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안 능가산 내소사(楞伽山 來蘇寺)
내소사(來蘇寺)는 전라북도 부안군 진서면 석포리에 있는 능가산 기슭에 있으며
삼국시대 백제의 승려 혜구두타(惠丘頭陀)가 창건한 사찰이라고 하며
원래 이름은 소래사(蘇來寺)였었다고 하네요.
대한불교 조계종 제24교구 본사인 선운사(禪雲寺)의 말사로
창건 연도는 633년(무왕 34)이라고 합니다.
이름은 바꾼 이유는 당나라 장수 소정방(蘇定方)이 석포리에 상륙해 이 절을 찾아와
군중재(軍中財)를 시주한 일을 기념하기 위해 절 이름을 소정방이 왔다는 의미인
내소사(來蘇寺)로 바꿨다는 설이 있으나 진실 여부는 알 수 없다고 합니다.
이 절에 관한 기록은 동국여지승람과 최자의 보한집(補閑集) 가운데 정지상이 지은
"제 변산 소래사(題邊山蘇來寺)"라는 시가 있고, 이규보의 "남행 일기(南行日記)"가 있는데
모두 "소래사"로 기록되어 있어 언제 "내소사"로 바뀌었는지 분명치 않다는군요.
그러나 임진왜란을 전후애 변경된 게 아닌가 한다네요.
오늘은 일주문을 지나 사찰 안으로 들어가는 길이 멋진 전나무 숲으로
이루어져 있는 내소사를 구경합니다.
이 전나무 숲에 있는 나무의 수령은 대개 120년 전후라고 하네요.
첫걸음부터 내소사를 찾는 모든 사람에게 청량감을 주는 그런 길이네요.
이곳에서는 대장금이라는 드라마를 촬영했다는 곳도 있습니다.
장금이 때문에 한상궁이 경합에서 지는 바람에 장금이가 야단맞은 것을 생각하며 우울한 표정으로
연못에 돌을 던지는 모습과 멀찍이 서서 그 모습을 안타까워 바라보는 민정호의 모습을 촬영했던
장면을 바로 위의 사진에 보이는 연못 앞에서 촬영했다고 합니다.
1633년(인조 11)에 청민(靑旻)선사가 대웅보전을 지어 중건하였고, 1604년(인조 18)
청영(淸映)이 설선당과 요사를 지었다고 하고 만허선사가 보수했다고 전해옵니다.
내소사가 가장 번성했을 때에는 큰 절은 대 소래사, 작은 절은 소 소래사로 나뉘어 있었답니다.
그러나 대소래사는 불타 없어지고 현재의 내소사는 소 소래사가 전해져 온 것이라고 하네요.
임진왜란 때 모든 전각이 불타 없어졌다가 인조 11년(1633년)에 청민 선사가 중건했다고 합니다.
1902년 관해(觀海)가 수축한 뒤 1983년 일주문을 세우고 1985년 대웅보전을 중수하였으며,
1986년 천왕문을 짓고 설선당과 요사를 보수하였고요.
1987년 봉래루를 해체 복원하였으며 1988년 요사인 진화사(眞華舍)를 건립하였다고 하네요.
대웅전 앞에 있는 봉래루(蓬萊樓)라는 전각입니다.
누각과 문의 역할을 하는 전각으로 1414년 태종 14년) 부안이라는 이 고장의 이름이 처음 정해졌던
해에 지은 전각이므로 부안의 이름과 함께 하고 있으니 그 역사가 600년이 넘었습니다.
당시 부령현의 부(扶)와 보안현의 안(安)이 합쳐져 부안이라는 지명이 확정되었다고 하네요.
현존하는 당우 및 중요문화재로는 보물 제291호로 지정된 대웅보전(大雄寶殿)을 비롯하여
보물 제277호인 고려 동종(高麗銅鐘)이 중요 문화재라고 하네요.
원래 보물 제278호인 법화경 묘법연화경이 있었는데 지금은
전주시립박물관에 위탁보관 중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조선 태종 15년 어느 이 씨 부인이 사별한 남편의 명복을 빌기 위해
묘법연화경을 필사하여 만들었다고 하고 이 씨 부인은 망부(亡夫)의 명복을 빌기 위해
한 글자를 쓰고 한 번 절하면서 지극한 정성으로 필사한 것이라고 하네요.
보물 제278호인 법화경절본사경(法華經折本寫經), 보물 제1268호로 지정된 괘불 등과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25호로 지정된 요사채, 설선당(說禪堂), 보종각(寶鐘閣),
봉래루(蓬萊樓)와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24호로 지정된 삼층석탑 등이 있습니다.
내소사 삼층석탑은 고려시대에 만든 것이나 신라 탑의 양식을 따르고 있는 탑이라네요.
