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풍진 세상을 만났으니...
아유타야는 방콕 북쪽으로 76km 정도 떨어진 태국 최대의 유적이 모여 있는 도시랍니다.
아유타야는 14세기 중반에서 18세기 후반까지 지금 태국 중부지방을
통치하던 시암족의 왕조였답니다.
그러니 그 왕조의 수도가 아유타야입니다.
이 아름답고 번성했던 아유타야....
지금은 폐허 사이로 걷는 일이 전부랍니다.
인간의 삶도 영화로웠던 아유타야도 지금은 모두 지나가버린 한 줄기 바람인가요?
그러니 무너진 왕조는 누가 기억이나 하겠습니까?
마지막 왕은 버마의 침공에 아침 안개 사라지듯 숨어버렸습니다.
삼베 바지 사이로 뭐 사라지듯 말입니다.
실종신고도 아직 되어 있지 않을 겁니다.
이렇게 버틸 때까지 버텨보아야지 흔적이라도 남기지 숨는다고 해결이 되겠습니까?
이게 관광대국의 유적 보호 방법입니까?
안쓰럽습니다.
더는 무너지지만 않는다면 행복하다는 인상을 풍깁니다.
오래 살자고 도망간 왕이나 버마의 공격에 용감하게 대항하다 죽은 병사나
지금은 모두 같습니다.
인간의 세계는 시간이 지나면 모두 같아집니다.
그나마 주변의 정리는 말끔하게 하여 다니는 데는 불편함이 없습니다.
이제는 더 무너질 곳도 없고 무너진다 한들 누가 복구라도 하겠습니까?
우리나라 가야국 김수로 왕의 부인인 허황옥 왕비가 아유타국에서 왔다고
삼국유사에 기록되어 있다고 합니다.
그럼 혹시 이곳 아유타야가 아유타 공주가 출발한 장소입니까?
아니라는군요.
허황옥 공주가 가야에 도착한 시기인 A.D 43년에는 아유타야라는 나라는
지구 상에 존재하지도 않았답니다.
그러니 지금 우리가 온 태국의 아유타야는 당시에는 그냥 사람이 살지 않는 밀림이었답니다.
그곳은 인도의 아요디아라는 곳이 거의 확실하다는군요.
아요디아는 부처인 고다마 싯다르타가 처음 출가하여 공부한 지역이기도 한
유서 깊은 도시입니다.
비쉬누의 화신인 라마 왕자가 태어나 자란 곳이기도 하고요.
그러니 비쉬누의 화신이 라마 왕자이고 부처가 비쉬누의 화신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면 적어도 허황옥 공주도 아요디아의 공주였다니 비쉬누와 연관이 있고
라마 왕자도 부처도 모두 비쉬누의 화신이 아닙니까?
그러면 허황옥 공주는 비쉬누가 타고 다녔다는 멋진 가루다를 타고
우리나라에 도착했을 텐데
그 가루다는 도대체 어디다 숨겨 놓았을까요?
공연히 허황옥 공주 이야기를 허황되게 하였습니다.
아~ 가루다....
그 대신 잘생긴 가루다 사진이나 한 번 보고 갑시다.
얼마나 늠름합니까?
인간의 몸에 독수리의 얼굴.... 용을 주식으로 한다는 가루다.
아...
전쟁의 아픔입니다.
어쩌면 이렇게 파괴를 했을까요?
한 때는 동남아시아를 지배했고 아름다운 문화를 꽃피웠던 아유타야....
제가 부처님의 손이라도 잡아 드려야겠어요.
아니? 이럴 수가!!! 아직도 부처님의 따뜻한 온기가 살아있습니다.
"마눌님~ 아직 부처님의 손에서 따뜻한 온기가 느껴져요~"
마눌님이 옆에서 한마디 하십니다.
"오늘 햇볕이 매우 따갑습니다. 더위 먹지 않도록 모자를 꼭 쓰고 다니세요."
여러분도 그곳에 가면 부처님 손을 살그머니 잡아보세요.
정말 부처님의 따뜻한 온기가 느껴져요. 아니... 뜨거운 온기요.
부처란 우리가 생각하면 마음속으로 어느 누구나 느낄 수 있는 존재입니다.
이곳에서는 서로 교감도 할 수 있답니다.
아직 땅바닥에 뒹구는 부처의 육신....
패망한 나라의 부처는 불교국가라는 태국에서조차 유효기간이 경과하여
공경받지 못하고 불쌍하게 바닥에 뒹굴고 있습니다.
남자는 여자 하기 나름이라고 했습니까?
그러면 유적 보호는 누가 하기 나름입니까...
버마의 침공에 줄행랑을 친 왕조의 마지막 왕이 가출하고 나니
유적마저 돌보지 않는군요.
역사는 승자도 패자도 없습니다.
다만 과거와 현재만 있을 뿐입니다.
비록 무너져버린 유적이지만 유적은 그 자체로 존재의 가치가 있습니다.
그리고 칼파(Kalpa)의 세월이 흐르면 천의무봉에 의해 모두가 티끌이고 먼지로 변합니다.
그래서 세상은 풍진이지요.
원래 탑의 용도는 석가모니의 사리나 유골을 보관하던 곳이었다지요?
이곳에서는 역대 왕들의 유골을 모시기 위해 탑을 만들었다고 하는군요.
탑의 모양이 라마 불교의 수투파처럼 보이기도 하고
스리랑카의 스타일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아래 사진처럼 다이아몬드 문양의 조각으로 만든 표지석을 간혹 탑 앞에 놓아두었습니다.
그 의미는 이 탑의 내부에 부처상을 모셨다는 의미라고 합니다.
나무 그늘에 앉아서 해금처럼 생긴 악기로 애잔한 음악을 연주하고 있습니다.
마치 과거의 영화가 그리운 듯 말입니다.
이 여인이 혹시 버마의 침공 때 불타는 궁궐을 마지막으로 바라보며 가슴이 아파
눈물지었던 바로 그 아유타야 장악원 해금 연주자의 후예가 아닐까요?
아래 사진의 탑은 전형적인 크메르 양식의 탑입니다.
세 곳의 가짜 문을 만들고 한 곳만 열어놓았습니다.
건축 양식도 앙코르 타입, 버마 타입 등 여러 나라의 형식이 하나의 탑에서도 보입니다.
아마도 침공 당시 탑 안에 보물이라도 있을까 하고 가짜 문을 부숴버렸군요.
유적은 벽돌과 그 위에 시멘트로 도배되어 유적이라기보다 철거되기 직전의 흉물스러운
모습으로 오히려 캄보디아 씨엠립에 있는 석조로 된 앙코르 유적이
더 보기도 좋고 아름답다는 생각입니다.
아~ 이 풍진 세상을 만났으니.....
세상에 영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모두가 바람이며 티끌인 풍진이지요.
탐욕도 훨훨~ 미움도 훨훨~ 모두 버리고 바람처럼 구름처럼 그리 살다가 가야지요.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불교국가에서 부처상이 땅바닥에 그냥 뒹굴고 있습니다.
유적을 보호하고 유지하는 비용이 많이 들어서일까요?
아니면 패망한 왕조에서 모셨던 부처라서 유효기간이 지나서일까요?