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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페소스... 그 화려함

佳人 2011. 6. 17. 00:19

 

에페소스는 신약성서에도 나오는 도시로 B, C 7세기경부터 무역을 바탕으로 발달한 도시로

로마시대에는 이곳의 인구가 25만여 명에 이를 정도로 번창한 도시였나 봅니다.

당시에 25만의 인구라 하면 무척 큰 도시가 아니겠습니까?

이성계에 의해 조선이 건국되고 한양으로 수도를 정한 조선 초기의 한양 인구가 고작

10여만 명이었다고 하니 에페소스의 25만 인구란 정말 대단히 큰 도시임이 분명합니다.

 

 

잠시 길을 따라 내려가다 보면 오른쪽에 멤미우스 기념관이 있습니다.

지금은 대부분 무너지고 기둥 몇 개와 조각이 남아 있지만,

예전에는 대단히 아름다운 건물이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비록 많이 훼손되었지만, 아직 그 아름다움을 잃지 않고 있습니다.

 

 

이 기념관은 슬픔을 달래기 위한 추모관이나 다름없습니다.

로마 공화정 시기에 에페소스에 대한 과중한 세금 부과로 시민은 로마가 아닌

폰토스의 왕인 미트라다테스 6세를 지지하기로 하자 미트라다테스 6세는 거저

생긴 도시를 접수하고 이 지역에 살던 로마인 8만 명을 하루 만에 학살해 버립니다.

너무 앞서 나간 게 아닙니까?

적어도 지피지기 정도는 해보고 일을 저질러야죠.

 

 

결국, 로마와 전투가 다시 일어났고 술라가 이끄는 로마군이 미트라다테스 6세와의

전쟁에서 승리하며 에페소스는 다시 로마의 지배를 받게 되고 지난번보다 더 과중한

세금을 내야 하는 처지에 이릅니다.

저런... 소탐대실입니다.

괴씸죄에 걸린 겁니다.

 

그 후 사태가 진정되자 술라의 손자인 멤미우스가 당시 죽은 로마인 8만 명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만들게 되었으며 특히 술라를 칭송하는 글이 대부분이라 합니다.

손자도 잘 두니 할배 공덕비도 세우고...

죽은 로마사람을 추모한다는 핑계로 할배 자랑 질 좀 했습니다.

 

 

아래로 조금 더 걸어 내려옵니다.

그 반대편에는 폴리오의 샘이라는 건물과 도미티아누스 신전이 보입니다.

사진에 왼편은 폴리오의 샘이라는 건물이고 멀리 2층으로 보이는

기둥만 남은 곳이 도미티아누스 신전입니다.

폴리우스라는 귀족이 만든 샘물터로 이 샘물을 여기서 수 km 떨어진 곳에서 아까

보았던 진흙으로 구운 상수도관을 통하여 이곳으로 공급하여 관리했던 모양입니다.

당시 물의 중요성은 무척 대단했던 모양입니다.

로마의 물 관리는 정말 대단했다고 생각됩니다.

 

 

이 부근은 무척 많은 돌이 있는 곳입니다.

이제 하나씩 형태를 갖추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제자리를 찾지 못하는 돌이 더 많습니다.

 

 

다시 한 번 폴리오의 샘을 전면에서 찍어보았습니다.

오른쪽의 큰 아치에는 폴리오라는 글이 새겨져 있어 이 건물을 폴리오의 샘이라 부른답니다.

아치가 있는 곳은 건물은 상점으로 사용하였다 하며 사진을 찍고 있는 앞의 작은 광장은

이 도시의 중요한 상업지구가 아닌가 추정합니다.

 

 

다시 도미티아누스 신전의 사진도 가까이 찍어 봅니다.

도미티아누스(81-96 재위)는 유능한 황제였지만, 남을 믿지 않는 성격으로 말년이

불행한 황제였다고 하는데 그는 자신을 '주인이자 신'으로 부르게 했고 기독교를

탄압하다 말년에 근위대장과 결탁한 황후에 죽임을 당하게 되었다니 인간이

신 처럼 살려다 정말 제명도 살지 못하고 귀신이 된 전설의 고향에나

나오는 슬픈 이야기입니다.

