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여행기/산동성(山東省)

대성전은 공묘의 핵심인가 봅니다.

佳人 2012. 7. 21. 08:00

 

이제 공묘의 가장 핵심적인 장소를 향하여 다가섭니다.

바로 대성전이라는 건물입니다.

지금까지 보았던 모든 것들은 바로 대성전을 빛내기 위한 예고편이었나 봅니다.

공묘란 바로 공자에게 제사를 올리는 사당이니 이곳이 정전인 셈이 아닐까요?

동서 길이가 45.78m, 남북으로는 24.89m, 건물 높이가 24.8m의 웅장한 건축물입니다.

 

 

중국에서는 황제만 사용했다는 노란색 기와에 처마 위에 올라앉은 잡상이 제일 앞에

기봉선인 외에 모두 9존의 잡상이 올라앉아 있습니다.

그 잡상의 숫자에 따라 많을수록 그 건물의 중요도가 높다는 의미라고 하나요?

태화전은 10존, 건청궁에는 9존, 교태전에는 7존의 잡상이 올려져 있다고 하네요.

화재예방과 서열표시라 해야 하나요?

마치 군인의 계급이나 직위를 나타내는 어깨에 붙이는 견장처럼 생각되네요.

 

지금이야 절의 지붕에도 냉큼 올라가는 잡상이지만, 원래 황궁 지붕에서만

올리는 것으로 잡귀를 막아준다는 의미라 하네요.

그러나 이곳 공묘의 대성전에도 잡상이 필요하다는 말인가 봅니다.

여기 공자를 모신 곳이 뭬가 무서워 잡귀를 겁낸답니까?

"물렀거라~ 잡귀야~"

 

 

대성전은 공자가 죽은 후 이듬해 애공이 공자의 죽음 안타까워하며 지은 사당인 셈입니다.

물론 크기가 지금처럼 크지는 않았을 겁니다.

세월이 지나며 공자의 덕은 점점 세상 속으로 번져가며 눈덩이 불어나듯 커졌기에

여기도 지금처럼 넓어진 게 아닐까요?

정말 세월이 흐르며 그 덕이 점점 커진 사람은 공자 외에는 그리 많지 않을 거예요.

만약, 공자가 정치판에서 밀려나고 버림받지 않고 그곳에 있었다면

오히려 지금처럼 추앙받지는 못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그러니 우리가 살아가며 능력이 없다는 비판도 그게 나와는 맞지 않는 일이기에

그렇다 생각해야 할 듯하며 내게 맞는 일을 찾는다면 일도 즐거울 뿐 아니라 능력 또한

대단하다는 평가를 받지 않겠어요?

천하의 공자님도 그러하셨는데...

 

 

다만, 황제의 건물은 3단의 단을 만들어 그 위에 건물을 올렸지만, 

여기는 두 개의 단만을 만들어 대성전을 올렸네요.

이 정도만 되어도 황제에 버금가지 않겠어요?

대성전(大聖殿)은 공묘의 정전으로 중심 건물에 해당합니다.

대성전이라는 황금빛 글씨는 청대 옹정제가 썼다고 합니다.

 

 

여기에도 대성전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운룡 석조가 새겨져 있는데 조각의 예술적 가치나

규모는 황궁만 못하지만, 대성전 앞에 대석조는 제법 규모도 크고 잘 만들었습니다.

한가운데 여의주도 보입니다.

황제가 오를 때 양쪽 계단으로 가마를 진 사람이 어가를 지고 이 위로 오르내렸을 겁니다.

용의 길이가 짧으면 악어처럼 보입니다.

마치 수초에 갇혀 발버둥 치는....

 

 

여기도 용머리로 만든 토수를 볼 수 있습니다.

비가 오면 용의 입에서 쏟아지는 물줄기가 볼만하겠지요?

자금성의 천룡 토수 만 못하겠지만...

 

 

황금빛 지붕에 화려한 조각의 용 조각의 돌기둥...

이게 중국의 3대 궁전 건물의 하나라는 대성전입니다.

태화전과 비교에 들어갑니다.

그곳은 힘으로만 강제로 누르는 위압감이 있다면, 이곳은 자연스러운 존경심이 아닐까요?

그곳은 강제로 머리 숙이라 하지만, 이곳은 스스로 머리가 숙여지는 곳입니다.

그러나 佳人은 태화전에서도 여기서도 머리를 숙이지 않았습니다.

머리를 숙일 수 없었습니다.

왜?

머리를 숙이면 구경을 할 수 없으니까!

   

 

그곳은 누가 강제로 머리를 잡고 누르는 느낌이지만, 이곳은 저절로 머리가 숙여지는 곳이지요.

한백옥석(漢白玉石)으로 단을 두 개 만들고 그 위에 다시 황제만이 누릴 수 있는 방실을

일곱 칸을 만들었으니 당시 황제들이 얼마나 공자를 끔찍이 생각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대성전 안으로 들어가면 가운데는 공자의 조소 상이 있고 양쪽으로 제자의 소상이 있네요.

