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페소스, 그 놀라운 유적지
에페소스를 부르는 말은 무척 다양합니다.
영문으로는 Ephesus이며 터키어로는 Efes라고 표기합니다.
공동번역 성서에는 에페소이며 한글 개역판에는 에베소로 표기하나
다 같은 곳을 이르는 말입니다.
여기에서는 에페소스로 표기하겠습니다.
점심을 한인식당에서 비빔밥으로 하고 버스를 타고 잠시 이동하니
바로 에페소스 유적지 주차장입니다.
에페소스의 문은 남쪽과 북쪽 두 군데가 있다고 합니다.
이곳은 남쪽 입구로 들어가 계속 유적을 보고 반대편 북쪽으로 나가게 되어 있습니다.
물론 반대로 진행해도 상관이 없지만 높은 곳에서 내려가며 보는 게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길을 따라 쌓은 담장 위로는 양으로 보이는 짐승 모양의 조각이 올려져 있네요.
아마도 저 조각품은 길을 따라 세워진 기둥 위에 올려진 황소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살아서 인간을 위해 아낌없이 주고 죽어서도 모든 것을 남겨주었더니
이제 그 모습조차도 남겨 놓았습니다.
이제부터 남쪽 입구부터 사진으로 따라가며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곳은 내용을 알고 보면 경탄할 만한 곳이지만,
佳人처럼 보시면 사람 뒷모습과 맨 돌 뿐입니다.
위의 사진을 보면 정말 맨 돌입니다.
가끔 돌이 아닌 상수도관도 보입니다.
그런데 저 돌을 모아놓은 사람은 저 돌의 용도와
어디가 제자리인지 알고서 갖다 놓았을까요?
캄보디아의 씨엠립의 앙코르 제국의 유적지에 가면 거기도 저렇게
돌을 놓아두고 번호를 붙여놓았더군요.
지금도 계속 복원작업 중이지만, 수 백 년이 걸려도 제자리를 찾아
본래의 모습대로 복원하는 게 어려울 듯합니다.
이미 이곳 복원을 시작한 해가 1896년으로 이미 백 년이 넘었지만,
공정이 30% 정도라는군요.
그럼 세월이 지나 처음 번호를 매겨 놓았던 사람이 은퇴하고 새사람이
들어오면 다시 번호부터 매겨야 하지 않겠어요?
그런 걱정 하지도 말고 구경이나 하라고요? 그렇군요.
처음 입구를 들어가면 맨 돌만 보이는 광경이지만, 그래도 순서대로 들어가 보렵니다.
입장료는 20 TL(터기 리라)로 우리 돈 16.000원 정도 합니다.
워낙 유명한 곳이라 세계 각지에서 몰려온 관광객으로 혼잡합니다.
차라리 입장료만 받아 옆에다 새로 짓는 게 더 빠르겠어요.
오디오 가이드를 대여합니다만, 아직 한국어는 없습니다.
이러고도 터키가 얼어 죽을 무슨 형제야!
우리 집에 왔다 봐라~ 터키어는 고사하고 영어도 제공하지 않을 게야~
에페소스 유적 안을 다니다 보면 삼성그룹에서 설치한 안내판을 몇 개 볼 수 있습니다.
아마도 복원사업에 소요되는 재정 일부를 지원하지 않나 싶습니다.
만약, 그렇다면, 한국어로 된 오디오 가이드부터 먼저 해결하는 게 어떨까요?
에페소스의 유적을 보면 피온과 콜레소스의 두 개의 구릉 사이에 세워진
도시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구릉이라야 높지 않아 언덕 수준이지만...
우선 입구를 들어서면 제일 먼저 오른쪽으로 2세기경 만들어진
발리우스(Varius) 욕장이라고 하는 목욕탕 시설이 보입니다.
에페소스에서는 가장 먼저 만들어진 목욕탕인 셈입니다.
누군가 로마의 멸망은 사치와 목욕문화 때문에 사라지게 되었다고 했던가요?
너무 많이 먹고 또 체중 조절을 위해 오랜 시간 욕탕에서 시간을 보냈다고 했던가요?