 

이 시기에 사도 요한이 에페소스의 교회 감독으로 기독교를 탄압하는 황제에 맞서서

당연히 싸웠으며 그 결과 밧모섬으로 유배를 가게 됩니다.

그곳에서 18개월 동안 귀양살이를 하다가 네르바 황제 때 풀려나

다시 에페소스로 돌아오게 됩니다.

 

 

그가 죽자 생전에 자신이 만들었던 이 도미티아누스 신전에 새겨진 이름을

에페소스 사람이 지워버렸다 합니다.

왜 살아생전 공덕비에 연연하나요?

권력 무상이지요.

카다피도 권총차고 호위병 거느릴 때 대통령이지..

그래도 2층에 해당하는 기둥에는 아직 화려한 조각이 남아 있습니다.

 

 

바로 그 앞의 광장에 분수대가 아직 남아 있습니다.

둥근 기단 위에 아름다운 조각으로 분수대를 만들었습니다.

소머리로 보이고 그 아래로는 포도, 사과 그리고 파인애플로 보이는

과일이 조각으로 남아 있습니다.

소머리 국밥집 선전도 아니고 왜 소머리를 조각으로 분수대에다 만들었는지 모르겠네요.

과일 조각이 어찌나 섬세하든지 진짜 과일처럼 생생하게 보였습니다.

  

 

신과 인간사이를 오가는 전령인 Hermes 신입니다.

야하군요.

팬티라도 입히지.... 고추가 보이는군요.

제우스의 아들로 소와 양의 보호자라 양과 함께 있기에 그렇게 추정하나 봅니다.

사자의 지팡이를 들고 있습니다.

남근의 상징이라는 신이라 고추를 자랑스럽게 내보이는지 모르지만,

변강쇠가 보면 뭐라고 하겠어요? 칫~ 

저 양을 잘 보아 두세요.

비록 바보같은 멍청한 양이지만, 나중에 다시 한번 등장합니다.

 

 

헤르메스의 시원치도 않은 고추는 빼고 다리 부분만 자세히 보겠습니다.

노란색 원 안의 헤르메스의 발 뒤꿈치를 보아주세요.

양쪽 발에 다 날개가 달렸습니다.

발에 날개가 달렸으니 축지법이라도 쓰며 날라다니며 전령사 역할을 했을 겁니다.

고무신 타는 냄새가 나도록 빨리 달리기 위해 발에 날개가 돋아났습니다.

아마도 택배회사의 원조가 헤르메스가 아니었을까요?

 

 

 그리고 모 타이어 회사의 로고도 불러오겠습니다.

헤르메스의 다리와 유사한 점을 발견하셨습니까?

전령의 신이라 발에 날개가 달려 빨리 다닐 수 있다고 타이어 회사도 헤르메스의

다리에 붙은 날개만 사용료도 없이 무단으로 사용하고 있는 겁니다.

2천 년 전에 만든 조각상이니 특허가 만료되었다구요?

그런다고 자동차 바퀴가 하늘을 날아가겠습니까?

 

 

비암이 지팡이를 꼬고 오르는 모습입니다.

아스클레피우스의 지팡이입니다.

그리스 사람은 뱀을 신성하게 여깁니다.

뱀이란 허물을 벗을 때마다 언제나 새롭게 새 생명을 얻는다 생각했나요?

 

한국인에게는 비암이 어떤 존재입니까?

맛도 좋고 몸에도 좋은 비암이 아니겠습니까?

지금 의학과 관련하여 사용하는 게 지팡이에 비암입니다.

그런데 이 비암에도 두 가지가 있습니다.

 

 

의학의 신으로 추앙받는 아스클레피우스 상징은 뱀 한 마리만 지팡이를 타는 모습입니다.

 

 

그러나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헤르메스 신의 지팡이에는 비암이 두 마리나 됩니다.

신들 사이에도 이렇게 짝퉁이 빈번하게 나타납니다.

장충동에 가면 모두 원조 족발집이고 마포에 가면 전부 원조 마포 최대포집입니다.

