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 여행기/터키여행

콘야 가는 길에 만난 한이라는 곳

佳人 2011. 6. 3. 00:09

새벽에 일어나 열기구 체험을 하고 다시 호텔로 돌아와 아침 식사를 합니다.

열기구를 타지 않은 사람은 그냥 호텔에서 아침 식사를 하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이번 터키 여행 중 가장 지루한 여행을 준비합니다.

지난밤 우리 일행이 묵었던 호텔은 힐튼호텔로 여행 중 최고의 호텔이었습니다.

 

시설뿐 아니라 음식 또한 종류와 내용이 훌륭한 곳이었습니다.

개업한 지 2개월로 홍보기간이었나요?

그런데 주변은 산책조차 하기 어려운 외곽이었네요.

밤에 늦게 밸리 댄스 보고 새벽에 열기구를 탔으니 사실 산책할 시간도 없었지만...

 

버스는 악사라이를 다시 나와 좌회전하며 남서방향으로 내려갑니다.

주위에 산이 보이지 않습니다.

가도 가도 너른 벌판뿐입니다.

강도 보이지 않습니다.

 

오늘 이동할 곳은 중부 아나톨리아의 큰 도시인 콘야라는 곳을 거쳐 지중해 휴양도시인 안탈리아까지

장장 9시간 이상을 이동해야 합니다.

도로는 곧장 뻗어 일직선의 길입니다.

터키의 아나톨리아 반도의 중앙은 고원지대입니다.

 

주변을 둘러봅니다.

거칠 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산도 보이지 않습니다.

푸른 들판에는 그들의 주식인 빵을 만드는 밀만 자라고 있습니다.

 

가끔 농가가 보이기는 합니다.

길가에는 이름 모를 노란 꽃이 피어 있는 길...

중국의 만리장성 북방에서 중앙아시아에서 척박한 땅에서만 살던 돌궐 족이 이 지역을 차지했다는 일은

횡재한 일입니다.

호박이 넝쿨째 굴러 들어온 기분이었을 겁니다.

 

강은 보이지 않고 농토의 많은 곳이 이렇게 스프링클러를 설치했습니다.

흐르는 감물은 보이지 않지만, 지하를 파면 지하수가 풍부해 이렇게 농사를 짓는다 합니다.

그 땅 아래 파기만 하면 지하수가 흐르는 것은 또 어찌 알았답니까? 

 

이 길은 "눈에 보이는 곳은 끝이 없다. 세상이 이렇게 넓을 수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곳입니다.

주로 밀 농사를 짓는다 하니 역시 주식인 빵을 만드는 밀가루의 산지인가 봅니다.

길은 남서쪽으로 끝없이 나 있고 우리는 마냥 그 길을 달립니다.

 

이런 끝도 보이지 않던 길을 옛날에 낙타를 끌고 대상이 다녔던 길이 아니겠습니까?

바로 이 길이 실크로드였으니 말입니다.

그러면 낙타가 쉴 수 있고 대상이 머물 곳인 주막이 있어야 하지 않겠어요?

낙타는 말보다 빨리 걷지 못하기에 더 자주 쉬어야 합니다.

차마고도의 마방처럼 대상이 머물 주막이 필요합니다.

 

중국에도 차마고도를 따라 장삿길에 나섰던 사람이 머물던 마방이라고 있었잖아요.

여기도 카라반 세라이(Caravanserai)라고 부르는 곳입니다.

어머나!

이곳 숙소의 이름도 술탄 한입니다.

 

숙소의 안에는 잠자는 곳, 낙타가 쉴 수 있는 마구간, 터키식 목욕탕 하맘(Hamam)과 메스지트(Mescit)라 부르는

작은 사원도 있습니다.

의사도 상주하고 있어 치료도 받고 낙타나 말의 발굽도 교체하며 쉬었다, 갈 수 있는 오아시스와 같은 곳이지요.

 

끝도 없는 길을 낙타를 끌고 시속 5km도 안 되는 속도로 하루에 30-40km 정도를 걸었답니다.

낙타는 하루에 많이 걷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30-40km마다 이런 한이라고 부르는 숙소가 있어야겠지요.

 

이곳은 1.229년에 완공된 곳이라 합니다.

여기가 여러 곳에 있는 한 중에 그래도 가장 원형에 가깝게 남아 있는 순탄 한이라는 곳입니다.

