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페소스의 셀수스 도서관
에페소스의 공중화장실을 나와 다시 내리막을 걸어갑니다.
세월이 지나면 화장실도 관광지원이 된다는 사실을 배웠습니다.
그러나 같은 화장실이라도 중국의 화장실은 예전 그 모습 그대로이지만,
관광자원이 되기 어렵겠지요?
이번에 찾아가는 곳은 에페소스 유적의 백미라는 셀수스 도서관입니다.
저기 아래 보이는군요?
아래로 이어지는 거리를 크레테스의 거리라 한다는군요.
자 이제 이 아름다운 건물을 사진을 통해 자세히 들여다보겠습니다.
이 건물 앞에 서면 누구나 사진을 찍습니다.
우리야 한 장만 찍지만, 수십 장의 사진을 찍어도 좋습니다.
정말 아름다운 건축물이 아닙니까?
이 아름다운 도서관은 크레테스 거리를 따라 내리막길을 걸어 내려오면
바로 정면이 있습니다.
그곳에서 오른쪽으로 보면 마블 거리라는 대리석으로 만든 도로가 보이고
계속 진행하면 엄청나게 큰 대형 반원형 극장이 있는 곳으로 갑니다.
이 건물은 에페소스의 대표선수일 겁니다.
마치 예술극장을 생각하게 하는 건물이지 도서관일 거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어느 사진이나 에페소스를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사진에 얼굴을 내밀지요.
고대 세계 3대 도서관을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페르가몬 도서관,
그리고 이곳 셀수스 도서관이라고 한답니다.
이집트에 있는 알렉산드리아 도서관과 경쟁관계에 있는 페르가몬 도서관은
서로 많은 책을 만들기 위해 파피루스를 대량으로 소모하자 품귀현상이 일어나고
가격마저 올라가자 이집트에서는 파피루스의 수출을 금합니다.
페르가몬의 사람들은 할 수 없이 양가죽을 이용한 양피지(羊皮紙)를 개발하게 됩니다.
양피지를 영어로 Parchment라고 하며 라틴어로는 Pergamenum이라고 한다는군요.
그러니 이 말은 바로 Pergamon에서 제일 먼저 개발했고
널리 사용되었기에 유래된 말이라 합니다.
정말이냐고요?
아직도 佳人을 믿고 계십니까?
그때 페르가몬 도서관에 보관한 장서가 20만 권이나 되었다 하니
얼마나 많은 양들이 무두질당했을까요?
양들의 침묵이 아니라 양들의 비명이 들리지 않았겠어요?
바로 그 옆으로 'ㄱ' 자로 붙어 마제우스와 미트리다테스의 문이 있지만,
워낙 웅장하고 아름다운 도서관에 눌려 기를 펴지 못합니다.
물론 따로 떼어 바라보면 이 또한 아름답고 우아한 건축물이지만, 기죽은 모습입니다.
이쯤에서 제 사진도 한 장 올려도 되겠습니까?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인증 사진 한 장은 용서가 되겠지요?
그래도 쑥스럽군요?
셀수스(Celsus) 도서관은 135년 에페소스에 파견된 로마의 집정관이었던
셀수스 폴레마에아누스를 기념하기 위해 그의 아들 가이우스 율리우스 아퀼라
(Gaius Julius, Aquila)가 지은 것이라 합니다.
아비를 위해 아들이 돈 좀 썼습니다.
이런 효심으로 지진에도 견디며 이렇게 오랜 세월을 견디었나 봅니다.
이 건물이 2천여 년 전에 지었다는 게 믿어지십니까?
이 건축물의 명문에 남아 있는 글에 사실 셀수스의 아들은 이 건물이 완공되기 전에
죽었지만, 그의 후계자에 의해 도서관은 계속 공사가 이어졌다고 되었습니다.
그 결과 이런 건물이 남게 되었습니다.
셀수스의 무덤은 바로 도서관 아래라 하더군요.
정말 아들 하나 잘 둔 덕분에 셀수스라는 이름을 佳人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아들은 佳人이 이런 곳에 다녀와 사진을 찍고 블로그에 올리며
글도 쓰는지 알지도 못하고 알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모두 16개의 기둥이 버티고 있는데 1층의 기둥머리는 코린트식과 이오니아식이
혼합된 모습이고 2층 기둥머리는 코린트식 기둥이 웅장한 모습으로 서 있는
2층의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계단을 오르면 세 개의 문이 있고 그 문 옆으로 4명의 여신상이 자태를 뽐내고 있습니다.
물론 모조품입니다.
진품은 오스트리아 비엔나 박물관에 보관되었다 합니다.
오스트리아에서 발굴한다는 핑계로 반출하여 자기 집 창고에 전시했다는군요.