짝퉁의 역사는 이미 오래전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세계 보건기구인 WHO나 미국 응급의료기관인 EMS, 미 공군 위료 기관인

AFMS 등에서는 한 마리의 뱀입니다.

물론, 뱀이 지팡이를 타고 오르다 머리를 내밀며 "안녕~" 할 때 모습은 모두 다릅니다.

 

 

대한 의사협회나 그 밖의 몇몇 기관에서는 아스클레피우스의 지팡이 대신 그리스 신화에 나오

헤르메스 신이 들고 다녔던 지팡이 카두세우스(Caduceus)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한 마리보다는 두 마리가 좋아서 그렇습니까?

혹시 혼동하여 사용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이때 뱀은 서로에 관심을 보이느라 "안녕~'이라는 인사를 잊었습니다.

 

 

그래서 이 건물은 병원이 아닌가 추정한다 합니다.

佳人의 이야기는 완전히 '아니면 말고'입니다. 아시죠?

여러분에게 호환, 마마보다 더 위험한 해악을 끼칠 수 있습니다.

 

 

정복과 승리의 여신 니케(Nike)입니다.

우리에게는 나이키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알려졌지요?

오른손에 종려나무를 들고 왼손에 승리의 월계관을 들고 있습니다.

그녀의 옷자락에서 그 회사의 상표가 잡히시나요?

날개가 달렸으니 멀리 빨리 높이 날 수 있지 않겠어요?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니케의 체중부터 조금 줄여야 쉽게 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허벅지며 팔뚝 굵기가 여신으로 보기가 쪼메...

에효~ 승리의 여신도 나이가 들면 나잇살을 먹나 봅니다.

저게 아줌마 살이지 어디 여신의 몸매라 주장하겠습니까?

옴마야~ 정말로 아줌마의 상징인 뽀글이 파마까지 했습니다.

 

몸매도 관리하지 않았지요, 게다가 아줌마의 상징인 파마까지 한 것을 보니

니케는 여신이기를 포기한 듯한 자포자기한 타락한 천사의 모습입니다.

원래 이 니케의 여신상은 헤라클레스의 기둥 위에 아치 형태로 올라가 있었다 합니다.

아직 니케의 여신은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노숙자 신세입니다.

팔뚝 굵은 헤라클레스 기둥 위에 올려놓다 보니 여신의 팔뚝도 굵게 만들었나 봅니다.

 

 

그러면 헤라클레스의 문을 보도록 하지요.

어때요?

사자 가죽을 두른 모습이...

꼬리는 어깨에 머리는 헤라클레스 배 앞에다 두르고..

백수의 왕이라는 사자가 갑자기 불쌍해 보입니다.

라이온 킹 심바... 너 울고 있구나~

 

 

바로 니케의 조각이 이 기둥 위에 아치 형태로 올라가 있어야 제자리라 합니다.

돌도 제자리가 있습니다.

제자리를 잡고 있을 때 세계적인 유물이 되지 그냥 뒹굴면 돌입니다.

 

고대 로마 도시는 대개 성역과 서민들이 주거했던 지역으로 구분되어 있는데
여기 에페소스도 신성한 곳에는 의회, 신전 등의 건물이 있고,
주거지역에는 시장, 광장, 도서관, 목욕탕, 유흥업소 등이 있었던 흔적을 볼 수 있습니다.

바로 이 문이 두 곳을 구분하는 갈림점입니다.

 

 

헤라클레스..

역시 팔뚝 하나는 굵군요.

그래! 야! 인마~ 니 팔뚝 굵다!

저 사자가 바로 '네메아의 사자'가 아니겠습니까?

네메아의 사자는 헤라클레스가 이룬 12가지 대업 중에 첫 번째 일로 바로 불사신의

사자를 잡아 그 용맹함을 알리기 위해 그 사자의 껍질을 벗겨 몸에 두르고 다녔습니다.

아무리 불사신이라고 알려졌던 네메아의 사자라 하더라도 임자 만나면 한 주먹에 갑니다.