세계적으로 공자를 기린 사당이 무척 많을 것이고 그곳 모두 공자의 조소상을 만들어

놓았겠지만, 여기가 오리지널 원본이고 다른 곳은 모두 복사본이라는 말입니까?

물론 여기도 얼마나 공자의 원래 모습에 가깝게 표현했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지만...

 

 

생민미유라...

생민이란 중국에서는 사람을 흔히 이르는 말이라 하니

아마도 공자만 한 사람이 없다는 말인 듯합니다.

그렇지요.

사람이 세상에 태어난 후 공자만 한 사람이 흔치 않을 겁니다.

생민미유라는 말은 맹자가 공자를 보고 극찬한 말일 겁니다.

여기에 쓴 글은 청나라 옹정제인 세종이 썼다고 하네요.

 

 

대성전 문 앞의 돌기둥 28개가 대성전 건물을 받치고 있고 그 돌기둥에는

모두 용이 조각되어 있는데 용도 용 나름이 아니겠어요?

그러니 그 기둥에 새겨진 용은 또한 평범한 용이 아닐 겁니다.

처마를 받치고 있는 용이 새겨진 기둥 중 전면에 있는 열 개의 기둥이 유난히 아름답고

하나의 기둥에 두 마리씩 용이 마치 살아 꿈틀거리는 듯...

 

지금 눈에 보이는 돌기둥은 그냥 돌에다 조각한 돌기둥이 아니라 원래 용이 이곳에 내려와

지내다가 하늘로 올라가는 것도 잊어버리고 용이 돌로 변해 굳어진 것으로 보입니다.

지금까지 보았던 용 중에 최고의 용으로 자금성이나 대동의 구룡벽에 있는 용이

최고라 생각했지만, 이제부터 여기로 하렵니다.

 

 

대성전의 옆모습도 바라봅니다.

그곳에도 돌기둥이 있지만, 전면에 있는 돌기둥보다는 못하네요.

용도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차별화되었나 봅니다.

앞에 있는 용은 용다운 용이지만, 옆의 기둥에 있는 용은 용이 되려고

용만 쓰다가 만 슬픈 이무기가 아닐까요?

 

 

그래도 기둥을 자세히 확대해 보겠습니다.

물론 그 8각 돌기둥에도 용이 새겨져 있지만, 그 깊이가 앞에 있는 돌기둥에 비해

훨씬 예술성이 떨어지는데 공자는 거의 평생을 촌로로 후학에게 글을 가르치며

살아왔던 분에게 용과 황금으로 치장하다니..

     오히려 공자에 욕된 일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공자의 삶도 그리 평탄한 삶은 아니었지요?

처음에 이웃 나라인 제나라 왕이 공자를 중용하려 하자 당시 제나라 재상인 안영이

틀어버렸다는데 세상에 공자보고 아니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은 안영밖에는 없을 겁니다.

그런 시련을 겪으며 우선 말단 관리로 노나라에서 일하다가 50세에 비로소 일인지하

만인지상이라는 재상에 올랐지만, 세상이 어디 그리 호락호락합니까?

 

영원토록 만인의 스승이라는 훌륭한 만세사표일지라도 시기를 잘못 타면 그런가 봅니다.

다른 나라를 기웃거리다가 정나라의 민초에게 상갓집 개라는 소리까지 듣고 보니

비로소 자신을 깨닫고 돌아오게 되었잖아요.

그럼 그때 돌아올 때 제자와 함께 돌아왔을 것이며 그 모습이 상갓집 개와 그를 따르던

개 무리들을 이끌고 돌아온 셈인가요?

달리 생각하면 공자를 일깨운 참 스승은 바로 그런 독한 말을 한 정나라 민초였을 겁니다.

공자도 그 순간까지는 자신을 너무 몰랐다는 말이 아닐까요?

 

 

그의 개혁은 실패로 돌아가고 14년간이나 방황하며 세월을 보내며 자신의 이상을 펼치려

했지만, 68세가 되어 상갓집 개라는 비아냥을 받으며 다시 노나라로 빈손으로 돌아오게

되었고 그 후 공자는 73세(BC479)의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바로 이 자리에서

자신의 지혜를 후학들에게 나누어 주었답니다.

 

아무리 좋은 생각이라도 세상이 받아주지 않으면 그것은 공염불이 되나 봅니다.

사실, 지금 중국에 공자가 나타나셔서 개혁을 하려 한다면, 성공할 수 있겠어요?

사람은 모두 때가 있고 장소가 있나 봅니다.

 

 

중국의 용은 사실 황제 전용의 반려 용이고 애완용 용이었지만,

용도 이렇게 황제를 떠나 이곳에는 허용되었나 봅니다.

뭐 최근에는 다니다 보면 어디나 볼 수 있지요.