왜 그랬냐고 따지면, 이게 로마의 유적인데 터키는 로마와는 아무 관계도 없고
오스트리아는 신성로마제국이었으니까 로마의 유지를 이어받은 나라이기에 그랬다고 하면?
셀수스 도서관을 더 아름답게 만드는 치어리더인 여신이 보이십니까?
공부하러 왔다가 저 아름다운 여신에 마음을 빼앗기면 어쩌려고
저런 예쁜 여신상을 저곳에 놓았답니까?
佳人 사진을 이곳에 올리고 여신의 사진을 올리지 않으면 쟤들 삐칩니다.
보이시죠?
그래서 하나씩 올려봅니다.
워낙 사람이 많아 그 앞에서 난리법석을 부리기에 모두 빠져나간 후에
찍으려 한다면 단체여행에서 왕따 당하기에 그냥 찍었습니다.
건물 오른쪽(사진 왼쪽)부터 지혜(wisdom, Sophia)의 신입니다.
지혜롭게 생겼습니까?
조각상을 벽감에 넣은 듯 아름답습니다.
조각상을 둘러싸고 있는 기둥과 상인방의 조각 또한 아름답지 않나요?
상인방 위에는 깨알 같은 글을 새겨놓았습니다.
미덕(virtue, Arete)의 여신입니다.
아래 손들고 있는 여인은 여신이 아니고 너무 오래 버티고 서서 사진 찍는 보통 여인입니다.
포즈를 여러 가지로 취하며 비키지 않아 그냥 찍었습니다.
佳人의 사진을 가린 죄를 물어 계속 벌서고 있으라 했습니다.
지성(intelligence, Ennoia)의 여신입니다.
옴마야~ 머리가 사라졌습니다.
원본이 머리가 없으면 사본도 머리가 없습니다.
지성의 여신이면 치마를 살짝 걷어 올려 속치마를 보여주어도 괜찮은 겁니까?
마지막으로 지식(knowlede, Episteme)을 의미하는 여신이라고 합니다.
여기도 머리가 사라졌습니다.
옆에 있는 지성의 여신이 치마 살그머니 걷어 올렸다고 얘는 왜 또 그럽니까?
비록 머리는 사라졌지만, 옷자락의 주름은 그대로 살아 있습니다.
그러나 진품에 비해 세밀한 표현력은 미치지 못한다 하네요.
복사기가 아무리 좋아도 원본만 하겠어요?
사실 이 네 개의 여신상은 상징적인 여신상이 아닐까요?
실제로는 셀수스가 늘 마음에 지녔던 네 개의 미덕을 의인화하여 표현한 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 위를 보면 그곳에도 여신상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나, 지금은 빈 좌대만 남아 있습니다.
저 위에 있던 여신이 바람이라도 났나 봅니다.
그녀들이 집단 가출하고 남은 자리에 찬바람만 횅하니 붑니다.
그러나 파란 하늘이 아름다운 건물 창문 사이로 내게 성큼 다가옵니다.
안토니오는 클레오파트라에게 이곳에 보관했던 장서 중 3권만 남기고 모두 선물로 주었다는
이야기도 들리는데 정신 나간 일이겠지만, 사람이 사랑에 눈멀면 천하의 영웅이라도
가끔 엉뚱한 사고를 치기도 하잖아요?
당시의 책은 종이가 아니라 양피에다 기록하지 않았을까요?
클레오파트라는 겉으로는 고맙게 받았겠지만, 속으로는 '이 무거운 것 말고
보석으로 주면 안 될까?'라고 생각했을지도 몰러~
가만히 계단에 앉아 입구의 천장을 바라봅니다.
아~ 이 죽일 놈의 아름다움...
이게 정녕 2천 년 전에 만든 건축물이란 말입니까?
이 아름다운 건물을 드나들며 책도 읽고 글도 썼던 사람을 상상해 봅니다.
佳人도 책 한 권 들고 계단에 앉아 예전에 그들이 했던 것처럼 책을 읽고 싶습니다.
그리 하고 싶습니다.
그러다 보면 그들과 영혼의 대화라도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 올려다보는 모습을 예전에 그 누군가 지금의 佳人처럼 올려다보았겠지요?
그리고 후대에 백마 탄 초인이 나타나 자기가 올려다본모습을 바라보며 자기를
기억해주기를 바랬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좌로 보아도... 우로 보아도...
정말 환장하게 돌을 아름답게 만들었습니다.
그 사람도 지금 佳人처럼 도서관을 들어가며 잠시 눈을 위로 올려다보며
이 아름다운 조각을 보았을 겁니다.