 

그런데 보기에 마치 무슨 성처럼 보입니다.

이렇게 요새처럼 견고한 이유는 대상들이 진기하고 값나가는 물건을 싣고 다니기에 물건과 신변 보장을

확실하게 해 준다는 의미가 아닐까요?  

 

덜수가 멘토 마방을 따라 처음 장삿길을 따라나서 걸었던 길이 바로 우리가 조금 전 버스로 달려온 길이 맞을 겁니다.

덜수는 이런 한이라는 대상들의 숙소에 머물며 인생을 배우고 장사를 배워 나갔을 겁니다.

어른이 되며 사랑도 배우고 책임과 의무도 배워갔을 겁니다. 

 

대부분 옛날의 한은 사라졌고 그래도 원형에 가깝게 남은 곳이 이곳이라고 하네요.

그곳에 버스 휴게소가 있어 잠시 들렀다 갑니다.

 

이런 지루한 길을 계속 달리다 보면 휴게소에 한 번 들르게 됩니다.

이 휴게소는 옛날 실크로드를 다녔던 대상들의 숙소가 있었던 곳이니 쉬었다가 가기가 무척 좋습니다.

 

옛날에는 지금 우리가 달려왔단 길에 캐러밴을 위한 무수히 많은 숙소가 있었겠지만,

그래도 거의 원형에 가까운 곳은 몇 군데 남지 않았다고 합니다.

보통 중국의 시안에서 출발한 실크로드...

그 종착역은 이스탄불의 그랜드 바자르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러나 비잔틴 제국이 멸망하며 오스만 제국이 실크로드의 주인이 되며 모든 동서양의 무역을 손아귀에 틀어잡자

유럽의 나라 대부분이 속으로 씩씩거리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중국이나 인도와 직거래를 원했고 한 번에 대량의 물품을 싣고 운반할 수 있는 바닷길을 개척하게 됩니다.

 

그러나 부작용도 생겨 콜럼버스는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고도 그게 인도라고 굳게 믿는 우를 범했지요.

이제 유럽의 부흥기가 옵니다.

바닷길은 신대륙을 발견하고 너도나도 식민지 경영으로 부를 축적하게 됩니다.

아주 신이 났습니다.

오스만 제국은 무역의 독점으로 많은 부를 쌓으려다 오히려 개털이 되고 맙니다.

적당히 욕심을 부려야죠.

이로써 대상이 다니던 길은 먼지만 펄펄 나는 옛날이야기 속으로 남고 대상 숙소인

한도 대부분 사라지는 한 맺힌 이야기입니다.

 

별 볼 일 없던 나라까지 남미로 들이닥쳐 하루아침에 남미의 제국은 사라지고 노예와도 같은 생활에 빠져듭니다.

콘도르와 같은 기상으로 살아왔던 잉카의 마지막 추장인 투팍 아마루도 스페인의 침공에 대항하다 쿠스코

광장에서 형장의 이슬로 사라집니다.

그때 불린 노래가 바로 엘 콘도르 파샤라는 노래라 하더군요.

남미의 국가 중 포르투갈어를 사용하는 브라질만 제외하고 모두 에스파냐어를 사용합니다.

 

그 이유는 이렇답니다.

새 항로로 포르투갈은 아프리카 남단 희망봉을 돌아가는 항로를 택했고 스페인은

콜럼버스처럼 곧장 대서양을 가로질러 가는 길을 택했습니다. 

이들이 발견한 신대륙의 식민지 쟁탈전이 심해지며 심지어 전쟁이 벌어질 만큼 대립이 심각해지자

1494년 당시 교황 알렉산드르 6세가 중재를 하게 됩니다.

 

두 나라 사이에 발견하는 신대륙의 소유권은 아프리카 서쪽 끝 해안에서 서쪽으로 1.500km 되는 지점까지

선을 그어 그 선의 동쪽에서 발견되는 땅은 포르투갈의 소유이고 서쪽에 발견되는 땅은

스페인이 차지하라고 중재를 하였습니다.

정말 굶주린 하이에나 떼처럼 땅 따먹는 우스운 일이 벌어진 겁니다.

우리가 미션이라는 영화에서도 문명인이라는 그들이 저지른 모습을 볼 수 있었잖아요.