에페소스에 살았던 부유층은 무역으로 부를 쌓아 상당히 부유하였기에
육식을 많이 함으로 뚱뚱한 사람이 많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도시 곳곳에 냉탕, 열탕, 온탕들을 골고루 갖춘 사우나 시설을 한 목욕탕이
많은데 아직도 복원작업을 하지 못하고 그냥 내버려 두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체중조절을 위하여 사우나의 중요성은 같은가 봅니다.
고대 그리스의 시인 안티프트로스라는 사람이 BC 140년경에 쓴 글에서
그가 돌아다니며 보았던 경이로운 건물 일곱 가지를 나열했는데
후세 사람이 이 이야기를 두고 고대 세계 7대 불가사의라 한다는군요.
그중 하나가 바로 오늘 우리가 돌아볼 에페소스라고 하는 곳, 옆에 아르테미스 신전이
가까이 있었다니까 흥분되지 않습니까?
아르테미스 신전이 그리스의 파르테논 신전보다 4배나 컸다고 하니..
지금은 지진으로 폐허가 되어 기둥 몇 개만 남아 있고 기둥 대부분은 이스탄불에서 본
아야 소피아를 지을 때 재활용한다고 죄다 싣고 갔답니다.
여기서 거기가 어딘데 그 크고 무거운 기둥을 싣고 갔을까요?
우리에게도 널리 알려진 인류 최초의 서사시인 오디세이와 일리아드를 쓴
호메로스라는 사람이 태어난 곳이 이곳이 아닐까 추측한다고 하네요.
이곳은 상류층과 일반 서민이 사는 동네가 구분되어 있었다 합니다.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빨리 상하수도 시설을 갖추고 살았던 도시가
이곳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곳은 진흙을 구워 관을 만들어 땅에 묻어 상수도로 이용하였으며
하수도 시설도 완벽히 분리하여 관리했습니다.
그때가 언제인데 벌써 이렇게 상하수도를 구분하여 관리했을까요?
지금은 돌만 뒹굴고 있지만, 이 자리는 아고라라고 하는 장소입니다.
시장의 역할도 하고 집회도 열려 토론도 했다는 아고라 광장입니다.
에페소스에는 아고라가 두 개 있는데 이곳을 위층 아고라라고 하며 북문 부근에
있는 아고라는 상업용 아고라라고 합니다.
유럽의 근간은 광장 문화로 그 시작은 그리스의 아고라부터라고 하지요.
이 도시의 규모는 무척 큽니다.
로마시대에는 로마, 알렉산드리아, 안티오크에 이어 네 번째로 큰 도시였다고 합니다.
그러니 그 규모를 짐작할 수 있지 않겠어요?
발리우스 욕장부터 쭉 뻗어 있는 길이 있는 이곳을 바실리카라고 부른답니다.
길 양쪽으로는 이오니아 양식의 기둥이 서 있고 그 위에는 황소상이 올려져
있었다는 데 지금은 기둥도 제대로 서 있지 못합니다.
세월이 흐르면 제대로 서지 않는 게 참 많습니다.
만약 옛날 모습 그대로 이 기둥 위에 황소상이나 다른 동물의 상이 올려져 있다면,
눈이 휘둥그레지지 않겠어요?
아마도 이 도로 양쪽으로 법정이나 상업거래소 등 공공기관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바실리카라는 게 원래 관공서가 모여있는 곳이잖아요.
이 길의 길이가 165m 정도가 된다고 하네요.
이렇게 이 도시가 융성했던 이유는 소아시아라고 불린 이 지역이
동서 교역의 중계점이었을 겁니다.
그러니 에페소스는 무역과 교통의 요충지의 역할을 했던 도시입니다.
한창 융성했을 때 이곳 인구가 25만 명이 넘었다고 하니
가히 그 크기를 짐작하고도 남습니다.
조선이 건국 후 한양으로 수도를 옮겼을 때 한양의 인구가 10만 명 정도였다고 하니
그 크기를 짐작할 수 있겠네요.
에페소스는 바로 항구가 이 도시 앞에 펼쳐져 있고 많은 무역선이 드나들고
사람으로 흥청거렸을 곳입니다.
