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페소스에서 본 익투스라는 물고기
이 도시는 기원전 2.000년경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했다 하네요.
그렇다면 이곳에는 인간의 역사가 4천 년이나 된다는 말이 아닙니까?
옛날부터 지리적인 이점은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곳이었고 그러다 보니
무역의 중심도시로 점점 발달하게 되며 돈이 굴러다니면 사람이 모입니다.
기원전 2.000년이라면 지금으로부터 4.000년 전이고...
우리의 단군 할배와 맞먹겠다는 말이 아닙니까?
처음 BC 11세기경 이오니아인이 이곳을 점령했으며 그 후에는
스파르타의 지배를 받기도 했다는군요.
이후 알렉산더 대왕과 그 부하 장수인 리시마쿠스가 에페소스의 지배자가 되기도 했다 합니다.
이제 우리는 시청사와 공공기관이 모여 있었던 종합청사 터라는 프리타 네이온
(Prytaneion)에 왔지만, 시청 터라고 하니 그런가 보다 하지요.
그냥 돌멩이와 기둥 몇 개만 남았습니다.
에페소스는 로마로부터 자치권을 인정받아 독자적인 행정을 펼치던 곳이었으니
이곳의 중요성은 대단했을 것입니다.
에페소스를 지키는 꺼지지 않는 불이 이 건물 중앙에 있었다 합니다.
그 후 에페소스는 로마시대 아우구스투스 황제 시절에 소아시아의 수도로
지정될 정도로 번창하게 됩니다.
그러나 달도 차면 기운다 했습니다.
그래서 이곳을 버리고 아까 점심을 먹었던 셀축이라는 곳으로 도시 기능이 옮겨가며
이곳은 맹 돌만 남았습니다.
양쪽은 이오니아식의 기둥이고 그 옆은 코린트식으로 연대가 달라
기둥의 양식도 조금씩 달라졌습니다.
이 기둥은 복원작업 중 잘못 세웠든지 아니면 당시 지진이나 다른 이유로 무너져 버리자
후대에 세우다 보니 양식이 달라지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이렇게 대단한 도시도 세월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어느 날 폐허로 남아 버렸습니다.
돌아다니다 보면 "어즈버 태평연월이 꿈이런가 하노라!"라는 말이 입에서 나옵니다.
기둥을 세웠던 기단 부분입니다.
바닥에 홈을 파고 우리의 짜맞춤 방식처럼 끼워 넣었나 봅니다.
물론 기둥도 같은 위치에 구멍을 파고 둘 사이에 나무나 돌로 끼워서
단단하게 고정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바깥쪽에서 가운데 구멍을 향하여 홈을 판 자국이 보입니다.
佳人 생각에는 나무를 끼우고 나중에 물을 주입한 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나무에 물을 넣으면 나무가 팽창하며 아주 견고하게 잡아주니까요.
확실하냐고요?
물론 佳人의 말은 '아니면 말고, '입니다.
이곳을 수습할 때 아르테미스 여신상이 두 점이나 발견되어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고 하네요.
이 도시에서는 아르테미스 여신을 신봉한 모양입니다.
나중에 기독교가 허용되며 아르테미스 여신상을 모시는 일은 우상숭배라고
많은 갈등마저 겪었다 하네요.
이런 도시가 폐허가 된 이유가 한두 가지가 아니겠지만,
요약하면 첫 번째 이유는 잦은 지진 때문이라는군요.
그다음이 이 도시의 존재 이유 중 하나였던 항구가 멘데레스라는 카이스테르 강에서
쓸려 내려온 토사가 처음에는 이 부근을 살찌우는 역할을 했지만, 점차 바다로 들어가며
항구를 메워 항구가 제 기능을 하지 못했던 것도 이유입니다.
사람이 많이 모이다 보니 더 많은 농토가 필요하고 자연히 산에 나무를 베어
농토를 만들고 농사를 짓게 됩니다.
문제는 나무가 점차 사라짐에 따라 비가 내리면 많은 토사가 강으로 흘러들어 가게 되겠지요.
바로 그게 강을 메우고 항구로 흘러가 기능을 못하게 하니 인간이 결국
폐허로 만들었다고 해야 하지 않겠어요?
인간은 살기 위해 자연을 훼손하고 그 자연은 인간을 응징합니다.
마지막으로 전염병의 창궐입니다.