대체로 넓던 길이 헤라클레스 문에서 좁아지는 의미는 마차 통과를 금지하고

일반 서민은 들어갈 수 없게 하기 때문이라 합니다.   

 

 

주거지역에도 귀족들이 사는 지역이 따로 형성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귀족들은 많은 노예를 거느리고 호화로운 생활을 했지만, 노예들은 귀족들의

온갖 시중을 드는 가운데 심지어 자신의 체온으로 귀족들이 앉는

화장실 자리까지 따뜻하게 데워주었다고 합니다.

이런 일을 더러운 일이라고 하지 않겠습니까?

 

 

어느 말에 따르면 이 도시는 여인이 세운 도시로 아르테미스 여신을 위한

곳이었다고도 하더군요.

그러면 남자는 맨날 소만 키우고 살았나요?

 

 

마차가 다닐 때 미끄럼 방지를 위해 도로에 가로로 홈을 파 놓았습니다.

우리가 고속도로를 달릴 때 내리막길에서 조심운전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것과 같은 것입니다.

우리야 최근에 만들었지만, 이 녀석들은 이미 2천 년 전에 이렇게 만들고 살았습니다.

 

 

그리고 거리에는 가로등을 설치했던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지금 무심히 밟고 서 있는 곳에도 그런 역사의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아마도 세상에서 제일 먼저 가로등을 설치한 도시가 아닐까 생각되네요.

지금의 에페소스는 오스트리아 고고학자들에 의해 발굴되고 있는 중으로

주로 건물의 형태가 로마시대의 것이라 하네요.

 

 

도로와는 달리 사람이 걷던 보도는 어땠을까요?

마치 양탄자 무늬처럼 보이지만, 이 무늬는 사람이 걷던 보도입니다.

마치 어느 모자이크 작품을 보고 있는 착각에 빠집니다.

정말 화려하지 않습니까?

 

 

아~ 이 죽일 놈의 화려함...

이게 사람이 밟고 다니는 도로란 말입니까?

환장하게도 길바닥이 우리 집 안방보다 더 화려합니다.

아마도 옛날에 클레오파트라와 안토니오가 서로 팔짱을 끼고 걸었을 그런 곳입니다.

이 도로를 중심으로 명품만 취급하는 가게가 있었던 곳이라는군요.

 

 

지금은 모자이크를 보호하기 위해 통행할 수 없습니다.
로마제국의 지배를 받았을 당시의 이곳은 상업과 교역의 중심지가 되어 정치적,

경제적으로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으며 그 후 도시가 폐허로 변해갔기 때문에

로마의 냄새가 많이 나는 유적인 셈입니다.

로마시대도 연말만 되면 멀쩡한 도로 파헤치고 새 보도블록을 깔았을까요?

그게 궁금합니다.

 

 

거기서 뒤로 돌아보면 아직 조금 더 내려가야 셀수스 도서관으로 갑니다.

이 길을 크레테스라는 사제의 길이라 합니다.

그런데 25만 명이나 갈았다고 하는 도시의 메인 도로로는 너무 좁은 느낌이 들지 않나요?

아마도 이 도로는 메인 도로가 아니라 후문 방향이지 싶습니다.

 

 

사제의 길이라는 이 도로는 사제의 이름이 대리석 기둥에서 새겨진 체

발견되었기에 그리 부른다 하고 로마시대에는 종교와 도시의 행사를 주관하는

사제를 크레테스(Curetes)라 불렀다 합니다.

이 지역부터 서민이 사는 지역이라 합니다.

크레테스 길이야말로 귀족이 사는 지역과 서민이 사는 지역을 잇는

중요한 의미의 도로인 셈입니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생각

화려한 장식의 보도를 아마도 옛날에 클레오파트라와 안토니우스가 팔짱을 끼고

데이트를 즐겼을지도 모릅니다.

이곳이 바로 에페소스의 명품점이 자리하고 있던 명품거리가 아니겠습니까?

보석이며 양가죽 재킷도 팔고 모든 사람이 윈도쇼핑도 하고 싶었던 곳...

우리도 지금 그 길을 걷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