 

From Wikipedia

이 1.500km의 선을 그어놓은 조약이 Treaty of Tordesillas라고 합니다. 

그 결과 1.500년 포르투갈 사람 카브랄에 의하여 브라질이 발견되었는데 브라질이 바로 교황이 그어준

토르데시야스 분계선 동쪽에 있었던 까닭에 브라질은 포르투갈의 차지가 되므로 남미 국가 중 유일하게

 브라질만 포르투갈어를 쓰게 되었답니다.

당시 식민지 경영은 교황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나 보네요.

 

중국과의 교역도 낙타를 이용하는 것보다 바다를 통한 대량 교역으로 바뀌며,

점차 대상들의 길은 시들해지며 역사의 지난 모습으로만 남게 되었습니다. 

왼쪽이 목욕탕인 하맘으로 들어가는 문이고 오른쪽이 숙소로 들어가는 문입니다.

이렇게 한이라는 대상의 머물던 숙소는 오스만 제국의 소탐대실의 결과로 문화제로만 남게 되었습니다.

 

이런 거칠 게 없는 길에서도 가끔 속도도 늦추고 섰다가 가야 합니다.

바로 세상에서 가장 온순한 척, 연약한 척하며 살아가는 앙큼한 양 떼가 길을 건너고 있기 때문입니다. 

 

양이 온순하다고요?

턱도 없는 소리입니다.

얼마나 고집이 세고 말을 듣지 않는지...

인류가 속은 가장 큰일이 양을 온순한 동물로 생각했다는 일입니다.

 

이제 언덕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러면 콘야라는 도시가 가까워졌다는 의미입니다.

 

이제 콘야라는 도시로 들어왔습니다.

콘야는 앙카라의 남쪽에 있으며 약 250km 정도 떨어져 있습니다.

 

콘야는 고대 도시로 로마시대에는 이고니온이라는 이름으로 불린 고도시입니다.

셀쥬크 튀르크의 수도였다지요.

오늘 새벽에 열기구 체험을 하지 않으신 분은 오늘 일정 자체가 없는 이동만 하는 일입니다.

 

콘야라는 도시는 아주 독실한 모슬렘이 많이 사는 도시랍니다.

우리에게도 알려진 치마춤이라고 하는 터키의 춤 세마(Sema)가 있습니다.

 

남자가 추는 춤으로 치마를 입고 몇 시간이라도 계속 도는 그런 춤이지요.

바로 콘야라는 도시가 그 춤의 발상지라고 하네요.

이곳에 이 춤 수피즘(Sufism)의 창시자인 루미(Rumi)의 무덤이 있답니다.

 

이슬람 신비주의의 한 종파를 수피즘이라고 부르며 13세기경 루미라는 철학자에 의해 생긴 종파인 셈입니다.

여기서 그들의 사상은 물질로부터 나를 해방하는 데 있습니다.

몇 시간을 빙글빙글 돌며 무아지경이 이르고 나와 신과 하나가 되는 명상의 시간입니다.

 

죽음을 상징하는 검은 옷과 묘비석의 의미하는 모자...

죽은 모습을 나타내는 손을 가슴에 X자로 표시하며 출연하며 춤이 시작됩니다.

검은 옷은 벗어버리며 춤이 시작되며 고개는 약간 기울이고(중심을 잡기 위함)

오른 손바닥은 하늘을 왼손 바닥은 땅을...

 

그러니 하늘의 신으로부터 영험한 기가 오른손을 통하여 내게 들어와 왼손을 통하여 온 세상으로 전달되는 것으로

나를 세상의 한 부분으로 천지와 함께하는 한 부분이 됩니다.

차는 콘야라는 도시에 머물며 이곳에서 점심을 먹고 다시 달려갑니다.

지금까지는 고원지대인 평야를 달렸지만, 이제부터는 토로스 산맥을 넘어 지중해로 가게 됩니다.

 

오늘 이동한 길입니다.

온종일 차만 타고 이동했습니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터키 여행에서 가장 힘든 일 중의 하나가 장거리 이동입니다.

워낙 넓은 땅을 가진 나라이기에 유적지나 멋진 풍광을 자랑하는 곳을 찾아가기 위해서는

장시간 버스를 타고 이동해야 하는 일이 자주 생깁니다.

그래도 그곳에 도착해 바라보면 잘 왔다는 마음이 들기에 거뜬히 이겨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