지금은 이오니아식 돌기둥만이 남아 그때의 영화를 짐작만 할 뿐입니다.
돌을 돌 같지 않게 다듬은 솜씨...
정말 칭찬해 주어도 좋지 않을까요?
뭐... 우리나라는 찜질방에만 가면 사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 수건으로
저런 모습을 의무적으로 해야 하지만...
우리가 지금 쓰는 언어 중 음이나 소리라는 의미로 영어로
오디오(Audio)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오데온(Odeon)이라는 곳에서 나온 말이라는군요.
오데온이란 위의 사진처럼 반원형 극장을 말합니다.
22개의 계단식 좌석을 갖추고 있습니다.
22개란 로마인이 생각해 낸 한 층의 계단식 좌석의 기본인가 봅니다.
대극장도 한 층에 22개의 계단으로 만들어진 것을 보면 아마도 어떤 기준에 의해
만든 게 아닌가 생각되네요.
오데온으로 드나드는 출입구입니다.
예전에 이곳에서 열린 시낭송이나, 음악 또는 토론에 참여하기 위해
이곳 주민이 드나들었을 출입구입니다.
아! 반상회라도 열리면 모든 가구에서 무조건 한 사람은 참석했을 겁니다.
오데온은 지붕이 있는 소극장입니다.
지금은 지붕은 남아 있지 못하지만...
지붕은 아마도 가벼운 소재로 만들어 덮었을 것으로 추정한다네요.
엄청난 넓이인 로마의 콜로세움도 덮개를 덮었다고 하지요.
주로 시낭송이나 음악회가 열렸던 곳이죠.
그리스나 로마시대의 사람들은 무척 예술적이었던 모양입니다.
그밖에도 시의회도 열렸고 국빈을 위한 공연, 중요한 재판도 열린 다용도 장소였다네요.
오데온 앞에는 에페소스의 중요한 곳인 아고라가 있었고 왼쪽으로는
시청사와 공회당 등이 있었습니다.
이곳은 2세기경 귀족인 베디우스 안토니우스와 그의 부인인 플라비아 파피아나에 의해
세워졌으며 수용인원은 1.500명 정도라 하네요.
좌석으로 오르내리는 계단의 하단에는 사자의 발을 조각해 놓았습니다.
사자의 발이란 위엄과 완벽을 의미합니다.
도시를 세울 때는 언제나 이런 예술적인 용도로 사용하는 오데온을 꼭 만들었으니
음악이나 시를 사랑한 사람들이었나 봅니다.
아~ 좀 더 오래 머무르고 싶습니다.
귀를 기울여 옛사람과 대화도 나누고 싶습니다.
2천 년 전에 돌로 만든 의자에 앉아 있으면 노랫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여러분은 들리지 않으세요?
저는 들립니다.
빨리 가자는 소리 가요.
최초의 좌석은 대리석으로 만들었지만, 복구한 위쪽은 일반 돌을 사용하였고
그 위를 시멘트로 발라놓았습니다.
보기가 흉하지요? 저렇게 하고도 복원을 했다고 복구비를 지급했겠지요?
복원이 아니고 훼손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요?
오데온은 예술적으로만 사용한 게 아니고 정치적인 토론장으로도 사용한 모양입니다.
심야토론이나 끝장토론도 열리지 않았겠습니까?
이제 오데온을 뒤로하고 그 옆으로 장소를 옮겨갑니다.
오데온을 떠나며 자꾸 뒤돌아 봅니다.
누군가 영혼의 곡을 연주하고 있는 듯합니다.
아마도 그 시절 멋진 연주복을 차려입고 첼로를 연주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 소리를 듣고 싶습니다.
하늘 우러러 하늘의 시리도록 파란색을 가슴에 담고 싶습니다.
젠장 오늘은 이리도 날씨마저 좋다는 말입니까?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에페소스의 고대 유적은 유적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대단한 모습으로 다가옵니다.
하늘이 놀라고 땅이 흔들리고, 가슴이 떨립니다.
이 유적을 오늘 하루만 보고 끝내고 싶지 않아 며칠간 나누어 사진을 올릴까 합니다.
저도 천천히 둘러보며 마음으로 느끼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