佳人과 같은 생각을 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후대 사람은 이 아름다운 이곳에도 상식에 벗어난 짓을 했군요?
다행스럽게도 영희, 철수는 없어서 좋았습니다.
이제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뒤로는 움푹 안으로 들어가게 벽돌을 쌓아두고 빈 좌대만 덩그러니 남아 있습니다.
아마도 저 자리가 아들이 아버지인 셀수수의 조각상을 만들어 올려놓았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학문과 예술의 여신인 아테나 상이 서 있었다 합니다.
바닥으로 모서리에 빈 구멍이 보입니다.
저 구멍이 환기 조절장치였을 것 같습니다.
책을 보관하려면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습도 조절이 아니겠어요?
열람실에 아침 햇볕이 잘 들어오도록 하기 위해 동쪽을 바라보게 지었습니다.
셀수스 도서관 내부는 벽돌로 2중 벽으로 만들어 장서 보관에 알맞은
온도와 습도를 조절했다고 합니다.
넓이 21m 공간에 12,000여 권의 장서가 보관되었었다.
클레오파트라도 이곳을 가끔은 방문했을지도 모릅니다.
왜?
머리에 든 게 많고 교양 있는 척해야 하기에..
그러나 그녀의 주 무대는 아까 내려오며 본 화려한 모자이크가
보도를 장식한 곳에 있던 명품점이었을 겁니다.
그래도 가끔 이곳에 들려 스포츠 신문이나 빠쑝 잡지를 보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높이 16m, 넓이 21m의 이 건물은 1970년대에 복원되었습니다.
하지만 이곳에서 발견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부조상 등 중요한 유물은
복제품으로 남아 있고 진품은 당시 이 유적지를 발굴했던 오스트리아
고고학자들에 의해 모두 비엔나로 옮겨졌다고 합니다.
이 사람들은 고고학자인지 도굴범인지...
왜 그곳에다 옮겨 놓았을까요?
내부의 벽에는 글이 적혀 있습니다.
어쩌고 저쩌고 라고 쓰여 있습니다.
아마도 독일어인 듯하네요.
오스트리아 고고학 발굴팀이 이곳을 복원 중이라...
1970년부터 1978년까지 외스트리히 고고학 연구소가 셀수스 도서관을
복원했다는 말인가 봅니다.
셀수스 아귈라의 아버지가 셀수스 폴레마에아누스였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왜 이런 글을 이 벽에다 새겨놓았을까요?
이 또한 유적에 대한 또 하나의 훼손이 아닐까요?
지금까지 2천 년을 버티어 온 유적에 자랑질을 앞으로 만 년 동안 남기고 싶었나 봅니다.
안내판을 만들어 어디에 따로 세워두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입니다.
안에서 밖을 내다봅니다.
외부의 화려함은 사라지고 안에는 아주 평범한 벽입니다.
겉멋만 잔뜩 들어 내실은 전혀 못 미칩니다.
아닌가요?
도서관의 내부가 너무 화려하면 집중이 잘되지 않기에 그냥 평범하게 만들었나 보네요.
佳人도 외부의 화려한 모습을 보고 가슴이 콩닥거려 진정시키려 무진 애를 썼거든요.
이집트에서 발명한 파피루스라는 최초의 종이는 이집트에서 특허제품이라
수출을 제한하였기에 양피에다 기록하기 위해 양을 잡아 고기는 꼬치구이로
맛나게 먹고 가죽은 두드리고 다듬고...
그러다 보니 양가죽으로 만드는 옷도 부드럽고 얇게 아주 잘 만드나 봅니다.
그래서 이곳 셀축에는 양가죽 재킷을 파는 가게가 많습니다.
佳人이 그곳에서 일일 모델도 했다 아닙니까?
다시 밖으로 나와 위를 또 쳐다봅니다.
역시 아름답습니다.
잠시 계단에 앉아 봅니다.
혹시 천 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영혼의 대화라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가만히 눈을 감아 봅니다.
역시...
식사 후에는 눈을 감고 서늘한 그늘 아래 앉으니 잠만 사르르 오는군요.
공자님이 어서 오라고 하시네요.
기둥 한 번 쓰다듬고 하늘 한 번 쳐다봅니다.
젠장 오늘은 하늘마저 왜 이렇게 아름답습니까?
한참을 서서 다시 돌아보고 또 보고 합니다.
자꾸 클레오파트라가 더 쉬었다 가라고 하는 것 같습니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생각
오늘 참 예쁜 도서관을 보았습니다.
이곳을 드나들었던 수많은 사람을 생각했습니다.
그들이 딛고 오르내렸던 계단에 앉아 잠시 그들과 교감을 나누려 했습니다.
그런데 말이 통하지 않아 금방 포기하고 말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