우리는 그런 것을 보고 잡룡이라고 하던가요?

 

대성전의 28개의 돌기둥 중 가운데 앞쪽의 10개 기둥은 쌍룡이 여의주를 가지고

구름 속에 비상하는 문양을 새겨놓았고 양쪽과 뒤쪽의 18개의 팔각기둥에는 품격이

많이 떨어지는 매 기둥마다 72마리의 용을 새겨놓았답니다.

그러니 용도 제대로 된 용이 있고 나머지는 잡룡이라는 말이 되나요?

요즈음 우리나라도 많은 용이 출몰하여 저마다 민초를 위하겠다고 아양 부리지만,

한 마리를 빼고는 모두 잡룡이 되고 말 겁니다. 

왜?

2등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으니까요.

 

 

72마리의 용은 바로 공자가 만 72세에 卒 하였기에 그런 의미로 새겼고

이곳 기둥의 모든 용을 합하면 1.296마리라 합니다.

1.296마리란 중국의 전설에 등장하는 용의 숫자가 바로 1.296마리이기에

그렇게 만들었다 합니다.

그러니 중국의 모든 용이 총출동하여 공자를 보호한다는 말인가요?

 

 

이런 의미를 담은 일은 황궁에서도 없었던 일로 청나라 건륭제가 이곳을

왔을 때 용 기둥을 모두 붉은 천으로 가렸다고 하는데 들리는 말에 의하면

황제가 이곳을 찾을 때는 언제나 붉은 천으로 기둥을 죄다 가렸다고 하네요.

 

그래서 중국의 황제 중 이 멋진 용 기둥을 본 황제는 아무도 없었다는 이야기도

있기에 황제도 보지 못한 멋진 용 기둥을 우리는 볼 수 있어 행복합니다.

그러기에 이곳에 들리면 우리는 무조건 용 기둥을 자세히 보아야 합니다.

왜?

황제도 제대로 보지 못한 멋진 용이니까!

 

사실 중국에서의 용이란 황제를 의미하잖아요.

그런데 그 용이 모두 이곳에 몰래 키우고 있다고 생각해보세요.

용 수염은 공자가 잡고 있고 황제는 족제비 털이나 잡고 있다는 말이 아니겠어요?

헐!!!

보는 황제가 기분이 썩 좋지 않았을 겁니다.

 

 

자금성의 태화전과 쌍벽을 이룬다는 대성전.

대성전은 태화전과 마찬가지로 황금 유리 지붕을 얹은 건물입니다.

중국 내에서는 유일하게 황제와 맞짱 뜨는 곳이지요.

원래는 선성전(宣聖殿)이었는데 남송 시절 휘종이 대성전이라는 친필 편액을

내리며 이곳의 이름을 새로 지었다 합니다.

그러나 지금의 편액은 청나라 옹정제의 친필이라 합니다.

 

세상에 공묘에서 제일 중요한 대성전에 들려 佳人은 용에 정신이 팔려

용 이야기만 하고 있습니다.

공자님이 얼마나 서운하실까요?

오늘 佳人이 빠떼루를 스스로 청하겠습니다.

 

 

대성전 안에 쓴 만세사표라는 편액은 강희제가 썼다고 알려졌습니다.

대성전의 잡상도 궁궐의 수준으로 많이 올려놓았습니다.

제법 잘 쓴 글로 보입니다.

컥! 이런!!!

佳人이 감히 황제가 쓴 글을 잘 쓴 글이라 평을 하다니?

 

 

만세사표라는 글 바로 아래 사문재자(斯文在玆)라는 편액은 광서제가 썼다고 합니다.

광서제는 서태후에 휘둘려 평생 감금당하며 살다가 서태후가 죽기 전날 혼자 가기

외롭다고 앞세워 데리고 갔는데 언제 여기에 이런 글을 남겼나 모르겠습니다.

사문이라는 말은 중국에서는 문화나 문인 또는 우아하다는 의미가 있는 글이라 합니다.

그러니 이 말은 "천하의 문명은 모두 공자에게 있다."라는 뜻이라 해야 하나요?

아니면 말고...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물론, 공자에 대한 최고의 찬사라고 하지만, 듣기가 좀 그렇습니다.

세상의 모든 지식을 알고 있다고 아부한 말이지만,

사실, 공자도 스스로에 대한 평가는 농사일은 늙은 농부만 못하다는 말을 했다잖아요.

그리고 세상의 지식을 반밖에는 알지 못한다고 연못을 반원형으로 만드는 겸양지심을

보이기도 했다는데 후세 사람이 너무 호들갑 떠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사실, 공자를 칭송하는 말은 자신을 낮추는 게 아니라 오히려 문명인이라 자랑하기 위함이기도 하니까

그랬을 겁니다.

공자는 칭송하지 않아도 누구나 인정하는 대단한 분일 텐데 서로 나서서 위대하다고 하는 사람은

자신을 드러내고 싶은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