높이 3.46m고 맨 아래의 받침대는 하나의 돌을 이용해 만들었다네요.
몸체도 각각 하나의 돌을 사용해 만들었고 각 면마다 기둥을 새겼습니다.
몸체와 지붕들은 위로 올라갈수록 그 크기와 높이가 급격하게 줄었으며
지붕돌의 경사도 심하게 되어있네요.
이 가운데 대웅보전은 1623년(인조 1)에 완공되었는데 그 의장(意匠)과 기법이
매우 독창적인 조선 중기의 대표작으로 알려졌습니다.
빼어난 단청 솜씨와 문살의 아름다움이 일품이네요.
못 하나 쓰지 않고 나무를 깎아 서로 교합하여 만들었다고 하며,
법당 내부의 벽면에 그려진 관세음보살상 등의 그림도 일품이라고 하지요.
전설에 의하면, 이 건물은 호랑이가 화현(化現)한 대호 선사(大虎禪師)가 지었다 하고,
벽화는 관세음보살의 화현인 황금빛 날개를 가진 새가 그렸다고 하는데,
그때의 일화가 지금도 전하고 있다네요.
가운데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우측에 보현보살, 좌측에 문수보살을 모시고 있습니다.
대웅전은 화려하지만, 정신이 사납지 않고 그리고 장중함 보다는 은은한 정을 느끼게 합니다.
불상 뒤 벽에 그려진 관음보살상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것이라고 하네요.
대웅전은 철못을 사용하지 않고 나무만으로 지었다네요.
천장의 화려한 장식이 돋보이지요?
연꽃과 국화꽃을 가득 수놓아 화사한 꽃문양으로 장식한 문살은 비록 단청이 오래되어
낡아 보이지만, 그 내면으로 흐르는 은은한 아름다움은 전혀 퇴색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 문살은 법당 안에서 보면 단정한 마름모꼴 살 그림자만 비친다고 하네요.
1995년 수각(水閣)과 종각을 짓고 범종을 조성함으로 지금에 이르렀다지요.
또한, 고려 동종은 1222년(고종 9) 변산 청림사(靑林寺)에서 만든 종인데,
1850년 땅속에서 발굴된 뒤 이 절로 옮겨졌다고 하네요.
대웅보전은 내소사에 있는 조선 중기의 목조건물로 보물 제291호로 지정된 전각이지요.
앞면 3칸, 옆면 3칸의 단층 팔작지붕 건물로 다포 계통의 불당이라고 합니다.
잡석으로 쌓은 비교적 높은 축대 위에 낮은 기단을 두고 자연석의 초석(礎石)을 배치했으며,
그 위에 기둥을 세웠는데 모서리 기둥(隅柱)만 배흘림이고 나머지는 곧은 원기둥(圓柱)이네요.
그러나 기둥 높이가 낮아 단정한 느낌을 줍니다.
앞면의 기둥 사이에는 중앙칸에 사 분합(四分閤) 문을, 좌우칸에 분합문을 달았는데
문짝은 초화 무늬인 초화문(草花紋)이 정교하고 아름답게 투각 된 꽃살문이네요.
비록 단청이 바랬지만, 정말 보면 볼수록 아름답다는 느낌이 듭니다.
고려시대에 제작된 동종으로 1222년에 만들었다고 합니다.
보물 제277호로 지정된 귀한 동종입니다.
높이 103cm, 직경 67cm, 무게는 420kg으로 원래 변산반도에 있던 청림사의 종으
로 알려졌다는데 그러나 청림사가 폐사되고 땅속에 묻혀 있던 것을
1850년(철종 1) 현 위치로 옮겨왔다고 하네요.
종의 입구가 종의 몸체보다 약간 넓고, 정상부에는 생동감 있는 용 조각으로 된 고리가 있으며
그 옆의 원통 기둥인 용통에는 구슬이 둘러져 있고 가운데는 세 분의 불상을 새겼는데
가운데 본존불이 앉아 있는 모습이고 양쪽으로 협시보살이 서 있네요.
종의 어깨 위에 연화를 내포한 여의 두 무늬의 꽃장식이 2겹으로 있는데,
용통 위의 구슬 장식과 함께 고려종의 특색을 보여준다고 합니다.
종 어깨와 종 입부분에 문양대를 두어 모란당초무늬를 돋을새김 했고요.
4개의 유곽 주변의 문양대는 종의 어깨 부분 문양대보다 조금 좁으며
연주 무늬와 당초무늬를 양각했습니다.
따라서 이 종은 전체 형태나 조각이 아름다운 작품으로 고려종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어
고려 시대에 만든 종의 형태를 연구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겠네요.
내소사 위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