의학이 발달한 지금도 점염병으로 많은 사람이 죽어가고 두려움에 떠는 데
옛날에는 어떠했을까요?
아무리 의학이 발달해도 언제나 병을 앞서갈 수는 없지 않겠어요?
위의 사진에 보이는 건물 유적은 로마 총독이 거주했던 곳이자
디모테오가 순교한 장소로 알려져 있습니다.
전염병이 창궐하여 많은 사람이 죽어가면 괴질에 대한 두려움에 누구나
사람이 살지 않는 곳으로 떠나려고 할 겁니다.
그런 이유로 아무리 큰 도시라도 사람이 떠나면 죽은 도시가 되지 않겠어요?
바로 에페소스가 그런 곳이 되어버렸습니다.
에페소스에는 우리가 기독교인들이 사용하는 물고기를 볼 수 있습니다.
위의 사진을 보시면 물고기 모양의 그림을 보실 수 있습니다.
물고기 모양의 표시는 기독교 신도에게는 일종의 암호라고 합니다.
처음에 기독교 탄압을 피해 지하로 숨어들며서로 신분을 알 수 없을 때 물고기 그림을 그려
신호를 통해 서로 간 기독교인임을 알리는 방법으로 사용하였다는군요.
물고기의 의미는 '하나님의 아들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란 말의 희랍어 머리글자만 따면
물고기를 의미하는 '익투스'가 됩니다.
그래서 물고기의 그림을 기독교인의 표시로 사용하였다고 합니다.
처음에 기독교는 로마 제국으로부터 불법 종교 단체로 선고받았습니다.
특히 그들은 로마 황제 숭배를 거부했기 때문에, 로마로부터 심한 박해를 받았고
수많은 사람이 순교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배드리기 위해서 카타콤과 같은 비밀 장소에서 만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만날 때에 로마 군인들의 눈을 피하고자 기독교인을 표시하는 방법으로
물고기 모양을 이용했답니다.
예를 들어서 한 기독교인이 발로 땅 위에 물고기 모양의 윗부분을 그리면, 다른 기독교인이
나머지 아랫부분을 그렸겠지요.
어두일미라고 물고기 그림도 머리를 먼저 그렸을 겁니다.
이러한 암호를 통해서 기독교인들은 서로가 같은 믿음을 가진 자라는 것을 확인했을 겁니다.
고대 그리스어로 "물고기"는 "IXOUS"(ΙχθΥΣ)라고 썼으며, "익투스"라고 읽습니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은 물고기라는 단어의 첫 자를 이용해서 다음과 같이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 구세주이십니다."라는 의미로 사용했습니다.
왜냐하면, 공교롭게도 예수(Ιησoυs), 그리스도(Χριστοs), 하나님(θεοs), 아들(Υιοs),
구세주(Σωτηρ)의 첫머리글자 만을 따서 모아 보면 물고기라는 그리스어 '익투스'(ΙΧθΥΣ)라는
단어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물고기란 단어에는 예수님에 대한 기독교 신자들의 신앙고백이 담겨 있다고 합니다.
예수(I...)
그리스도(X...)
하나님의(O...)
아들(U...)
구세주(S...)
첫 글자만 따면 익투스(ΙΧθΥΣ)가 되고 그 단어는 물고기를 지칭하는 단어이기에 물고기가
바로 암호로 생겨난 것입니다.
또한, 카타콤은 공동묘지 역할과 함께 일종의 지하도시로서 내부로 들어오면
출구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아주 복잡했다 합니다.
따라서 카타콤은 현지 지리에 익숙한 기독교 신자들이 몸을 숨기기에는 안성맞춤이었습니다.
자주 드나들던 사람일지라도 세상 어디나 길눈이 어두운 길치가 있게 마련입니다.
그런 사람은 카타콤의 미로에서 물고기 머리가 향하는 방향을 따라 자신들의 집회 장소를
찾아왔으며 물고기 모양은 오늘날 십자가가 그리스도교의 상징인 것처럼
초대교회에서 믿음의 상징이 되었다 하네요.
우리도 이제 물고기 머리가 가리키는 길을 따라 또 다른 유적을 찾아갑니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세상의 역사는 종교와 전쟁 이야기가 많습니다.
이미 데린쿠유라는 지하도시를 보고 왔습니다.
그런 곳에서 수 백 수 천년을 산다는 일은 신앙의 힘이 아니면 살아가기 어렵지 않겠어요?
이루어지지 않는 꿈은 없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