은 있으나 서로의 주장은 다릅니다.

 

그 성벽 아래에 마치 포탄처럼 생긴 무척 많은 까만 돌이 놓여 있고

그 돌에는 당시 일본군의 만행을 지역별로 기록한 글이 남아 있습니다.

마을마다 돌아다니며 무고한 평민을 살해한 기록 말입니다.

일본의 만행은 우리나라만이 아닙니다.

이런 짓을 하고 살아온 일본을 좋아하려고 해도 정말 좋아하기 어렵습니다.

 

지난번 지진으로 큰 피해가 났을 때 우리 국민은 안타까운 마음에 마음이나 물질로 돕고 싶어 했습니다.

사람이라면 기본적으로 다른 사람의 아픔에 동정을 나타내고 빨리 치유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일본이라는 나라는 그런 마음이 들다가도 자꾸 측은지심이 사라집니다.

佳人의 못된 마음은 나이가 들어도 바뀌지 않습니다.

 

뿌린 대로 거두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佳人은 정말 나쁜 사람입니다.

욱일승천하는 일본의 기세는 이제 저무는 석양이 되나 봅니다.

국운이라는 것도 세월에 따라 부침이 있게 마련이 아니겠어요?

9시 50분 성벽에 남아 있는 전쟁의 상처인 포탄 자국을 보며 노구교를 떠납니다.

 

루거우치아오(盧溝橋 : 노구교)는 험한 세상에 다리가 되고 싶었을까요?

한때 역사의 무게에 힘든 세월을 보냈지만, 지금은 묵은 감정은 모두 강물에 흘려보냈을 겁니다.

그러기에 일본인 관광객이 가장 많이 찾는 장소가 되기도 하고요.

한글 안내판은 없고 일본어는 있더군요.

일본의 거짓말을 비웃는듯한 표정의 사자 석 조각을 뒤로하며 또 다른 곳으로 가렵니다.

여행지를 떠나며 마음이 흐뭇한 곳이 있고 이렇게 마음이 무겁게 느끼며 떠나는 곳도 있네요.

 

다리도 이런 역사가 생채기를 낸 아픈 다리도 있고 중년 남녀의 애틋한 사랑을 그린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도 있습니다.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를 찾아가면 메릴 스트립이 아직 기다릴까요?

마눌님 몰래 매디슨 카운티 다리에도 다녀오고 싶네요.

오늘도 융딩허(영정하 : 永定河)라는 강은 그날의 있었던 일을 아는지 모르는지 무심히 흘러갑니다.

 

아침에 잠시 둘러본 루거우치아오(盧溝橋 : 노구교) 다리의 모습입니다.

이곳에서 밤에 달을 보는 풍경은 아름답기에 연경 8경 중 하나라 합니다.

더군다나 다리는 하얀 백옥석으로 만들었기에 달밤에 다리의 모습 또한 아름답다 하네요.

 

1시간 10분 동안 둘러보고 458번 버스를 타고 베이징 남역으로 갑니다.(1.5원/1인. 올 때는 301번 버스로 2원)

오후에는 천단을 보기 위해 그곳이 천단과 가까운 곳이라 생각되었거든요.

이제 내일은 황제들이 하늘을 빙자한 쇼쇼쇼의 현장인 천단을 찾아가 보렵니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여행을 다니다 보면 함께 하는 동행에 하지 못할 말이 있습니다.

때로는 아파 쉬고 싶어도 동행하는 사람이 걱정하고 즐거운 마음이 반감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모르는 병이 아닌 이상 간단한 아픔은 내색하지 말고 버텨야 할 경우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